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백산마루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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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릉발굴조가 정식 무어지고 단군릉발굴이 기정사실화됐을 때 솔직한 심정으로 진웅은 일희일비한 감정이였다.

물론 단군릉발굴사업이 성과적으로 진행되여 우리의 반만년력사가 학술적으로 고증된다면 그것은 과학계의 일대 사변이며 민족적경사가 되겠으니 과학자인 그로서는 누구보다 기쁠것이다. 그래서 그는 발굴전야에 현지에까지 갔던것이다.

그러나 만약 단군릉발굴보고서가 완성될 때 거기에는 그자신의 몫이 없다. 고조선글자에 대한 연구를 아직 완성하지 못했으니말이다. 단군릉발굴보고서에 그것이 첨가될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그는 락심하지 않고 고조선글자연구에 박차를 가했다.

언어학연구소의 지도일군들은 그를 돕기 위한 조직적대책을 취했으며 오랜 박사 한명을 전임으로 붙여주었다.

그는 이에 힘을 얻고 자기의 연구를 심화시켜나갔으며 하나하나 연구성과를 고착시켰다.

그는 이미 훈민정음창제이전에 우리 나라에 한자와 구별되는 우리의 고유한 민족글자가 있었다는데 대해서는 론박할수 없는 근거를 확보하였다.

그러면 어떤 글자가 있었겠는가?

그의 연구는 여기에 집중되였으며 과학적인 결론에 이르렀다. 그는 그 결론을 《우리 민족은 고조선시기부터 고유한 민족글자를 가진 슬기로운 민족》이라는 론문에 고착시키면서 보충적으로 고조선시기의 글자와 존재에 대한 문헌적자료를 안받침하였다.

 

그는 론문에 썼다.

···15세기 후반기이래로 국가적으로 금지되였던 《삼성기》라는 책에서는 《단군때에 신전(신지전자, 신지글자)이 있었다.》고 하였으며 16세기 리맥의 《태백일사》(《태백유사》라고도 한다.)에서는 《단군때 신지전서, 신지전자, 신지글자가 있었는데 그것을 태백산과 흑룡강, 청구(조선), 구려 등 지역들에서 널리 썼다.》고 하였다.···

 

그는 론문에 또 썼다.

···신지는 신시라고도 표기하였는데 원래 《큰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말로서 처음에는 《임금》을 가리켰으나 나중에는 높은 벼슬이름으로 되여 지배자, 통치자를 가리키는 말로 되였으므로 《신지글자》란 《왕이나 지배자, 통치자의 글자》라는 뜻으로 된다.···

 

그러면 신지글자의 구체적인 모습은 어떠한가? 그는 녕변지에 전하고있는 신지글자 16자를 소개한 다음 계속하여 다음과 같이 썼다.

《글자수가 모두 16자밖에 되지 않는것으로 보아 이것이 신지글자를 다 보여주는 글자표는 아닌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글자짜임의 특성으로 볼 때 뜻글자류형이 아니라 소리글자, 그것도 소리마디단위의 마디글자류형이라는것을 알수 있다.···》

그는 밤낮이 없이 심혈을 바쳐 론문을 완성하였다.

완성된 론문을 보고 그를 도와주던 로박사는 경탄하였다.

《젊은 선생이 용쿠만! 단군릉발굴과 함께 론문이 완성된건 안성맞춤일세. 그새 수고했네!》

박사는 때이르게 이마에 주름이 잡히고 별로 나이가 들어보이는 그의 손을 잡고 한마디 물었다.

《자네 장가는 언제 들려나?》

언젠가 그의 론문을 보고난 박진규도 같은 말을 하였다.

장가? 얼마전까지만 하여도 몸이 달아있었다. 바들바들 떨리는 처녀의 뜨거운 손, 이 세상 향기란 향기는 다 모아 분무하는듯 하던 그 진한 녀자의 향기, 이 모든것이 지금까지도 그의 기억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그 무슨 기념식사처럼 거리에 나오기만 하면 찹쌀기름튀기, 그것도 꼭 한개만 사서 둘이 나누어먹던 일, 펑펑 쏟아지는 함박눈을 우정 맞아가며 어린애들마냥 장난질을 한껏 맛보던 일, 그 모든것들이 즐거운 추억으로가 아니라 심장에 모진 아픔으로 남아있다. 그는 그 모든것들을 상기하고싶지도 않았다. 상기할수조차 없었다. 왜냐하면 사랑의 불덩어리가 자리잡았던 곳에 지금은 얼음덩이가 꽉 들어차있기때문에···

그 녀자와 자기사이에 있었던 모든 일, 특히 즐거웠던 일일수록 그의 가슴을 더더욱 극동에로 몰아갔다.

