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백산마루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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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규는 발굴현지에 와있었다.

안해 복순이가 실련당한 딸의 고민을 말해주지 않았기때문에 아무것도 모르는 그의 마음은 밝기만 했다.

그는 단군유골의 신빙성을 담보해줄 동시대의 유골을 찾으려는 오직 하나의 일념만으로 가슴을 불태우고있었다.

사회과학원에서는 련관부문 연구소들의 모든 학자들을 발굴사업에 망라시켰으며 당에서도 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의 교원, 학생들을 동원시키는 조치를 취해주었다.

그리하여 력사학부의 연구사인 례영이도 이 사업에 망라되게 되였는데 박진규는 딸을 자기 발굴조에 포함시켰다.

그는 이번 기회에 딸에게 점찍어둔 진웅이를 붙여줄 즐거운 마음을 가지고있었다.

진웅이 몸성히 잘있는지, 나라에 위험이 닥쳐오자 인민군대에 탄원한 총각, 지내볼수록 마음에 드는 총각, 수령님께서 친히 소환해주시였으니 이제 곧 돌아올것이다. 나이가 좀 많으면 뭐라나.

이 시각 박진규는 진웅의 아버지가 누구이겠는지 하는데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만약 진웅의 아버지가 강동중학교 교원시절 자기의 조직문제를 제기했던 그 간부라는것을 알았더라면 과연 어찌 되였을것인가. 설사 그렇다해도 박진규는 오히려 이렇게 반문했을것이다.

《그래 진웅이한테 무슨 허물이란 말이요?》

박진규는 자기의 발굴조를 비류강일대에 데리고 갔다. 그의 학자적예감은 이 일대에서 무엇이 잡힐것 같았다. 이 예감은 진웅이를 비롯한 언어학연구소의 학자들이 찾아낸 이 일대의 지명들의 유래에 깊이 류의한데서 온것이였다.

이 일대에 있는 다물, 고불바위, 연나, 솔나, 부루동 등 지명들은 단군조선과 관계되여있고 단군조선의 력대왕들에 대한 이러저러한 이야기들을 담고있었다. 다물인 경우 이곳에 있던 샘물을 다물샘 또는 천황샘이라 하고 샘이 있는 지역을 천황동이라고 한것을 봐서 다물이 옛날 왕을 가리키는것으로 인정되였다. 실지 다물은 단군조선의 38대왕이였다.

이 지명에 다물임금이 성천땅에 사냥을 나왔다가 평양으로 돌아가는 길에 다물샘이 좋아서 며칠 묵어갔다는 이야기가 붙어있었다.

고불바위를 임금바위라고도 부른다. 고불은 단군조선의 14대왕이였다. 그러니 이 지명도 고불임금의 행적과 관련되여있었다.

《성천읍(주)도록》에 의하면 연나는 단군조선의 24대왕, 솔나는 단군조선의 25대왕의 행적과 관련되여있었다. 또한 부루동은 단군조선의 2대왕인 단군의 맏아들의 이름과 관련되여있었다. 아직도 부루동이라는 이름이 전해지고있는것이 매우 주목되는 점이였다.

박진규네는 지금까지 단군조선의 고대성인 황대성이 있는 남강 류역에서 발굴사업을 하다가 이상의 점들에 류의하여 이곳으로 시야를 돌렸던것이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록 어느 고분에서도 유골을 찾아내지 못하였다. 박진규는 이 사업이 결코 쉽게 이루어지리라고는 보지 않았다.

5천년전의 유골을 찾아낸다는것이 어디 간단한 일인가. 단군유골의 경우 그가 시조왕이였고 고구려후손들이 릉을 다시 꾸리면서 우연인지는 몰라도 중성질의 땅에 매장하였으니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5천년동안 보존되지 못했을것이다. 박진규는 여기 강동땅에 발굴의 첫삽을 박은 때로부터 지금까지 어느 한순간도 유골의 중요성을 잊은적이 없었다.

유골이야말로 가장 명백한 고고학적자료로 되는 까닭이였다. 그런데 그러한 유골이 단군유골을 내놓고는 더는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금수산의사당 협의회때 수령님께서 유골문제를 제기하시였음에도 불구하고 힘들게 대답을 올렸던것이다.

