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백산마루 30


 
 

30

 

서쪽하늘로 기운 삼태성이 구름에 가리워졌다.

이때쯤이면 새벽 2시이다. 최전연은 깊은 정적에 묻혔다. 폭풍전야의 정적이다. 쌍심지를 켜고 눈을 더욱더 밝혀야 했다.

새벽 2시는 제일 졸음이 오는 시간이다. 눈을 비비고 머리를 휘젓고 살을 꼬집어도 눈은 끊임없이 가물거린다. 이럴 때면 장대기로도 내리덮이는 눈꺼풀을 받쳐내지 못한다.

살이 내리는듯 한 고통의 순간이다.

최전연의 군인에게는 항상 잠이 모자라고 잠에 들어도 긴장을 풀지 못한다.

이러한 고통들을 이겨내면서 군인은 단련된다, 사람이 된다. 군대에 나갔다와야 사람이 된다는 말을 무심히 대하지 말라.

진웅은 전호가에 엎디여있었다. 졸음은 참을수 없이 밀려오는데 모기란 놈이 또 성화이다. 비가 오려는지 기압이 낮고 여간만 습하지 않았다. 모기란 놈들도 낮추 떠돌며 조심성도 없이 사람에게 마구 달라붙는 판이다. 손을 휘저어 쫓아버리건만 어느새 코등과 볼따귀, 귀등에 독침을 놓고 날아가버린다.

독침자리가 넙적넙적하게 부풀어오른다. 귀구멍안을 꽉 채우며 앵앵대는 모기소리는 소름이 끼칠 지경이다.

마침내 부실부실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땅에 붙인 배밑으로 곬을 파며 비물이 흐른다.

그러나 몸을 일으킬수도 뒤채일수도 없다.

진웅의 임무는 군사분계선을 넘어 우리측 지역으로 들어오는 적의 정찰을 견제하는데 있었다. 전연군인치고 가장 어려운 임무였다.

입대한지 불과 몇달 안되는 진웅이가 이러한 임무를 맡게 된것은 상위 김인철(평양역에서 례영의 물건을 전달해준 인솔군관)의 덕이였다.

중대장인 그가 인솔해갈 신입병사들의 명단에서 진웅의 이름을 눈박아 본것은 그 이름이 낯이 익었기때문이였다.

독서가인 그는 어느 과학잡지에서 고조선의 글자에 대해 쓴 론문을 흥미있게 읽은적이 있는데 그 필자의 이름이 신진웅이였다. 그런데 일이 되려고 그랬는지 이름모를 처녀의 편지를 전달해주고 이름을 물었더니 진웅이라고 했다.

두이름의 임자가 한사람이라는것을 알게 된 김인철은 속으로 쾌재를 올렸다.

중대의 주둔지(전투구역) 깊은 골짜기에는 오랜 비석이 서있었는데 그것이 학식가인 김인철의 눈을 끌었다. 그런데 비석이 서있는 골짜기가 군사분계선이 지나간 우리측 구역이긴 하지만 바위벼랑밑이고 전쟁시기에 매설된 지뢰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위험구역이여서 들어가 볼수 없었다.

김인철은 쌍안경의 확대배률을 최대로 놓고 비석을 훑어보는 과정에 이끼속에서 드문드문 드러나는 글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림도 아닌 해괴한 새김을 발견하고 력사유물이라고 단정했다.

학자들이 보면 흥미를 가질텐데···

하루에도 몇번씩 이런 생각을 가졌지만 학자들을 분계연선으로 데려올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그러한 김인철이 진웅이를 만났으니 쾌재를 올릴만도 하였다. 그를 데려가면 기회는 얼마든지 생길것이다.

이렇게 생각한 그는 상급에 제기하여 진웅이를 자기 중대로 끌어왔던것이다.

김인철이 지금 그의 곁에 엎디여 고명하신 학자선생님을 잘 돌봐줘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초소근무를 함께 수행하고있었다.

그가 귀에 대고 소곤거렸다.

