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백산마루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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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원사는 박진규와 함께 평양을 종자(학술적기초)로 하여 단군릉발굴보고서를 완성해가고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뜻밖에도 혁명연극 《승리의 기치따라》를 함께 보자는 수령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였다.

전기철책임서기가 내려와 과학원에서 제출한 참가자명단을 검토하고 지도일군들의 이름을 거의나 빼고 몇명의 과학자들을 직접 선발하였다.

《머리쉼을 좀 합시다.》하시며 김일성동지께서 극장휴계실에서 그들을 맞이하시였다.

《앉으시오.》

그들이 자리잡자 김일성동지께서 한사람한사람 눈주어 보시였다.

《하나같이 몸이 약하구만. 우리 과학자들은 하나같이 자기 건강에 관심이 없단 말이요.》

《과학자들속에서는 몸이 나면 과학을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김석진원사가 반쯤 몸을 일으키며 어줍게 웃었다.

《그래도 몸이 약해가지고는 과학을 못하지요. 박진규선생이 어느분이시오?》

《예.》

박진규가 옆에 놓았던 지팽이를 짚으며 일어섰다.

《제가 이래저래 수령님께 걱정을 드린 박진규입니다.》

《선생에 대해 잘 알고있습니다. 전쟁때 부상당했다지요? 선생의 〈성당〉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보잘것 없는것이였습니다. 수령님께서 단군연구에 직접 깊이 관심하시는 지금 그 〈성당〉이 수령님의 서재로 옮겨진셈입니다. 저의 외람된 생각이지만···

수령님, 고맙습니다.》

박진규는 허리를 굽혀 인사를 올렸다. 지팽이가 그의 잔등우에 솟아올랐다.

《이러지 마시오. 인사는 내가 해야 합니다. 앉으시오. 어서···》

김일성동지께서는 그가 앉기를 기다려서 말씀을 이으시였다.

《이번 발굴은 민족의 원시조를 잊지 않고 마음속에 간직해온 선생과 같은 애국자들이 있어 이루어진것입니다. 원사선생.》하고 김일성동지께서는 김석진에게로 시선을 돌리시였다.

그이께서는 당에서 아끼는 영예군인인것만큼 과학원에서도 박진규의 건강을 특별히 돌봐주어야 한다고 이르신 다음 여러 과학자들의 나이와 안부, 그들의 연구사업에 대하여 일일이 료해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마지막으로 진웅에게 물으시였다.

《선생이 제일 젊어보이는데 몇살입니까?》

《서른셋입니다.》

《장가는 갔습니까?》

《아직···》

《늦은감이 드는구만. 과학을 하자면 동반자를 잘 선택해야 합니다. 그래 봐둔 자리는 있습니까?》

《···》

진웅의 뇌리에 박례영이라는 이름 석자가 류성처럼 쭉 흘러갔다. 이럴 때 그의 이름을 댈수 있었다면! 그는 쩌릿한 아픔속에 오래도록 서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웃으시였다.

《없는 모양이구만. 과학자들에게도 련애가 있고 생활이 있어야 합니다. 무엇을 연구합니까? 이런 인사불성이라구야. 선생의 이름부터 물어본다는게.》

《신진웅입니다.》

《그래 무엇을 연구합니까?》

《고대조선의 글자에 대한 연구입니다.》

《신지글자?》

김일성동지께서 받아주시자 진웅은 말을 끊고 기쁨에 넘쳐 그이를 우러러보았다.

이때 부관이 들어와 공연시간이 되였다는것을 그이께 알려드렸다.···

공연이 끝난 뒤 학자들은 휴계실에 다시 모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먼저 연극을 본 소감을 말씀하시였다.

《연극이 잘되였습니다. 여러발의 총탄을 맞고도 살아난 전사의 형상이 잘되였습니다. 정말 우리 전사들은 불사신이였습니다. 불사신의 인민, 불사신의 전사들이 있어 지난 전쟁에서 승리할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문학예술작품에서 인민들을 많이 내놓으라고 요구하고있습니다. 이전에 한번 보고 지적한대로 최고사령관선을 많이 뽑고 정리하니 연극이 좋아졌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언제나 력사의 창조자는 인민이라는것, 오직 인민만이 절대적인 존재이며 오직 인민의 뜻만이 절대적인 진리라는것을 강조하시고 어조를 낮추어 계속하시였다.

《력사를 창조하는것도 인민이지만 력사를 고수하는것도 인민입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여담삼아 그 이야기를 하지요.》

묘향산의 보현사도 그렇게 지켜졌다.

