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1


 
 

제 1 장

1

 

하늘이 훤해지면서 새날의 푸른 빛이 골안의 어둠을 서서히 밀어내며 엷게 퍼지고있었다. 그물처럼 엉킨 수림우듬지의 들쑹날쑹한 륜곽이 뚜렷해지고 골안의 굴밖에 내다지은 건물들, 이를테면 내각성원들의 사무실들과 직원들을 위한 합숙, 식당 그리고 보초소 등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전쟁기간 내각은 모란봉기슭의 이 안침진곳에 폭격을 피하여 굴을 뚫고 들어가있었는데 폭격이 없을 때는 굴밖에서 일도 하고 침식도 했다.

고요하고 신선한 아침이였다. 아직 오가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전승의 환희로 며칠동안 밤잠도 잊고 설레이던 사람들이 안식의 깊은 잠에 빠져들었을것이다. 내각이 있는 골안에도 보초소에 초병들이 차렷자세로 서있을뿐 바람마저 잠들어 길가의 나무잎들이 까딱 움직이지 않았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날 아침도 일찌기 내각으로 출근을 하고계시였다. 승용차가 보초소를 통과하자 보초병이 영접들어총의 절도있는 동작으로 례의를 표시했고 팔에 붉은 완장을 두른 직일관이 경건한 표정으로 거수경례를 붙이였다.

전쟁이 끝났으며 생활은 새로운 궤도를 따라 달리게 되였다는 격앙된 감정을 현실로 느끼게 하는것은 우선 차광막을 떼여버린 창문들에서 내비치는 불빛이였다. 어둠이 채 가셔지지 않은 골안의 이곳저곳에서 전등불이 마치도 전승의 장식등인양 반짝이고있었다.

《가만··· 내가 지금 사람을 한명 찾으려 하는데 저기 식당에 좀 들려봅시다.》

김일성동지께서 말씀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의아해하는 책임부관과 함께 차에서 내리시여 불빛이 비쳐나오는 식당쪽으로 향하시였다.

돌층계를 올라 맞다들게 되는 기윽자로 꺾인 기와집이 식당이였다. 그이께서도 점심식사를 하시거나 간혹 내각에서 주무실 때 리용하군 하시는곳이였다.

식당에는 식사를 하려온 합숙생이 몇사람 있었는데 그이의 우렁우렁한 목소리를 듣고 또 이 아침처럼 청신한 그이의 미소어린 안광을 대하자 그들은 기쁨에 겨워 어쩔줄 몰라하였다.

《아, 동무구만. 내가 지금 동무를 찾고있는중이요.》

그이께서는 밖으로 달려나온 합숙생들중에서 소매짧은 흰여름옷을 입은 몸매가 균형잡힌 젊은 사람을 가리키시였다.

《내각에 들어와서 책임참사로 일한다는것은 알고있었는데 만나볼 기회가 없었지. 이름이···》

《조인철이라고 합니다.》

《옳아. 조인철이지.》

그이께서 광복후 조인철이를 처음 보시였을 때 인상깊이 뇌리에 새겨진 그 생신하고 혈기에 넘쳐있던 순진한 청년의 모습이 금시 되살아났다.

그때로부터 많은 세월이 흘렀으나 그 본바탕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지금 서른서너살 되였을가? 이런 짐작이 가시였다.

《동무는 아마 협동단체사업을 보고있지?》

그이께서 조인철에게 물으시였다.

《그렇습니다.》

《협동단체들에는 어떤것들이 있소?》

《철물, 직물, 농업, 수산 등의 각종 생산협동단체들과 소비조합을 비롯한 비생산협동단체들이 있습니다.》

조인철이가 짧게 말씀드리면서도 본질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쓴다는것이 그의 긴장된 모습에서 느껴졌다.

《농업생산협동단체는 어떤 규모요?》

《농가 셋, 다섯 혹은 일곱세대정도 합쳐서 같이 농사를 짓거나 돼지같은 가축을 공동으로 사육하고있습니다.》

《내가 동무를 한번 만나려 하오. 자, 어서 식사들을 마저 하시오. 식사의 질이 어떻소?》

그이께서 토방으로 올라서시여 식탁우에 차려진 밥과 국, 식찬들을 살펴보시였다. 그이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조밥에 된장국을 보시였던것이였다. 식당의 주방장은 내각의 합숙성원들에게 잘 해먹이지 못하는 자책감으로 그렇지 않아도 뻘건 얼굴이 진흙빛으로 되여 쩔쩔매고있었다.