《졸리오?》

《예.···》

《배고프오?》

《예.···》

《모기가 꽤 성활 부렸지?》

《비내리기전까지는 혼났습니다.》

《솔직해서 좋소. 이것 보오, 진웅동무. 참아야 하오. 참고 이겨내는것이 군인생활이지.》

김인철이 진웅의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진웅은 자기보다 두살아래인 중대장의 손길에서 맏형의 살뜰한 정을 느끼며 참말 좋은 지휘관을 만났다는 생각을 하였다. 김인철은 그가 만난 첫 전우이고 지휘관이였다. 그에게서 받은 첫 인상 또한 얼마나 놀랍고도 충격적이였던가···

렬차가 평양역을 출발하자 김인철은 대렬점검을 시작하였다. 그가 부르는데 따라 군인들은 《옛.》하고 힘차게 대답하며 일어서서 자기의 얼굴을 선보였다.

중간쯤에 진웅의 이름이 있었다.

《신진웅동무.》

《옛!》

김인철은 진웅의 선을 다른 사람보다 좀 오래 보고나서 점검을 계속했다. 100여명 군인들에 대한 점검은 퍼그나 오래동안 진행되였다. 마지막인원까지 확인하고난 김인철은 대렬명단을 차곡차곡 접어서 전투가방에 건사하더니 진웅의 앞으로 다가왔다.

《우린 구면이로구만!》

《저도 그렇습니다.》

두사람은 방금 편지를 주고받은 사실을 념두에 두고 이렇게 인사를 나누었다.

《앉아도 좋겠소?》

《예, 어서 앉으십시오, 상위동지.》

진웅은 군인의 례법대로 일어서서 지휘관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그의 곁에 앉은 김인철이 군인식으로 직판 물었다.

《학자선생이 옳소?》

《그렇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알고 지내기요. 내 이름은 김인철이요.》

그는 진웅의 손을 잡아흔들고나서 과학잡지에서 론문을 본 소리를 꺼내더니 론문의 내용을 쭉 이야기하는게 대단한 학식가라는것이 느껴졌다.

무릇 사람들은 자기가 쓴 글에 흥미를 가지는 독자들에게 마음이 끌리는 법이다. 진웅은 녀자처럼 곱게 생기고 마음 또한 고와보이는 이 지휘관에게 대번에 마음이 끌렸다.

학문하고는 인연이 멀다고 생각한 군인이 학문에 흥미를 가지는 사실에서 더욱 호감이 갔는지도 모른다.

두사람은 구면친구처럼 허물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인철의 요구에 의하여 진웅이 더 많은 이야기를 하였다.

그는 자기 말을 흥미진진하게 들어주는 상대앞에서 지금 단군조선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고있다는것과 연구과정에 제기되는 문제들을 시간가는줄 모르고 이야기했고 김인철은 연신 고개를 끄덕여가며 열중해서 들었다.

어느덧 차창밖이 어두워지고 차내전등이 켜졌다.

두사람의 이야기는 저녁식사시간을 내놓고는 밤이 깊도록 이어졌다. 진웅의 이야기가 거의 바닥이 날 무렵 김인철이 문득 물었다.

《아까 내가 전달해준 편지말이요. 그걸 전해달라던 처녀가 대단한 미인이던데 혹시 애인이 아니요?》

애인말이 나오자 진웅은 서글픈 표정을 지었다.

《전 애인이 없습니다.》

《하긴 그렇소. 그 처녀가 애인이라면 편지를 동무한테 직접 주었겠지. 하지만 남몰래 동무를 사모해온 처녀일수 있지 않소?》

《그것도 아닙니다.》

《편지를 보았소?》

《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무엇인지 압니다.》

《함께 보지 않겠소? 혼자만 봐야하는것이라면 관두고···》

《아니요. 이제 보십시오.》

진웅은 선뜻 응하며 배낭뒤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편지를 꺼내주었다.

《먼저 보십시오.》

《무슨 사연이 있는 편지같은데···》

《하찮은 내용일겁니다. 아무런 력사적의의가 없는···》

진웅은 자포자기상태에 있었다.

《력사학자가 돼서 그렇소? 모든 일을 력사적의의가 있는것과 없는것으로 구분하는 버릇이 있구만.》

인철은 웃었다.

