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백산마루 38


 
 

38

 

같은 시각 뉴욕에서;

녀성들이 부르는 아름다운 노래소리가 울렸다.

 

이국의 들가에 피여난 꽃도

내 나라 꽃보다 곱지 못했소

돌아보면 세상은 넓고넓어도

내 사는 내 나라 제일로 좋아

···

 

노래소리는 뉴욕의 중심거리를 달리는 승용차안에서 울리고있었다. 망향객인 리금순이 차안에 타고있었다.

조선반도에 선포되였던 준전시상태는 미국의 항복으로 일단락 막을 내렸다. 해외교포들은 정견과 신앙, 리념에 관계없이 한결같이 기뻐하였다. 그들은 민족의 공멸을 초래할 전쟁을 바라지 않았던것이다.

얼어붙은 조선반도의 정세가 해토되자 일시 중단되였던 북과 남, 해외교포들의 접촉과 교류가 다시 활발해졌다.

하여 중국의 베이징에서도 북과 남, 해외교포들의 회합이 진행되였는데 이 회합에 대종교의 교주 안효식이 참가하였다.

그는 돌아올 때 북측 대표로부터 카나다에서 발행되고있는 교포신문인 《배달신보》의 편집인 리금순에게 전달해달라는 한통의 편지를 받았다.

그 편지는 김일성주석님의 편지였다.

김일성주석님으로부터 편지를 받은 리금순이 눈물을 흘리며 지난날을 회고하였다.

리금순은 김석진과 경성제대동창이였다. 해방직후 김석진을 따라 평양에 와서 교편을 잡았다. 행복했던 몇년세월이 꿈같이 흘렀다. 그다음 전쟁이 터지고 모든것이 허물어졌다. 《리조실록》을 구출하러 서울로 나갔던 김석진이 적구에 떨어진채 소식이 없는것이다.

녀인에게 남편은 하늘이였다. 하늘이 무너졌다. 남편잃은 젊은 녀인의 넋은 끝없이 방황했다. 절망과 공허, 불우함··· 서울에는 그의 부모형제, 친척들이 있었다. 거기에 가기만 하면 남편의 행처를 알수 있으리라 생각하였다. 방황하는 녀인의 넋은 그들에게로 쏠렸다.

서울에 나온 리금순은 부모형제들이 한강다리대참사에서 다 희생되였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에야 자기의 실책을 깨달았다. 그후 이국에서 망향객의 설음이 짙을수록 그 후회는 녀인의 심혼에 더욱 깊이 파고들었다. 김석진이 죽지 않고 살아있으며 공화국의 력사학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있다는 소식이 들어올 때마다 그는 공화국에 대한 그리움으로 베개머리를 적시였다. 그러나 공화국에로의 길은 막혀있었고 그리로 갈 렴치도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김일성주석님께서 한갖 먼지같은 존재에 불과한 녀인에게 친히 편지를 보내주시였고 해외교포학자들과 함께 공화국에로의 입국을 주선해주시였다. 녀인은 한생 잊지 않고있던 주석님의 목소리를 다시 되새기였다.

그리고 그분께서 편지에서 당부하신 일을 성의껏 하리라 마음을 다졌다.

하여 그는 뉴욕의 맨하탄에 살고있는 허진경을 찾아가고있는것이였다. 주석님께서는 민족적량심을 조금이라도 가지고있는 사람이라면 과거를 불문에 붙이고 민족대단합의 기치밑에 묶어세울데 대하여 녀인에게 당부하시였던것이다.

그러나 정작 허진경을 찾아가고있는 지금 녀인의 마음은 몹시 번거로왔다. 안효식은 녀인에게 주석님의 편지와 함께 강동의 단군릉에서 원시조의 유골을 찾았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던것이다. 허진경은 그 통에 우상이라는 말뚝을 박은 당사자였다. 본의든 본의아니든 그로 하여 해방후에도 단군연구에는 장막이 드리워있었다. 수십년간이나 발굴사업이 진행되지 않은데도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것이다. 더우기 리금순 자기가 애써 정리해놓은 단군초상 고증서를 불살라버렸다. 그렇다면 오늘 이 경이적인 사변앞에서 그는 어떻게 처신할것인가.

