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백산마루 9


 
 

9

 

자기 방으로 돌아온 박진규는 대번에 짚이는것이 있었다.

(우리가 론쟁한것을 문제시했구나, 그가.)

사실 그런 일이 있었다.

김석진원장이 단군릉발굴을 지지하시는 수령님의 교시를 받아안고 돌아왔을 때 고고학연구소와 력사연구소는 물론 온 과학원이 들끓었다.

《박진규성당》으로 사람들이 찾아들었다.

지금까지 《박진규성당》을 꾸리고 유지해온데 대하여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틀림없이 그가 주역을 담당할 이번 발굴사업이 성과를 거두리라는데 대하여 믿어마지않는다고 하였다.

제일 많이 찾아온 사람이 리관직이였다. 지금까지 전혀 관심이 없던 그가 제일 먼저 팔을 걷고 나서는것이 어쩐지 미덥지 않았다. 그러나 부원장이라는 직분을 가지고 찾아오니 어쩌는 수가 없었다.

리관직은 누구도 별로 앉아본적 없는 박진규의 책상옆에 있는 쏘파에 몸을 맡기고 얼른 물러가려고 하지 않았다.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받고 그것을 수행한다는게 얼마나 큰 영광인가! 동무뿐아니라 온 과학원이 큰 신임을 받았단 말이네, 나도 물론 그렇고! 내가 적극 도와주겠소.》

그때 박진규가 한마디 톡 내쏘았다.

《관직동무(그는 조직적인 모임을 내놓고는 부원장이라는 직함을 부른적이 없었다.), 거 너무 떠들지 마시오.》

《그게 무슨 소린가?》

리관직은 불에 덴것만치나 놀라 튀여일어났다. 수령님의 교시를 놓고 그 관철을 위해 말하는 사람더러 너무 떠든다고 하다니··· 관직은 그때 과학원안에서 박진규를 놓고 일부 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 하는 소리들을 다시 상기했다.

《고집불통》, 《골동품》, 《뇌수에 이상현상이 생긴 사람》···

확실히 박진규의 머리는 보통사람들과 다르게 되여먹었다. 리관직은 계속 말을 시켰다가는 더 험한 소리가 튀여나올것만 같아 《딴데서는 그런 소리 하지 마오, 친구.》하고는 방을 나와버리고말았다.

친구? 그것은 틀림없었다.

1952년에 김일성종합대학이 자리잡고있던 백송리에서 그를 처음 만난것은 우연이라면 우연일것이다. 둘이 다 력사학부로 왔다.

박진규는 후퇴시기 자기 대오에 인입시켰던 김일성종합대학 교원출신병사의 배낭을 메고왔다. 후퇴과정에 벌어진 어느 전투에서 박진규의 무릎을 베고 희생된 그의 배낭에는 그가 남진의 길에서 발굴한 도자기 한개가 들어있었다. 그는 포탄이 작렬할 때 그 배낭을 몸으로 덮고 치명상을 입었었다.

박진규는 그가 교편을 잡았던 그 학부에 그의 유물과 함께 입학청원서와 문건을 냈다. 그에게는 학부선택문제가 나서지 않았다. 한생 걸어야 할 길을 그가 처음으로 내디디였을 때 교원의 배낭이 그의 애어린 두뇌에 고고학의 신비로운 세계를 비쳐주었던것이다.

대학에서 그는 리관직과 나란히 한책상에 앉았다. 박진규는 학부적으로도 성적이 제일 높은 우수한 학생이였다.

그런데 리관직은 한두해 지나자부터 왜서인지 공부에 전념하는것 같지 않았다.

그를 여겨볼 사이가 없었지만 박진규의 눈에는 공부보다 학교적인 사회사업, 이를테면 로력동원이라든가 주민정치사업, 연예써클 같은데 더 극성을 피우는 그의 모습이 비쳐들군 하였다.

《이건 쩍하면 리관직이라니까. 내가 없었으면 어쩔번 했는지···》

무슨 과업이 맡겨질 때면 관직은 얼굴을 찡그리고 머리를 흔들었다. 자기는 전혀 흉심이 없지만 일단 책임을 지우니 하지 않을수 없다는것을 보여주자는것이였다. 하지만 실지로 그는 공부보다 그런 일들을 좋아했다. 박진규는 리관직을 《연단에 나서면 희열을 느끼는 인간》이라고 단정해버렸다. 분주스레 뛰여다니고 책임진 성원들에 대한 장악통제를 하여 피대를 돋구는 그를 보고 진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는 언제나 책임자가 되는것을 좋아하는듯 했다.

박진규가 보다못해 학생에게는 공부가 기본이라고 충고할라치면 《그런데 동무도 보다싶이 공부할 시간을 좀처럼 주지 않는구만, 이번 창립절에도 또 내가 책임을 지고 공연을 보장하라누만.》하고 한숨을 지었다. 아무래도 자기는 학자보다는 행정일군이 적중할것 같다고 덧붙였다.

리관직은 공부를 싫어하면서도 성적에는 무척 신경을 도사리는 사람이였다. 거의 필사적이다싶이 성적을 높이 받기 위해 애썼다. 이러한 그를 박진규는 불가사의하게 바라보았다.