해방후 력사의 반동들과 그에 동승한 무식하고 편협한 일군들이 절간의 기둥을 뽑아내고 기와장을 들어내며 곡괭이로 유적들을 마구 파헤칠 때나 1960년대 복고주의를 반대하는 투쟁을 극좌적으로 몰아가는 속에서 같은 놀음이 벌어졌을 때 두팔 벌리고 막아나선것 역시 인민이였다.

단군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단군연구의 시발로 된 단군신화를 누가 창조하고 전해왔는가. 단군과 관계된 력사기록들중 많은 분량이 인민구전들을 옮긴것이다. 멀리 볼것이 있는가. 강동의 단군릉을 거두어온 사람도 중학교의 평범한 교원이였다.

전쟁의 준엄한 환경에서 서울의 귀중한 력사문헌들을 안전한 자리로 옮겨온것도 평범한 군인들이다. 전쟁에서 파괴된 옛성들과 사찰들, 루정들을 복구복원한것 역시 인민들이다.

《그러니》하고 김일성동지께서는 결론적으로 말씀하시였다.

《력사는 그 어느 위정자들이 아니라 인민이 보관했다고 볼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있는 사람들은 거의나 박사의 학위를 가진 학자들이다. 그들은 김일성동지께서 인민관을 피력하고계실 때 인민을 이끌고 시대를 향도하는 당과 수령에 대하여 생각지 않을수 없었다. 반만년의 오랜 력사단계에 오늘과 같이 위대하고 현명하고 정의로운 인민의 향도력이 존재했던적이 있었던가.

우리 력사 반만년이라 해도 일찌기 그러한 력사적시대는 없다.

김일성》, 《김정일》이라는 존함과 더불어 불리우는 그 향도력은 사회주의사회인 오직 오늘에만 있다. 이 향도력이 있었기에 반만년의 력사를 옳게 찾고 지켜나갈수 있게 되는것이다. 향도적력량인 당과 수령이 계시기에 옳바른 과학정책과 력사유적유물보존정책이 있는것이 아니던가! 오늘 사회주의제도에 대한 제국주의자들의 악랄한 비방이 있고 이러저러한 오도가 있다해도 력사가들은 오늘의 이 진실을 외면하지 못할것이다. 지금 학자들은 똑같이 이 하나의 생각만을 하고있었다.

김석진원사만은 다른 하나의 생각을 더 하고있었다.

···대기장소에는 수십명의 장령, 고급군관들이 위장망에 전투모를 쓰고 작전도를 펼쳐든채 호출이 있기를 기다리고있었다.

서울이 해방된 직후였으니 전쟁이 터져서 며칠되지 않는 그날 그는 림시로 꾸린 최고사령관실의 대기장소에 몇몇 일군들과 함께 신들메를 든든히 하고 앉아있었다.

그런데 제일 마지막에 왔으며 유독 사민복을 입고있던 그들이 먼저 호출을 받았다. 그들이 최고사령관실의 문을 열고 들어설 때 뒤에서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렸다.

최고사령관 김일성동지께서 의자를 권하지 않고 다급히 군인들에게 명령하듯 말씀하시였다. 앉으라고 할 사이가 없으시였던것 같다.

《서울로 떠나야겠소. 당장··· 최고사령부 련락군관의 차를 타고가시오.》

숨차게 말씀하시던 그이께서 잠시 숨을 돌리고나서 임무를 말씀하시였다.

《임무는··· 서울에 가서 력사책들을 찾아내여 무사히 평양으로 가져오는거요. 불탈수 있소. 벌써 탔을수도 있소. 빨리 가서 한권이라도 살려야 하오! 자, 떠나시오. 차후행동은 다시 지시하겠소.》

그때의 그 다급해하시던 모습···

총포소리가 그칠새 없는 시내 한복판에 한개 중대의 군인들이 화물자동차를 가지고 서울대학교 도서관으로 달려가던 일이며 력사문헌들을 찾아 싣던 일이 어제일처럼 생생히 떠올랐다.

