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백산마루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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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에는 《덕》으로 선정을 베푼 제왕이나 통치자들이 없는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덕》은 백성을 다스리기 위한 하나의 술수에 불과했다.

사회주의정치가이신 김일성동지께서 베푸시는 인덕정치는 모든것을 인민대중을 위해 복무시킬데 대한 정치철학을 구현한 사회주의의 본태에서 출발하고 그이의 천품과 멀고 험한 혁명의 길에서 사랑이 무엇이고 믿음이 무엇인가를 실지 체험하신데서 나온 체질적인것으로서 인류정치발전의 가장 높은 경지라고 할수 있을것이다.

준전시상태에 들어간 우리 나라에서는 하나의 경이적인 사변이 일어났다.

근 40년간 남조선의 감옥에 갇혀있던 비전향장기수 리인모가 공화국의 품으로 귀환된것이다. 이것은 우리 당의 인덕정치가 가져온 고귀한 열매였다.

밤이면 창문에 차광막을 치고 긴장한 생활을 하고있던 수백만 수도시민들이 명절옷차림으로 수십리연도에 떨쳐나서 신념과 의지의 화신을 환영하였다. 어찌 수도에서만이랴, 개성으로부터 사리원, 평양에 이르는 수백리연도에도 환영대렬이 늘어섰다.

리인모의 귀환을 두고 온 나라가 들끓었다.

준전시상태가 선포된 나라에서는 포성대신 환호성이 터져오르고 꽃보라가 날리며 사람들마다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이어 우리 나라의 통신과 신문, 방송들은 수령님께서와 김정일동지께서 리인모를 방문하여 그의 귀환을 축하하고 가슴에 영웅메달을 달아주시였다는 소식을 전하였다. 온 나라에 또다시 감격의 선풍이 일어났다.

리인모의 귀환은 당과 수령의 품속에서 전사는 절대로 죽지 않으며 몸은 비록 죽었다 해도 정치적생명만은 영생의 언덕에 오른다는 철리를 사람들의 가슴마다에 다시한번 새겨주었다.

모든것에 사람들을 먼저 생각하라, 일을 보기 전에 사람을 먼저 보라, 기계를 보기전에··· 총대를 보기전에···

오늘 이 나라 방방곡곡에 세워진 수령님의 현지지도사적비들에서 흔히 볼수 있는 글발들이다.

《그들을 금방석에 앉혀야 하오.》

대리석이나 화강석, 어느 구호판이 아니라 과학자들의 가슴속에 뜨겁게 새겨진 글발이다.

그렇다, 그이께서는 단군에 대한 연구사업에서도 그 담당자들인 과학자들을 먼저 생각하시였다. 지팽이에 의지하여 일어서던 박진규, 수염터가 거밋한 로총각 신진웅, 단군조선연구를 총지휘하느라 퍼그나 피로해보이던 김석진원사···

그이께서는 지금 사회과학원 당위원회에서 당중앙위원회앞으로 보내온 하나의 문건을 보고계시였다. 문건에는 사회과학원에서 진행하고있는 연구실태들과 박진규, 신진웅, 김석진 등의 보충적인 생활자료가 반영되여있었는데 그들에 대해 뭔가 좀 더 알고싶어하시던 참이여서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몰랐다. 당에서는 자신께서 담화하신 대상들, 지어는 한번 만나 인사를 나누신 사람들까지 다 장악하여 그들의 사업과 생활에서 나타나고있는 사소한 일에 대해서까지 수령님께서 아시고 뉴대를 깊이 할수 있도록 해주고있었다.

김정일동지가 무척 고마우시였다. 문건에는 리관직의 자료가 첨가되여있었다. 리관직이라는 새로운 이름이 나오자 문건에 대한 그이의 관심은 더욱 깊어졌다.

물론 단군문제를 한순간도 잊지 않으시였다. 학자들속에 주체적관점을 심어주시긴 했어도 과학이란 욕망으로 되는것이 아니였다. 더구나 추측으로는··· 그이의 마음은 무거우시였다.

그이로서도 단군이 평양에서 출생하여 평양에서 나라를 세우고 도읍을 평양에 정했으리라는것은 하나의 어렴풋한 추측이였고 열망뿐이였다. 그렇다 하더라도 단군이 평양에서 났으리라는 기대는 비단 어제오늘에 생긴것이 아니였다.

그 믿음이 언제부터 생겼던것인가?