그러나 수령님앞에 결의한 이상 어떻게 하든 새로운 유골을 찾아야 했다.

박진규의 마음은 어지간히 조급해졌다.

한편 강동읍지구와 락랑구역일대에서는 리관직의 지휘하에 여러개의 발굴조가 움직이고있었다. 자기를 개조할것을 결심한 리관직의 열성은 보통이 아니였다. 그는 이전과는 달리 자기도 어느 한 발굴조에 속해서 직접 손에 삽을 잡았다.

사회과학원 본원에 다녀온 박진규네 발굴조성원 한사람이 그의 조에서 벌써 여러 개체분의 유골을 찾아 년대측정실에 넘긴 사실을 전달했다. 박진규는 그 소식을 들었지만 언제나와 같이 덤덤한 표정이였다. 그러나 그의 속마음은 번거로왔다.

리관직이를 만나고난 다음부터 박진규는 태도를 달리하였다. 그는 리관직이 자기의 결함을 진정으로 고치기를 바랐다.

그의 일이 잘되여야겠는데.

그런데 과학원 본원에 갔다가 자기가 직접 본 하나의 사실을 놓고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리관직이가 년대측정실에 넘겼다고 하는 유골들이 하나같이 고구려의 무덤떼가 집중되여있는 남강류역의 1호구역(편의상 발굴지역을 여러개로 나누어 번호를 붙이였다.)의 돌각담무덤에서 파낸것으로서 이미 박진규가 손을 댔던것들이였다. 그는 여기서 나온 여러 개체분의 유골들이 그것이 묻혀있는 무덤의 구조형식으로 봐서 고구려때의것이 명백했기때문에 구태여 년대측정에 넘기지 않았다.

리관직이 이것을 모른단 말인가.

박진규는 그가 또 무슨 일을 저지를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는 리관직을 찾아가 만났다.

관직은 의외에도 밝은 표정을 짓고 반갑게 그를 맞아주었다.

《동무도 소식을 들었겠지?》

《그래서 찾아왔네.》

《참 잘 왔네, 잘 왔어. 그러지 않아도 동무를 만나 론의해보자던 참이였는데···》

관직은 득의양양했다. 그는 자기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박진규의 시선을 느끼자 범잡은 포수같던 좀전의 기상을 버리고 진중해졌다.

《앉으라구.》

박진규가 자리를 잡고 리관직은 뚜걱뚜걱 발소리를 내며 가운데 위치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이로써 그는 이 좌석이 공적인 자리며 이제부터 자기가 하는 말이 부원장으로서 공식적인 발언이라는것을 암시했다.

《나도 놀랐네, 이번에 남강1호구역에서 고조선시기의 무덤이 발굴될줄은···》

《부원장동무!》

박진규도 진중한 목소리로 그의 직함을 불렀다.

《남강1호구역에 대한 조사는 우리가 이미 한것이요. 그곳 고분은 명백히 고구려무덤이지 고조선무덤일수 없소. 그 발굴보고서를 보았겠지요?》

《보았소. 그런데 진규동무, 동무는 발굴을 하면서 놓친게 있소. 이번에 우리는 그곳에 대한 발굴을 심화하는 과정에 그 무덤이 고조선시기, 그것도 고조선초기의 무덤이라는 움직일수 없는 증거를 쥐게 되였소.》

리관직은 느슨하고 배포유한 웃음을 지었다.

《그게 뭐요? 그래 거기서 비파형단검이라도 발견됐소?》

《그보다 더 귀중하고 중요한것이 나타났소, 비파형창끝! 그리고 또 미승리형단지가 나왔단 말이요, 비록 쪼각이지만.···》

《그게 사실이요?》

《아직두 날 믿지 못하겠소?》

리관직이 진정으로 섭섭한 표정을 지었다.

비파형창끝과 미승리형단지(조롱박형단지라고도 함.)는 고조선시기의 대표적인 유적이다.

남강1호구역에서 이 두가지 유물이 동시에 나왔다는것은 그 고분이 의심할바 없는 고조선무덤이라는것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박진규는 말을 이을수가 없었다.