그 녀자는 그의 첫 사랑이자 마지막사랑이라고 할수 있었다. 이제 그의 가슴이 더 차지면 그 어떤 녀자도 그것을 녹여내지 못한다. 설사 그 녀자가 되돌아선대도! 그렇게 되면 로총각인 그는 영원히 장가를 못들것이다.

그가 자기 가슴이 차지는것을 두려워하는것은 그때문이 아니다.

이마에 벌써 실주름이 건너갔고 메마르고 즙이 없어보이는 칼칼한 외형과는 달리 그는 남에게 없는 인간애를 지니고있었다. 이러한 그가 얼음덩이를 안고 산다는것은 죽기보다 괴로운 일이라고 할수 있다. 그래서 자기의 가슴 한구석에 얼음덩이를 꽉 채워놓은 그 녀자에 대한 추억을 그리도 두려워하는것이였다. 그러나 과학계의 원로들인 존경하여 마지 않는 두 학자가 연거퍼 마치 약속이나 있은듯 장가문제를 꺼내자 그는 굳게 닫았던 추억의 문을 더 지켜낼수 없었다.··· 그들은 실버들이 연두색으로 물든 보통강공원 네모진 앞탁이 있는 의자에 나란히 앉아있었다.

맞은편의자와 량옆의자는 비여있었는데 공원에 의자가 남아돌아가서가 아니라 한쌍의 청춘에게 호젓한 기회를 주려는 사람들의 고운 마음씨때문이였다. 사랑이란 당사자들은 더 말할것도 없지만 곁에서 보는 사람들에게도 즐거운 법이다.

애타게 기다려온 4년이였다. 그에게는 더 하였다. 그는 이 4년이라는 나날에 20대에서 30대로 넘어섰으며 수염터는 더 검어졌고 이마의 주름살은 더 짙어졌다.

나이드는데서 오는 초조감, 고독감 그리고 자포자기··· 그러나 이 모든것이 방금전 처녀의 《기다려줘 고마워요!》라는 진정어린 말 한마디로 흔적없이 사라졌다. 하늘을 헤염쳐간 구름처럼··· 말이 없었다.

숨가쁜 순간이 천년인듯 흘러간다.

처녀가 견디지 못하고 먼저 단김이 섞인 말로 입을 뗐다.

《오빠, 왜··· 아무 말도 없어요?》

다음 처녀의 가슴이 몸에 닿는것이 느껴지는 순간 그는 길고 억센 두팔로 처녀의 허리를 꼭 감았다. 그의 가슴에 안긴 처녀의 머리카락이 볼을 간지럽혔다.

그는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떠듬떠듬 속삭였다.

《례영이, 례영이도 알지? 아버지가 왜 처벌문제가 제기되였댔는지? 바로 아버지를 문제삼은 강동군의 간부가 나의 아버지야, 알았어?》

진웅은 자기가 못난짓을 하고있다고 생각지 않았다. 처녀에게 실망과 분노를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부디 이런 자리에서 두 가정사이에 엉켜있는 불미스러운 과거사를 꺼낸단 말인가. 하지만 언제건 말해야 했다. 더는 참고있을수가 없었다. 활 뱉아버리고나니 속이 후련해졌다. 그는 모든것을 체념해버렸다. 그 어떤 운명이 차례진대도 탓하지 않으리라. 숙명적인 필연은 피할수 없는것이다. 수정천가에서 그가 처녀를 구원해준것은 우연이였다.···

순간 처녀는 흠칫 몸을 떠는듯 했다. 그러나 그의 눈표정을 볼수가 없는것이 안타까왔다. 처녀의 얼굴은 그의 어깨너머 있었다. 지금은 그의 볼을 간지럽히는 처녀의 머리카락에서 풍겨오는 연한 비누냄새만이 그를 자극하고있었다.

···《머리통에 무엇이 차있는가! 속에 품고있는게 뭔지 말하라. 복고주의를 제창하는가? 로동당시대에!》

책상을 치며 고함을 지르는 자기 아버지앞에 처녀의 아버지는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있어야 했다.···

일이란 얼마나 불가사의한것인가.

