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백산마루 29


 
 

29

 

금수산의사당 회의실에서 돌아와 쏘파에 몸을 던진 리관직은 고민에 빠져있었다. 수령님을 모신 좌석에서 자기가 부지중 올린 대답을 좌중이 공감하지 않았을뿐더러 수령님께서도 침묵하시였다.

그는 실언을 한것이 아니였다.

그는 오랜 세월 마음에 간직했던 말을 한것이였다.

(수령이 바라시는것이라면 무조건 해내겠다! 하늘에서 별이라도 따오겠다!)

그의 행적을 보면 례컨대 대학에서 그리고 과학원에서 오래동안 일해오면서 늘 그렇게 말해왔고 당과 수령이 바라는것이라면 무에서 유를 창조할 기세를 보여주었다. 행동이 얼마나 뒤따랐는가 하는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사람이 말에 의하여 평가되는 때가 없지 않다.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사람들의 마음은 깊은 곳에 숨어있으니까.··· 사람을 평가하는 직분을 가진 일군들이 품을 들이지 않거나 조금만 태공하면 진짜보석은 놓치고 가짜를 진짜로 보게 된다. 가짜들의 언사가 초당적일 때 어지간한 일군이 아니고서는 어쩌지 못한다.

리관직은 바로 그러루한 언사들로 등용되고 발전하여왔다고 할수 있었다. 그런데 자기의 전생애를 떠밀어주다싶이 한 그 《훌륭한》언사가 수령인 그이께 불쾌감을 드렸다. 틀림없이 기쁨을 드리리라고 믿었던 일이 역전되였다.

리관직은 머리를 싸쥐고 오래도록 앉아있었다. 자기의 말이 아니, 전생애의 생활방식이 부정된 지금 자신을 돌이켜보지 않을수 없었다.

그는 오랜 기간 자기 행동의 합리성을 찾는데 습관되여있었다. 말이 있어야 실천이 있지 않는가. 선동력으로 대중의 실천을 추동한다면 그것이 곧 나의 실천이 아니란 말인가. 뱅글뱅글 돌던 그의 머리가 지금은 정지상태에 빠졌다. 정지된것은 머리만이 아니라 리관직이라는 인간을 움직여오던 맥박도 호흡도 혈압도, 말하자면 모든 생명활동수치들이 정지되여 령상태에 이르렀다.

그러나 죽음과도 같은 정지상태에서 그는 정화되고있었고 그속에서 환생의 메아리를 듣고있었다. 그 메아리는 어데서 울려오는것인가?

그는 그 메아리가 어데서 울려오는것인가를 알았지만 이번만은 찾아가지 않고 스스로 듣고있었다.

먼저 인간이 되라. 박진규는 친구가 아닌가. ··· 그와의 관계부터 풀라던 당조직의 충고, 《잡소리》문제를 들고나온것이 결코 비인간적행위가 아니라고 여기면서 귀등으로 흘려버렸던 당조직의 충고가 절망적인 이 순간에 환생의 메아리로 느껴지는것이였다.···

한밤중에 박진규가 사는 아빠트에 도착한 리관직은 출입문가에 서서 숨을 크게 내쉬였다.

사업상용무로 차를 타고 와서 문가에 선채로 간단히 용건을 말하고 돌아선적이 두어번 되고 박진규의 어머니가 사망했을 때 조객으로 한번 왔을뿐 이 집에 들어가본적이 없었다. 그는 몹시 주저하며 초인종을 눌렀다.

박진규의 안해나 혹은 딸이 나올가봐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당사자가 문을 열었다.

박진규는 다소 놀라는 눈치였다.

《밤중에 안됐네. 집식구들에게 미안해서 그러니 우리 밖에 좀 나가세.》

리관직은 이렇게 말하고나서 황황히 몸을 돌려 계단을 구르며 내려갔다. 마치 박진규가 자기 팔을 잡아끌기라도 하는것처럼···

그는 밖에 나와서도 진정을 못했다.

박진규가 어떤 얼굴로 나타나겠는지?

리관직은 웃사람의 하회를 기다리는 아래사람의 심정으로 박진규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박진규앞에서 불안해하지 않으면 안되는 자기의 처지를 두고 기막힌 생각도 없지 않았다.

