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백산마루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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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절을 단군이 출생한 날이라고도 하고 단군이 나라를 세운 날이라고도 한다.

단군이 20대에 나라를 세운것으로 봐도 그가 출생해서 나라를 세우기까지의 20년은 반만년에 비하면 하나의 점에 불과하므로 더 작은 점인 단군이 출생한 날이나 나라를 세운 날을 두고 옴니암니 할 필요가 없을것이다.

그저 민족의 시원이 열린 날로 보면 된다.

이것은 산에서 흘러나오는 강의 시원을 어느 골짝, 어느 샘이라고 하지 않고 산의 이름을 붙여 말하는것과 같은 리치이다.

민족의 시원이 열린 날을 10월 3일로 찍은것은 고구려의 계승국인 발해를 일떠세운 대조영의 동생 대야발이 쓴 력사책 《단기고사》이다. 그후에 나온 《단군세기》, 《규원사화》 등에도 10월 3일이라는 날자가 나오는데 《단기고사》의것을 옮겨놓은것인지 아니면 제나름으로 출처를 따져서 기록해놓은것인지는 알수 없다.

아무튼 우리 민족은 오랜 세월 개천절을 민족의 시원이 열린 날로 여겨왔다.

1993년 10월 1일.

우리 나라의 신문사들이 법석 끓었다.

조선중앙통신사로부터 중대소식이 있다고 하여 기다리고있는데 시간이 퍼그나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소식이 없었기때문이다. 신문사들에서는 통신사에 대고 독촉전화를 걸어댔다.

조선중앙통신사 사장 김필건은 그 전화들을 눌러놓고나서 조바심이 나서 안절부절을 못했다. 그도 영문을 알수 없다. 당중앙위원회에서 중대자료를 보내겠다고 한것이 아침시간인데 감감 무소식이기때문이다.

간혹 이런 때도 있었다.

그것은 중요로작이 발표된다든가 당과 정부급에서 내는 중대발표가 있을 때였다.

《사장동무, 래일 신문을 내라는거요, 말라는거요?》

《사장동무, 책임질줄 알란 말이요.》

편집국장들이 아니라 책임주필들이 직접 전화를 하며 독촉이라기보다 위협했다.

그러자 김필건은 오히려 배심이 생겨 호기있게 소리쳤다.

《기다리시오! 기다리란 말이요!》

그는 늦어져도 이제 신문에 대서특필의 기사가 실리겠는데 뭘 그러느냐고 혼자 말하며 배포유하게 앉아있었다.

이러한 그도 한시간, 두시간이 지나고 오후시간도 기울어지자 또다시 저도 모르게 긴장해졌다. 머리를 기웃거리며 당중앙위원회에 전화를 걸면 거기서도 그가 신문사에 대고 하듯 기다리라는 말뿐이였다.

신문사들은 물론 통신사까지 긴장하게 만들고있는 원인을 아는 사람은 불과 몇몇 사람뿐이였다.

김석진원사는 몇몇 능력있는 학자들과 함께 밤을 세워 《단군릉발굴보고》를 완성하여 새벽이 다 되여 당중앙위원회에 올렸다. 바로 그들이 그 내용이 2일 신문들의 1면에 실릴것을 아는 몇 안되는 사람들이였다.

그들은 신문사들에 《비상사태》가 일어난데 대하여서는 관계없이 자기들이 만든 문건이 어떻게 결론되겠는가 하는데만 신경을 쓰고있었다.

그들은 아침밥을 먹을 생각도, 자기들이 긴밤을 꼬박 새웠다는것도 잊고있었다.

오전 10시경에 당중앙위원회로부터 단군조선의 국토문제에 대한 보충설명을 요구해왔다.

김석진 등은 자기들이 만들어올린 문건에 그 부분 설명이 허약하다는것을 느끼며 서둘러 보충문건을 만들어올렸다.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수도와 국호가 긴밀히 련계되였다는것은 력사의 상례이다.