《얼마만큼이나 하찮은것인지 내가 먼저 보지.》

《···나는 숯불처럼 이글거리던 동무의 눈길이 잊혀질것 같지 못해요. 그때에도 나는 동무가 야속하기만 했어요.

저는 동무를 남부럽지 않게 차려내세우고싶었어요. 이 생각은 결코 그때, 바로 영식이라는 동창생이 내 앞에 나타나 사심없는 자기의 성의라고 하면서 외화를 쥐여줄 때 생긴것은 아니였어요. 한생을 과학밖에 모르고 살아온 나의 아버지, 한달에 한번 생활비밖에 들여오는것이 없는 그 남편을 하늘같이 여기고 일생을 의탁해오는 어머니의 소박한 생활관을 어릴적부터 체질화해온 저였습니다.

그렇지만 나한테는 한생에서 제일 귀중한 사람, 오빠이기도 하고 애인이기도 한 제목숨 열을 준대도 아깝지 않을 동무가 남들처럼 잘 차려입지 못한것이 늘 내 잘못만 같아 죄스러웠어요.

세상에서 제일 훌륭하고 제일 귀중한 사람들이, 남들보다 열배, 백배로 잘입고 잘살아야 할 그런 사람들이 고지식한것으로 하여 남들에게 동정을 받는것 같은 불쾌감이 언제부터인지 내 마음속에 깃들어있었던거예요. 저는 그 영식이라는 청년이 내앞에서 그렇게 푼푼하게 쓰는 돈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마련되는것인지 알려고 하지 않았고 그의 허식과 만용을 만류하지 않았어요. 그는 나를 만날적마다 성의를 표시하지 못해 안달아했어요. 동무가 나의 애인이라는 소리를 듣자 훌륭한 사람이라고 하면서도 〈왜 그런지 퍽 나이들어보이더구만.〉하는것이였어요. 그러면서 저에게 돈을 또 쥐여주는것이겠지요. 〈그 사람도 아마 잘만 차려입고 나서면 10년은 젊어보일거요.〉하는 그 말을 사심없는것으로 여기고 기꺼이 돈을 받아들었어요. 관심과 성의는 말이나 행동으로뿐아니라 돈으로 표시될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동무는 나의 뺨을 후려쳤습니다. 동창생의 성의를 받았다는 리유로 말입니다. 전 동무의 격분이 리해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동창생앞에 미안했습니다. 그의 진정을 모욕했기때문에말입니다.

그런데, 그런데 그가 어떻게 나왔는지 압니까.

내가 동무의 〈몰리해〉에 대해 이야기했더니 글쎄 어떻게 나왔는지 아세요.

〈차라리 잘된셈이 아니요. 그 사람은 평생 곰팽이내 나는 고서적이나 뒤질 팔자요.〉

무도회장에서 만난 후 여직껏 나에게 연구사들을 존경한다느니, 자기가 뭘 도와줄게 없느냐느니 하면서 관심을 표시한것은 다 나의 환심을 사기 위한 기만이였습니다. 저는 경악한 심정으로 다시 그를 쳐다보았습니다.

〈례영이, 우리 부모들이 이제 곧 장기해외출장에서 돌아오오. 난 부모님들께 동무를 소개할 생각이요.〉

그 순간에야 저는 그의 검은 속마음을 들여다볼수 있었고 또 왜서 동무가 저에게 정도이상의 격분을 표시했는지 깨닫게 되였어요.

그는 태연하게 저의 팔을 끼자고 접어들었습니다. 아, 동무가 그때 나의 가련한 모습을 보았다면··· 저는 두고두고 그날의 수치를 잊을수가 없습니다.

저는 그의 뺨을 후려갈겼습니다.

〈이 너절한···〉

이 말은 동무가 저에게 한 말이였습니다. 저는 동무의 얼굴에, 부모들의 얼굴에 아니, 신성한 우리 과학자들의 얼굴에 흙칠을 했습니다.

저는 용서를 빌리라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나 동무는 그날 보통강유보도에 끝끝내 나타나주지 않더군요. 전 그날 동무가 보는 앞에서 그 물건짝들을 불태워버리리라 작정했었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결코 동무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 이 마당에서조차 나를 변명하는 유치한 인간이여서 이 글을 쓴다고는 생각지 말아주세요. 나같은 인간을 깨끗이 잊었다면 동무에게도 유익할것이라고 여깁니다.

