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백산마루 5


 
 

5

 

1960년대 초.

어버이수령 김일성동지의 년세가 50대에 들어섰다.

그이께서는 너무도 큰 업적을 쌓으시였다. 20~30대에 일제의 기반으로부터 조국을 해방하고 인민의 나라 공화국을 창건하시였으며 40대에 미제를 쳐부시고 사회주의혁명을 수행하시였다.

사회주의건설에 들어선 나라의 전도는 창창하였다. 세상사람들이 천리마의 나라라고 부러워마지 않았다.

마가을 어느날.

저택의 정원에는 어둠이 깃들고 수삼나무의 바늘잎 떨어지는 소리마저 들리는듯 한 고요한 밤이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조용히 정원길을 거닐고계시였다.

이날 낮 그이께서는 먼 현지지도의 길에서 돌아오시다가 강동의 단군묘를 보시였는데 누구도 눈길을 돌리지 않은 페무덤이였다. 봉분이 내려앉아서 비석만 없다면 무덤을 알아볼수 없을 지경이였다. 단군릉수축비는 강동일대의 이전 조선국민회원들이 김형직선생님의 생전의 숭고한 애국애족의 뜻을 받들어 강동군의 유지들과 각지의 이름있는 인사들, 유력자들을 망라하여 조직한 단군릉수축기성회가 1936년에 단군릉수축준공을 기념하여 세운것이다. 비에는 단군릉수축기성회원들의 이름과 당시 단군릉수축에 필요한 자금을 희사한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묘가 다 조락하고 그들이 세운 비만이 덩그라니 외롭게 서있었다.

그래도 다행이랄가 벌초한 흔적이 눈에 띄였다.

얼마전 추석에 어떤 지인이 낫가락을 들고 나섰던 모양이다. 그 흔적마저 없었더라면 김일성동지께서는 분격을 참지 못할번 하시였다.

그렇지만 애써 흥분을 감추며 높지 않은 음성으로 동행한 그곳 군의 일군들에게 물으시였다.

《어째 이 묘를 거두지 않았소?》

《···》

《지주들이 만든것이라고 손대기가 겁이 났소?》

《···》

질책이 뜻밖인듯 일군들은 눈을 크게 뜨고 서로 마주볼뿐 아무 대답도 드리지 못하는데 보매 묘를 돌봐야 한다는 아무런 자각과 의무감도 느끼지 않고있은상싶었다.

평양에 올라오신 김일성동지께서는 집무실에 들어서기 바쁘게 전화로 문화유적유물보존부문의 책임일군을 찾으시였다.

군의 일군들을 대하실 때보다 퍽 높아진 음성이시였다.

《내가 오늘 강동군을 지나다가 단군묘에 가보았습니다. 그런데 무덤을 전혀 돌보지 않았습니다. 동무는 이 사실을 알고있습니까?》

《알고있었습니다. 수령님, 그 무덤은 방치대상에 속하는것입니다.》

어조로 보아 매우 쉽게 하는 대답이였다.

《방치대상이라니, 그건 무슨 의미입니까?》

여전히 쉽게 울려나오는 전화의 목소리···

《학술적인 견지에서 허황하거나 보존할 가치가 없는 유적과 유물에 대한 관리규정이 그렇습니다.》

《그렇다? 좀 자세히 말해보시오!》

안타까움이 깔린 그이의 숨가쁜 어조와는 달리 전화의 목소리는 술술 울려나왔다.

《예, 저희들은 규정에 의해 그 유적을 방치해두고있습니다. 력사기록도 아닌 신화를 믿을수 없는데다가 저의 선임자들의 말에 의하면 해방후에 그 무덤을 조사해보았다고 하는데 아무런 유물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수령님, 그 무덤은 하나의 우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상이라구?》

《예, 그렇습니다. 수령님!》

《우상이라? 헛허···》

뜻모를 그이의 웃음에 전화의 목소리는 쑥 들어갔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송수화기를 놓으시였다.