적후에 떨어졌다가 무사히 돌아왔을 때 그를 만나주신 수령님께서 정말 수고많았다고, 차에 싣고온 귀중한 력사책들을 보고 그렇게도 기뻐 그날 잠을 다 못잤다고 하시며 오히려 자기를 치하해주시지 않았던가. 그 구출전투는 모든 기관, 구분대들이 이 사업을 무조건 보장할데 대하여 친필로 쓰시고 수표하신 최고사령관 《신임장》과 수시로 전화명령을 내려주신 수령님에 의해 진행되였음에도 불구하고···

실로 그이가 아니시였더라면 리조 500년의 긴긴 세월의 력사가 하루도 빠짐없이 기록되여있는 1 763권의 《리조실록》을 비롯한 방대한 력사문헌들을 잃어버릴수 있었다. 그이가 아니시였더라면!

그런데도 그 모든 공헌을 인민에게로 돌리시다니···

석진이 자신은 《리조실록》을 실어보낸 후 부상당하여 적구에 떨어져 병치료만 하다 돌아왔을뿐인데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국보를 지켜낸 영웅이라고 내세워주신다.

원사는 이런 잊지 못할 회억에 잠겼다가도 소스라치듯 놀라며 다른 생각에 잡히군 하였다.

그는 이 자리에서 당에 편지를 올렸던 사실을 사죄하고 단군릉발굴보고서를 완성하는데서 제기되는 일련의 문제들에 대한 가르치심을 받고싶었다.

원사는 초조히 그 기회를 기다렸다.

《신지.》 드디여 그이의 목소리가 울렸다.

김석진은 처음에 영문을 몰랐다가 그이의 눈길이 신진웅이한테로 향한것을 보고 그의 이름 대신에 그렇게 부르신것임을 알아차렸다. 이것은 그이께서 고조선의 글자라고 하는 신지글자에 관심을 두셨다는것을 의미한다.

원사는 진웅이와의 첫 대면시에 그이께서 신지글자를 연구한다는 말을 인차 받아주시는것을 보았을 때 그렇게 느꼈던것인데 다시금 그에 대하여 관심을 두시는것을 보는 순간 자기가 작성하고있는 보고서의 허점 하나를 발견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진웅이와 이야기하고계시였다.

《신지글자에 대한 연구를 어떻게 하고있습니까?》

《고조선에 신지글자라는 고유한 우리 민족의 글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립증하는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진웅은 자기가 쓴 론문의 내용을 요약해서 말씀올리였다.

진웅은 이 말씀을 올리는 동안 내내 흥분상태에 있었다.

이름없는 젊은 연구사로서 이 자리에 참석한것도 그지없이 황송한 일인데 김일성동지께서 자기에게 특별히 관심하여 첫 말씀을 건네신것은 물론 손자벌이 되는 자기를 손우 사람처럼 귀중히 대해주고계시니 어찌 그렇지 않으랴.

《젊은 선생인데 용소.》하고 김일성동지께서 말씀을 이어나가시였다.

《우리 선조들이 기원전 수천년전에 자기의 고유한 고대글자를 모색하고 만들어쓸 때 이웃이였던 아시아의 큰 나라들은 아직 변변한 글자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우리 선조들이 원시적인 시초글자를 만들어쓴 경험을 가지고 고유한 글자를 완성했다는 사실에 주의를 돌려야겠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우리 선조들이 처음부터 자기식의 고유한 글자를 만들어냈다는것은 대단한것이다, 내가 알기에는 고대에짚트의 글자는 그 뒤시기 유럽과 아프리카의 수많은 나라들에 전파되였고 세계의 수많은 글자들이 이 에짚트의 글자를 모방하여 생겨났다,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러스강사이의 남부지역에서 국가를 세운 슈메르사람들이 만든 슈메르쐐기형글자는 바빌노니야글자, 아씨리야글자, 페르샤글자, 헤트글자 등 주변의 많은 글자들로 전파되였다, 고대인디아의 글자도 불교의 영향밑에 스리랑카, 먄마, 캄보쟈, 티베트글자를 만들게 하였다. 그러나 우리 신지글자는···

그이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으며 김석진원사는 자기생각에 빠져버렸다. 저처럼 중요한 내용이, 그보다 더 중요한 내용들이 발굴보고에 빠지고있지 않는가. 이 순간 원사는 몇차례나 추고를 거듭한 발굴보고서에서 무수한 허점을 발견하고있었다. 어디 고조선의 글자뿐인가. 단군의 출생과 활동, 그에 의한 고조선의 성립, 고조선의 정치, 경제, 문화 등등··· 단군이 실재한 인물이라는것을 확인하는데 급급했고 그것이 확증되자 현훈증에 걸렸다.

그이께서 진웅이로부터 자기에게로 시선을 돌리시는것이 느껴지자 원사는 생각에서 깨여났다. 그리고 자책어린 어조로 말씀드렸다.