평양이 고조선의 수도라는것은 이미 올린 보고에 상세히 서술되여있다. 그런데 건국관계기사들에는 평양과 함께 아사달이라는 지명이 나오고있다. 평양과 아사달의 의미와 그 호상관계를 파보는것으로 고조선의 국호문제를 해명할수 있다. 평양의 평은 리두표기에서 《부루, 바라》에 대한 소리옮김으로서 《벌판》의 《벌》의 옛 형태인 《바라, 버러》에 대한 뜻옮김으로 쓴것이다. 후기신라때 《현웅현》의 옛지명《미동부리》의 《부리》가 고려시기에 와서 《남평》, 《영평》의 《평》으로 개칭된것이 그러한 례이다.

한편 평양의 《양》은 《내ㅡ천》을 가리킨 말이다. 《내》는 겹모음을 쓰지 않던 시기에는 《나》였으므로 결국 평양은 고대 우리 말로 《부루나》에 대한 리두식표기라고 볼수 있다.

그런데 고구려의 수도였던 《국내성》은 일명《불내성》혹은 《위나암성》이였다. 《불내》의 《불》은 받침이 쓰이지 않던 시기의 우리 말로는 《부루ㅡ부리》이며 《내》는 《나》이므로 역시 《부루나》의 소리옮김임을 알수 있다.

《평양》이나 《국내》가 다 고구려의 수도이름이였다는 사실은 그것들이 본래 동일한 《부루나》ㅡ《불내》에서 온것이였다는것을 결론을 도출하게 한다.

우리 조상들은 오래전부터 강을 《부루나》라고 하였는데 점차 그 강을 끼고있는 마을을 역시 《부루나》로 불렀고 나중에는 나라의 도읍을 가리키는 명칭도 《부루나》라고 하였던것이다.

이런것을 전제로 평양과 함께 쓰이는 아사달에 대하여 밝혀보기로 한다.

먼저 아사달의 위치문제이다.

단군릉의 동북쪽에 아사달과 관련이 있다고 인정되는 아달산이 있으며 현재 단군릉의 뒤에는 대박산(한박산)이 있다는데 대해서는 이미 올린 보고문건에 언급하였다. 그러나 좀더 구체적으로 언급한다면 대박산의 《박산》은 《밝은 산》의 뜻을 가지게 되는데 그것은 백악산 아사달의 《백악》과 통한다. 《백》과 《박》은 음이 통하여 《흰 백》은 《밝다》는 의미를 가지고있다.

이와같이 대박산, 아달산이나 백악산, 아사달은 동일한 뜻의 서로 다른 표기에 불과하며 이것은 강동이 아사달의 하나였다는것을 반증하여준다.

그러면 아사달의 의미는 무엇인가?

아사달의 《달》은 산의 고어이며 《아사》는 《아침》, 《아시》, 《새》로 풀이될수 있다.

《아사》란 말은 일본어에 그 모습이 비교적 성하게 보존되여있다.

《아침》을 뜻하는 일본말은 《아사》로서 그것이 고대조선에서 유래됐다는 사실이 그것을 말하여준다.

《아사》는 아시저녁=초저녁, 아시김=애벌김, 아시빨래=애벌빨래 등의 용례로 보아 《처음》, 《첫》이라는 뜻으로서 하루가 시작되는 아침의 의미를 내포하고있다.

또 아침이 되는것을 《날이 새다》고 하는데 《아사》가 《새》와 통한다는것을 알수 있다. 그리고 《아사》는 태양 및 동방과도 관련되며 그 어원은 《붉》, 《밝》에 있음을 찾아보게 된다.

날이 새려면 해가 솟아야 하는데 그 빛이 붉고 밝은데로부터 해빛은 흔히 《해발》로도 표현되고있다. 또한 날이 새는것을 동이 튼다고 하며 아침해는 동쪽에서 뜨는데로부터 《새》는 태양 및 《동방》과 관련된다. 동풍을 《새바람》, 동쪽을 《새쪽》이라고 하는것도 그러한 례증이다.

이처럼 아사달이란 《동방》, 《아침》, 《새로운》, 《밝은 산》에서 유래한것이며 그 근원은 《불》, 《발》에 두고있음을 알수 있다. 말하자면 《아사》란 밝게 빛나는 아침, 광명을 가리켜주는 동방의 뜻을 내포하고있다.

평양의 《평》도 부루ㅡ붙이고보면 《벌》이란 뜻에서 전화되여 《아사》와도 그 뜻이 통한다. 결국 평양의 《평》에도 《밝음》의 의미가 포함되고있다.