갑자기 보조시험이 제기되였다. 그때 대학에서는 기본과목시험만 치고있었는데 학생들이 보조과목에 관심을 덜 돌리기때문에 이런 조치를 취했던것이다.

박진규가 한창 시험답안을 쓰는데 갑자기 누구인가 옆구리를 푹 찔렀다.

리관직이였다. 리관직은 눈길로 시험지를 가리켰다. 좀 보자는것이였다. 자기 힘으로만 쓰자니 난감했던 모양이였다. 그러나 박진규는 보여줄수가 없었다. 안달이 난 리관직은 시험관의 시선을 피해가며 연방 박진규의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찔러댔다. 그러나 박진규는 등을 돌려대는것으로 대답했다. 결국 리관직은 보조시험후에 과목담임에게서 무자비한 지탄을 받았다.

《관직학생! 명심하시오. 대학생은 무엇보다도 학문을 닦아야 합니다. 학생은 학업성적을 내놓고는 자기를 절대로 합리화할수 없습니다.》

어성버성하게나마 유지되여오던 그들사이에 불화는 이렇게 시작되였다.

리관직은 자기의 친구를 로골적으로 외면하기 시작했고 자리를 옮겨 교실 맨 뒤쪽책상에 가앉았다. 박진규 역시 그를 더 가까이 하려고 하지 않았다. 리관직은 키가 크고 희멀쑥한데다가 검은 앞머리를 멋지게 추켜올리고 다니였다. 그의 한쪽가슴에는 훈장과 메달이 쩔렁이였다. 그는 어디를 가나 책을 손에 들고 다니였는데 력사학과는 아무 인연도 없는 이상한 책이였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많지 못했다. 하지만 한마디로 말해 그는 대학적으로 눈에 띄우는 존재였다.

몇년이 지나 졸업학년이 되였을 때에는 대상자를 찾는 처녀들이 그의 뒤에 생겨나게 되였다. 결렬은 이때에 선언되였다.

하루는 첫눈에 마음에 싸보이는 곱살한 처녀가 박진규를 찾아왔다. 그들은 대학구내 공원의자에 가앉았다. 대학이 백송리의 가교사를 떠나 복구된 평양 본청사로 옮긴 뒤여서 공원까지 꾸려놓고있던 때였다.

달밤이였다. 처녀는 잠시 부끄러움을 타고있다가 할 말은 해야겠다고 결심했는지 자리를 고쳐앉더니 입을 열었다.

《교정에서 많이 보아왔으나 이렇게 마주하기는 처음이군요.》

《저 역시···》

박진규 역시 마주앉고보니 얼굴을 아는 처녀였다. 얼굴정도가 아니라 그의 학과성적이며 품성에 대해서도 적지 않게 알고있었다.

처녀가 학부는 달랐지만 품성이 곱고 최우등생이여서 박진규의 눈을 끌었던것이다. 박진규에게는 무슨 일때문에 찾아왔는지는 몰라도 처녀를 도와주어야겠다는 생각이 우러났다.

《어려워말고 말을 하시오, 무슨 일인지?》

《저··· 리관직동무와 가까운 사이라지요?》

《글쎄··· 그렇다고 할수 있지요.》

《아이, 무슨 대답이 그래요? 그렇다고 할수도 있다는건?》하고 처녀는 생긋 웃었다.

《허허··· 가깝습니다.》 박진규도 씩 웃었다. 그러자 흉금을 털어놓을수 있는 분위기가 된듯싶었다.

처녀가 마음놓고 물었다.

《그가 어떠세요? 그에 대해···》

박진규는 처녀의 용건을 대뜸 짐작하였다. 그러나 인차 입을 열수 없었다.

《글쎄···》

《아이, 또 모호한 대답이군요?》

《허허··· 사랑합니까?》

단도직입적인 물음에 처녀도 주저없이 대답했다.

《네, 그래요!》

《그렇다면···》 박진규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침묵, 침묵···

안달아난 처녀가 대답을 재촉했다.

《아직은 약속한 사이가 아니니 솔직히 말씀해주세요.》

《장점은···》 하고 불쑥 말을 떼다가 더 말할것이 없음을 의식한 박진규는 떠듬거렸다.

《우선 잘··· 생긴··· 말하자면 인물이라고 할가···》 큰 키? 희멀쑥한 얼굴? 멋진 앞머리?

박진규는 얼굴곱고 마음곱고 성적높은 이 처녀가 리관직의 어디에 반했을가 의심하며 한참 바라보았다. 처녀는 지금 자기 입에서 그에 대한 찬사가 쏟아져나오기를 기다리고있지 않는가. 하지만 그는 말할수 없었다. 누가 력사학부졸업생 리관직에 대한 평가를 내릴 때 《갑》을 매기겠는가. 왜서 자기가 이런 곤궁한 처지에 빠져야 하는가를 생각해보았다.

