제1장 2


 
 

제 1 장

2

 

조인철이는 자기의 개인적인 운명에서 중요한 시각에 들어서고있는듯 한 느낌으로 좀처럼 안정할수 없었다. 수령님께서 자기를 잘 알고계시며 몸소 찾아주셨다는 사실은 그로 하여금 깊은 감동에 젖어 많은것을 생각케 하였다. 사실 수령님께서 광복후에 얼핏 한번 만나주셨던 이름없는 지식인을 기억하고계시며 내각에서 책임참사로 일한다는것까지 아신다는것만 하여도 과분한 영광이였다. 이것은 자기가 수령님의 보살피심속에서 일군으로 성장하고있음을 말해주는것이였다.

사실 그러하였다. 농민의 아들로 하도 배우려는 열망이 크고 또 총명하여 농업학교를 졸업할수 있었지만 일본놈들밑에서 민족적멸시를 당하며 일하기를 거부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조인철은 농민들과 같이 일하면서 그들에 대한 동정과 땅에 대한 애착심을 깊이 간직하게 되였다. 말하자면 대지의 순결한 넋을 지니게 되였다.

그리하여 광복이 되자 그는 농민들의 대변자가 되여 군농민조합총무부장으로 농민계몽사업과 3.7제투쟁에 앞장섰다. 그리고 토지청원서를 가지고 평양으로 가는 군농민대표로 뽑히여 김일성장군님을 만나뵙기까지 하였다. 이날은 그의 인생전환에서 결정적인 날로 되였다. 장군님께서는 지식인청년에게 관심을 돌리시여 어떻게 농민들과 함께 오게 되였는가를 알아보신 다음 곧 토지개혁을 실시하려 하는데 이 사업에서 한몫해주기를 바란다는 믿음을 주시였다. 이제껏 제힘과 재능을 다 바쳐 일할수 없어 고민하고 몸부림치던 조인철이는 장군님의 말씀을 받들어 군에서의 토지개혁사업에서 자기책임을 다하였다. 그후 그는 군당에서 일하다가 평양으로 소환되였다.··· 이렇듯 애국열의로 충만된 가슴을 진정 못해하던 그를 수령님께서 이끌어주시고 키워주시였다.

그런데 오늘 수령님께서는 친히 자기를 찾아주시고 한번 만나려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조인철에게는 오늘 아침의 짧은 한순간이 마치 꿈처럼 느껴졌다. 어떻게 이러한 영광이 차례질수 있었는가. 더욱 놀랍고 황송한 일은 수령님께서 고향마을에서 안정치료를 받고있는 안해의 안부까지 물어주시였고 빨리 데려다 평양의 큰 병원에 입원시키도록 하라고 말씀하신 사실이였다.

사실 조인철이는 정전이 된 요새처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해져본적은 없었다. 그는 전화의 그 간고한 시기에 피난을 간 가족과 3년간이나 떨어져살았다. 가족이래야 안해와 어린 아들애였는데 네살때 헤여진 아들애는 그사이 일곱살이 되였다. 내각에서 젊은 녀성들을 먼저 불러내오는 조치를 취하여 안해 현순실이도 인차 평양에 도착한다는 소식이 왔을 때 그는 얼마나 흥분했던가. 그 소식은 그로 하여금 누구나 목마르게 기다리던 평화와 평화적로동에 대한 현실감을 강하게 느끼도록 하였다.

가족과 헤여져 모란봉의 랭습한 굴속에서 장기간 전쟁을 겪어온 그에게 있어서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온다는것은 개인적으로 볼 때 우선 따뜻한 온돌이 있는 집에서 안해와 아들을 다시 만나 살게 된다는 뜻이였다. 그래 배정받은 집에 불을 피워놓고 자기의 자그마한 가족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기다리던 가족은 오지 못하고 안해가 폭격에 상했다는 불길한 소식이 대신 왔다. 그는 불시에 들이닥친 불행앞에서 주눅이 들어 한동안 어깨가 처져다니였다. 참으로 예측할수 없는것이 운명인듯싶다. 그는 안해한테로 가보고싶었으며 부서에서도 속히 가보라고 말했지만 정전을 전후한 시기여서 몸을 뺄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처럼 평화는 왔으나 갈망하던 안해와의 상봉과 단란한 가정생활에 대한 꿈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안해에게서 편지가 왔으나 그것이 가족을 대신할수는 없었다. 그저 어느정도 위안이 될뿐이였다. 그의 애절한 상념은 가끔 시내물이 흐르고 낟알이 익어가고있을 시골의 그 자그마한 마을로 줄달음쳤다. 그러나 그 마을에 대한 이전의 추억은 사라지고 앓는 안해의 아련한 얼굴이 불에 탄 어수선한 마을풍경과 함께 서글프게 떠올랐다.··· 이러한 아픈 심정을 바로 수령님께서 알아주시였던것이다. 그런데 우리 수령님께서야말로 이 전쟁기간에 그 누구보다도 고생을 많이 하시지 않았던가. 그이께서는 일찌기 어머니를 잃은 자제분들과 헤여져 눅눅한 최고사령부의 방공호와 침실에서 홀로 주무시며 가족의 그리움을 아프게 체험하시였을것이다. 때로 회의가 늦어지면 수령님께서는 최고사령부로 들어가지 못하시고 내각의 집무실에서 주무시군 하시였는데 그런 때면 조인철이는 내각성원들과 함께 그이의 호위병이 된 심정으로 밤을 지새면서 곁을 떠나가신 김정숙녀사를 생각하며 눈물을 머금군 하였다.