《조선》은 《빛나는 아침》으로 풀이되는데 그것은 사실 《아사》와 동일한 뜻을 나타내고있으며 또한 《평》의 의미도 포함하고있다는것을 알게 한다.

우리 나라의 첫 국호 조선은 국가가 일어선 성지이며 수도인 평양 아사달과 태양이 솟은 동방의 나라라는 고유한 사상관념의 폭넓은 반영이다.

이미 올린 보고에 언급한것이지만 다시 강조하면 단군의 《단》은 박달을 의미하며 《군》은 임금을 말한다.

《박달》의 《박》은 《밝》과 통하며 《달》은 산의 고어이므로 《박달》은 밝은 산을 이르는 말이다.

《밝은 산》을 가리키는 《박달》은 단군의 출신종족명이자 고장이름이다.

고조선의 건국집단은 하늘(해)신을 최고신, 조상신으로 숭배하면서 자신들을 하늘신의 후손으로 자처한데로부터 《밝음, 광명》의 뜻을 가진 《박》을 종족명으로 삼아 《박달족》으로 불렀다.

단군은 처음 박달종족의 우두머리로 있다가 나라를 세우고 임금이 되였다. 그리하여 그는 《박달(배달)임금》으로 불리웠다.

이러한 견지에서 볼 때 단군이라는 칭호속에는 《태양의 후손》, 《하늘이 낸 임금》이라는 뜻이 담겨져있다.

이로부터 빛나는 아침으로 풀이되는 국호 조선과 그 통치자로서의 단군칭호는 서로 깊은 련관속에 있다는것을 알수 있다.

보는바와 같이 국호 조선은 건국의 터전이 마련된 평양과 아사달이라는 지명, 단군이라는 군주칭호, 《박달》이라는 종족명과 깊은 련계를 가지고있으며 그것들은 다 조선민족의 모체를 이룬 단군조선의 주민들의 고유한 신앙과 사상에 뿌리를 두고있다.

국호 조선의 유래는 참으로 유구하다.···

 

김필건은 당중앙위원회에서 보내온 문건을 받아들고 첫페지를 번져보다가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첫장 머리에 《단군릉발굴보고》라는 전혀 뜻밖의 일곱글자가 찍혀있었던것이다.

···

이튿날 신문에 《단군릉발굴보고》가 난것을 본 김석진을 비롯한 사회과학자들은 깜짝 놀랐다.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와 민족의 단일성에 대한 확증》이라고 《단군릉발굴보고》의 표제가 첨가된것이였다.

이것은 발굴보고의 주제를 강조한것이였다. 힘들게 보고서를 작성한 학자들로서는 이 표제의 첨가가 가지는 의의를 대뜸 짐작하였고 경탄을 금할수 없었다.

그들은 계속 더듬어나갔다.

···

《우리 민족의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는 단군이 나라를 세운 때로부터 시작되였다.》

···

《단군릉은 조선민족의 원시조인 단군의 무덤으로서 우리 인민의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를 실증해주는 귀중한 력사유적이다.》

···

《종전에 신화적, 전설적인물로 간주되여온 단군이 실재한 인물이라는것이 과학적으로 밝혀졌으며 이에 따라 우리 나라는 실지로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를 가진 동방의 선진문명국이였다는것이 명백해졌다. 단군이 고조선을 창건하고 도읍한 평양이 산수수려한 곳으로서 검은모루유적의 주인공과 〈력포사람〉(고인), 〈만달사람〉(신인), 조선옛류형사람으로 이어지는 인류발상지의 하나이며 조선민족의 발상지이고 첫 국가의 발상지였다는 사실이 힘있게 증명되였으며 조선민족은 단군을 원시조로 하는 단일민족임을 떳떳이 자랑할수 있게 되였다. 이런 의미에서 단군릉의 발굴과 단군의 유골발견은 우리 고고학의 승리이며 나아가서 조선민족의 큰 승리로 된다.》

···

《우리 민족의 운명을 우려하는 북과 남, 해외의 모든 동포들은 정견과 신앙, 재산유무의 차이를 초월하여 단군을 조상으로 하는 같은 민족이라는 물보다 진한 피의 동질성을 우선시하면서 외세에 의해 이 지구상에서 우리 민족만이 겪고있는 분렬의 비극을 조선민족의 넋, 민족애의 폭넓은 도량으로 끝장내는데 중요한 기여를 하게 될것이다.》

···

이밖에도 새로 첨가된 부분이 있었다.

