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백산마루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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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게, 고조선글자를 연구한다지?》

박진규가 려관의 불켜진 방을 찾아 들어서며 첫말을 뗐을 때 진웅은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순간 박진규의 오불꼬불한 지팽이에 눈길이 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딱 한번 찾아가 만난 일밖에 없는 그가 오랜 지기인듯이, 적어도 그사이 여러차례 만나 과학담을 나누기라도 한듯이 아닌밤중에 남의 방에 뛰여들어와 인사말 한마디없이 이렇게 묻자 듣던바대로 과학밖에 모르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으며 그의 성격을 특이하게 생긴 지팽이와도 련결시키지 않을수 없었던것이다.

그는 반갑게 박진규를 맞이하였다. 괴로운 추억을 털어버리기 위해서라도.

《예, 선생님.》

《고조선에 글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정설로 믿나?》

《예, 믿습니다.》

《신념이겠다?》

《예, 선생님.》

어정쩡해서 침대에 걸터앉아있는 그의 앞에 박진규는 긴 이야기를 펼칠듯 의자를 들어다가 편안하게 자리를 잡고 앉았다.

《과학은 신념으로만 되는건 아니지.》

《과학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거니까요.》

추억은 말끔히 사라져버렸다. 그는 이 박진규와 만나 론쟁해보고싶은 생각을 한두번만 가지지 않았다. 그는 박진규를 존경하였다. 그래서 그의 《성당》에 찾아갔던것이고.

박진규가 말을 이었다.

《례컨대 추운 겨울날 봄이 빨리 오라고 아무리 발버둥질쳐야 봄은 오지 않네. 모든 과학이 다 그러하지만 특히 력사과학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력사기록과 유적, 유물에 기초해야만 되는거지. 동무에게 그런 기초가 있나?》

《아직은 빈약하지만···》그는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리 나라 옛기록들은 《훈민정음》창제이전에도 일정한 우리 글자가 쓰이였다는것을 적지 않게 전하고있다. 《훈민정음》창제에 적극 참가했던 중요성원의 한사람인 신숙주의 후손인 18세기의 신경준도 《훈민정음운해》에서 우리 나라에 옛날부터 민간에서 쓰이는 글자가 있었는데 그 수가 다 갖추어지지 못하고 그 모양이 일정한 규범이 없어 한 나라의 말을 적어내기에는 모자라나 일부 제한된 범위에서는 쉽게 쓸수 있게 되였다고 했다.

또한 고려와 탐라(제주도)에서도 한자가 아닌 어떤 고유글자가 쓰이였다는 기록이 있다. 실학자들이 쓴 기록에서는 11세기초에 호부상서 장유가 중국의 강남에 갔을 때 마침 고려에서 떠내려간 《술》이라는 악기의 밑바닥에 쓰인 글을 중국사람들은 도무지 읽지 못하여 그저 한문으로 옮겨주었다는 이야기를 전하고있는데 이것은 곧 고려에도 일정한 조선고유글자가 있었다는것을 말해주고있다. 박지원의 《연암집》과 한치윤의 《해동역사》와 중국의 옛책 《뭉계필집》등에도 탐라(제주도)에서는 한자가 아닌 고유민족글자가 쓰이였다는것을 담은 기록이 있다. 특히 주목을 끄는것은 《훈민정음》창제당시 집현전부제학을 하던 최만리가 《훈민정음》창제를 반대하여 세종대왕에게 낸 상소문에서 《혹시 말하기를 언문은 다 옛글자이지 새 글자가 아니라는데···》또는 《설사 〈언문은 전 왕조(고려)때부터 있었다〉고 하여도 따로 쓸것인가?》라고 한것이다.

이상의 력사기록들을 통하여서도 《훈민정음》이전에 우리 나라에 한자와 다른 우리 나라 고유의 글자가 계속 쓰이였다는것을 알수 있다.

《연구를 많이 했구만!》

박진규가 경탄한 나머지 그의 말을 끊었다.

《그 글자의 현물이 〈녕변지〉와 옛 질그릇들에 몇자 남아있습니다. 아직 더 연구해봐야겠지만 문제는 고조선의 존재유무에 달려있습니다. 고조선의 력사만 정립된다면 저의 연구가 한줄에 설수 있습니다. 선생님, 문자는 국가성립의 중요한 여건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저도 그 성립자를 찾는 선생님의 이번 발굴사업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겁니다. 말하자면 명줄을 걸고있지요. 선생님, 성과를 믿습니까?》

《믿어야지.》

《무슨 근거로요?》

《그저 예감뿐이네.》

진웅이 씩 웃었다.

《선생님답지 않은 말씀이군요.》

《여보게, 동명왕릉발굴에 참가했나?》

《예, 학생으로 발굴에 동원되였댔습니다.》

《음, 나는 〈기자묘〉발굴에도 참가해본적이 있는 사람일세. 해방후부터 지금까지 력사학은 위대하신 우리 수령님의 발상에 의해 바로 잡혀왔다고 할수 있네. 백발백중이였지. 그런 의미에서도 수령님은 참으로 위대하시단 말이네.》

박진규의 예감이란 곧 수령님의 천리안에 뿌리를 두고있었다.

《그런데 왜 안할 말씀을 하셨습니까?》

리관직이 말하던 《잡소리》를 념두에 두고 하는 소리였다.

《옥에 티가 있을지언정 그 위대성에 티가 있어서는 안되네. 그래서 심중하자고 한것이지 무슨 딴 생각이 있어서는 아니였네.》

《선생님!···》

그는 격동되여 부르짖었다.

