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백산마루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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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규의 체격은 강한것 같으면서도 과히 단단하지는 못했다. 그의 나이를 척 보아서는 누구도 알아맞추지 못했다.

그는 줄곧 기침을 깇었으며 열이 오른 이마에 자주 손을 가져가군 하였다. 건강이 침식당한다는것을 알면서도 손에서 담배를 놓을줄 몰랐다. 담배도 늘쌍 《갈매기》같은 보통 담배였는데 사실 박진규로 말하면 독한 써레기담배를 말아피우는것을 더 좋아했다. 하지만 직장에 출근해서는 극력 삼가하였다. 남들이 그 냄새에 코를 찡그린다는것을 알기때문이였다. 이러한 그의 대퇴에 락동강전선에서 박힌 파편이 남아있다는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이상할것은 없었다. 기침을 깇거나 이마에 손을 가져가거나 줄담배를 피우는 모든것은 남들이 보지 않는데서 벌어지군 하였기때문이였다.

그는 병원에 가는것을 죽어라고 싫어했다. 마취주사를 한대 놓고 쑥 뽑아버리면 시원할 건들거리는 이발을 제풀에 문드러져 없어질 때까지 달고다니는 류형의 사람이였다. 세상에는 별치 않은 재간을 가지고도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는 그런 사람이 있다. 하지만 그는 다문박식한 지식을 가지고있으면서도 결코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지 못했고 솔직히 말하면 경시의 대상이기도 했다. 이러한 그의 몸에 소힘줄같이 질긴것이 박혀있었으니 그것은 육체가 땅에 묻혀야만 없어질 고집병이였다.

그는 모든 일에 재는것이 많은 원장과 대비해볼 때 지나치게 덤덤하고 얄미울 정도로 완고하였다.

강동땅에서 《벼락》을 맞고 당적처벌문제가 제기되여 군당에 불려다닐 때에도 덤덤해보였고 자기 문제가 너무도 심각하여 당중앙위원회에 제기되였을 때에도 덤덤해보였으며 지어는 당중앙위원회에서 일군이 내려와 처벌문제가 해소되였다는것을 알려주었을 때조차 자기 감정을 겉에 내비치지 않았다.

박진규가 딱 한번 목석같은 몸을 와들와들 떨며 운 일이 있었는데 당에서 그의 희망대로 과학연구부문에 옮겨준 때였다.

그의 할아버지는 유생이였다. 식자가 있어 그랬는지 아니면 다른 무엇이 있어 그랬는지 모를 일이나 일제시기 단군릉수축때 몇마지기 안되는 땅을 팔아 기부를 하였다.

기적비에는 할아버지의 이름이 올라있지는 않으나 가산의 전부라고 할수 있는 땅을 다 팔아 기부한것은 큰지주들이 여유금을 기부한것과 대비도 안될 하나의 미거였다. 그 할아버지는 어린 손자의 손목을 잡고 자주 단군묘를 찾아가군 하였다. 추석때는 더 말할것도 없고···

단군묘는 박진규에게 있어서 연고가 깊은 곳이라고 할수 있다.

할아버지는 운명할 때 어린 손자인 진규의 손을 잡고 박씨피줄은 잊어도 배달겨레의 피줄을 잊지 말라고 유언하였다.

누구도 돌보지 않는 단군릉의 벌초를 한 박진규의 소행을 할아버지의 유지를 받든것만으로 볼수 없었다. 그는 피어린 전장에서 입당한 당원으로서 당을 믿었다. 일부 편협한 일군들에 의하여 변고를 당하면서도 눈섭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에게서 당은 수령님이시였다.