만경대의 동창나루를 떠나 강동 맥전나루까지 가는 끌배는 유유히 강을 거슬러오르고있었다. 어리신 그이께서는 사발과 깨지기 쉬운 가장집물을 넣은 석유궤짝우에 그린듯 앉아계시였다.

이사라는 가정의 사변에는 아랑곳없이 다섯살의 호기심 많은 동심은 푸른 강물과 량쪽대안에 펼쳐진 푸른 숲, 뛰노는 사슴떼와 노루떼, 푸드덕거리는 꿩과 지저귀는 메새들에 취해있었다. 아, 아름다운 대동강! 저 꿩과 메새들은 언제부터 여기 있었을가? 저 노루와 사슴은 어데서 온것일가? 수정같이 맑은 강물에는 붕어, 잉어, 지어는 바다고기인 숭어떼까지 끌배가 일으키는 물갈기와 배를 끄는 인부들의 허기영소리에 전혀 놀라지 않고 제 세상에서 끄떡없이 노닐고있다. 저 물고기들은 언제 생긴것일가? 이 대동강의 시작은 어디일가? 이제 우리가 가게 된다는 봉화리도 만경대처럼 아름다울가? 무수한 호기심과 끝없는 의문으로 가득차있는 동심은 문득 사람이 언제 생겨나서 옷을 입고 농사 짓고 배를 만들어 타고 하였을가 하는데로 뻗어갔다.

이 아름답고 풍치수려한 고장에 하나같이 맘씨 곱고 근면하고 또 슬기로운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잡고 서로 돕고 이끌면서 살기 시작한것은 언제부터일가.

다섯살때 일이지만 수령님께서는 봉화리로 이사가시던 그 배길에서 떠올랐던 그 천진하고 아름다운 동심의 세계를 줄곧 추억하시였다.

새로 도착한 봉화리도 아름다운 고장이였다.

그곳에서 수령님께서는 아버님을 따라 단군묘의 분향식에도 참가하시였고 건국의 첫 시조인 단군에 대하여 물으시면서 대동강의 배길에서 품었던 호기심을 다소간 풀수 있으시였다.

이때부터 단군과 고대조선에 대해 수시로 생각하시였다. 민족의 아들로 민족의 넋을 찾고 잃어진 나라를 광복하기 위한 성업에 나서신 그이로서는 너무도 응당하고 자연스러운 일이였다. 피어린 혈전의 나날 짬짬이 《삼국지》를 비롯한 중국의 력사책들과 외곡편찬된것이지만 일제가 만든 《조선사》도 비판적으로 보시였다. 1928년에 저술된 《반만년 조선력사》도 감동깊이 읽으시였고 애국렬사 신채호가 고대조선의 유적을 찾아 동북의 항일전구를 헤치다가 일제에 의하여 체포된데서 커다란 충격을 받으신적도 있었다. 그이께서는 일제를 반대하는 투쟁은 조선의 력사를 찾기 위한 투쟁이기도 하다며 력사연구를 놓지 않으시였다. 이럴 때마다 그이를 부추긴것은 불탄 삼성사와 정가촌의 참변이였다.

언제인가 김석진원사가 그이의 서재에 력사책이 놓여있는것을 보고 놀랐지만 알고보면 이미 수십년전 항일전장에서 력사연구를 시작하신것이다. 그러니 그이의 해박한 력사지식이 결코 하늘에서 떨어진것이 아니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단군조선에 대한 연구가 종착점에 이른 이때에 와서 지금까지 쌓으신 력사학분야의 지식을 깡그리 짜내고계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 이러한 그이께 말씀드리군 하시였다.

《첫째도 둘째도 건강입니다. 당과 인민의 제일 큰 소원은 수령님의 안녕입니다.》

《쉬겠소, 쉬면서 회고록을 완성하고 단군연구도 도와주겠소.》

김일성동지의 대답이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 안타까와하시였다.

《그것만 해도 두개의 큰 사업입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 두가지 일을 위해서도 별로 쉴짬을 내지 못하시였다. 그리고 시간을 단군연구에 더 바치시였다. 책상우에는 언제나 력사책들이 더 많이 쌓여있었다.

그러나 어찌 그 두가지 일뿐인가? 농업, 외교사업··· 그이께서 집념하셔야 하는 모든 일이 다 큰일이였다.