지금 그의 앞에 오불꼬불한 오리나무뿌리로 만든 지팽이를 짚은 고고학에 한생을 바친 늙은이가 앉아있었다. 남들이 고집불통의 표적으로 여기는 지팽이가 이 순간 그의 눈앞에서 황금지팽이처럼 되여 눈을 부시게 했다.

《선생님!》 그는 존경어린 눈으로 박진규를 다시 바라보았다.

이때 그의 마음속에서 《그 아버지에 그 자식이라는데···》하는 소리가 저도 모르게 울리고있었다.

박진규가 나타나기 전까지 더듬고있던 불쾌한 추억이 다시 머리를 쳐들려는 순간 박진규가 문득 물었다.

《어떻게 돼서 고대문자를 연구하기 시작했나?》

《아버지가 저를 어문학부 어학과에 들어가라고 신신당부했습니다.》

《아버지가 학자이시오?》

《아닙니다, 농장원입니다.》

《그래?···》

그 말을 하는 순간에 젊은 연구사의 얼굴에 얼핏 불안한 그늘이 지나갔다. 박진규의 호기심은 사라졌다.

그때 만약 박진규가 다감한 사람이여서 그의 얼굴표정을 감촉했더라면, 혹은 좀 더 청년연구사에게 친근감을 표시해 고향이나 부친에 대해 자세한 물음을 했더라면···

《강동? 내 강동에서 여러해동안 중학교교편을 잡고있어서 혹 알수도 있는데··· 아버지의 이름이?···》

그럼 이 젊은이를 얼마나 난처하게 할번 했는가. 그러나 박진규는 역시 박진규였다. 그는 벌써 딴 생각을 하고있었다.

《자네 이름이 뭔가?》

《어학연구소의 로총각이라면 모르는 사람들이 없는데요.》

《그래? 아이아버지인가?》

《로총각이라구 하지 않았습니까.》

《허허··· 그렇지!》

과학밖에 모르는 박진규의 머리에 이 순간 분명 다른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저런 젊은이가 사위감이라면?)

생활이 없는 사람이란 없다.

다른것이 끼일상싶지 않은 박진규는 사위감을 생각했고 로총각은 《그 아버지에 그 자식》이라는 속담을 떠올리며 꿈같이 흘러간 련애시절(물론 그것도 지금 돌이켜보건데 그렇게 말할수 없고 직접 겪을 때에는 그 생각도 미처 못했었다.)을 가슴아프게 추억하였다.

그와 함께 바로 어제 밤 발굴현장에 찾아왔던 아버지를 상기했다. 그가 아버지를 만난것은 우연이였다. 밤이 깊어 례영이의 생각으로 번민에 빠져있던 그는 답답한 가슴을 식힐 생각으로 숙소에서 나왔다. 실실 연기를 피워올리는 발굴현장주위를 걷던 그는 한쪽 유측진 곳에 까딱 움직이지 않고있는 한 형체를 알아보았다. 발굴조성원인줄 알고 무심히 지나치려던 그가 문득 걸음을 멈춘것은 다음순간이였다. 그는 륙감으로 혈육을 알아보았다.

《아버지!···》

예서 30리도 더 떨어진 곳에 있을 아버지가 이밤중에 나타날줄이야.

아버지는 아침에 헤여졌던 아들을 만난듯이 범상히 맞이했다.

《너도 여기에 와있었구나. 잘 됐다.》

아버지는 더 말하지 않고 릉주위를 살펴보았다.

《이 밤중에 웬일이십니까?》

《잠에 들수가 있어야지. 래일 발굴을 시작한다지?》

《예.》

《박진규선생이 책임자라지?》

《예.》

《편안하시냐?》

《예.》

《한번 보고싶구나. 그리고 밤새도록 말두 나누고···》

《지금 저기 숙소에 계십니다.》

《아니, 됐다. 난 그저 돌아가겠다. 날씨가 찬데 몸간수를 잘해라. 무거운 일을 맡았는데··· 그리구 집엔 언제 한번 다녀가려니?》

《요즘같아선 짬이···》

《그럴테지. 그런데···》

아버지는 아들의 손을 꼭 잡았다.

《새해 잡혀 나이를 또 하나 먹었다. 아버지의 말뜻을 알겠니?》

《알고있습니다.》

《알았으면 됐다.》

돌아서서 발걸음을 내짚으려던 아버지가 돌아섰다.

《혹시 말이다. 여기서 단군무덤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나오지 않으면 박진규선생의 립장이 어떻게 되니? 그 선생한테 또 무슨 다른 후환이···》

《···》

《아니, 아니지. 내가 무슨 쓸데없는 걱정을··· 지금이야 그런 일이 없을테지.》

아버지는 조용히 돌아갔다. 진웅은 아버지의 말속에 담겨있는 속대사를 충분히 알아들었다.

 

아버지는 30년전에 박진규의 머리에 복고주의의 감투를 씌웠던 사람으로서 자기를 뼈아프게 반성하고있는것이며 그런 일이 반복될가봐 우려하는것이다. 그와 함께 발굴사업에서 기적이 일어나기를 여생의 심혼을 다 바쳐 바라고있는것이다.

매 인간들의 생활은 제나름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제나름의 생활속에도 공동변수가 있었으니 당과 수령의 사상의지대로만 살려는 지향이다. 이것이 로동당시대의 인간생활의 진면모이다.

날이 밝아오고있었다.

사람들은 하나의 사상, 하나의 의지로 발굴사업을 진행할것이다. 이러한 일에 과연 실패가 있을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