그는 언제인가 자기가 교편을 잡고있던 학교에서 교직원, 학생들과 함께 수령님을 뵈온 사실을 잊지 못하고있었으며 그것을 한생의 가장 큰 행복으로 간주하고있었다. 그러고보면 그는 신념이 있는 인간이였다. 그 신념은 힘줄속에 숨어있는것으로 사람들의 눈에 잘 띄우지 않아 지금 과학원안의 어떤 사람들은 그를 쓸데없는 고집만 주장하는 시대의 《골동품》으로 보고있었다. 원래 남의 소리를 들고다니는 사람들을 좋지 않게 보는 초급당비서 한응삼도 갓 부임되여왔을 때 그에 대한 뒤소리들을 일축해버리고 좋은 점만 찾아보느라 애썼으나 결국은 그런 말을 들을만도 하다고 생각하게 되였다.

천길 물속은 알아도 사람속은 모른다고 세상에 사람에 대한 오인과 오해, 편견이 얼마나 많은가.

박진규가 그리도 희망하던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의 연구사로 일한지는 20년 거의 된다. 이 오랜 기간 각이한 시기의 유적유물들을 수많이 발굴하고 수많은 력사자료들을 정리분석하여 론문으로 써냈다.

특이한것은 그의 책상에 언제나 단군관계의 서적들이 고정재산처럼 쌓여있는것이였다. 그 많은 책들에 과연 단군관계의 글이 몇줄이나 되겠는지.

하지만 그는 목침만큼 두터운 책과 불과 몇줄, 지어 한마디로 지나가버린 책일지라도 단군과 실오리만 한 관련이 있으면 일단 손에 들어온 다음에는 내놓치 않고 그것을 자기의 책상에 쌓아놓았다. 그의 책상우에서 더욱 유표하다고 할수 있는것이라면 강동땅을 떠나올 때 단군묘에서 떠온 흙주머니인데 그게 무엇에 필요한지는 누구도 몰랐으며 누구도 거기에 관심을 돌리지 않았다.

그래도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것은 어디서 어떻게 구해들었는지 모를 솔거가 그렸다는 단군화상 모조품이였다. 그래서 그가 혼자 있을 때에는 사람들이 들어와보고 빈방인줄 알고 도로 나가는 일이 드문하였다.

그가 앉아있는 자리는 임명된 첫날에 받은 그 자리이며 책상도 그때 받은 그 책상이였다.

그의 책상은 《박진규성당》이였으며 그는 이 성당의 《선관》으로 일체 시비군들을 위엄있게 물리쳐버렸다.

왜서인지 고고학담당부원장인 리관직에 대해서는 더욱 무자비하였다. 이것은 연구소에 단군연구실이 없고 단군을 연구하는 전문연구사조차 없는데 대한 일종의 도전이였다.

그는 모든것을 혼자서 다 하였다. 스스로 《단군연구실》의 《실장》이 되여 《실》을 운영하였다. 그렇다고 중세연구를 맡고있는 자기 실의 기본연구과제를 외면한적은 한번도 없었으며 남들보다 두곱, 세곱 실적을 올렸다. 얼마전 그가 실장으로 된 후부터 중세고고학연구실이 눈에 띄우게 달라졌다. 그는 조직적수완도 있었으며 무엇보다 머리가 비상하였다. 이러한 그를 두고 어떤 사람들은 머리가 좋은것은 뇌수의 이상현상이라고 비양하였다. 그러거나말거나 실장사업을 재빨리 해치우고는 자기의 《성당》에서 단군연구에 몰두하였다. 이럴 때면 그는 자기 한사람만이 아는 생각에 심취되군 하였다.

김석진이 수령님께서 보내주신 왕무한의 편지를 읽고있던 바로 그 시각이였다.

《박진규성당》으로 젊은 연구사 하나가 찾아왔다. 언어학연구소에 있다고 자기 소개를 했지만 박진규는 청사에서 그를 한번도 본적이 없었다. 출근해서는 책상에만 앉아있고 위생실로 가느라고 복도를 걸어가는 경우에도 언제나 머리를 수굿하고 다녔으니 십분 그럴만도 하였다.