김정일동지께 요청하시다못해 당정치국을 발동하여 짊어지신 일감들이 수두룩하다. 그렇지만 김정일동지의 간곡한 당부를 뿌리칠수 없어 당분간 그이께서 찍어주신 두개의 과업만을 수행하시기로 하시였다. 두개의 큰 위업중에서도 단군연구에 더 관심을 두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안경을 도수별로 바꾸기도 하고 확대경을 들기도 하며 탈색된 옛 문헌자료들의 작고 난해한 한자들을 한자한자 힘들게 해득해나가시면서 때로 《고대문화가 인류발상지에서 번성했다는것은 명백한 진리인거야!》라는 말씀도 뇌이시였다. 사실 세계 4대문명은 모두 인류발상지에 있었던것이다.

대동강류역도 인류발상지이다.

상원군 검은모루일대에서 원인들이 태여났고 그후 고인인 《력포사람》, 신인인 《룡곡사람》, 《만달사람》, 《승리산사람》들과 그들의 피줄을 이은 조선 옛 류형사람들이 널리 퍼져 살았다는 고고학자료들은 평양이 인류발상지의 하나라는것을 믿음직하게 증명해준다.

최근에 태고적부터 우리 나라가 동식물이 번성한 아열대성기후에 속해왔고 원인들이 기원될수 있는 자연지리적조건들이 마련되여있었다는것을 증명해주는 시조새 화석이 발견되였다.

그렇다면 평양이 인류발상지로서 료동에 비해 문화가 먼저 발전하고있었다는 가설이 거의 정설에 가까운것이다. 이제 그것을 증명할 유적유물들과 고고학적자료가 평양지방에서 출로되면 될것이다. 조상과 조상의 력사를 찾으려는 후손들의 효성을 하늘과 땅인들 결코 외면할수 있단 말인가. 김일성동지께서는 가벼운 흥분을 느끼시였다.

그러나 지금은 학자들의 생활자료를 보고계시였다. 단군연구를 종결해야 할 당사자들의 문제가 무엇보다 중요했던것이다.

리관직의 자료는 매우 주목을 끄는것이였다.

그의 경력과 박진규와의 과거관계, 초당적인 언행과 사업에서 낯내기 등은 일부 처세군들, 공명주의자들과 일맥상통한 결함이였다.

일군들속에서 이런 결함이 어디서 생기는가.···

진웅의 자료에는 실련당한 그의 고민이 적혀있었다. 극히 개인적비밀까지 당조직에 털어놓은것을 보면 당비서의 사람됨은 물론이거니와 당조직이 사람과의 사업을 잘하고있다는것을 알수 있다. 처녀한테 배척당한 원인을 읽으신 그이께서는 오래동안 무거운 생각에 잠겼다가 《똑똑한 처녀같은데 손해를 봤어, 보석을 놓쳤거던!》라고 한마디 하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실련당한 진웅의 고민, 격분, 증오를 정확히 리해하시였고 전적으로 동감하시였다. 그것은 사회주의에 대한 사랑이기도 한것이였다. 사랑에 열렬하고 증오에 치를 떠는 이 총각이야말로 사회주의의 산아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러시면서도 총각이 좀 더 아량을 가지고 처녀를 대했더라면 하는 아쉬운감을 금할수 없으시였다.

박진규는 딸의 처사를 모르고 진웅을 사위감으로 은근히 점찍어놓고있다니 과학자들이란 생활을 다 집어던진 그런 사람들인가.

처녀와 총각이 다시 결합될수 있겠는지. 박진규와 리관직이 화해할수 있겠는지··· 자료를 다시 보시는 그이의 심정이 매우 착잡하시였다.

김석진원사의 생활자료를 보신 그이의 마음은 편치 않으시였다.

문득 얼마전 대종교의 교주인 안효식의 기자회견장면이 떠오르시였다. 그이께서는 록화물의 그 장면에서 리금순녀성을 알아보시였다. 원사의 첫 안해 리금순··· 원사의 기억속에 그 녀성이 아직 남아있을가. 그의 몸에서 두 자식을 보았으니 잊지 않고있을것이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원사에게 기자회견내용을 이야기해주시면서도 리금순의 이야기만은 빼놓으시였었다.

그때에는 원사의 마음을 번거롭게 하고싶지 않아서 그랬는데 지금은 어째서인지 후회되신다.

그이께서는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을 발표하신 후 남조선의 정계, 재계, 문화계 등의 100명 인사들에게 그들의 민족적량심을 믿고 민족대단합의 기치아래 조국통일에 손잡고 나설것을 호소하여 자신의 명의로 된 편지를 보내신적이 있었다. 그때 안효식에게도 편지를 보내시였다. 리금순이 살아있는것을 알았더라면 그에게도 편지를 보내는것인데, 지금이라도 보낼수 있지 않을가.··· 김일성동지께서는 오래도록 자료문건을 들고계시였다.