《수령님, 일전에 외람된 편지를 올려서 정말 죄송스럽습니다.》

《허허···》

김일성동지께서는 너그럽게 웃고나서 지나가는 말처럼 한마디 하시였다.

《과학자들에게는 주견이 있어야지요.》

김석진원사는 마음이 놓이지 않아 한마디 더 말씀올리려 하였으나 그이께서 인차 말씀을 이으시였다.

《난 오히려 그 편지를 보고 마음을 놓았습니다. 발굴보고서를 잘 만들어야겠습니다.》

《예, 지금 애를 쓰고있습니다.》

《우리는 완벽한 보고서를 세상에 내놓아야 합니다.》

《단군이 어디서 출생하였으며 수도를 어디다 잡았는가를 립증하는데 중심을 두고있습니다.》 원사의 말을 듣고있던 대다수 학자들이 놀라서 굳어졌다.

단군이 료동에서 출생했으며 료동에서 나라를 세우고 료동에서 수도(왕검성)를 잡았다는것은 이미 내려진 학계의 결론이 아닌가? 그런데 지금 원사는 그 결론에 이의를 표시하고있다. 아니, 전부 부정하고있었다. 그렇다면 원사는 결국 지금까지의 학계의 결론과 모든 학술적성과를 뒤집겠다는것이 아닌가.

고대조선사연구의 학술적기초를 이루고있는것은 료동의 광활한 대지에서 발굴된 유적과 유물이였다. 이 유적과 유물들에 의해서 단군(실재한 인물로 전제하고)이 료동에서 나라를 세우고 료동에 수도를 잡았으며 료동을 중심으로 고대조선이 번성하였다는 과학적(학술적)결론이 내려졌다.

이제 원사의 말대로 한다면 그 모든것을 버려야 했다.

그렇다. 강상무덤, 루상무덤 등 순장무덤들, 수많은 청동기와 토기들, 옛 력사기록들은 물론 그에 기초하여 서술된 수많은 저서들과 론문들, 학교의 교과서들, 수십년간의 고심어린 탐구로 이루어놓은 고대조선사연구의 모든 성과들을 버려야 했다.

좌중에는 침묵이 흘렀다.

김석진이 확신성어린 어조로 뒤를 이었다.

《원시조의 성지를 평양으로 보자는것입니다.》 그러자 학자들은 더욱더 굳어졌다.

좌중에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드디여 그 침묵을 깨뜨리는 조용한 목소리

《다른 선생들 생각은 어떻습니까?》

굳어졌던 학자들이 그 어떤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리듯 김일성동지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들은 그 대답을 자기들이 해야 한다는것을 잊은듯 그이만을 우러르고있었다.

그이는 수령이시였다. 우리 나라에 수령의 령도가 미치지 않는 분야란 있을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이께서는 과학분야에서만은 학자들을 존중하여 당일군들이 학술문제에 간참하여 감놔라 배놔라 하는것을 시종일관 반대해오시였으며 그이 자신이 심사숙고하시였다.

《어떻습니까?》

그이께서 조용히 다시 말씀하시였다.

《인민은 당과 외교를 할줄 모릅니다. 손발을 놀리는 로동자와 농민, 머리를 쓰는 학자들을 비롯한 근로인민대중은 진실만을 말합니다. 그래서 과학문제를 론의할 때이면 학자선생들을 만나는겁니다. 말씀들을 해보십시오. 원장선생주장대로 단군조선연구를 180° 방향전환을 한다면 어떤 문제들이 제기됩니까? 솔직한 의견들을 듣고싶습니다.》

학자들처럼 주견이 센 사람들은 없다. 그들은 머리속에서 결론이 주어지지 않은 이상 절대로 입을 먼저 열지 않는다. 그것은 주견이라기보다 신념, 과학적신념인것이다. 그러나 너무 오래도록 함구무언이였다.

더우기 지금 수령님께서 솔직한 대답을 요구하심에야···

김석진원사는 그들을 리해하였다.

자기도 애써 방향전환한 문제를 그들이라고 쉽게 납득하겠는가.

그가 입을 열었다.

《단군유골의 발굴은 많은 면에서 고조선의 성지가 평양이라는 사실을 증명해주고있습니다. 만일 그것을 부인한다면 우리는 자가당착에 빠지게 될것입니다.》

《옳습니다. 나는 원사선생의 그 방법론들을 지지합니다.》

《수령님!》

이렇게 부르는 원사의 목소리가 갑자기 젖어들었다. 그는 젊은이들처럼 벌떡 일어섰다.