젊은 연구사는 지명의 유래를 파보느라고 지방의 여러 곳을 편답하였는데 강동땅의 지명들에 주의를 돌렸다고 하였다.

그는 설명하였다.

현재 《단군릉》이 자리잡고있는 서북쪽에 대박산이 있다. 대박산의 《박산》을 옛날에는 《박달》(밝은 산)이라고 하였는데 그것은 《박달임금》을 가리키는 단군과 관련하여 생긴듯싶다. 릉의 동북쪽에는 아달산이 있다. 이 아달산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단군이 도읍을 정하였다는 《아사달》과 관련하여 나온 이름이다.

릉의 앞에는 좀 넓은 벌이 있으며 그 맞은편에는 동서로 산들이 련달려있다. 벌의 중심부에서 남쪽으로 치우친 곳으로는 수정천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러 대동강으로 들어간다.

릉의 맞은켠 수정천가에 림경대가 있는데 이곳에는 단군의 발자국이 남아있다는 돌과 전설이 전해지고있다.

릉의 서쪽으로 멀지 않은 곳에 《단군호》라고 불리워온 호수가 있다. 그리고 단군릉이 있는 마을을 얼마전까지만 해도 《단군동》이라고 하였고 그 동쪽마을을 《아달동》이라고 하였다. 모든 지명에는 모두 유래가 있는 법이다. 그 유래가 단군과 관련된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실장선생에게 참고가 되지 않겠는가 생각한다. ···

자기《성당》에 처음으로 찾아온 반가운 손님이였다.

박진규는 책상옆에 있는 자기가 별로 앉아보지 않은 쏘파에 손님을 앉혔다. 물론 손님의 설명은 그가 이미 알고있는 내용이였다. 그러나 이 순간 처음으로 알게 된듯 하였다. 자기 뇌수는 남들이 말하는것처럼 확실히 이상이 왔다고 여겨졌다.

흥분이 왔다. 단군연구에 결정적인 박차를 가해야 하겠다는 충동이 화산처럼 치솟아올랐다. 그는 손님을 앉혀둔채 자리를 차고일어섰다. 일상적으로 느린 그에게 이처럼 날랜 때도 있었다. 그는 자기의 거동을 이상스레 지켜보는 손님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직속상관인 소장과 부원장 리관직을 뛰여넘어 거침없이 원장방으로 달려갔다.

 

×

 

김석진원사는 다른 생각을 하고있었다.

귀를 기울인것은 한순간 지속되였을뿐이고 생각은 그가 말하는 내용과는 완전히 상관 없는데로 가있었다.

(수령님께서 왕건왕의 후손이 올린 편지를 왜 나에게 보내주셨을가?)

그러나 박진규는 그의 그러한 태도에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젊은 연구사로부터 받은 충격이 아무리 보잘것 없고 빈약한것이라도 원사의 의식속에 파고들게 해야 한다는것을 알고있었다. 그는 자기의 자그마한 《성당》에 더는 앉아있을수 없다는것을 느끼고있었다.

무슨 못할짓을 한다고 숨어서 해야 하며 혼자서 뛰여다녀야만 한단 말인가! 그는 젊은 연구사의 말을 들으면서 자기 뒤골방을 당장 폭파해버리고 넓은 활무대로 뛰여나올 용단을 내렸다.

활무대는 얼마든지 있었다. 강동땅이 그런 곳이였다. 강동땅에서 대대적인 조사를 해보자. 혼자서 힘이 딸리면 연구조를 내오면 되지 않는가.

그에게는 그럴 자신과 수완이 있었다. 조국해방전쟁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때 혼자 남은 그는 자기처럼 혼자 떨어진 병사들을 하나둘 모아 한개 소대가량 전투대오를 무어 적을 치면서 만포까지 간적이 있다. 목적이 정당한 이상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다 쓸것이다.