우리의 과학자들은 이러저러한 생활문제, 인간문제를 안고있으면서도 그 모든것을 묻어두고 묵묵히 과학연구사업에 전념하고있다. 우리 인민모두가 그러할것이다. 이러한 인민이 혁명과 건설을 끊임없이 전진시켜오고있다. 그래서 자신께서는 투쟁속에 생활이 있고 생활속에 투쟁이 있다는 진리를 오래전에 밝혀주신것이 아닌가.

문건을 다 보신 그이께서는 책상앞을 떠나 창가로 가서 문발을 헤치시였다. 청암산의 토성터, 해방후 종합대학의 터전으로 묻힐번 했던 조상의 유적인 청암산 토성터가 달빛에 드러나있었다. 우리 학자들은 이밤도 자지 않고 단군연구에 몰두하고있을것이며 발굴대원들은 구릉과 산발을 누벼가고있을것이다. 그들의 헌신적인 노력에 의해 단군조선의 성지는 반드시 자기의 면모를 드러낼것이다. 왕건의 조상이 밝혀진것처럼···

왕건의 6대조상인 호경은 698년 발해의 건국을 전후한 시기에 고구려의 옛땅인 백두산기슭을 떠나 따뜻하고 기름지며 사람 살기좋은 부소산(지금의 송악산) 왼쪽골안에 보짐을 푼 고구려의 유민이였다.

북쪽에서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가 건국되였고 고구려유민의 대부분은 발해땅에서 살게 되였으나 그 일부가 남쪽으로 내려왔던것이다. 왕건의 조상도 그중의 한 가문이였다.

왕건의 할아버지인 작제건대에 와서 개성지방의 한다하는 토호세력으로 자라나 그후 태여난 왕건이 국토를 통일할수 있는 정치적기반이 마련되였다. 왕건은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의미에서 국호를 고려라고 지었고 그가 의지한 정치세력도 고구려의 유민들이였으며 수도를 고구려의 수도였던 평양에 정할것을 여러번 시도하였다. 우리 학자들은 전설속에서 이러한 사실을 찾아내여 고심끝에 정사로 기록하여놓았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들이 이제 단군조선의 력사도 그렇게 찾아놓으리라는것을 믿어의심치 않으시였다.

이때 책임서기 전기철이 여러 사람들에게 수십권의 부피 두터운 책을 들리워가지고 나타나서 그이께 보고드리였다.

《수령님,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동지께서 보내시는겁니다. 매우 긴요한 도서들인것만큼 급히 보여드리라고 해서···》

전기철이 책에 대하여 좀 자세히 설명해드리였다.

이 방대한 량의 도서들은 모두 단군조선사연구에 참고가 되는 우리 나라와 력사적관계가 깊은 일본과 중국, 로씨야의 력사책들이였으며 남조선력사가들이 집필한 도서들도 있었다.

거기에는 프랑스와 영국의 이름있는 도서관들의 소장품도 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일전에 국제당문서고에 보관되여있던 문서들을 받아드시며 수령님께서 무엇인가 아쉬워하셨다는 전기철의 말을 들으시고 각국에 주재하고있는 우리 나라 대사관들과 무역기관들에 지시하여 이 귀중한 참고도서들을 구해오시였다는것이다.

《책임서기동무, 이 책들을 우리 학자들에게 보내주시오. 학자들이 봐야 할걸 여기로 가져왔구만.》

《같은 종의 책들이 두세부 되기때문에 그들에게도 보내주었습니다.》

《그것 참 잘됐소. 나에게도 이 책들은 필요되는거요. 요샌 나도 학자로 된셈이니까, 허허.》

김일성동지께서는 흥겹게 웃으시다가 책임서기에게 분부하시였다.

김정일동지에게 고맙다는 나의 인사를 전해주시오. 그리고 책임서기동무.》

《예, 말씀하십시오.》

《나도 학자들에게 뭘 좀 줘야겠는데··· 참 이렇게 하기요. 우리 집 시험포전에 첫물강냉이가 나기 시작했소. 오늘 아침 맛보았는데 별맛이더구만. 그걸 따서 수고하는 학자들에게 보내줍시다. 래일 아침이슬이 지기전에 따도록 조직사업을 하시오. 그래야 풋강냉이가 제맛이 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