《이건 엄연한 사실이네. 또 이것은 리관직이 혼자서 한 일도 아니구. 얼마나 기쁜 일인가, 자넨 기쁘지 않나?》

박진규는 착잡한 생각에 빠졌다.

혹시 깊이 파고들어가면 고구려무덤떼에서도 그 이전시기의 유물이 나올수 있지 않을가, 지탑리와 성현리의 토성밑에서 고대성터가 발굴된것처럼!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관직동무! 수고했소, 정말 수고했소!》

《고맙네!》

두사람은 처음으로 진정의 손을 잡았다.

《그 유골이 정말 단군시기의것이라면 얼마나 좋겠나!》

《진규동무, 난 의심치 않네. 지금 년대측정에 넘겼으니 이제 결과가 나오겠지. 아, 우리 수령님께 한시바삐 기쁨의 보고를 올려야 할텐데···》

박진규의 치하까지 받게 되자 관직은 눈시울이 다 벌겋게 달아올랐다.

《난 가겠네. 기쁜 소식을 들으니 힘이 막 솟는구만. 우리 발굴조에 이 사실을 알리고 고무해줘야지!》

박진규는 헤덤비며 리관직과 헤여졌다.

 

발굴현지로 돌아온 박진규는 노상 기분이 들떠있었다. 휘파람까지 불며 천막안을 거니는 그 모양을 보고 례영이가 웃음을 터뜨렸다.

기분이 더욱 흥그러워진 박진규는 딸을 불러앉히였다.

《여기 좀 앉거라.》

《왜 그러세요? 아버지.》

《너하고 긴히 할 이야기가 있다.》

아버지의 얼굴에 웃음이 피여있었으나 례영은 저으기 긴장해졌다.

《례영아, 우리 과학원에 진웅이라는 총각이 있다.》

이렇게 첫말을 뗀 박진규는 그의 됨됨에 대하여 례영이가 알고있는 이상으로 많이 말하고나서 딸에게 물었다.

《네 의향은 어떻니?》

《···》

이 순간 례영은 진웅에게 버림당한 자기의 처지를 솔직히 털어놓자니 아버지의 기대가 너무도 큰것이고 여기로 올 때 단군연구가 끝나기 전에는 절대로 그 사실을 말하지 말라던 어머니의 당부까지 있어 어쩔바를 몰라하였다.

갑자기 눈물이 솟구쳤다.

《왜, 너무 좋아서? 허허허.》

딸의 속마음을 알 까닭이 없는 박진규는 딸의 눈물을 보고 제나름으로 기뻐하였다.

《그가 이제 곧 돌아올게다. 수령님의 분부로 말이다. 그게 어디냐? 진웅이 그 사람은 이젠 수령님과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서도 아시게 된 사람이다.》

그리고는 천막기둥에 걸려있는 기타를 벗겨들고 뚱땅거리기 시작했다.

례영은 아버지가 기타를 타는것을 처음 보았다. 전쟁시기 화선악기도 만들고 그것을 다룰줄도 안다는 어머니의 말을 듣긴 했지만.

그러한 아버지가 지금 기타를 타고있다. 화선에서 타시였을 전시가요의 선률이 아버지의 기쁜 마음인양 금선우에서 울려나오고있었다.

아버지는 기타의 선률우에 흥얼흥얼 노래를 태우기까지 한다.

 

···

전선에서 찾아온 한장의 편지를

처녀가 받은줄 아무도 몰라

···

 

례영은 오열이 터져올라 더 앉아있을수 없었다. 그는 벌떡 일어섰다. 때마침 번개가 번쩍이더니 천둥소리가 울렸다.

 

×

 

바람에 나무우듬지가 울부짖고있었다.

아버지를 피해 정신없이 천막을 뛰쳐나온 례영은 강가의 뽀뿌라나무를 부여안고 몸부림치고있었다. 왜서 그의 버림을 받지 않으면 안되였던가.

