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백산마루 7


 
 

7

 

김석진을 바래우고난 수령님께서는 잠시 방안을 거니시면서 어린시절 봉화리에서 사실 때의 아버님을 추억하시였다. 이제는 70년세월도 더 지나갔다.

···

검은 연기가 그물거리며 굴뱀처럼 뒤쫓았다. 금시 비가 쏟아져내릴듯 대기는 숨막히도록 답답한데 연기가 땅을 핥으며 맴돌았다.

길바닥에서 피여오른 황토먼지에도 끄스름이 오른듯 검게 보인다.

벌도 하늘도 온통 검게 물이 든듯 하였다.

수탈당하고있는 이 강토에서 어디서나 흔히 볼수 있는 광경이였다.

주변에 널린 린근촌락들에서 무언가 무섭게 타고있었으나 아버님께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곧추만 걸어가신다.

그이의 뒤를 어리신 수령님께서 가쁜숨을 톺으며 따르고계시였다.

어리신 수령님께서 신으신 미투리앞코숭이에 붙은 꽃잎같은 리봉에 먼지가 뽀얗게 올랐고 먼길에 닳은 미투리층이 끊어져 너덜거린다.

두분께서는 점심무렵에야 한 골짜기어귀에 이르시였다.

청신한 수림속이였지만 끄스름내가 지독하게 떠돌았다. 검은 연기가 골짜기어귀를 막고있었다.

《한발 늦은것 같구나!》

아버님의 다급해하시는 말씀.

《···》

《성주야, 쉬지 않아도 되겠느냐?》

《옛!》

총알같이 여무진 대답소리였다.

두분께서는 다급히 골짜기에 접어드시였다. 뉘엿이 뻗어있는 길을 내놓고 크고작은 바위돌들이 무지를 이루고 머루넝쿨, 다래넝쿨, 칡넝쿨이 엉킨속을 헤치며 걸음을 줄이느라고 길아닌 길을 걸어가시였다.

어리신 수령님께서는 힘들었으나 참으시였다. 자신의 손목을 잡고가시는 아버님의 엄엄한 기상이 힘을 주었다.

아버님께서는 이른새벽 길을 떠난 후 말씀 한마디없이 그저 엄엄한 기색뿐이시였다.

그래서인지 아버님에게 팔목이 아니라 마음을 잡히고있는듯이 느껴지셨다.

골짜기가 깊어질수록 내내가 더욱 코를 찌르고 솜뭉치 같은것이 숨구멍을 막았다.

미구에 막바지 펑퍼짐한 곳에 주저앉은 집이 드러났다.

불길은 사그라졌으나 검은것이 타래쳐 푸른 창공을 뒤덮고있었다.

《아, 한발 늦었구나!》

아버님의 통분해하시는 말씀이였다.

어리신 수령님께서는 아버님의 이그러든 얼굴모습을 알아보고 손바닥에 손톱이 박히도록 작은 두주먹을 꼭 부르쥐시였다.

김형직선생님께서는 어제밤 자정이 넘어 강동군 문흥리(오늘의 강동군 향목리)에서 찾아온 한 동지로부터 일제가 단군사당들에 대한 방화를 일제히 진행하고있다는 소식을 들으시였다.

이곳 강동지방에는 단군을 제사지내는 사당이 류달리 많았던것이다.

《성주야, 왜놈들이 단군사당을 불사르고있다. 내가 일전에 다녀온 솔골마을 외진 산골짜기에도 단군사당이 있는데 왜놈들이 닥치기 전에 먼저 가봐야겠다.》

그래서 떠난 걸음이였다. 두분께서는 해뜨기 전 이른새벽에 사립문을 나서시였다.

바로 얼마전에도 황해도일대를 돌아보고 오신 김형직선생님께서는 단군초상이 걸려있던 구월산 삼성사가 왜놈들에 의해 불타버렸다고 하면서 비분을 금치 못해하시였다.

그런데 오늘은 이렇게 향촌부락들에 널려져있는 자그마한 사당들에까지 왜놈의 촉수가 미치고있는것이다.

《나라를 잃으니 민족의 력사마저 잃게 되는구나!》

아버님의 절통하신 목소리가 어리신 수령님의 심중에 피방울처럼 퍼졌다.

후두둑···

갑자기 나무잎에 비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비발은 삽시간에 억수로 변했다.

번개가 일고 천둥이 쳤다. 수난의 강토가 몸부림치고있었다.

불탄 집터에 침통한 얼굴로 앉아계시는 아버님의 몸에 떨어지는 비방울이 단 숯에 떨어질 때처럼 칙칙 소리를 내는듯 하였다.

아버님께서는 더 참지 못하시고 눈물을 흘리시였다.

아버님의 슬픔을 다 알기엔 그때 수령님의 나이가 너무도 어리시였다. 하지만 하늘처럼 여겨오시던 아버님께서 어깨를 떨며 우시는것을 보셨을 때 가슴은 미여지는듯 아프시였다.

이윽고 아버님께서는 노래를 부르시였다. 노래라기보다는 차라리 그 어떤 울부짖음이였다. 가슴이 찢어지는듯 한 고통속에 부르시는 그 노래는 이전부터 부르시던것 같기도 하고 금방 새로 지어 부르시는것 같기도 했다.

전률에 가까운 큰 충격으로 하여 어리신 수령님께서는 똑바로 새겨들으실수 없었다.