《그 방법론을 주신분은 다름아닌 ··· 수령님이십니다!》

그이께서는 그저 미소를 지으실뿐···

김석진원사는 목멘 소리로 계속하였다.

《그렇습니다. 수령님의 친필서한이 저를 깨우쳐주었습니다!》

《그렇다니 한마디 합시다. 나는 당정책을 한시도 잊지 않고있습니다. 선생들도 다 아시는바이지만 력사과학에 대한 로동당의 지도원칙은 주체성입니다. 나라의 리익, 민족의 리익입니다. 그래서 단군릉발굴사업을 적극 떠밀어준것입니다.》

당의 로선과 정책은 수령이 제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정책의 작성자이신 저분께서 지금 그 당정책을 두고, 나라의 리익, 민족의 리익을 두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였다고 하신다. 저것이야말로 민족의 아들로서의 효성이 아니겠는가. 아, 민족의 효자, 절세의 애국자! 수령님에 의해 원시조의 실체가 발견된것은 너무나 응당하다.

원사는 왕무한의 편지를 읽을 때의 충격을 다시한번 체험하며 가슴이 뭉클해지는것이였다.

사람들이 박수를 치기 시작하였다. 장내에는 경탄과 환희의 선풍이 일고 계속되는 박수소리는 멎을줄 몰랐다.

장내가 조용해지자 그이께서는 원사에게 말씀하시였다.

《원사선생, 나의 편지가 도움이 되였다니 다행한 일입니다. 감사합니다!》

《아니 이런···》

원사가 그이를 향해 황황히 머리를 굽혔다.

부관이 들어와 그이의 귀전에 소곤거렸다.

《수령님, 관중들이 극장에서 나가지 못하고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수령님께서 계시는데 그들이 어떻게···》

《할수 없구만, 우리가 일어서는수밖에 우리 일이란 늘 이렇다니까.》

수령님께서는 탄식하듯 말씀하시며 웃으시였다.

학자들의 전송을 받으실 때 김일성동지께서는 김석진원사에게 고대조선사연구의 기초를 바꾼것만큼 평양지방에 대해 시급히 연구를 심화시켜 보다 완성된 발굴보고서를 내놓을데 대하여서와 학자들속에서 의견이 없을수 없으니 잘 알아보고 전화로 알려줄것을 당부하시였다.

그날 저녁.

김일성동지께 보고올린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료동중심설의 기초가 거기서 나온 유적유물이 기본인만큼 평양지방에서 그 이상의것이 나오면 문제될것이 없다고 본다.

둘째, 《한사군》문제이다. 《한사군》문제란 기원전 108년에 고조선의 마지막왕조인 만왕조가 무너진 후 고조선을 멸망시킨 한나라가 세운 군, 현들을 말하는데 그중 하나가 고조선의 수도에 세웠다는 락랑군이였다.

그런데 평양을 고조선의 수도로 인정하는 경우 평양이 한나라의 지배를 받은것으로 된다. 이것은 력사적사실과 어긋나는것으로서 락랑군은 원래 료동에 있었으므로 심중한 정치적문제로 될수 있다고 본다.

셋째, 고조선의 중심을 평양으로 옮겨오면 광활하였던 고조선의 령역이 좁은 조선반도에 고착될수 있다는 문제이다. 학자들이 솔직히 털어놓은데 의하면 그것이 두려워 지금까지 평양중심을 생각해온 사람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감히 그런 주장을 내놓지 못하였다.

이 세가지 문제에 대한 보고를 받으신 김일성동지께서는 즉시에 전화로 다음과 같이 대답하시였다.

《우리 당은 조상의 땅을 정확히 알자는것이지 령토야망을 가지고있지 않습니다. 나는 우리 당의 지도원칙에 력사주의원칙도 있다는것을 상기시키는바입니다. 력사적사실을 부인할 필요는 없습니다. 문제는 평양에 대한 연구를 심화시키는것입니다. 멀지 않아 개천절입니다. 이날을 맞으며 단군릉발굴보고서가 나갈수 있다면 아주 의의있는 일로 될것입니다. 선생들은 어디까지나 력사앞에 책임적인 사명을 지니고있다는것을 명심하고 거듭 당부하건대 심사숙고해야겠습니다. 나는 선생들이 완벽한 단군릉발굴보고서를 내놓게 되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