분명 리관직이가 이 처녀에게 말했을것이다. ㅡ나에 대해서는 우리 학급의 최우등생인 박진규동무가 누구보다 잘 알고있다. 나를 보려면 그를 보라. 그에게 물어보라.ㅡ

이 박진규가 남의 허물을 절대로 들추는 사람이 아니란것을 잘 알고있기에··· 그는 리관직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그러나 리관직은 다른것을 몰랐다. 박진규가 거짓을 절대 꾸밀줄 모른다는것을···

오래도록 대답이 없는 박진규를 이윽히 지켜보던 처녀가 오똑 일어섰다.

《알만해요! 참말 미안하게 됐습니다.》

며칠후 씨근덕거리며 나타난 리관직이 드디여 결렬을 선언했다.

《우린 더는 친구가 아니네. 어디 누가 더 잘되나 두고보세!》

차라리 잘되였다. 박진규는 그를 자기 머리속에서 지워버리기로 결심했다.

그후 대학을 졸업한 박진규는 자청하여 강동중학교 력사교원이 되였으며 리관직은 그가 그처럼 희망하던대로 과학원의 행정일군이 되였다. 많은 세월이 흘렀다. 리관직이 무사히 승진일로를 걷고있을 때 박진규는 단군릉의 벌초를 한 일이 문제서서 고초를 겪을번 하다가 구원받았다. 그는 사회과학원에 와서 리관직을 다시 만날수 있었다.

박진규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다른 부문, 다른 단위에도 전공에서 몰리운 사람들이 그런 자리에 박히는 경우가 더러 있으니까 하고 생각했다. 그렇지만서도 그의 지도를 받게 되였다는 서글픈 마음만은 금할수 없었다.

몇해후 리관직은 국장을 거쳐 부원장이 되였다.

그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도 그리 나쁜것 같지 않았다. 행정실무에서 빈틈이 없고 책임적이며 더우기 완강한 실천력이 있는 일군이라는 평판이 돌았다. 늘 정숙하고 고요한 분위기가 떠도는 청사에 그가 한번 웃는 얼굴로 나타나면 청신한 기운이 이는듯 했다.

《아무개선생, 애로가 무엇이요? 그 애로를 풀자고 부원장이 있는것이 아니요. 말하오!》

그에게 개인적사정을 들고 찾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때마다 그는 한번도 외면하지 않았다. 후방경리사업은 그의 관할범위가 아니였지만 집안의 대사가 제기되는 일부 사람들이 후방부원장을 찾아가지 않고 리관직의 사무실을 찾아갔다.

생활상애로를 놓고 한숨을 쉬는 사람이 있으면 동료들은 이렇게 말하군 했다.

《관직부원장을 찾아가보지.》

박진규는 과학원안에서 그가 차지하고있는 지위와 역할에 대하여 부인할수 없었다. 자기가 미처 모르고있은 그의 장끼를 보게 되면서 그를 너무 과소평가하지 않았는가고 자책하였다. 더욱 놀라운것은 분명 단념할것으로 알았던 그 최우등생처녀가 그와 결혼한 사실이다. 이것을 아는 순간 박진규는 자기를 천만번 후회했다. 그들앞에 더우기 그 녀인에게 죄스러움을 금할수 없었다.

결함이 없는 사람이 있겠는가.

사람은 누구나 결함을 가지고있다. 제나름으로 보자기에 싸가지고 헤쳐보지 않을따름이다. 그러나 가장 가까운 상대앞에서는 무방비상태에 빠지며 모든것을 드러내는 경우가 있다.

부부관계를 보라. 남편은 안해앞에서 숨기지 않으며 안해 또한 남편앞에서 그렇게 한다.

자기가 리관직과 너무도 가까운 사이여서 그의 결함을 남달리 잘 파악하고있을뿐 그런 결함을 가진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는 너그러운 생각을 가지려고도 해보았다. 리관직이 부부처럼 가깝게 여기고 마음놓고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놓는지도 모른다.

박진규는 그에 대해 너그러워지리라 마음먹었다. 그러나 인차 도리질을 하였다. 차라리 상대하지 않는것이 상책이다. 그런데 자꾸 눈앞에 얼씬거린다.

단군릉발굴을 지지하시는 수령님의 교시가 계시였다는것을 안 그는 지금껏 단군연구를 외면했던 사람같지 않게 박진규를 찾아와서 큰 영광이요, 신임이요 하면서 도와주겠다고 한다.

뭘 어떻게 도와준단 소린가.

그러나 지금 문제로 된 《잡소리》는 리관직에 대한 그 격분때문에만 내지른것은 아니였다. 거기에는 다른 하나의 웅심깊은 박진규의 마음이 깔려있으니 그는 리관직이 원장을 만난다, 당비서를 만난다 소동을 부려도 그 마음을 내비치지 않고있었다.

사상문제에로까지 번져지고있어도···

그 어떤 배심을 가지고있는 그에게 있어서 그 문제는 꿈만하게 여겨지는것이였다. 이때 그의 마음은 한걸음 앞서 리관직과 또 한번 충돌해야 하리라는 예감에 휩싸였다.

1월은 한겨울이다.

리관직은 땅이 땅땅 얼어붙은 겨울에는 발굴을 하지 못하게 된 규정을 어기고 당장 발굴을 시작하자고 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