현장에서 잠간동안 로동생활을 하던 때를 내놓고 승승장구해온 자기의 생애에 이런 무참한 지경에 이르렀던 때가 또 있었던가.

좀 있어 박진규가 나왔다.

그는 정장을 하고있었다.

《어떻게 왔습니까?》하는 박진규의 말투도 공식적인데가 있었다. 이것은 친구로 인정하지 않는다는것을 간접적으로 표시한것으로서 리관직으로 하여금 가슴이 서늘해지게 하였으며 그와의 매듭이 쉽게 풀리지 않으리라는 위구를 금할수 없게 하였다.

과학원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수령님을 여러차례 만나뵙고 단군연구의 주역을 담당한 박진규를 선망의 눈길로 바라보고있다. 오늘만 해도 수령님을 모시고 동석식사까지 했다지 않는가. 이러한 사실이 또한 친구(절교한 사이이지만)앞에서 위압감까지 느껴지게 하는것이였다.

그는 먼저 입을 뗄 용기를 잃고말았다.

그렇다고 박진규가 먼저 입을 열 잡도리도 아니다. 찾아온것은 당신이니 당신이 무슨 용건인지 어서 말하라는 태도였다.

그 좋던 구변은 다 어디로 갔는지 한동안 갑자르던 관직이가 떠듬거리며 힘들게 말을 뗐다. 《좀··· 걷지 않겠나?》

《···》

그들은 아빠트주변의 공원길을 한참 말없이 걸었다.

《앉자구. 앉아서 이야기하자구.》

리관직이 공원의 긴의자에 먼저 앉으며 자기의 옆자리를 권했으나 박진규는 좀 떨어진 맞은켠 의자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리관직의 말을 기다렸다.

《단잠을 깨워서 안됐네.》

《괜찮소. 어서 말씀하십시오.》

친구관계로 되돌아가려고 애쓰던 리관직의 입은 그의 랭담한듯 한 표정과 공식적인 말투로 하여 다시 막혀버렸다.

두사람사이에는 긴 침묵이 흘렀다.

박진규가 입을 열었다.

《금향이는 잘 있습니까?》

《응?··· 그래, 잘있네.》

리관직은 그 물음이 뜻밖인듯 박진규를 빤히 쳐다보며 기쁨이 어린듯 한 어조로 대답했다.

금향이란 그의 첫 안해의 몸에서 태여난 딸이였다. 박진규는 금향이가 자기 맏아들과 중학교동무였기때문에 그의 안부를 진심으로 물었다.

리관직은 자기 딸의 안부를 묻는 그의 진정어린 목소리를 들으며 그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낼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다.

《진규, 난 동무에게 사죄를 하려고 찾아왔네. 난 이래저래 죄를 지었네. 동무에게 용서를 비네.》

《나에게라구요?》

박진규는 놀란듯 리관직을 바라보았다.

《그래, 동무에게가 아니구 누구이겠나?》

그러자 박진규는 왜서인지 《음ᅳ》하고 신음소리를 냈다.

리관직은 당황해서 허둥거리며 의자에로 다가가 그의 몸을 안았다.

《어디가 편찮나? 어디가? 이 사람···》

박진규는 자기 몸을 감싸안는 팔을 뿌리치더니 벌떡 일어나 그가 앉았던 긴의자에 가서 몸을 던졌다. 그리고 관직이를 향해 소리쳤다.

《가시오! 가!》

《이 사람, 왜 그러나? 엉? 진규···》

리관직은 그의 옆에 따라가 앉으며 맥없이 중얼거렸다.

의자등받이에 몸을 젖히고있던 박진규는 잠시후 일어나 자세를 바로 잡고 앉았다. 그리고 손바닥으로 얼굴을 내리쓸고난 다음 담담한 어조로 침착하게 말했다.

《난 어버이수령님을 만나뵈올 때마다 우리의 관계를 풀려고 했소. 수령님의 밝은 안광에 좋지 않은 우리의 관계가 비끼기라도 할가봐 겁이 났던거요. 그래서 내가 먼저 부원장을 찾아가 만나자구 했던건데 이렇게 부원장이 먼저 찾아왔소.》

《진규, 고맙네.》

《내 말을 끊지 마시오.》

《그래, 어서 말하게.》

리관직은 기쁨과 기대를 가지고 옛 친구를 바라보았다.