진웅은 처녀의 달아올랐던 심장이 싸늘하게 식어들리라는것을 각오했다. 처녀가 자기의 몸을 콱 밀어던지며 서리를 풍기는 환각이 떠올랐다.

《우리 집에 아물수 없는 상처를 남긴 사람··· 그것때문에 아버지가 얼마나 고민했고 어머니는 얼마나 타격받은줄 아세요? 딴사람들처럼 안타까움과 억울함을 활 드러내놓지 못하고 묵묵히 새길줄밖에 모르는 우리 어머니는 그때 심장병을 얻었어요!》

설사 그런다해도 그것을 묵묵히 감수하리라 결심하고있었다.

진웅은 그가 몸을 바르르 떠는것을 감촉했다. 처녀는 진웅의 품에 안겨 흐느끼고있었다.

《이따금 례영이의 모습을 상기했었지. 대학입학시험장에서 만났을 때 반가왔어. 그래서 아무 생각없이 나를 알려주었구··· 그담부터는 불안속에서 살았지. 언제건 내가 누구의 아들이라는것을 알텐데··· 순진한 례영이의 가슴에 상처를 입히는 행위로 되지나 않을가 하는 불안, 과연 내가 례영이를 행복하게 해줄수 있을가 하는 걱정, 난 참으로 오늘까지 힘겨운 나날을 보내야 했소.》

그담에야 진웅은 자기의 몸에 붙어있는 처녀를 떼내여 처녀의 얼굴을 똑바로 들여다보았다. 크고 그윽한 눈동자, 물기가 어려 더욱더 아름답게 보이는 그 눈동자에 푸른 하늘이 통채로 담겨져있었다. 변함없이 천진한 그 눈동자에서 진웅은 천만마디 말로도 표현할수 없는 그의 마음을 읽었다.

《내 맘이 변할줄 알았어요?》

아! 사랑이란 이런것인가. 진웅은 자기를 잊어버렸다.

《왜 한마디 말이 없어? 무슨 말이래두 좋으니 시원하게 소리라도 질러. 욕을 해두 탓하지 않을테니.》

《됐어요, 좀 더 말을 하면 정말로 소릴 지르겠어요.》

처녀는 눈을 꼭 감아버렸다. 하지만 진웅의 눈앞에는 그냥 푸른 하늘이 펼쳐져있었다.

《난 지금 오빠말이 하나두 들어오지 않아요. 하나두···》

그담에는 정말 두사람이 말 한마디없이 두손을 맞잡은채 굳어져있었다. 시간이 좀 흘러 진웅은 진정된 목소리로 계속했다.

《례영이가 모든것을 리성적으로 판단할수 있게 될 때까지 기다렸소. 례영이, 여기에 나의 아버지가 무슨 관계가 있겠소? 둘이 사랑하면 그만이지··· 물론 지금껏 속여와서 정말 미안하오. 죄스럽소!》

《오빤 똑똑한 바보!》 례영이는 부르짖듯 말하며 그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진웅은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물기를 머금은 례영의 크고 검은 두눈이 진웅의 시선을 끌었다. 아, 아름답기란!

진웅은 그를 놓칠가 겁나하며 주저하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 말을 어떻게 들어야 하오?》

《오늘의 이 자리가 어떤 자리인줄 알고 나온 처녀가 그래 그 모든 사실을 모르고 나왔겠어요? 그동안 내가 오빠의 아버지에 대해서만 알아보았을것 같애요? 나비를 잡겠다고 제 죽을줄 모르고 물에 뛰여들었던 어제날의 철부지소녀가 아니란 말이예요.》

《아, 그렇지! 그렇지!》

진웅은 감격하여 연방 부르짖었다.

《똑똑한 바보!》례영은 정어린 눈으로 어린애처럼 좋아하는 그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오빤 학문에서는 최우등생이지만 생활에선 락제예요. 우리 아버지처럼. 그렇지만 나는 아버지가 좋아요!》

《그럼 나도 좋소?》

《응···》

《사랑하오?》

《그 말을 꼭 들어야겠어요?》

《그렇소, 대답하오!》

《전 물에 빠졌던 저를 건져준 그 일을 잊을수 없어요. 그때 입었던 오빠의 그 후렁한 솜저고리를, 전 마음속에서 그걸 영원히 벗지 않겠어요. 진심이예요!》

《진심이란 말이지···》

진웅은 그때 진심이란 말을 사랑이란 의미로 들었다. 처녀로서 그 이상의 진정을 어떻게 표현한단 말인가?