그이의 웃음은 허구픈 웃음이시였다. 어처구니가 없으시였다. 상대에게서 민족의 조상을 생각하는 마음을 느끼지 못하신 그이이시였다. 자신의 마음을 전혀 가늠 못하는 동문서답이였다.

《우상이란 말이지···》

낮에 있었던 일을 생각하시는 그이의 입가에 다시한번 허구픈 웃음발이 스쳐갔다. 군의 일군들은 몰지각해서 그런다치고 이 사람은··· 그 사람은 국가대사를 론의하고 지휘하는 중요한 위치의 인물이고 제노라하는 학자였다. 많은 면에서 자신과 뜻이 통하고 마음도 맞았으며 여러 측면에서 상당한 지식도 소유하고있다.

그런데 민족의 력사, 민족의 조상에 대한 문제에서만은 왕청같은 견해를 갖고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의 동문서답을 통해 단군을 신화적인 인물로만 여기고 단군조선의 력사를 신화나 전설로만 밀어붙이고있는 학계의 굳어진 견해와 그들모두에게 뿌리깊이 박혀진 관념을 다시금 의식하시였다.

가을외투를 벗어 팔에 걸고 먼길을 걷는것처럼 걸음발을 빨리 하시였다. 바싹 마른 락엽이 밟히는 소리가 자박자박 들려왔다. 그이의 산책길을 두줄로 늘어선 수삼나무가 인도해드리고있었다.

그 나무는 매츨하고 정갈한 모양새로 하여 잎이 떨어진 마가을에도 운치가 있었다. 꼿꼿한 줄기에 일매지게 아래로 가지를 내리드리우고있는 애어린 나무들은 푸릿한 정원등밑에서 줄을 서있는 위병들처럼 보였다.

수삼나무··· 학계에서 화석으로만 존재한다던 그 나무는 10년전 관상용화분으로 댁에 들여온 이후 벌써 무성한 수림으로 자라났고 이제 얼마 안있어 불가항력의 퇴화기를 극복하고 전성기를 다시 맞게 될것이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 나무의 환생에 비껴진 자신의 노력을 되새기시며 화석처럼 굳어진 력사학계의 견해와 사람들의 관념을 깨여버릴 결심을 굳히시였다. 지성이면 감천이고 열번 찍어 안넘어가는 나무가 없는것이다.

허나 다음순간 머리를 저으시였다. 단군을 찾고 단군조선의 력사를 알아내는것은 학자들의 몫이다. 명령과 지시로도 어쩔수 없는것이 과학이다.

그이께서는 나직이 한숨을 내쉬시였다.

때마침 퍽 멀어진 저택의 불켜진 한 창가에서 피아노소리가 들려왔다.

깊은 고요에 파묻힌 정원에 그 소리는 밤새 우는 소리처럼 또렷했다.

자제분이 지으신 노래였다.

 

해솟는 룡남산마루에 서니

삼천리강산이 가슴에 안겨온다

이 땅에서 수령님 높은 뜻 배워

조선혁명 책임진 주인이 되리

아 조선아 너를 빛내리

···

 

수령님께서 방안에 들어서시였으나 김정일동지께서는 아무런 기척도 느끼지 못하고 음악세계에 잠겨계시였다.

서재 겸 침실로 쓰는 방에 피아노까지 놓고보니 비좁은 감이 드신다.

김일성종합대학 재학중인 자제분께서 공부를 하다말고 피아노앞에 앉으신것 같다. 방은 크지 않았으나 그이의 포부는 피아노에서 울려나오는 음악세계와도 같이 무한히 넓고 거세찬것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자제분의 등뒤에 잠시 서계시다가 조용히 책상에 마주앉아 학습장이며 뭔가 써놓으신 원고지에 눈길을 주시였다.

학습장도 력사학습장이였고 원고지에 쓴 글도 력사와 관련한 글이라는것이 한눈에 알렸다. 따로 놓여있는 원고의 제목이 《갑신정변에 대한 재고려》였다. 갑신정변이라는 네 글자밑에 《김옥균》이라는 세 글자가 괄호안에 넣어 덧씌여있었다.