내앞에는 아득한 높이에서 나를 굽어보는 거인이 있습니다. 나같은것은 감히 그 높이를 상상할수조차 없는 그런 아득한 정신적높이에 서있는···

여한이 없습니다. 이 보잘것없는 존재도 어느 한땐가는 이 세상에 가장 훌륭한 남자의 사랑을 받은적이 있었다는 그 한가지만으로도 나는 나의 처녀시절을 설레이며 추억할것입니다.

례영으로부터.》

편지는 길지 않았지만 거기에는 처녀의 눈물자국이 점점이 찍혀져있었다.

《사연이 있는것 같은데 내가 알면 안되겠소?》

김인철은 편지를 손에 든채 진웅을 쳐다보았다.

진웅은 솔직한 인간이였다. 그는 당조직에 그러하였던것처럼 새로운 상관앞에서 례영이와의 사이에 있었던 일을 숨김없이 다 털어놓았다.

그의 긴 이야기가 끝나자 김인철은 나직이 한숨을 내쉬고나서 처녀의 편지를 그에게 넘겨주면서 읽어보라고 하였다.

진웅은 처녀의 편지에서 진정을 읽을수 있었다. 순간 그는 자기의 가슴에 들어앉아있는 얼음산에 금이 가는것을 의식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한순간뿐이고 례영에 대한 새로운 증오로 하여 금이 가려던 얼음산은 다시 들어붙었다.

이때 김인철이 물었다.

《편지를 보니 어떻소?》

《정확하게 썼다고 봅니다.》

진웅이 랭랭한 어조로 말했다.

《어떤 의미에서?》

《자기의 잘못과 그리고 내가 무엇을 제일 증오하고있다는것을 정확히 알고있습니다.》

《그러니 용서하겠다는거겠소?》

《아닙니다, 상위동지!》

《자기를 반성하고있지 않는가?》

《···》

이번엔 김인철이 신음소리를 냈다. 두사람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김인철이 좀 흥분하면서 말을 이었다.

《난 요새 어버이수령님의 회고록을 읽고있소. 몇번을 더 곱씹어 읽었지. 회고록을 봐도 그렇고 내가 이미 알고있는바에 의하더라도 우리 수령님께서는 20대에 어깨에 날개가 돋고 하루에 천리를 주름잡는 〈백발〉장수로 되시였소. 하늘이 낸 장수말이요. 태양이요, 태양신이란 말이요! 예나 지금이나 신화는 이렇게 만들어지는거요. 그런데 사실은 어떠하오? 수령님도 우리와 꼭같은 그리고 언제나 우리곁에 계시는 인간이시란말이요. 단군도 그렇게 보면 되지 않소? 동무말을 들어보니 어쨌든 지식인들은 좀 복잡해.》

진웅이 또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김인철은 《그건 그렇고.》하며 화제를 돌려서 말을 이었다.

《오늘 적들과의 대결은 총과 총의 대결인 동시에 사상과 사상의 대결이요. 그런 의미에서 학자선생들과 언론인들은 사상전선의 군인이라고 할수 있을거요. 과녁은 뭐겠소? 사회주의가치관을 좀먹는 돈이요. 물론 돈은 누구에게나 필요한거요. 그러나 그것이 가치관으로 되는것이 문제요. 돈의 유혹은 말할수 없이 크고 전염력이 강하오. 그러니 누구나 자칫하면 그 유혹에 빠질수 있소. 그렇다고 그런 사람을 다 버리겠는가? 그럴수 없소! 우리의 사상으로, 우리의 가치관으로 그들을 구원해야 하오. 진웅동무, 군인의 심장은 커야 하오. 그리고 뜨거워야 하오!》

진웅은 그와의 첫 대면을 잊을수 없었다.

단순하면서도 명백하고 사리에 밝고 박식한 군인, 불보다 뜨거운 심장을 지닌 지휘관이 지금 곁에 엎디여 다심하게 보살펴주고있다.

문득 검고 큰 그의 눈이 떠올랐다. 떠올리기를 그처럼 주저하고 무서워해온 례영의 모습이였다.