진웅은 례영이와 지낸 날들에 사랑한다는 말을 들은적이 한번도 없었다. 처녀는 진심이란 말만 써왔다. 그와 갈라질 때도 처녀는 진심만은 변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들은 모란봉으로 올랐다. 칠성문으로 해서 을밀대, 최승대 사랑의 발걸음은 끝간데 없었고 지침도 몰랐다.

진웅은 추억을 더듬었다.

추억의 문은 여전히 열려있고 그는 열려진 문턱에 무방비상태로 앉아있었다. 이름도, 검은 눈동자도, 그 고운 목소리(지금 생각하면 그의 목소리는 인상적이였다.)도 다 지워버린 지금 그게 무슨 대수랴!

어디쯤이였던가? 그는 소개받았던 한 상대를 거절한데 대해 처녀에게 말했다.

강동에 살고있는 아버지는 점점 나이들어가는 아들이 걱정스러워 여기저기 줄을 놓아 처녀의 사진 한장을 조심스레 들려주었다. 따라붙은 설명은 요란하지 않았지만 은근히 마음을 끌어당겼다.

처녀가 고생을 많이 해본지라 근면하고 생활력이 강하고 더우기 가풍이 좋고 마음씨 고와 아는 사람들은 누구나 맏며느리감이라고 한다는 등···

처녀의 사진을 들여다보니 정말로 호감이 가게 생겼다. 외유내강의 인정미와 강직성이 그대로 조화를 이루고있었다. 하지만 진웅은 완강히 반대했다.

그때 례영이가 자기의 이 말을 좀더 심각히 새겨들었더라면 우리들사이가 지금과 같이 되지 않을수도 있지 않았을가··· 진웅은 이런 생각으로 잠시 멈추었던 추억을 다시 계속하였다.

그 말을 했을 때 례영은 《고마워요.》하고 검은 눈에 물기를 담았다. 그리고는 침묵하고있었다. 진웅은 례영의 눈, 눈에 담긴 침묵을 좋아했다.

그 눈으로 자기를 애무해주었고 무엇인가 끝없이 속삭여주었었다. 그 검은 눈동자의 깊고깊은 속에서 타오르는 불빛은 언제나 그만을 위하여 꺼질줄 몰랐다.

그는 자기에게 티없이 맑고 깨끗한 반려가 있다는 희열에 잠기였다. 그러나 다음순간 생활에서 무능한 자기는 아무것도 그 녀자에게 줄것이 없다는것을 깨달았다.

진웅은 마음을 가다듬고 새로운 결심을 내렸다. 그는 지금까지는 누구도 관심하지 않고있었으나 앞으로는 관심하게 될 고조선의 고대글자를 찾아낼 결심을 가지고 그 연구에 달라붙었다. 이것은 어김없이 처녀를 깜짝 놀래울것이며 처녀에게 주는 가장 훌륭한 선물로 될것이였다.

그런데 처녀와의 관계는 과학연구로 굴곡없이 흘러가던 단조로운 종래의 생활률동을 마치 그 어떤 발작을 일으키듯 파괴해버렸다. 1주일씩이나 책속에 파묻혀 세상과 담을 쌓고있던 그의 앞에 례영이가 나타나 그 아름다운 눈을 흘기며 그를 말없이 질책하는것이였다. 그럴 때면 둘이서 아무 말없이 보통강유보도와 거리를 거닐다가 모란봉기슭으로 가군 하였다. 거기서 그들은 늙은 느티나무에 매혹을 느꼈다.

그 나무는 안락의자마냥 뿌리들이 땅겉면으로 솟아나와있었다. 진웅이와 례영이는 말 한마디 없었지만 그 《안락의자》에 앉았고 처녀의 머리는 기다란 가지에 핀 꽃송이마냥 진웅의 어깨에 드리워졌다.

그들은 한시간이고 두시간이고 그렇게 앉아있을수 있었다. 지척에는 고층아빠트들의 불밝은 창문들이 반짝거렸다.

아빠트들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웃고 떠들고있을것이다. 그러나 그들 두사람에게 평양의 거리는 물론 온 세계에 오직 자기들만이 있는것으로 느껴졌다. 그들은 지금까지 서로 너무나도 적게 알고있었다. 진웅은 물에 빠져 언 몸을 바들바들 떨던 그 조그마한 소녀애와 대학의 교수, 박사가 되겠다는 이 수수께끼같은 처녀를 암만해도 상상속에 련결시킬수 없었다.