(아니, 아니다. 내가 어떻게 이 중요한 시기에 사무실을 비우고 가족을 데리러 갈수 있겠는가. 더구나 괜찮다는 편지까지 오지 않았는가. 자신과 자기 가족을 먼저 생각할 시기가 아니다. 은정만을 받아안고 보답은 못하는 인간은 인간이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며 조인철이는 사무실이 있는 침침한 굴속으로 향하였다. 당분간은 굴속에서 계속 일해야 할것이다. 그는 희미한 전등불빛을 받아 물기 번들거리는 암반들이 동발목들사이로 삐죽삐죽 보이고 석수가 뚤렁뚤렁 떨어지는 굴길을 걸어 안으로 들어갔다. 깊이 들어갈수록 모란봉에서 풍기는 꽃향기와 생신한 풀냄새가 진하게 섞인 상쾌한 공기는 차츰 진흙과 곰팡이냄새 풍기는 랭습한 공기와 바뀌여지며 기분이 울적해졌다. 그러나 이 굴속생활도 끝나게 되였다는 기쁨이 그러한 기분을 가셔주었다.

이날 조인철이는 수령님께서 자기가 맡아보고있는 협동단체들에 대한 구체적인 료해를 하시려는것으로 예견하고 그 방향에서 빈틈없이 준비를 하였다.

그는 먼저 자료를 완비하기 위하여 대기차를 타고 농업성으로 갔다. 그는 그곳에서 부상 강봉석이를 만났다. 이 강봉석이라는 사람은 농업성을 실지 움직이는 유력인물이였는데 광복후 쏘련에서 나왔다.

조인철이는 그에게서 꼴호즈를 비롯한 협동단체와 관련한 쏘련책들을 빌려보게 되면서 가까워졌다. 원체 교만하고 까다롭다는 말을 듣는 강봉석이는 조인철이를 자기보다 나이도 10년가까이 아래거니와 락후한 조선농촌에서 제발된 일군이라고 깔보며 대상하려고도 하지 않았었다. 그랬는데 조인철이 고급간부학교에서 로어를 배워 로문원서들을 읽을줄 알며 꼴호즈에서 농산기사로 일하다가 온 자기 강봉석이를 존경하면서 겸손하게 배우려는 자세를 보이는데 감심이 되여 《똑똑한 사람이군.》하는 평가를 내린 뒤부터 태도가 달라졌다. 그는 내각에 볼일이 있어 올 때면 조인철이가 요구하는 책들을 가져다주군 하였다. 조인철이는 그덕에 꼴호즈의 규정규약도 읽게 되고 협동단체는 조인철이가 안다는 말을 듣게까지 되였다.

강봉석은 얼굴의 곡선들이 뚜렷하고 칼칼한 인상을 주는 40대의 중년으로서 키는 중키였다.

《아, 이게 누구요?》

그는 자기를 방문한 조인철이를 반갑게 맞으며 일어서서 손을 내밀었다.

《무척 바쁜게지? 요새는 통 볼수가 없구만.》

《협동단체라고 하는 공간을 통하여 도시와 농촌의 사적소유자들을 사회주의적협동소유에로 이끌어야 하는 사업이 간단할수 있습니까?》

조인철이는 롱으로 대답하였으나 실지로 그 사업이 전후에 중시되고있기때문에 요새 몹시 분주하였다.

《그 사업이 간단치 않지···》

《우리는 협동적소유에로의 발전을 전후에 본격화하게 될것입니다.》

조인철이는 농업성에 찾아온 목적을 밝히기전에 이와 같이 자기가 하고있는 사업의 전망에 대하여 말하였다.

《전후에 본격화한다···》

강봉석은 상체를 뒤로 젖히였다.

《내 생각에는 협동단체사업의 기본대상이 개인농경리에 해당된다고 보는데 그렇지 않소?》

《그렇다고 보는것이 옳겠지요.》

《그렇다면 현실을 랭정하게 보아야 할거요. 전후에 무엇을 어떻게 본격화한단말이요? 밖을 좀 내다보오?》

강봉석은 일어서서 창문을 열어젖히였다.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것은 폭격에 페허로 되다싶이 한 평천리일대의 공장지구들과 농촌마을들이였다.