그는 원사에게 이야기했다. 그의 말은 저격수의 총탄처럼 마디마디 원사의 심장을 똑바로 겨누고있었다. 하지만 원사는 여전히 그의 말에 관심을 돌리지 못하고있었다. 박진규가 첫말을 뗐을 때 돌아서버린 그의 생각은 왕무한의 편지에 씌여진 《효자》라는 말마디에 가있었다. 왕무한이 쓴 편지의 긴 글줄이 모조리 흩어져 《효자》라는 두 글자로 되여버렸고 머리에 그 두 글자가 꽉 차서 따른 생각을 할 겨를을 주지 않았다.

박진규가 자기 존재를 재확인시키듯 원장앞으로 한걸음 다가섰다.

《마음쓰실게 없습니다. 원장선생님, 이건 저 혼자 하면 됩니다. 저를 강동으로 보내주십시오.》

《모르겠소. 무슨 소린지.》 김석진이 그제서야 자기 상념에서 깨여났다.

《누가 어디로 간다구? 어째서?》

《제가 금방 말씀드린 그 문제말입니다. ···강동에 파견해달라는겁니다. 사람을 붙여줘도 좋고 안 붙여줘도 무관합니다. 죽기로 달라붙으면 안될 일이 없지요.》

《거기 가서 어떻게 하겠다는거요?》

김석진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연구조를 무어주면 더 좋겠습니다. 사람이 정 없으면 저를 깨우쳐준 언어학연구소의 그 젊은 동무라도 좋습니다. 누구도 단군연구를 하지 않았으니 전문가가 따로 있을리는 만무한 노릇이고··· 저는 강동에 있는 단군묘를 발굴하자는겁니다.》

《단군묘를 발굴한다구?! 거야 한갖 우상이 아니요.》

석진은 깜짝 놀라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그러나 이내 마음을 가라앉히며 옛 제자에게 말했다.

《이것 보오, 진규동무. 그러지 않고도 동무네 실에서 할 일이 얼마나 많소. 그런것들을 과제로 삼는것이 현실적이겠는데···》

《그래도 단군이 우리 민족의 첫 건국시조가 아닙니까? 력사학자로서 자기 민족의 원시조문제를 외면해서야 되겠습니까?》

이때 석진의 머리에 그 어떤 령감같은것이 번쩍했다.

방금까지 그의 눈앞을 가리우고있던 《효자》라는 두 글자가 《원시조》라는 말과 합쳐지면서 수령님께서 자신께 드린 편지를 당과 국가의 책임일군도 아닌 바로 자기에게 보내주신 그 뜻이 어렴풋하게나마 안겨왔다.

력사학자인 자기가 민족앞에 효자의 구실을 다하자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가르쳐주심이 아니겠는가.

그는 아무 날에건 수령님께서 편지에 대해 물어오시리라는것을 의심치 않았다. 무슨 왕청같은 소리를 올릴번 했는가.

하마트면 편지를 보면서 지나간 나날에 있은 박진규의 일을 두고 학자의 량심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보게 되였다는 어망처망한 답변을 올릴번 하지 않았는가. 자기의 대답을 들으시고 놀라와하실 수령님의 안광이 떠올랐다.

김석진은 몸을 흠칫 떨며 자기의 상상에서 깨여났다.

그는 박진규의 눈을 똑바로 마주보았다.

《비판하라구, 진규동무!》

박진규는 한숨을 지었다. 동무라고 방점을 찍어 부르는 그의 말에서 백송리시절의 스승의 모습을 보았던것이다. 학생들이 무리한 질문을 할 때마다 김석진은 그런 식으로 말하군 했다. 박진규는 학생때처럼 자세를 한껏 낮추고 겸손한 어조로 말했다.