박진규가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 나는 부원장의 말을 받아들일 마음의 여유가 없소. 금수산의사당에서 돌아온 다음 지금까지 줄곧 고민에 빠져있었소. 방금도 자고있은줄 아오? 부원장동문 정말 자신이 있어 수령님앞에서 그렇게 대답을 드렸소? 남들은 말할줄 몰라서 대답을 못드린줄 아오? 자기들의 약속이 공담이 될가봐 주저한겁니다. 그처럼 심사숙고하시는 수령님앞이여서··· 그런데 부원장동문 수령님앞에서 죄를 지었단말입니다. 수령님께 용서를 빌어야 합니다. 우리의 관계야 뭐가 큰것이겠소. 부원장의 죄는 수령님과의 관계에서 제기된거란 말이요! 정말 괴롭소. 나는 수령님을 만나뵈온 후로는 우리들사이에 있었던 이전 일은 불문에 붙이려고 했소. 그러니 부원장동무의 일에 내가 어찌 무심할수 있겠소. 내가 용서할 일이라면 얼마나 좋겠소. 그런데 부원장동문 뭐요? 나에게 용서를 빈다구?》

《진규동무의 말이 전적으로 옳소. 그러나 한가지만은 오해하고있소. 나도 인생의 새 출발을 결심했소. 그 첫걸음이 동무와의 관계를 푸는것이지. 말하자면 인간으로 되는것이라고 할가, 이것은 당조직의 충고이기도 했소. 이 한밤중에 동무를 찾아온것이 바로 그래서요. 다시말하지만 지난 일은 다 내 잘못이요! 나를 믿어주오.》

《부원장의 말이 진심이라면 믿겠소. 그렇지만 먼저 말해야 하오. 부원장은 자기의 결함이 뭔가를 똑똑히 알아야 하오. 그것이 납득될 때라야 나는 동무를 받아들일수 있소.》

《진규, 그게 뭐 그리 급한 일이라구··· 밤도 깊었는데 래일 천천히 이야기하자구.》

《아니, 난 급하오. 오늘 동무가 이렇게 찾아온 이상 그 말을 꼭 들어야겠소. 그렇지 않으면 나는 집으로 들어가도 온밤 잠들지 못할거요.》

《글쎄··· 뭐라고 꼭 짚어말해야 할지? 내딴에는 뛰고 또 뛰느라고 하는데도 빈번히 실패만 거듭하니···》

《부원장동문 수령님앞에서 죄를 지은 지금조차도 사색을 태공하고있소.》

박진규는 말을 끊었다. 더 말할 흥미를 잃은 그는 갑자기 피로를 느끼며 두손으로 머리를 싸쥐고 까딱 움직이지 않았다. 리관직이 황황히 말했다.

《이러지 마오. 나는 줄곧 생각했소. 그래서 새 출발을 결심한게 아닌가?》

《···》

박진규는 여전히 까딱 움직이지 않고 앉아있었다.

리관직이 사정하듯 말했다.

《동무생각엔 이 리관직의 결함이 뭐 같은가? 동무의 말을 들어보고 받아들일건 받아들이겠네. 이건 정말이네!》

박진규는 이마에서 손을 떼며 부르짖었다.

《동문 이 순간에조차 남의 힘을 빌려는거요? 에익, 자기는 노력하지 않고 횡재를 바라는 불로소득자!》

《뭐, 뭐라구?!》

《그렇소. 건달군!》

《동무, 못하는 소리가 없구만! 아, 이런···》

리관직은 총탄을 맞은 사람처럼 비명을 지르며 얼굴이 꺼멓게 죽었다.

흥분한 박진규가 계속했다.

《난 백송리에서 동무를 만난담부터 유심히 보아왔소. 대학시절은 그만두고라도 가정을 이룬다음에 어떻게 했소? 동무때문에 인물곱고 마음씨 착하고 공부를 잘한 녀성, 동무로 해서 전도를 망친 그 안해가 어떻게 되였나말이요. 산후탈로 앓는 몸에··· 동무가 탄광에 내려갔을 때 동무는 갱밖에서 빙글빙글 돌았지만 그 녀성이 남편을 돕겠다고 갱안에까지 들어갔지요? 연약한 녀성의 몸으로 그렇게 아글타글하다가 그만··· 끝내···》

격하여 말을 끊은 박진규의 두어깨가 경련을 일으킨것처럼 부들부들 떨었다.