례영이 역시 더이상 자기를 알려고 하지 않는것 같았다. 자기가 잘 생겼는지 못생겼는지 그리고 총각치고는 주름살이 너무 많지 않는가 하는 따위는 애당초 무시했다. 처녀에게는 거리에 번쩍이는 장식들의 아름다운 불빛, 장대재우에 걸린 은은한 달빛, 나무잎새들의 설레임, 밤새들의 우짖음과 대비할수 없는 즐거움만이 있을뿐이였다.

진웅이 보건대 그 녀자에게는 감성적인데가 많았다.

그러나 진웅은 처녀와 같이 지내면서 그가 중학교시절에 전국에 이름을 떨쳤던 사실을 상기시키는 대단한 지식가로서 나비를 잡겠다고 물에 뛰여들었던 당돌한 모습을 드러내며 이리저리 자기의 지혜를 타진해보려는 학구적인 질문앞에 여러번 서게 되였다.

그 질문이 너무 엉뚱한것이여서 쩔쩔 매게 될 때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 질문에 언제 한번 막힌적없이 차근차근 대답해주면 처녀는 매혹된 눈으로 바라보군 하였다.

그래서 처녀가 자기를 왜 좋아하는가고 물으면 나의 학문과 나의 지식을 리해해주고 높이 사주기때문이라고 대답하였다.

그 대답뒤끝에는 언제나처럼 침묵이 깃든 처녀의 매혹적인 눈길이 자기를 애무해주었다. 이럴 때면 진웅은 처녀가 자기의 과학세계를 더 사랑한다고 믿게 되였으며 총각다운 젊은 티가 전혀 없는 자기의 외모에 안심하였고 자기보다 퍽 젊고 아름다운 처녀앞에서 느끼던 미안함과 죄스러움을 굼때였다.

이상하였다.

진웅이가 자기의 생활률동을 깨버리면서까지 시간을 허비하던때보다 신지글자연구가 마지막단계에 이르러 례영에게 단 1분도 바칠수 없게 된 때 그들의 사랑은 더 열정적으로 불타오르는것이였다. 두사람의 만나는 회수는 절반으로 줄어들었다가 그마저 또다시 줄이지 않으면 안되였다.

하지만 두사람은 드물게나마 《안락의자》에 앉게 되는 순간이면 문자 그대로 경련적인 기쁨을 느꼈다.

이 짧은 순간에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몇해를 두고도 체험할수 없는 행복을 맛보았다.

진웅에게 있어서 례영은 지금도 소녀애였고 례영이가 곁에 있으면 대학교원의 경력을 가진 공화국과학원의 연구사, 사회과학계에서 초미의 연구과제를 맡고있는 권위있는 연구사로서의 자존심과 권위 같은것을 말짱 잊어버리고 자기도 어린애가 되는듯싶었다.

어린애는 몰라도 다섯살만 젊었으면···

처녀의 사랑을 폭포처럼 들쓸 때마다 느끼는 감정이였다. 진웅은 처녀의 지지 아니, 요구에 의해 조선고대글자연구에 시간을 깡그리 바치게 되였다. 처녀는 《행복한 시간》을 줄일것을 단호히 요구했다.

그러나 만나서는 짧은 순간에 가슴속깊이 모아두었던 그리움과 사랑의 감정을 터치여 진웅이에게 아름이 차게 안겨주었다.

그와 갈라질것을 결심한 후 진웅은 모란봉에서 끝내 그 느티나무를 찾아내지 못하였다. 그 나무 비슷한것이 눈에 띄우기는 했으나 그보다는 느티나무가 서있는 급한 경사지가 그를 놀라게 했다. 지나간 그 밤들에 어떻게 자기들 두사람이 그 경사지에서 아무 불편도 느끼지 않고 가볍게 앉아있을수 있었을가 하는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때 앞으로 결별이 있으리라고 어찌 생각할수 있었겠는가!

진웅은 박진규에게 례영이와의 사이에 있었던 일을 말해줄가 하는 생각에 잠겼다가 인차 지워버렸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에게 말해줄 필요가 없을것이다.

언어학연구사로서 누구보다 많은 속담과 격언, 어휘들을 알고있는 진웅에게 도리머리를 젓게 되는 속담이 있었으니 그것은 《그 부모에 그 자식》이라는 말이였다. 속담이 그를 때도 있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