《동무들이 지금 어려운 식량난을 겪고있는 인민들과 같이 조밥에 맨 된장국을 먹고있는걸 보니 내 가슴이 쓰리지만 그렇게 하는것이 옳다고 생각되오.》

합숙생들은 저저마다 자기들때문에 마음을 쓰지 말아주시기를 바라는 심정을 말씀드리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들에게 어서 식사를 하라고 말씀하시고 돌층계를 내려오시는데 어쩐지 발걸음이 무거우시였다. 그이께서는 어제밤도 전쟁의 피해를 하루속히 가시고 나라가 다시 허리를 펴고 일어서기 위한 전후복구건설의 기본방향을 검토하시다가 새날을 맞이하시였다. 무엇부터 어떻게 시작할것인가. 쇠물을 뽑는것이 급선무이며 여기서부터 돌파구를 열어나가야 할것이다. 그러나 《먹는문제》 즉 전후농업문제 역시 한시도 미룰수 없는 긴절한 과제였다. 사람은 우선 먹어야 하는것이다.

조인철이를 찾아주신것도 그것과 관련되여있었다.

수령님께서는 문득 발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돌아보시였다. 조인철이가 합숙생활을 하고있다는 말을 듣고 식당에 들려 그를 찾아내긴 하였지만 이 순간 그가 왜 아직도 합숙에 있는지 의문이 생기였던것이다. 내각에서는 전후복구건설준비의 일환으로 자강도에 피난가있는 내각과 성, 중앙기관 직원들의 가족들중 전문지식을 소유한 젊은 녀성들을 먼저 평양으로 불러내오는 조치를 취했었다.

그러니 조인철의 안해도 평양으로 나왔다면 지금 집을 배정받아 가정이 모여서 살고있을것이다.

그때 무슨 불상사가 있었다고 했는데?··· 도중역에서 기차가 폭격을 당하여 녀자들이 더러 상했다는 소리가 있어서 알아보고 대책을 세우도록 지시를 했었다.

그이께서 조인철이를 가까이 부르시여 전후사연을 알아보시였다. 불행하게도 바로 조인철의 안해가 그중 심하게 상했는데 폭격맞은 정거장근처의 군소재지병원에서 응급치료를 받았으며 지금은 마침 읍에서 멀지 않은 농촌마을에 그 녀자의 친정집이 있어 그곳에서 안정치료를 받고있다는것이였다.

《환자한테 가보았소?》

수령님께서 물으시였다.

《인차 정전이 되는바람에 일이 바쁘고 또 경상이라고 하기에··· 수상동지, 일없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손을 가로저으시였다.

《그러면 안되오. 동무가 직접 가서 안해를 데려다 큰 병원에 입원시키시오. 전쟁기간 헤여져있었는데 얼마나 보고싶어하겠소? 나라도 그렇지만 우선 매 가정에서 전쟁의 상처를 빨리 가셔야 한단말이요.》

조인철이는 눈굽이 불깃해져서 젖어드는 목소리로 대답드리였다.

《수상동지, 고맙습니다. 하지만 정말 괜찮습니다. 어제 편지를 받았는데 자기는 아무일 없다고 하면서 오히려 전쟁피해를 입은 고향마을의 형편을 걱정하고있습니다.》

그는 자기의 개인사정을 두고 수령님께서 걱정하시기때문에 송구스러움을 금할수 없었는데 마침 거기에서 벗어나 사회적문제를 말씀드리게 된것이 다행스러운듯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 마을은 현촌이라고 하는 마을인데 거기에 다수확농민 최옥금동무가 있다고 합니다.》라고 그는 말씀드리였다.

《최옥금이가!》

김일성동지께서는 금시 안색이 밝아지시였다. 최옥금이는 그이께서 잘 알고계시는 전시의 다수확농민이다. 전쟁의 시련속에서 억세게 피여난 꽃송이와도 같은 농민처녀이다. 모란봉지하극장에서 열린 전시의 첫 농민열성자대회에서 그 처녀는 토론을 했었다. 불타고 파헤쳐진 대지가 상처의 아픔을 안고 모대기던 그 나날들에 소겨리, 품앗이반을 무어 다수확을 낸 이 처녀는 그때 김일성동지께 큰 신심을 드리였었다.