잠시후 그의 울음이 엉킨 목소리가 이어졌다. 《안해의 희생으로 동무는 사람들의 동정을 사게 되고 로동단련을 잘한것으로 평가되였소. 과거를 계산하자고 안했지만 말이 난김에 마저 합시다. 나의 〈잡소리〉문제도 정말 잡소리로 생각했소?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을 내세우려고 초당성, 초열성을 부린거지요! 정말 동문 무서운 사람이요!》

박진규의 말에는 여전히 울음이 엉켜있었다.

《나도 동무에게 모진 말을 하는것이 괴롭소. 하지만 동무를 위해서 할 말은 다 해야겠소, 동무를 위해서.··· 동무도 력사학을 전공했으니 알거요. 계급사회가 어떻게 생겨났소? 불로소득자가 나오면서 생긴것이 아니요. 남의 로력을 착취하는 사람들, 착취계급이 불로소득자인거요! 그런데 오늘 착취계급이 없어진지 오랜 우리 사회에 불로소득을 꿈꾸는 사람들이 생겨나고있소. 동무도 그런 사람들중의 한사람이요. 이런 사람들은 안할 말로 세상이 바뀐다면 하루 아침에 착취자로 둔갑할것이요. 그들은 다 수완가이고 요술로 살아온 사람들이기때문에 근면하고 성실한 사람들의 머리우에 얼마든지 군림할것이요.

사회주의는 나의 생명이며 생활이요. 나는 사회주의를 지키기 위해서 건달군들, 불로소득을 꿈꾸는자들을 타매하오! 지금껏 동무를 미워한것도 그때문이요. 관직동무, 사회주의를 세운것은 바로 우리 세대가 아니요. 그런데 자신이 세운 사회주의를 왜 부식시키려는거요? 나는 정말 안타깝소!

지금 어떤 사람들은 일을 쥐꼬리만큼 하면서도 입은 항아리만큼 커서 나라로부터 더 많은것을 바라고있소. 나라가 젖짜는 암소는 아니지 않소. 로동이야말로 성실한 인간의 본태인거요. 관직동무, 인간의 이 본태에로 돌아가오. 제발 부탁이요. 성실한 노력가, 사색가가 되여주오, 관직동무.···》

박진규가 긴 말을 끝냈을 때 리관직이도 지쳤고 진규자신도 지쳤다.

그들은 녹초가 되여 오래간만에 서로 몸을 기대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그들이 눈을 떴을 때에는 벌써 날이 밝아오고있었다.

리관직은 자리에서 일어나기전에 부석부석한 얼굴로 박진규에게 말했다.

《그래 어찌했으면 좋겠나? 생각이 있으면 말해주게. 이건 불로소득을 바라서가 아니네. 동무의 방조가 절실히 필요해서 그러는거네!》

이때 박진규는 학생때 한 항일혁명투사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꺼냈다. 그가 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다.

조선인민혁명군대원들이 이전 쏘련의 원동지방에서 쏘련군인들, 중국의 항일부대성원들과 함께 공동생활을 할 때였는데 한번은 쏘련군관의 담배물주리가 없어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어찌어찌해서 그 혐의가 조선인민혁명군에 돌려지게 되였다.

그때 인민혁명군의 한 지휘관이 일어서서 분연히 말했다. 《당신들 쏘련동무들이나 중국동무들은 돈을 알고있으며 돈을 쓰고있다. 그러나 우리 동무들은 천리수해 무인지경속에서 돈을 모르고 돈을 쓰는 장마당이라는것도 모르고 생활해왔다. 우리에게 개인의것이 있다면 그것은 목숨뿐이다. 그 하나밖에 없는 목숨마저 서슴없이 내놓는다. 그런데 물주리가 뭐가 돼서 탐내겠는가! 그 물주리는 아마 본인의 부주의로 흘렸을것이다.》

박진규는 이야기를 끝내고나서 리관직에게 말했다.

《나는 항일투사동지의 이 이야기를 가슴에 새겨두고있으면서 흐려지는 마음을 정화하오. 깨끗한 샘물과도 같은 항일혁명투쟁의 그때, 한점의 리기심도 없이 오직 집단주의만이 꽉 차있던 그때에다 바로 내 마음을 얹어보군 한단말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