맨하탄거리의 세집을 찾았을 때 허진경은 록화기로 공화국에서 새로 만든 영화 《민족과 운명》(최현덕편)을 보면서 두눈에 그렁하니 눈물을 담고있었다. (당시 교포들속에서 이 영화가 널리 퍼져있었다.)

리금순이 방에 들어서자 허진경은 얼른 눈물을 훔치며 잘못을 저지르다가 들킨 사람처럼 거북해하였다.

그러자 리금순이 직판 들이대였다.

《당신은 평양 강동의 단군릉을 우상이라고 했지요?》

《···》

입이 붙은듯 서있던 허진경은 한참만에야 우물우물 입을 열었다.

《금순씨도 거기서··· 유골이 나왔다는 사실을···》

《알고있어요. 공화국에서 당신이 말뚝을 박아놓은 장소에서 유물을 찾았단 말이예요! 그러니 이제는 세상에 진실을 밝히세요!》

《···》

허진경은 대답대신 고개를 푹 떨구었다.

《내가··· 내가··· 대역죄를 지었소!》

《민족반역자!》

이렇게 웨치며 리금순은 그의 뺨을 후려쳤다. 허진경은 아무런 항변도 하지 않았다.

두사람이 공화국을 떠나온 동기는 각각이여도 남조선사회에 침을 뱉고 돌아선것은 같은 동기에서였다.

박정희의 독재시기였다.

하루는 《청와대》의 문화수석이란자가 력사학회의 부회장을 지내고있던 허진경을 찾아왔다. 《청와대》수석은 그를 학생 대하듯 하며 처음부터 고압적인 자세로 나왔다.

《허진경씨, 요즘 북에서 신라에 의한 삼국통일론을 부정하고있는데 당신이 이를 반론하는 글을 써야겠소.》

그때 허진경은 그 요구를 들을수 없었다. 학자의 견지에서 볼 때 북의 주장이 과학적이였기때문이였다. 신라에 의한 삼국통일론을 부정하면서 북은 신라의 봉건통치배들이 외세를 끌어들여 동족의 나라들을 욕되게 한 매국배족행위라고 지탄하였다.

학자인 허진경은 북의 주장이 그른데 없다고 인정하고있었다. 실지 첫 통일국가인 고려를 세운것은 고구려의 유민들이였으며 고려의 시조 왕건자체가 첫 통일국가의 국호를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의미에서 고려라고 붙였다.

학자로서의 진지성을 가지고있던 허진경은 력사의 페지를 더듬는 과정에 그것을 알아보았다. 그것은 진리이고 과학이였다.

《북에 대한 박대통령의 국시는 흡수통합이요. 그러니 우리에게 한국정권의 정통성이 필요한거요. 당신도 이것을 알고있을텐데?》

《청와대》수석은 정치의 요구를 숨김없이 털어놓으며 다시금 강박했다. 그리하여 지금껏 정치의 요구로 대종교를 반대하느라 시달려온 허진경은 또다시 정치의 시녀로 되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는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였다.

《청와대》수석의 요구는 집요했다.

《박대통령이 당신을 지켜보고있소. 어쩔래요?》

《음···》

허진경은 몸부림쳤다. 정치를 위해 과학을 날조하다니? 이거야 너무하지 않는가? 북에 등을 돌리고 돌아서긴 했지만 북에서야 이런 일이 어디 있었던가?

때마침 수석관이 북을 건드리며 나왔다.

《북정권이 고구려를 내세우고있는만치 우리가 신라를 내세우는것은 마땅한 일이요!》

《북이 내세우는건 민족의 정통성이요. 내가 있을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런걸로 알고있소!》

허진경은 학자적량심으로 항변했다.

그러자 군부출신인 수석은 습관적으로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갔다. 허진경은 눈을 꾹 감아버렸다.

허진경에게서 실패한 수석은 리금순에게도 같은 요구를 제기했다. 리금순이 그의 요구를 들을리 없었다.

그들은 각기 미국에 망명하였다. 리금순도 망명후에 허진경이 미국에 건너와있다는것을 알고있었으며 허진경이도 리금순의 행적을 알고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한번도 만나기를 희망하지 않았다. 얼마전에 있은 기자회견장에서 그들은 수십년만에 얼굴을 띄여보았다.