이윽하여 피아노앞에서 일어서시던 김정일동지께서는 아버님을 뵙자 《수령님께서?》하고 놀라시였다.

그러시는 그이를 돌아보지 않고 원고지에 눈을 주신채 김일성동지께서는 앉으라는 손짓을 하며 《한곡 더 타라구.》라고 분부하시였다.

《무슨 곡을 타랍니까?》 김정일동지께서는 아버님의 분부를 선뜻 받아들이며 이렇게 물으시였다.

《〈애국가〉를 타지.》

김정일동지께서는 때아닌 장소에서 국가를 타라는 아버님의 심중을 잠시 가늠해보다가 피아노앞에 다시 앉으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피아노연주에 따라 《애국가》의 구절구절을 외우시다가 비로소 책상앞을 떠나 벽가에 놓인 긴의자에로 자리를 옮기며 《이야기를 나누고싶어 들어왔소.》라고 하시였다. 자제분께서 자신의 곁에 와 앉으시자 말씀하시였다.

《〈애국가〉에 반만년 오랜 력사와 찬란한 문화라고 한 구절이 있는데 반만년 오랜 력사는 아직도 시나 노래에만 있소. 부모를 모르는 자식을 후레자식이라고 한다면 조상을 모르는 민족을 뭐라고 해야겠소. 나는 지난 기간 힘을 다해 민족을 위한 만년대계의 기틀을 마련해놓았소.

이제 내가 해야 할 또 하나의 일은 민족의 력사를 바로 잡아놓는거요. 어떻게 생각하오?》

《옳은 말씀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짧으나 명료하게 대답하시였다.

《고맙소, 나의 마음을 알아주누만! 신라에 의한 삼국통일론을 부정하는 학과론문에 나는 경탄했댔소. 저 글은···》

김일성동지께서는 책상우에 놓인 원고를 눈짓하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우리 나라에 부르죠아개혁운동이 없었다는 주장을 때린것 같은데 아주 중요한 문제요. 우리를 곱지 않은 눈으로 보는 사람들이 우리 력사에 독침을 놓으려고 하고있소. 그들은 고대력사를 놓고도 우리 나라에 노예소유자사회가 없었다고 하고있소. 우리가 제 민족의 력사를 바로 찾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소?

우리가 인류력사발전단계를 다 거치지 못한 렬등민족으로 치부될거란 말이요. 이것은 우리 사람들의 민족의식을 좀먹고 주체의 리념을 실현하자고 하는 우리 당의 정치에 커다란 저애를 주게 될거란 말이요. 앞으로 정치를 하자면 력사를 알아야 하오.》

《더 깊은 말씀을 듣고싶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 진지한 표정을 지으시자 김일성동지께서는 열띤 어조로 말씀을 이어나가시였다.

《나는 오늘 퇴근전에 동유럽의 어떤 나라 사람들로부터 〈쎄브〉에 들라는 권고를 또 받았소. 그들은 자기네 말을 듣지 않으면 대치물자에 의한 경제교역을 고려하겠다고 했소. 로골적인 압력이지.》 순간 김정일동지의 안광에 섬광이 번쩍이더니 무릎우에 놓인 두주먹이 불끈 쥐여지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여전히 열띤 어조로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동유럽사람들은 사회주의진영이니, 사회주의협동체니 하는 말을 쓰기 좋아하면서 우리에게 민족리기주의감투를 씌우려고 하고있소. 그러면서 만국의 프로레타리아트는 단결하라는 고전의 명제를 방편으로 내들고있소. 이건 완전한 언어도단이요. 누가 뭐래도 나는 사회주의건설은 민족국가단위로 진행된다는 주장을 굽힐수가 없소.

요새 자본주의세계를 둘러보면 다국적기업이라는 말을 들을수 있는데 〈쎄브〉의 제창자들의 론조와 신통히 같소.

