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백산마루 42


 
 

종   장

 

1년이 지나서···

1994년 개천절이다.

이날 강동땅 대박산기슭에 모인 사람들은 김정일동지를 기다리고있었다.

그들은 단군릉개건식에 그이께서 꼭 참석하시리라 믿고있었다.

단군릉은 그야말로 반만년유구민족의 시조릉답게 웅장하게 개건되였다. 총부지면적이 45정보이고 정4각추형돌무덤 한면의 길이가 50m, 높이는 22m나 되였다. 개건년대를 전하기 위해 1994개의 돌로 쌓았다. 이밖에도 상돌, 돌향로, 돌등, 네 모서리에 하나씩 서있는 검탑이며 무게가 90여t이나 되는 돌범, 개당 무게가 25t이나 되는 12개의 석인상, 높이 8m의 단군릉개건기념비···

릉건설에 화강석석판만 해도 무려 7만 2천여개가 들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과 반만년의 우리 력사에 존재했던 민족의 선조들을 다 불러 자랑하고싶은 이 웅건한 시조릉앞에서 왜 인민은 기뻐만 할수 없는것인가.

석달전에 사람들은 대국상을 당하였다. 그리하여 두개의 시조릉인 민족의 원시조와 사회주의조선의 시조의 릉을 건설하는 가슴아픈 나날들을 보내지 않으면 안되였다. 이 나날들에 사람들은 민족의 원시조를 찾고 그 릉을 건설한다는 기쁨과 함께 어버이를 잃은 비애에 잠겨있었으니 일희일비란 이런 경우를 이르는 말인가!

사람들의 심정은 비애쪽으로 더 기울어졌다.

사람들은 단군릉건설에서 손맥을 놓고있었다. 사람들속에서는 단군릉건설을 미루자는 의견이 나왔다.

안된다, 단군릉건설을 절대로 뒤로 미룰수 없다. 수령님께서는 생애의 마지막시기인 7월 6일에도 단군릉의 최종형성안을 보아주시고 빨리 건설하여 남조선과 해외동포들도 다 와보게 할데 대하여 간곡히 교시하시지 않았던가.

김정일동지께서는 수령님의 그 유훈을 상기시키시였다.

그이께서 상기시켜주신 그 교시가 사람들의 마음을 돌려세웠다.

사람들은 그이의 말씀을 수령님의 뜻과 의지로 생각했고 그이를 더잘 받들어모시려 했다.

그이 또한 수령님을 애타게 찾고 부르는 사람들의 마음속을 찾으시여 슬픔과 아픔을 힘과 용기로 바꾸어 일떠서도록 고무해주고계시였다.

 

그렇다, 그무렵 그이께서는 언제나 사람들이 갈망하는 곳에, 사람들이 요구하는 곳에 계시였다. 그러니 사람들이 그이께서 단군릉개건식장에 나오시리라고 믿는것은 결코 공연한것이 아니였다.

대박산봉우리에 려명이 비치기 시작해서부터 사람들은 모여들었다.

이날따라 더욱 눈부신 아침의 해빛이 피라미드형의 화강석봉분을 찬란히 비치자 사람들은 이제나저제나 기다리였다.

행사를 주관하는 일군들의 말없는 눈짓과 손짓이 사람들의 숨소리마저 걷어간 행사장은 물을 뿌린듯 조용했다.

그러나 이날의 행사는 김정일동지를 모시지 못한채 거행되였다.

같은 시각.

김정일동지께서는 생전의 모습으로 계시는 수령님앞에 서계시였다.

그이의 눈가에 물기가 어려있었다.

《수령님··· 수령님을 잘 모시지 못한채 단군릉부터 꾸렸습니다. 수령님의 뜻을 받들면서 왜 이다지도 가슴이 미여집니까. 수령님, 오늘 단군릉개건식이 있습니다. 그걸 알면서도 저는 가지 못합니다. 사람들앞에서 눈물을 보일것 같아서입니다. 수령님을 대신해서 가자니···

수령님께서 나가셔야 했습니다. 그런데 수령님··· 왜 이렇게 누워계십니까.···》

김정일동지의 어깨가 더욱 세괃게 오르내린다. 수령님께서 붉은 기폭을 덮고 조용히 누워계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수령님의 존안을 우러러보시였다. 생전에 이처럼 가깝게 또 오래도록 우러러보신적이 있었던가싶으시였다. 그이께서는 오래도록 수령님의 존안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며칠후 단군릉을 찾으시였다.

차에서 내려 계단을 오르시는 그이의 눈앞에 단군릉의 웅좌가 높은 산처럼 다가왔다. 백악처럼 빛나는 단군릉, 그것은 지나온 반만년의 력사와 다가올 몇백만년의 민족사에 드리는 20세기의 기념비였다. 그것은 민족의 제일아들이 드린 효성의 탑이였다.

영광을 안았도다, 단군조선아!

얼마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앙인민위원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무원은 조국과 민족앞에 이룩하신 김일성동지의 업적을 길이 전하기 위하여 그이의 탄생일인 4월 15일을 태양절로 하며 그이께서 탄생하신 1912년을 원년으로 하는 새로운 년호, 주체년호를 제정할데 대한 공동결정을 채택하였다.

하여 조선민족은 태양민족으로 되였으며 이 민족이 사는 태양조선의 력사는 김일성동지의 력사로 영원히 흐르게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