《무리한 요구를 한다고 욕하지 마십시오. 저도 이젠 나이가 60을 넘었습니다, 선생님.》

《더 비판하라구. 진규동무, 진정으로 말하는데 내가 동무에게 죄를 지었소.》

《무슨 죄를 지었다고 자꾸 이러십니까?》

《무슨 죄를 지었는가구?》

김석진은 이전에 스승답지 않게 그의 정치적운명을 외면했던 자기의 행동을 아직 이야기해주지 않고있었다. 수령님과의 이야기속에 있었던 일이고 모르는 일을 구태여 알려주어 그를 번거롭게 하고싶지 않았으며 또 스승으로서 거북한 점도 없지 않았다.

김석진에게는 그것 말고도 다른 큰 죄가 있었다. 그는 그것을 박진규가 불덩이같이 달아오른 몸으로 자기앞에 나타났을 때에 의식하였다.

그는 박진규의 《성당》에 대해 이미 알고있었고 그가 그 《성당》을 지켜 혼자 고심하고있다는 사실을 알고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외면하여왔다. 박진규가 불덩이같은 몸으로 나타나 단군연구에 한몸을 던지겠다고 하는 사실앞에서 그의 심장과 자신의 심장을 대비해보지 않을수 없었다. 자기의 심장이 뜨겁지 못했다. 그로 해서 왕무한의 편지를 보내주신 수령님의 진의도를 깨닫지 못하였다.

지금 자기앞에는 홍안의 시절이 멀리 흘러가버린 늙고 병약한 제자가 앉아있었다. 상처를 입은 영예군인이, 불덩이같은 사람이!

김석진은 그의 몸에서 뿜겨나오는 열과 발산되는 빛속에 자신의 존재를 앉혀보지 않을수 없었다.

《무슨 죄를 지었는가구?》 한동안 생각에 잠겼던 김석진은 다시 반문하며 입을 열었다.

《그새 동무를 잘 도와주지 못했소. 스승으로서, 원장으로서··· 이것이 죄가 아니면 뭐겠소.》

이렇게 말하면서도 앞으로 도와줄 자신이 없었다. 정확히 수자들과 째인 론리로 사고가 진행되는 그에게는 아직도 강동의 《단군릉》은 우상으로 남아있었고 단군과 관련되는 지명 몇개로 단군의 실체와 단군조선의 력사를 밝힐수 있는 확신이 없었던것이다.

그래도 료동에는 강상무덤, 루상무덤 등 순장무덤들이 있고 노예사회가 존재했다는것을 보여주는 유적유물이 있다. 거기로 가겠다면 몰라도··· 그의 속마음을 알아맞추기라도 한듯 박진규가 입을 열었다.

《너무 괴로워하지 마십시오. 선생님, 아직은 공식화하기 힘드실게고 연구실과 같은 기구를 내오는것은 더욱 힘들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혼자서 가겠다는것이 아닙니까. 그렇다고 저에게도 과학적인 타산이 있는것은 아닙니다. 그저 열망뿐입니다.》

《과학에는 령감이 중요하오. 열망은 더욱 중요하지. 나에게는 그것이 부족하오.》

원장의 말은 진심이였다.

그는 30년전 강동의 《단군릉》을 우상이라고 말씀올렸을 때 섭섭해하시던 수령님의 목소리를 오래도록 잊지 않고있었다. 그래서 고조선력사연구에 대한 조직적대책을 취하기도 하였다. 고조선의 중심지라고 인정되는 료동땅에 세차례나 답사단이 파견되였으며 그 자신이 인솔자가 되기도 하였다.

결과 고조선의 력사, 국가문명의 첫단계인 노예사회력사연구의 시초를 열어놓았다.

원장인 그의 과학적열망에 대해 말한다면 두말할것도 없이 높다고 평가해야 할것이였다. 그의 열망은 사회과학의 여러 분야 즉 정치, 경제학, 력사, 철학, 법률, 어학, 문학 등에 분산되여있었다.

이 모든 분야를 총괄해야 하는 사회과학행정사업의 지휘관으로서 어쩔수 없는 일이였다.