그것들은 객관적론증 일면으로만 흐르던 발굴보고에 비해 민족애, 조국애의 심지를 심어주었으며 보고의 력사적 및 정치적의의를 부각시켜주었다.

그것은 로고이기전에 한 겨레의 피이고 심장이며 열정이였다.

학자들은 통신사와 신문사들사이에 긴장한 전화가 오가고 신문편집이 늦어진 사실은 몰랐지만 완성된 보고에 깊이 감동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 전화로 학자들에게 수정가필된 부분에 의견이 없는가고 물으시였다.

이럴 땐 뭐라고 대답을 올려야 하는가. 김석진의 방에 모여있던 학자들은 그저 감격하여 눈물만 흘릴뿐이였다.

통신사사장 김필건에게도 《단군릉발굴보고》는 경이적인것이였다. 그래서 퇴근하지 않고 직접 세계보도계의 반영을 청취하였다.

남조선의 《서울신문》이 먼저 《단군부부유골을 발굴》이라는 제목을 달고 《로동신문》의 단군릉발굴보고의 내용을 상세히 보도하였다. 그밖의 남조선신문들도 같은 내용을 상세히 보도하였다.

일부 남조선신문들이 단군릉발굴보고의 내용을 전재하면서 반신반의하는 남조선학자들의 반영을 소개하였다. 그러나 신문의 론조들은 대체로 객관적이였다.

중국의 신화통신사에서는 《참고자료》에 《조선에서 단군열이 일고있다》는 내용의 글을 냈다. 일본의 통신보도들은 함구무언이였다.

세계의 보도계가 잠잠해질무렵 김필건은 하나의 기이한 기사를 접수하였다. 그것은 해외교포신문인 《배달신문》에 실린 미국력사학회 소속의 남조선계 력사학자인 허진경의 《참회록》이라는 부제가 붙은 유서였다.

신문은 허진경이 뉴욕 맨하탄 앞바다에 몸을 던지기 전에 남긴 이 유서를 동포녀성인 리금순에게 맡겼는데 미국의 큰 신문사들에 들고다녔으나 어디에서도 받아주는데가 없어서 본 신문에 기고해왔다는 사실을 밝혔다.

유서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유서(참회록)

이 우주에서 한점의 먼지에 불과한 본인에게 무슨 소리가 있겠습니까.

소리가 있다 한들 가히 세상을 울리지 못할겁니다.

발에 밟힌 참새의 짹소리는 누구나 듣습니다. 죽어가는 비명인 까닭입니다.

본인은 이국의 바다에 몸을 던지면서 한마디의 비명으로 세상을 크게 울린 루쏘나 똘스또이의 참회록에 감히 목소리를 견주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본인의 유서는 비명입니다. 한생 민족을 욕되게 하며 살아온 매국자의 비명입니다.

본인은 경상북도 안동군 금계동에서 태줄을 끊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신동으로 불리워온 저는 마을사람들의 촉망속에 푸른 꿈을 안고 고향산천을 떠났습니다. 부친이 땅마지기를 가지고있은 덕에 본인은 먹을 걱정, 입을 걱정없이 대학공부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넉넉한 가세를 담보해주는 일제통치가 싫었습니다.

그런 속에 민족의 넋속에 이 몸을 던지기로 하고 민족사연구의 길을 더듬었고 학우 김석진과 더불어 련공의 길을 걷기로 하고 이북행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별치 않은 일로 다시 이북에 등을 돌리고 반공의 길로 전도하여 한생을 그 길에서 늙어온 몸입니다.

회고컨대 그것은 체끼였습니다.

한번 먹고 체한 음식은 아무리 맛있는것이라도 일생 싫은것과 같은 리치라 할것입니다.

정치란 말을 듣기만 해도 역스러웠으며 몸에 두드러기가 돋았습니다.

본인의 체질이 정치알레르기성인가싶습니다. 리승만의 독재에도 박정희의 독재에도 발진을 일으키고 그리스도교도가 되였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로 자처하는 미국으로 망명하여 숭미에 몸을 담그었습니다. 어디 다른것을 믿을데가 없었습니다.