허진경은 말없이 방 한가운데 고목처럼 서있다.

리금순이 비로소 그가 사는 세집을 둘러보았다. 몇㎡도 되지 않았다. 미국력사학회는 대종교를 몰아대는 기자회견에서 저들의 기도를 파탄시킨 허진경을 제명해버렸다. 실업자가 된 허진경은 이러한 세방마저 겨우 얻어사는 형편이였다.

세간살이도구란 거의 없고 방 한구석에 가스콘로 하나에 양재기 몇개가 놓여있을뿐이였다.

리금순은 그가 다시 측은하게 여겨졌다. 그리고 찾아온 용건을 말할 때가 되였다고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허진경씨, 저는 김일성주석님으로부터 편지를 받았어요.》

《엉?!》

《놀라지 마세요. 김일성주석님은 편지에서 전번에 있은 안효식대교주의 기자회견을 록화실황으로 보았다고 하시였어요.··· 그때 저는 물론 허진경씨도 눈박아보시였다고 하시였어요.···》

이렇게 말하는 리금순은 자기도 모르게 격동되였다.

《그분께서··· 김일성주석님께서 나를 알고계신단 말이요?》 허진경의 아래턱이 눈에 띄게 덜리였다.

《예, 허진경씨, 김석진원사에게서 당신의 이야기를 들으셨다고 해요.》

《그렇다면 그분께서 나의 죄까지 알고계신단 말이요?》

《그래요, 허진경씨가 말뚝을 박은데서 유골이 나오지 않았나요. 하지만 그이께서는 저에게 허진경씨를 꼭 찾아가 만나보라고 하시였어요. 당신이 몹시 괴로워할거라고 하시며···》

《그런데도?》

《정말 그분은 하늘같이 큰분이예요!》

《아!···》

허진경의 두눈에서 또다시 진한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윽하여 리금순이 가지고온 구럭을 풀고 수지물병 하나를 꺼내들었다.

《이걸 마셔보세요.》

《그건?》

《〈금강산샘물〉이라고 하는 고국의 물이예요. 주석님께서 편지와 함께 이것도 보내시였어요.》

《아, 이런···》

허진경은 목이 꺽 메여 말을 잇지 못했다.

그 물을 병채로 걸탐스레 꿀꺽꿀꺽 마시고난 그는 남은 물을 자기의 머리와 온몸에 주르륵주르륵 쏟았다.

《성수로구나, 성수야. 고국이 죄많은 이놈의 명복을 빌어 자비를 베풀어주는구나!》

금순은 아무런 만류도 하지 않고 그에게서 떨어져 창밖을 내다보며 그가 진정하기만을 기다였다.

맨하탄은 미국에서 제일 번화가였다.

자본의 초기축적을 시작한 양키들은 200년전만 해도 자그마한 어촌이던 여기서 원주민들을 몰아내고 무역항을 꾸리고 거리를 세웠다.

현대적인 건축재료로 일떠세운 번쩍거리는 초고층의 건물들과 네온등들이 지랄발광하듯 하는 밤의 정경은 자본주의의 《물질문명》을 자랑하고있었다.

밤마다 집집마다에서는 향연이 벌어지고있었다. 간계와 음모, 협잡과 사기, 모략, 강도질로 살찐자들이 술과 녀자, 마약으로 벌리는 향연이였다. 이 향연이야말로 약육강식과 황금만능밖에는 정치도 없고 력사도 문화도 전통도 없는 미국의 돈많은 《신사》의 란무였다.

이것이 밝은 창문너머의 밀월의 세계이며 화려한 이 거리의 리면이고 진면모였다. 맨하탄의 앞바다가 그렇듯이 탁류가 범람하는 거리였다.

이윽고 허진경이 그에게로 비척거리며 다가왔다.

《고맙소, 금순씨! 금순씨를 보고나니 저승길을 눈앞에 둔 내 마음이 다소나마 가벼워지는것 같소.》

그는 봉인되여있는 두툼한 서류뭉테기를 내밀었다.

《난 이미 유서를 써놓았소. 저승에 가서 조상들을 만나기가 두렵지만 어찌겠소. 내가 이승에서 할 일은 이것밖에 없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