그러니 자그마한 박진규의 《성당》에 미처 관심하지 못했다.

박진규를 마주한 지금 여러갈래로 흩어졌던 그의 열망이 하나의 초점으로 모아졌다. 적어도 감정상으로는 그렇게 볼수 있었다. 그는 언제나 증거, 론리를 중시하고 과학에 감정을 섞는것을 금물로 여기는 사람이였다.

그런데 지금은 감정이 앞섰다. 박진규를 지지해주고 그자신이 박진규와 더불어 단군연구에 한몸을 내댈 열망에 불타올랐다.

그 열망이 박진규가 나타난데서 생긴것만은 아니였다. 이 순간 왕무한의 편지를 다시 생각했다. 기본은 그것이였다. 력사학자가 아닌 이 나라의 평범한 공민조차 민족사를 대하시는 수령님의 경건하고 허심한 자세앞에 머리를 숙이고 600년을 숨겨온 가문의 비밀을 털어놓지 않았는가. 수령님이 아니시였다면 그 600년이 얼마나 더 오래 지속될번 했는가. 아니 그 600년은 가문의 대를 이으며 계속되다가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할수도 있지 않았는가.

《진규선생!》

그는 제자를 선생이라는 존칭으로 부르면서 말했다.

《내 생각해보겠소!》

그러나 박진규는 자기가 기대를 안고 원장방에서 나온 다음 리관직이 그 방에 뛰여들었다는 사실을 알수 없었다.

리관직이 어떻게 알았던지 박진규가 제기한 문제를 상기시키면서 그것을 원장이 들어주어서는 안된다는 반대의견을 내놓았다.

그는 선자리에서 흥분을 앞세우면서 말했다.

《그는 〈소자〉가 나갔습니다.》

《그건 무슨 소리요?》

김석진은 놀랍게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오동작을 하고있단 말입니다.》

김석진은 언짢아하면서 충고하였다.

《그가 제기한 문제의 본질은 고조선이 중국의 료동에서 생겨 료동에서 존재했다는 료동중심설을 반대하는데 있습니다. 이게 오동작이 아니고 뭡니까?》

《앉아서 이야기하시오.》

김석진은 그에게 자리를 권하면서 침착하게 말했다.

《예.》

리관직은 원장의 앞탁앞에 주런이 놓인 의자들가운데서 원장과 제일 가까운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료동중심설을 부인하는것은 언어도단입니다. 이런 심각한 문제를 감히 제기하다니? 〈소자〉가 나갔다고 하지 않을수 있겠습니까?》

리관직의 말에는 어쩐지 감정이 섞여있었다.

김석진은 그것이 느껴졌는지 감정을 앞세우지 말라고 타이르고나서 침착하게 말했다.

《누가 료동설을 부정한다고 그러오?》

《박진규지요. 그가 뒤에서 그런 소리를 들고 다닌다는 여론이 있습니다.》

《그는 강동에 단군과 관련되는 지명과 전설이 나왔기때문에 거기 가서 연구사업을 하게 해달라고 제기해왔을뿐이요!》

김석진은 리관직의 말을 은연중 반박했다.

그러나 리관직은 그의 말을 귀등으로 흘린듯 자기 말을 계속 했다.

《원장선생님, 그럼 〈한사군〉문제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여기에 〈한사군〉문제는 왜 꺼들이는겁니까?》

아무래도 그의 행동이 리해되지 않아 김석진은 리관직을 빤히 바라보았다.

《이제 두고보십시오. 그의 주견을 따르다가는 그 문제에 부딪치지 않나 두고보십시오.》

《···》

원장은 피로한듯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한사군》문제는 학계에서 매우 복잡한 문제였다.

원장은 박진규가 제기한 문제를 얼른 결론할수 없었다.

그로부터 며칠후 김석진이 아직 번거로운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있을 때 수령님으로부터 개건된 동명왕릉을 함께 돌아보자는 부르심을 받게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