《폭격에 무너지고 불타버린 농가들, 파괴된 수로들과 양수장들밖에 무엇이 또 있소? 그런데도 협동적소유에 대하여 말하오? 글쎄 품앗이반 같은거야 조직해야지. 그런데 벌써 엄청나게도 농촌협동조합조직에 대해서들 말하고있단말이요. 물질적기초가 다 파괴되였는데 말이요. 저걸 보오. 느릿느릿 세월없이 굴러가는 소달구지 하나가 겨우 눈에 띄우고있소. 저 소달구지우에 꼴호즈라고 하는 짐을 싣자고 하오? 세상이 웃겠소.》

그는 창문을 닫고 걸상에 않으며 담배갑을 집어들었다.

《현 단계에서는 협동화를 위한 준비사업을 해야 하며 그 준비사업도 당신네나 우리 농업성이 아니라 중공업성이 해야 하는거요. 다시 말해서 뜨락또르부터 만들어야 한단말이요?》

조인철이는 차라리 입을 다물고있는편이 낫겠다고 생각하였다.

실지로 꼴호즈에서 일하다가 온 체험자인 강봉석의 론거를 당해낼수 없었다. 아니 조인철자체가 농촌에서의 협동적소유를 어떻게 발전시키겠는가 하는데서 똑똑한 방안이 없었다. 그는 도시의 생산협동단체들을 중시했으며 농촌에서는 지금의 품앗이반이나 다름없는 협동단체들을 장려하는 방향에서 모색하고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무슨 농업협동조합이겠는가. 그는 농업협동조합이라고 하면 먼저 쏘련의 꼴호즈가 떠오르는것이였다.

그는 강봉석이가 얼마전에 신문에 쓴 《레닌적협동조합계획의 승리》라는 글을 읽었지만 그것을 그저 쏘련에서의 꼴호즈조직경험을 소개한 론설로 대하였다. 그러나 지금 강봉석의 랭철하고 예리한 말을 듣고나니 그 론설의 내용들이 보다 심오한 의미로 해석되는것이였다.

《뜨락또르를 만든다는것도 사실 막연하지.》

강봉석은 혼자말처럼 하였다.

《우리 나라에 어디 기계공업이란것이 있는가.》

그는 심각해진 얼굴로 말없이 앉아있는 조인철이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는지 아니면 그에게 동정이 갔는지 《허, 내가 이거 오래간만에 만난 사람한테 공연히··· 그래 무슨 일로 왔소?》하고 물으며 담배를 권하는것이였다.

이때 강봉석이가 한말은 조인철의 머리속에 강한 인상을 남기였다. 그것은 이날 오후에 김일부위원장의 부름을 받고 중앙당에 가서 그와 담화할 때 큰 작용을 하였다. 김일의 부름을 받은것도 뜻밖이였고 그가 농업협동단체에 대한 료해부터 시작하여 바로 그 농업협동화에로 담화를 이끌어가면서 조인철이의 견해를 알고싶어한것도 예상밖의 일이였다.

우람찬 체구, 뚝한 표정, 첫순간부터 그 어떤 위압감을 주며 웃음이나 사담이 없고 상대방의 구구한 설명을 질색하는 김일과의 담화는 매우 긴장한속에서 진행되였다.

조인철이는 김일을 먼발치에서 몇번 보았을뿐 직접 만나서 이야기해보기는 처음인데 옷을 후렁후렁하게 입고있는 그에게서는 후더분한 인정미가 느껴지였건만 어째서인지 그를 대하기가 어려웠다.

김일은 말을 적게 했지만 질문을 함에 있어서 매우 예리했고 구체적이였다.

가정환경, 살아온 경위, 안해와 아들, 친우관계, 지금 하고있는 사업내용 등을 알아보다가 농업협동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였는데 여기서 강봉석의 이름이 나오자 김일은 짙은 눈섭을 찌프리는것이였다.

《동무는 분명 된장을 먹고 자란 사람인데 어떻게 되여 빠다냄새가 풍기오?》

김일이 이렇게 추궁할 때 조인철이는 등골로 땀이 쭉 흘렀다.

한마디로 말하여 조인철이는 정신적시련을 겪었으며 담화는 잘되지 못했다.

그런데 이 담화는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안타까운것은 김일부위원장이 구체적으로 무엇이 잘못되였다고 찍어 말해주지 않아서 실지 자기가 무엇때문에 그에게 실망을 주었는지 명백히 알수 없는것이였다. 올해초에 있은 전국농민열성자대회를 계기로 농업협동화가 일정하게 론의에 올랐는데 그 론의는 그저 그러다가 말았다. 아직 전쟁시기였고 중요하게는 농업협동조합의 모델이 쏘련의 꼴호즈라는것과 바로 그 꼴호즈는 나라의 공업화에 토대하여 조직된것이라는것이 누구에게나 명백하게 인식되여있었기때문이였다. 그러므로 조인철이는 김일에게 《강봉석부상동무가 쓴 론설을 읽어보면 명백합니다.》하고 대답했었다. 그러자 김일이 기분나빠했었다. 그러면 전후에 농업협동화를 당장 할수 있단말인가?··· 조인철이는 이렇게 문제를 제기하고는 놀라움을 금할수 없었다.

그는 혼란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