진웅은 김인철이 몰래 한숨을 내쉬였다.

초소의 밤은 소리없이 깊어갔다. 어둠은 더욱 짙어졌다.

그러나 그것은 려명이 멀지 않았다는것을 말해주는것이다.

《진웅동무, 날이 밝으면 말이요.》하고 김인철이 진웅의 귀에 대고 소곤거렸다. 《진웅동무에게 새로운 전투임무가 제기될거요.》

《예?》

《됐소, 래일이면 알게 되오.》

진웅은 더 캐묻지 않았다. 군인에겐 무조건 수행할 의무만이 있는것이다.···

몇명의 공병들이 지뢰를 해제하면서 통로를 개척하고있었다.

진웅은 공병들이 개척한 길을 따라 포복전진하고있었다.

바로 앞에서 김인철중대장이 통로의 안전상태를 확인하면서 그를 안내하였다.

김인철은 진웅을 중대에 데려다놓고 즉시 골짜기 깊숙이 박혀있는 미지의 비석에 대한 조사발굴을 승인해줄것을 상급참모부에 제기했었다. 이례적인 제기여서인지 상급참모부에서는 오래동안 아무런 결론도 주지 않더니 어제 저녁 금방 근무장소로 떠나려는데 그의 제기를 승인한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그와 함께 사단의 경험있는 공병들을 파견해주었고 사단정치위원이 직접 와서 이 조사발굴사업을 지휘하기로 하였다.

지금 정치위원은 중대장감시소에서 포대경으로 진웅이네들의 행동을 주시하고있었다. 그러나 진웅이는 김인철까지도 중대장감시소에 더 높은 급의 지휘관들이 내려와있다는 사실을 모르고있었다.

그들은 힘들게 100m구간을 포복전진하였다.

그들이 은밀히 포복전진하지 않으면 안되였던것은 골짜기가 적들의 시야에 들어있는것만큼 언제 적의 총탄이 날아올지 모르기때문이였다.

앞에서 통로를 개척하는 공병들이 생명을 내대고 아슬아슬한 고비를 넘기고있었다. 거의 반세기동안 묻혀있는 전쟁시기의 지뢰를 발견하기도 힘들었거니와 녹이 쓸어서 뢰관을 뽑아내는 일은 여간 아니였다.

몇명의 공병들이 서로 교대하면서 지뢰해제전투를 벌려나갔다. 그러던중 한 공병이 엎디여있는 배밑에서 《딱.》하는 소리를 들었다. 뢰관이 튀면서 내는 소리였다.

지뢰를 깔았던 공병은 위기일발의 순간 날래게 몸을 날려 몇m밖으로 피신하였다. 《쾅.》하는 굉음과 함께 지뢰가 폭발하였다. 다행히 공병은 중상은 면했지만 팔에 파편을 맞았다. 피흐르는 팔을 감싸쥐고 뒤로 후송되는 공병을 본 진웅은 울음엉킨 소리를 질렀다.

《중대장동지, 그만둡시다!》

그러자 김인철의 목소리가 맞받아왔다.

《뭐야?! 전우의 피를 헛되게 하자는건가?》 그 소리는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했고 또 들으리라고 상상해보지도 못한 범과도 같이 무서운 소리였다. 허지만 진웅은 그것을 느낄사이없이 가슴에 뜨거운것이 울컥 치밀어올라 땅바닥에 얼굴을 박고 흐느꼈다. 혈전이다, 이것이야말로 혈전이다.

아담한 과학원의 연구실과 자기의 숙소, 힘들다고 우는소리를 하면서 현지조사를 진행하던 나날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그때 언제 한번 이러한 혈전을 벌려본적이 있었던가. 진웅은 오열을 누르며 한치한치 중대장을 따라 기여갔다. 미지의 비석이 눈앞으로 한치한치 다가오고있었다. 비석이여, 너 설사 막돌일지라도 금돌로 되여지라!

진웅은 마음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중대장감시소에 최고사령부 련락군관이 도착한것은 바로 이때였다. 련락군관은 사단정치위원으로부터 사연을 듣고 진웅이를 소환해갈 자기의 임무를 생각하며 골짜기에 긴장한 눈길을 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