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백산마루 16


 
 

16

 

김일성동지께서는 안효식이 교기를 꺼내드는 순간 저도 모르게 소리치시였다.

《잠간 세우시오.》

아까부터 수령님의 안색을 불안하게 살피고있던 전기철이 침착한 동작으로 원격조종기의 단추를 눌렀다. 아쉽게도 안효식이 꺼내든 단군초상기는 기폭을 활짝 펴지 못하고 그의 가슴에 드리워진채 굳어졌다. 하지만 김일성동지께서는 그 초상기, 흰 바탕에 거인의 초상이 그려진 네귀에 불에 그슬린 기발을 똑똑히 알아보시였다.

《음···》

그이께서 괴로운 신음소리를 내시였다.

《수령님!》

전기철이 긴장하여 그이곁에 바투 다가섰다.

《저 기발이요, 저 기발!···》

기발을 앞가슴에 드리운채 백발을 날리며 굳어진 안효식의 근엄한 모습이 오래도록 그이의 망막에 비쳐들었다.

그이께서 다시 록화물을 돌리라고 손짓하시였다. 록화기가 돌아가기 시작했으나 전기철은 큰 심리적충격을 받으신 수령님의 안색을 살피느라 언제 그것을 볼새 없었다.

김일성동지께서도 더이상 화면이 눈에 들어오지 않으시였다. 그이의 생각은 항일의 혈전장으로 달리고있었던것이다.

그때가 백두산근거지를 중심으로 놈들의 《동기대토벌》을 격파하기 위한 전투들을 벌릴 때니까 1937년초였다. 홍두산, 리명수전투를 금방 끝낸 1937년 2월말경이였다.

비상한 기억력을 지니신 그이께서는 단군초상기를 보는 순간 수십년전에 있었던 일을 어제 있은 일처럼 생생히 기억해내시였다.

 

···왜병기수가 쓰러지자 흰 천에 피빛동그라미 하나를 댕그라니 그려넣은 일장기는 눈판에 딩굴었다.

그우에 또다시 싸창이 불을 토했다.

무자비한 복수전이였다.

바로 몇시간전에 조선인민혁명군 사령관 김일성동지께서는 정가촌으로 불리우는 한 조선인마을이 초토화되였다는 보고를 받으시였다.

보고에 의하면 50여호의 마을이 집 한채, 사람 하나 남지 않고 다 불타고 전멸되였다는것이다.

정가촌의 소식을 들은 그이께서는 비분에 치를 떠시였다. 그이께서는 더 생각지 않으시고 부대의 출병을 명령하시였다. 정가촌의 참사는 그이로 하여금 류다른 복수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럴만 한 사연이 있었다.

정가촌을 개척한 마을의 좌상 정익호는 자기를 고려의 충신인 정몽주의 25대자손이라고 자부하고있는 60대의 로인이였다.

그가 정몽주의 후손인지 아닌지는 정확히 몰라도 충신의 후손으로 자부하고있는것을 보면 충의를 귀중히 여기는 사람인것만은 틀림이 없었다.

그 충의로 말하면 두말할것없이 자기 조상, 자기 민족에 대한 충의라고 해야 할것이다.

정익호는 대종교인이였다.

대종교는 단군을 숭배하는 종교로서 1900년대초에 창제되였으나 일제의 단군말살책동이 우심했던 국내를 피하여 여기 동북지방에 들어와 독립운동자들속에 뿌리를 박고있었다. 독립운동자들이 이 시기 단기를 쓰고있는것을 보면 그것을 알수 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정익호에게 관심을 돌리시였다.

단군숭배는 민족숭배이며 민족숭배야말로 철저한 반일이고 진정한 애국이라는 지론을 지니고계신 그이께서 정익호와 같은 로인을 놓치실리 없었다.

때마침 부대가 정가촌일대에서 활동하고있던 때여서 김일성동지께서는 소문만으로만 듣고있던 로인을 만나려 정가촌을 찾으시였다.

그런데 뜻밖에 여기서 희한한 장면을 목격하게 되시였다.

정익호네 집 넓은 뜨락에는 울바자가 터지도록 사람들이 꽉 들어차서 처마끝에 매단 장대에 달린 흰 기발에 절을 올리고있었다.

그자체도 희한한 일이였지만 기발에 그려진 초상의 주인공이 단군이라는 사실이 더욱 희한하였다.

알아보니 정익호가 언젠가 마을에 온 화상쟁이(그림을 그려주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자기가 어릴적 구월산의 삼성사에서 본적있는 단군의 모상을 말해주어 이 초상을 그렸다고 한다.

정익호가 단군의 모상에 대한 기억을 얼마나 정확히 더듬었으며 또한 화상쟁이가 얼마나 생동하게 그것을 옮겼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단군초상을 누구도 본적이 없는 조건에서 정익호가 단군초상이라고 하니 그대로 믿을수밖에 없었다.

바로 전날 국제올림픽 마라손경기에서 1등을 한 손기정의 장거를 놓고 국내에서 《일장기말소사건》이 터졌다는 놀라운 소식이 뒤늦게나마 이 구석진 마을에까지 날아들었다.

정익호는 격동되였다. 너무도 가슴이 끓어번져 온밤 잠들지 못하다가 이튿날 아침 마을사람들을 자기 집뜨락에 모이게 하고는 대종교의 교법에 따라 손기정의 의거와 국내 애국적문인들의 소행을 칭송하고 마을사람들속에서 민족정신을 각성시키려고 했던것이다.

정익호의 이 소행은 김일성동지의 마음을 대번에 울렸다.

그이께서는 정익호의 두손을 잡고 손기정의 소행도 장거이지만 정익호의 소행도 하나의 장거라고 높이 평가하시고 앞으로 민족정신을 버리지 말고 조선인민혁명군을 도와 반일성전에 떨쳐나설것을 당부하시였다.