천둥이 계속되고있었다.

하지만 비분에 떨고 격정에 목이 메는 그 노래소리를 누르지 못했다. ···

이튿날 아침 고개를 쳐들어보니 하늘이 열려져있었다. 파아란 하늘이였다. 어둠을 몰아가고 비를 걷어간 내 나라의 파아란 하늘이 머리우에 열려져있었다. 시뻘건 점이 보였다. 흰 천에 댕그라니 그려넣은 피같이 시뻘건 점, 수령님께서는 그것이 일장기임을 알아보시였다.

아! 왜놈의 기발!

어데서인가 《기미가요》가 들려왔다.

내 나라의 맑은 하늘에 왜놈의 국기가 날리고 강 푸르고 들 푸른 천지간에 왜놈의 국가가 울린다.

이처럼 통분한 일이 어디 있으랴!

온몸이 부르르 떨리시였다.

아버님의 체험이 자신의 체험으로 흘러들고있음을 의식하시는 순간 아버님께서 부르시던 노래가 똑똑히 새겨지는것이였다.

 

슬프도다 조선민족아

사천여년 력사국으로

자자손손 복락하더니

오늘 이 지경 웬말인가

억사철사로 결박한 나를

동무들의 손으로 끊어버리고

독립만세 우뢰소리에

동해가 끓고 산이 동하리

남산초목도 눈이 있으면

우리와 같이 슬퍼하겠고

동해의 어별도 맘이 있으면

우리와 같이 슬퍼하리라

···

 

그 노래와 《기미가요》가 허공중에서 맞부딪치며 불꽃을 튕기는듯 하였다.

일장기는 여전히 펄럭이고있었다. 조상의 땅에, 조상이 열어준 하늘에 왜놈의 국기가 제땅에서처럼 날리고있었다.

지금은 그것을 뽑아던질 힘이 없었다. 억사철사로 결박당하지 않았느냐.

어리신 수령님께서는 가슴이 끓어번지였으나 진정 어찌할 도리가 없으시였다.

이날 아침 그이의 망막에 새겨진 일장기는 온 생애를 통해 지워지지 않는 증오의 표적이였다.

왜놈들이야말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해를 독차지하고 천대만대를 살아가려는 가장 악독한 놈들이였다.

어리신 수령님께서는 그 저주로운 일장기를 향해 마음속으로 총을 쏘시였다.

아직은 그렇게밖에 달리 하실수 없었다.

그로부터 얼마후 김형직선생님께서는 강동군 칠포리(지금의 강동군 강동읍)에서 동지들에게 일제가 단군조선의 력사를 말살하려고 악랄하게 책동하는 조건에서 기우제를 비롯한 여러가지 형식으로 단군릉에서 분향식을 자주 하도록 하며 단군릉수호회를 뭇고 단군릉을 지켜내도록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어느날 그이께서는 어리신 수령님과 함께 봉화리에서 얼마 멀지 않은 단군릉을 찾아가시여 분향식에 몸소 참석하시였다.

돌아오는 길에 수령님께서는 이런 질문을 하시였다.

《아버님, 왜놈들이 왜 그다지도 단군을 없애지 못해 야단입니까?》

《민족의 뿌리이기때문이다. 민족을 말살하기 위한 왜놈들의 발악은 그 뿌리인 단군의 력사에 돌려지고있는것이다. 단군은 민족의 얼이다. 배달겨레의 넋이란 추상화된 개념이 아니라 이렇게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사상감정이다. 뿌리깊은 나무는 없애버릴수 없는것처럼 뿌리깊은 민족도 없애버릴수 없단다.》

《그 무덤이 실지 단군의 무덤입니까?》

《단군에 대한 숭앙은 민족의 정신을 잃지 않으려는 의기이다. 저 묘를 한갖 우상으로만 봐서는 안된다. 신화뒤에 실화가 있는것이 세상리치이다. 나는 이 리치를 믿는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에게는 이 강산의 막돌도 금돌로 보이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금돌도 막돌로 보이는 법이란다.》

···

아픈 추억이였다. 어린 나이에 받아안은 아버님의 유지를 80고령에 이르러 다시 새겨보시는 수령님의 마음속에는 단군을 찾는 일을 더는 미룰수 없다는 결심이 더욱 굳어지시였다. 책임서기 전기철이 한아름의 문서를 안고 조심스레 들어섰다. 얼핏 보기에도 오래 묵은 자료들이라는것이 알리였다.

《그게 무슨 자료들이요? 혹시···》

김일성동지께서 반색을 지으며 물으시였다. 마치 기다리고계시던듯이···

《당력사연구소에서 김정일동지께 올린 자료들인데 수령님께 드리라고 지시가 계셨습니다. 새로 발굴된 항일무장투쟁자료들인데 국제당문서고에 있던 자료들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회고록집필에 도움이 될거라고 하셨습니다.》

쏘련이 해체되면서 많은 자료들이 새롭게 공개되고있었다.

《그래, 귀한 자료들이로군.》

김일성동지께서는 문건들을 한책한책 얼추 일별하시며 추억깊은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반세기전의 자료들인데도 이렇게 귀한것이 될줄이야.··· 하물며 반만년전의 력사를 고증한다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소.》

그이의 사색은 반세기전이 아니라 반만년전으로 달리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