수정천가에서 생명의 은인으로 어린 넋속에 간직됐던 그이, 대학에서 다시 인연을 맺은 후 오랜 세월 보물처럼 마음속에 새겨안고있던 그이, 그이가 지금은 피하지 않으면 안되는 존재로, 누구나 례사롭게 그이의 표정을 볼수 있고 그의 진지한 목소리를 들을수 있었지만 자기에게만은 먼 지경밖의 존재로 되여버렸다.

강풍이 례영이의 얼굴을 사정없이 후려치고있었다.

굵은 비방울이 우박처럼 아프게 얼굴을 두드려대고있었으나 마음의 아픔으로 하여 례영은 그것을 느낄수 없었다.

차라리 그 아픔이 더하여 마음의 아픔을 눌러버릴수만 있다면···

영식이가 무엇인가 성의를 표하고싶다며 돈을 꺼내줄 때 자기도 그가 경박한 청년으로 변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난 례영이같은 훌륭한 학자들이 초라하게 입고 다니는것이 싫어서 그래.》하는 그의 말에 순간적으로 현혹되였다.

진웅이가 떠올랐다. 자기앞에서 송구해하고 어줍어하던 그 수집은 사람, 오죽하면 무도회장에서 자기 애인에게 멋쟁이짝패를 붙여줄 생각까지 하였겠는가. 그는 다른것을 생각해볼새 없었다. 단지 진웅이를 위해서 그를 깜짝 놀래울 멋있는 일을 할수 있다는 생각으로 돈의 출처나 돈속에 비낀 검은 속심을 무시하였다.

《고마워요. 난 이걸로 좋은 일을 할래요. 그리고 꼭 갚겠어요.》

《그건 나의 성의에 대한 모욕이요.》

얼마나 고마운 동창생인가. 그는 그가 내미는 돈을 떨리는 손으로 받아들었다.

풍족하지 못한 과학자의 집안의 막내딸인데다가 자기자신이 또한 과학자여서 그에게 빛이 나는것을 해줄수 없는 처지여서 그랬는지 몰랐다.

처음 안경을 받아들고 진웅이가 짓던 표정에서 례영은 자기를 다잡았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또다시 양복을 사들고감으로써 두번씩이나 그를 모욕했다.

그의 마음이 어떠했겠는가? 그에게서 버림을 당한 지금 례영은 그 아픔을 자기의 체험으로 느끼였다.

가슴에 칼을 맞은들 그처럼 아플건가.

례영은 그가 무엇을 증오하고 무엇을 용납하지 않는가를 알고있었다. 그러니 자기의 행동이 그에 대한 배신이 아니고 무언가?

강풍은 여전히 사납게 휘몰아치고있었다.

번개가 하늘을 가르고 천둥소리가 땅을 울린다. 큰 나무밑에서는 벼락을 맞는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회오의 눈물을 흘리고있는 례영에게는 아무것도 무섭지 않았다.

아 번개여, 나를 쳐다오!

돌이켜보면 진웅의 사랑에는 이성의 열정과 함께 오빠의 자애가 포함되여있다. 그래서 그 사랑은 땅과 같이 후더분하고 불과 같이 뜨거운것이였다.

그는 언제나 너그럽고 아량이 있었으며 진지하고 선량하였다. 이제 열번을 다시 산다 해도 그러한 사랑을 얻지 못할것이다.

례영은 평양역에서 마지막으로 바라보았던 그의 모습을 눈앞에 그려보았다. 군복입고 빨간 령장을 단 10년은 더 젊어보이던 그 모습, 시대의 부름이라면 그처럼 사랑하던 펜대를 총으로 바꾸어질줄 아는 그 당당하고 름름한 모습을 고급양복에 은빛넥타이를 멘 그 모습에 어찌 비기랴.

보석을 잃었구나!

수령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였다고 한다. 수령님의 안중에 있는 그, 이제 그가 전선에서 돌아오고 단군연구가 끝나면 처녀들이 줄을 설것이다. 땅에 떨어진 보석은 다시 잡을수 있겠지만 잃어버린 사랑은 쏟아버린 물과 같아서 다시는 주어담지 못한다.

아, 이 사실을 아버지가 알게 된다면···

례영은 천둥번개속에 서서 회오의 눈물을 흘리고 또 흘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