《그래 고향마을형편에 대해서 뭐라고 했소?》 하고 그이께서 관심을 가지고 물으시였다.

《최옥금이같은 모범농민이 앞장에 서서 전시식량생산을 보장했다고 합니다. 올해 농사작황도 괜찮다고 합니다. 그런데 전쟁의 피해가 너무 커서 로력도 부족하고 축력이나 농기구도 부족한데 전후에는 어떻게 하겠는지 걱정하고있다고 합니다. 폭탄구뎅이도 메우고 수로를 복구하고 파괴된 살림집도 지어야 하겠는데 이 아름찬 일을 어떻게 해내야 하겠는지 걱정한다고 합니다.》

조인철의 말을 들으시며 그이께서는 고개를 끄덕이시였다. 전쟁을 겪은 우리 나라 농촌 그 어디에서나 보편적으로 제기되고있는 문제였다. 그에 대답을 주어야 한다. 바로 그래서 그이께서는 어제밤에도 늦도록 주무시지 못하고 최고사령부지휘처의 서재에서 사색의 세계에 잠겨계시였던것이다.

《최옥금동무가 걱정하고있는 문제가 바로 전후 우리 농촌이 안고있는 절박한 문제요. 조인철동무의 안해가 옳게 보았소.》

그이께서 알아보니 조인철의 안해는 그곳 현촌의 오랜 농민의 가정에서 태여난 평범한 녀성으로서 국가계획위원회에서 통계원으로 일했다고 한다. 자기의 건강보다도 고향마을의 형편에 대하여 더 걱정하고있는 그 녀인이 여간 기특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조인철에게 속히 안해가 치료받고있는 마을로 가보도록 하라고 이르신 다음 발걸음을 돌리시였다.

어느덧 골안이 환히 밝아졌다.

 

승용차는 다시 달리여 보초소 하나를 더 통과한 다음 굴밖에 내다 지은 보조집무실 마당에 들어섰다.

원래 김일성동지께서 일을 보시던 내각의 본집무실은 굴속에 있는데 8호실이라 하였다. 비록 전시의 림시집무실이였으나 건설자들이 다섯달동안 품을 들여 성의를 다해 꾸린 방이였다. 벽과 궁륭식으로 된 천정에 빈틈없이 합판을 대고 투명라크칠을 했으며 합판들을 고정시킨 오리대들에 문양을 새겨넣기까지 하였었다. 그렇더라도 방이 넓거나 화려하지 못하고 소박하였으며 특히는 습기와 랭기가 심했다. 장마철에는 물방울들이 떨어져 바께쯔를 들여놓기도 했다. 그래서 그후에 폭격이 없을 때 그이께서 나와 일을 보실수 있도록 굴밖에 보조집무실을 지어드린것이였다.

폭격이 심한 전쟁때에도 그이께서는 이곳 내각으로 자주 나오시여 집무실에서 한나절 혹은 종일 계시군 하였다. 모란봉기슭의 안침진곳이지만 때로 적기들이 날아들어 폭탄을 떨구군 하였다. 한번은 굴우의 언덕에 폭탄이 곧바로 떨어져 굴속이 흔들리고 흙이 쏟아져내렸으며 전등불이 꺼지기까지 하였다. 이런속에서도 김일성동지께서는 수도중심부의 이곳 내각에서 수도시민들과 함께 계시였다. 전쟁이 끝나갈 무렵에는 거의 매일 내각에 나오시여 늦도록 혹은 침식을 해가시면서 전후복구건설준비사업을 이끄시였다.

이 준비사업에서 중요한 문제의 하나는 새로운 국면에 맞게 내각과 당중앙위원회의 부서들을 정비하고 보충하며 충실하고 실무에 능한 일군들을 옳게 선발배치하는 사업이였다. 특히 중앙당에 믿음직하고 충직한 항일혁명투사들과 해방후 새로 양성한 신진일군들로 간부진영을 보강할 필요가 절실하였다.