이렇게 나가다가는 세계정치가 앞으로 커다란 혼란에 빠지지 않겠는가 하는 위구심을 가지지 않을수 없게 하고있소. 이런 형편에서 주체의 구호를 더 높이 들지 않을수가 없소. 주체를 세우는데서 민족성을 견지하는것이 중요하며 민족성을 견지하자면 자기 나라, 자기 민족의 력사를 바로 알아야 하오.》

김정일동지께서도 몹시 흥분하시였다.

《그런데 우리 력사에는 공백과 외곡이 많습니다.》

《옳소, 옳아! 그래서 나는 그 력사론문에 경탄한다고 하는거요. 왜 우리 력사학자들은 그렇지 못하는지?》

《력사관을 바로 잡아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그거요!》

김일성동지께서는 자신도 모르게 자제분의 꽉 쥔 두주먹을 감싸쥐시고 한참동안이나 흔드시였다.

그러시고는 침착한 어조로 의미있게 말씀을 이으시였다.

《나는 이미 우리 력사와 민족문화유산을 대함에 있어서 허무주의를 반대하되 복고주의도 하지 말라고 했는데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소. 오늘 낮에 만나본 강동군 일군들의 행동을 보면 생각되는바가 많소. 내가 요새 복고주의를 쳤더니 일부 무식한 사람들이 그들에게 비뚤어진 소리를 한게 분명하오.》

김일성동지께서는 별안간 어성을 높이시였다.

《내가 복고주의를 친것은 그들이 시대를 망각하고 〈목민심서〉같은 봉건유생냄새가 나는 책을 필독문헌으로 내려먹이고 향토사요 뭐요 하면서 우리 당의 혁명전통을 가리우려고 했기때문이지 어디 제 민족의 조상을 외면하라고 한것인가!》

《수령님, 너무 흥분하지 마십시오.》

《음ㅡ 알았소. 고맙소!》

두분께서는 이야기를 통해 단군과 단군신화에 대한 학계의 견해에서 많은 문제점들을 발견하시였으며 학계가 이에 대한 연구를 심화시키지 않는것은 력사연구에서 당성과 로동계급성을 지킬데 대한 당의 방침을 잘 알지 못한데 기본원인이 있다는데 대하여 견해를 같이하시였다.

두분께서는 우리 민족사를 바로잡자면 당의 문화유산보존관리사업과 력사과학연구에 대한 당적지도를 강화해야 한다는데 대하여 의미깊은 담화를 나누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말씀하시였다.

《내가 어릴적에 아버님께서는 단군묘를 한갖 우상으로만 봐서는 안된다고 하셨소. 대종교인들의 단군숭앙도 민족정신의 구심력을 잃지 않으려는 의미라고 높이 사주셨소.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이 강산의 막돌도 금돌로 보이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금돌도 막돌로 보이는 법이라고 가르치셨지.

그래서 나는 해방후 우리 당의 과학지도원칙으로 과학연구에서 자기 민족의 리익을 철저히 고수할데 대한 원칙을 내놓았소.

돌이켜보면 아버님은 참말로 열렬한 애국자이시였소. 그랬기에 신화뒤에 실화가 있다는 명백한 리치를 밝히시였소.》

《우리 과학자들이 그 리치를 알 때가 꼭 올겁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동감을 표시하시였다.

민족의 력사를 두고 나누시는 두분의 이야기는 자정이 훨씬 넘도록 계속되였다.

그때로부터 우리 력사학도 많은 전진을 이룩하였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의 민족사를 완전히 정립하지 못하고있는것이다. 물론 민족의 유구한 력사를 어느 한 시대, 어느 한 시기에 전면적으로 정립해놓을수는 없는것이다. 하지만 수령님의 생각은 그렇지 않으시였다. 언젠가 김일성종합대학의 력사학자들과 만나신 자리에서 수령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시였다.

《나나 선생들이 살아있을적에 우리 민족의 력사를 하나라도 더 찾아놔야지 후손들대에 가면 그만큼 더 어려워질것이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