정익호는 이에 흔연히 응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러한 정익호에게 류다른 정을 품으시였다.

그가 아버님의 발자취가 찍혀진 구월산의 삼성사를 찾아갔었다는 사실이 이역에 와계시는 그이께 혈육과도 같은 뉴대감을 주었으며 잃어진 단군초상을 모조로나마 살려놓았다는 사실이 또한 항일혁명선상에 계신 그이로 하여금 혁명적인 동지감을 갖게 하는것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 정가촌의 소식을 듣고 달려가시였을 때 마을의 다른 집들과 함께 정익호네 집도 재더미로 되였고 정익호자신은 뜨락의 정자나무에 결박을 당한채 두눈알을 뽑히운 상태에서 숨져있었다.

그의 발밑에 불에 타서 새까만 숯이 된 이 집 열한명 식구의 시체가 널려있었는데 올망졸망한 시체들은 정익호의 아들들과 며느리들 그리고 어린 손자, 손녀들이였다. 불과 한달전 그이의 바지가랭이에 매달리던 귀여운 모습들.···

어찌하여 정익호의 온 가족이 이처럼 참혹한 죽음을 당하였는가?

김일성동지께서는 놈들의 단군말살책동의 일환으로 단군초상을 가지고있는 이 조선인마을이 초토화되였으리라는것을 대뜸 짐작하시였다. 조선민족의 력사를 말살하려는 일제의 책동은 참으로 집요하고 악착하였다. 조선강점과 함께 시작된 일제의 단군말살만행은 수십년을 이어져오면서 국경을 넘어 여기 동북땅에서까지 감행되고있었다. 1930년대에는 일제가 그 일을 전담하는 관동군 헌병대소속의 별동대까지 두고있다는것을 알고계시였던것이다.

그 별동대놈들이 그러한 만행을 저지른것이 분명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온몸을 부르르 떠시였다.

어릴적에 강동땅에서 체험하시였던 분노가 되살아났다.

그때에는 마음속으로 증오의 총을 쏘시였던 그이이시였다. 그이께서 틀어쥐고계시는 총에는 그날의 증오까지 장약되여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복수전을 결심하시였다.

친히 한개의 부대를 인솔하시고 하루밤을 꼬박 추격하여 멀리 달아나버린 별동대놈들을 따라잡으시였다.

무자비한 소탕전이 벌어졌다.

그이께서는 권총을 뽑아들고 적의 선두를 향해 달리시였다.

거기에는 수십년간 증오의 표적으로 되여온 일장기가 펄럭이고있었다.

그이께서는 명중탄에 쓰러진 왜병기수의 머리맡에 가랑잎마냥 처량하게 펄럭이는 일장기를 밟고 서시였다.

《한놈도 남기지 말라!》

그이의 목소리가 울렸다.

일장기가 눈앞에서 재가루로 날려갔으나 그이의 직성은 풀리지 않으시였다.

증오는 아직 앞에 있었다.

한 지휘관이 포로를 심문하여 얻어낸 놈들의 만행자료를 보고해왔다.

애당초 놈들은 온 마을을 도륙할 심산이였던만큼 무차별적으로 불을 지르고 총을 쏘았다.

정익호의 식구들만 살려서 뜨락에 모아놓고 단군초상을 내놓으라고 위협하였다.

정익호는 물론이거니와 그의 안해와 아들, 며느리, 손자, 손녀들까지 응대를 안하자 놈들은 정익호를 정자나무에 비끄러매놓고 그가 보는 앞에서 식구를 한사람씩 끌어내였다.

먼저 정익호의 늙은 안해를 불속에 던져놓고 끄슬려서 꺼멓게 된 시신을 그의 발앞에 던졌다.

그 다음 맏아들, 맏며느리, 다음은 둘째아들, 둘째며느리, 나중에는 손자손녀들··· 이렇게 열한명이나 되는 식구들을 불에 태워 발앞에 던졌으나 정익호는 황황 불타는 눈길로 놈들을 쏘아볼뿐 단군초상을 숨긴 곳을 대지 않았다. 그를 굴복시키지 못한 놈들은 마지막으로 그의 두눈알을 뽑아 학살하였다.

포로에 대한 심문자료를 보고받으신 김일성동지께서는 고통을 참으시려고 눈을 꼭 감으시였다. 그이의 고통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날의 소탕전에서 아군은 녀대원 한명을 잃었다. 젖먹이까지 두 어린것을 떼두고 입대한 녀성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연거퍼 들이닥친 고통을 억누르시며 추도문을 한자한자 쓰시였다.

《···나라를 찾는 투쟁은 빼앗긴 땅을 찾는 투쟁일뿐아니라 민족의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 전통을 찾는 투쟁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 투쟁에서 피를 뿌렸습니다. 우리 겨레는 망국의 시대에 산 민족의 아들딸들이 흘린 이 피를 잊지 않을것입니다.···》

희생된 녀대원과 영결하는 조총소리가 울렸다. 긴 메아리였다. 그것은 그이의 온 생애에 한번도 멎지 않았고 또 멎을수도 없는 영원한 메아리였다.···

그 메아리가 지금 그이의 마음을 아프게 흔들고있었다.

저 기발이 어떻게 안효식의 품에서 나올수 있는가. 아마 그때 그 정가촌의 사람들중에 누군가 살아남은것이 틀림없다. 그 기발이 대종교의 교기로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단군겨레의 넋을 지켜 목숨을 바치고 사선을 헤쳐야 했겠는가를 더듬어보시며 그이께서는 록화기가 꺼진 후에도 한참동안이나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