본시 본인은 민족사를 연구하면서 단군연구에 푸른 꿈을 두었던적이 있습니다.

해방후 이남에서 단군교가 잔명을 부지하고있었습니다.

한때 창궐했던 단군교는 력대교주들의 비명참사와 외세의 우리 민족 죽이기의 돌풍에 녹아나 허덕이고있었습니다.

제가 이북에 등을 돌리고 다시 돌아와 그것을 보면서도 외면한것은 한번 체한 음식에 다시 맛을 들이지 못하는 괴이한 체질인 까닭입니다.

이북에서 탈출할 당시 저는 강동군에 있는 단군릉에 대한 조사발굴사업을 계획하고 그것을 추진중에 있었습니다. 그러던중 일부 사람들의 이러저러한 박해로 탈북을 결심하였습니다. 그때 저는 그 일부 무지한자들이 밉던 나머지 단군묘에 빈 무덤이라는 말뚝을 박아놓고 단군에게마저도 침을 뱉고 돌아섰습니다. 이것은 몰수당한 지주들이 도망가면서 낟가리에 불을 지른것과 같은 심리라고 보아야 할것입니다. 저는 공산당정치를 펴가는 북에서 일이 잘 되여나가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정치제도에 대한 반감이 조상마저 욕되게 하는 반역으로 떨어지기까지가 결코 멀지 않음을 이 글에서 명백히 해둡니다. 공산당정치에 체한 저는 분별을 잃었으며 공산당이 좋다 하는 일을 바라지 않았던것입니다.

본인은 인생말년에 이르러 큰 눈을 가지고 이북을 바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이북의 정치에서 저의 몸에 붙은것은 그 정치의 시력을 이루고있는 민족의 넋이였습니다. 그 넋은 단군왕검의 넋이였습니다.

단군왕검을 〈죽이고〉도주한 저는 그 사실을 발설하면 민족의 몽둥이에 맞을것 같은 공포로 하여 지금까지 입을 다물고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북에서 제가 박은 말뚝을 뽑아버리고 단군왕검의 실체를 찾았으며 반만년 민족의 력사를 정립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민족앞에 큰 죄를 지었다는 사실을 크게 뉘우치고 죽음으로써 속죄하기로 결단하였습니다.

6.25동란때 저의 부모님들은 미군기에 의해 피폭하였고 저의 전도를 촉망해주던 동네여러분들이 미군의 탄사로 인해 참혹한 죽음을 당했습니다.

지금껏 미국을 신의 나라로, 그리스도의 나라로 섬겨온 이 미거한 본인은 부모님들과 동네분들앞에 죄지은 몸이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민족사를 반세기동안 정지시켜 민족앞에 죄지은 이 몸은 부모님앞에서도 죄를 짓고 이중역적으로 되였습니다. 세상에 역적치고 이런 역적이 또 있겠습니까?

반공이 저로 하여금 이러한 천고의 대죄를 짓게 하였습니다.

본인은 최후의 심판을 받을 십자가앞에 서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세계는 종말에 이르지 아니하고 죄인의 참회를 받아주실 예수 그리스도는 강림하시지 않았습니다.

강림하신것은 민족의 하느님이신 단군왕검이십니다.

죄지은 이 몸은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지면서 단군왕검께 소청드리옵니다.

그 어떤 경우든, 그 어떤 미명하에서든 민족앞에 오욕을 남긴자들은 가차없이 처벌하십시오. 신앙과 주의에 혈안이 되여 민족을 잊고 민족을 버리고 민족을 욕되게 한 자들을 모조리 끌어다 지옥에 떨구어버리십시오.

단군민족의 후손들에게 고하나니 단군의 환생을 선포한 이북의 목소리에 귀기울이시라. 정견과 신앙, 재산의 유무를 초월하여 단군을 조상으로 하는 단일민족이라는 피의 동질성을 우선시하면서 외세에 의해 지구상에서 우리 민족만이 겪는 분렬의 비극을 끝장내자고 한 이북의 호소에 호응해나서라!

죽음으로써도 씻을수 없는 죄가 이 호소로 덜어지기 바라며 아멘.》

김필건은 이 기사를 당중앙위원회에 올리기로 결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