그래서 수령님께서는 지난 5월에 제1군단 군사위원 김일을 전선에서 소환하여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일하도록 하시였다.

《우리가 최고사령부에서 전쟁승리를 위해 전력하느라 중앙당사업에 미처 낯을 돌리지 못했소.》하고 그이께서는 김일을 그곳에 파견하시며 말씀하시였다.

김일은 얼마후 중앙당사업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드리였다.

《여기서는 서로 만나면 〈오, 따바리쉬 박.〉하는 식으로 인사하며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장군님께서 최고사령부에 계시면서 군사작전에 여념이 없으신 틈에 여기서는 당선전사업을 보는 박창옥같은 사람들이 제멋대로 돌아치고있었습니다. 그들은 쏘련에서 공부도 했고 사회주의건설에도 참가해본 경험자이고 외국물을 먹은 문명한 사람들이라고 우쭐대면서 국내출신간부들을 무시하고 깔보며 인정하려들지 않습니다.》

김일은 자기자신과 관련하여서는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수령님께서는 항일빨찌산출신의 이 정치일군을 그들이 은근히 두려워하며 겉으로는 존경했지만 될수록 피하려 했고 속을 주려 하지 않는다는것을 알게 되시였다. 그들이 김일을 두려워할수 있었다. 그는 원체 말이 적고 뚝한데도 있었지만 눈에 거슬리는 현상은 참고 견디지 못하는 원칙이 강한 사람이였다. 한번 욱- 하면 설명없이 행동으로 본때를 보이군 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광복후의 신진일군인 조인철이도 중앙당에 보내여 중임을 맡기실 생각이였다. 그에 대하여 료해하여보시고 또 방금 피뜩 만나보신바에 의해서도 때묻지 않은 순결하고 생신한 체취를 그에게서 느낄수 있으시였다.

집무실에 들어오신 수령님께서는 책임부관에게 국가계획위원회와 련계를 가지고 제철소로 떠날 준비를 갖출데 대한 지시를 주시였다. 현지에 나가시여 제철소의 파괴정형을 료해하고 최단기간내에 복구건설할 대책과 방도를 로동자, 기술자들과 직접 의논하시려는것이였다.

책임부관이 자기의 책상 즉 이 보조집무실로 들어오는 사람이면 누구나 반드시 거치게 되여있는 전실의 책상으로 나가서 전화를 하는사이에 수령님께서는 송수화기를 드시고 교환수에게 말씀하시였다.

《중앙당 김일부위원장이 출근했는지 알아보오.》

곧 전화종이 울리였다.

《수상동지, 밤새 안녕하셨습니까? 김일이 전화를 받습니다.》

그의 특징적인 뜨직뜨직하면서도 정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부위원장동무, 전후농업문제를 담당할 부부장에 적합한 사람을 찾아냈소.》하고 수령님께서 말씀하시였다.

《여기 내각에서 책임참사로 있는 조인철이라는 동무요. 나는 그를 해방직후부터 알고있소. 46년 봄에 황해도 어느 군에서 농민대표들이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로 나를 찾아온 일이 있었소. 그들은 지주놈의 토지를 밭갈이하는 농민들에게 넘겨주도록 해달라는 청원서를 가지고왔소. 그런데 그들중에 왜정때 농업학교를 나온 지식인청년이 끼여있어서 내 눈길을 끌었댔소. 그가 조인철동무였소. 그는 농민계몽사업과 3.7제투쟁에서 한몫 했고 그후의 토지개혁사업에서도 지주의 아들놈이 쏜 총에 부상을 당하면서 헌신적으로 일했소. 현재 그는 내각에서 협동단체들을 종합적으로 보고있는데 사회주의적협동소유에 밝다고 하오. 물론 다른 문제점이 있을수 있소. 내가 오늘래일사이에 짬이 없을것 같은데 김일동무가 먼저 그를 만나보시오.》

《알았습니다. 제가 담화를 해보고 그 결과를 수상동지께 말씀드리겠습니다.》

김일의 성근한 대답이였다.

수령님께서 전화를 끝내시는데 책임부관이 들어왔다. 그는 국가계획위원회 위원장이 수령님을 모시고 제철소로 떠날 준비를 갖추고 대기하고있음을 말씀드리였다.

《그럼 떠나야지.》

그이께서는 의자에서 일어나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