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백산마루 13


 
 

13

 

톱밥이 천천히 타면서 느물느물 흰 연기를 피워올리고있었다.

리관직의 재촉에도 불구하고 박진규는 자기 조성원들을 데리고 강동읍 제재소에 가서 마른 톱밥을 날라다가 봉분앞 입구에 덮고 불을 달았다. 언땅을 녹여 여름의 자연조건과 같이 만들려는 작정이였다. 사실 박진규는 이 방도를 찾느라고 며칠 더 지체한것이다.

하루, 이틀, 사흘···

박진규가 며칠동안 수굿하고 톱밥연기속에서 날자를 보내고있을 때 리관직은 승용차를 타고 여기저기를 드나들며 드바쁜 시간을 보냈다. 이 발굴사업이 수령님께서 관심하시는 일이라는것을 재삼 강조하거나 그런것만큼 지방당조직이 잘 도와주어야 한다는것, 민족사연구에서 하나의 혁명과도 같은 중대한 일이 바로 지금 이 고장에서 진행된다는 사실을 의미심장한 어조로 호소하면서 시간이 모자라 쩔쩔맸다. 지방당조직에는 이미 통보가 내려와 이곳 일군들도 잘 알고있는 사실이였지만 그는 재삼 강조하였다. 그는 자기의 이러한 언행을 결코 회의때마다 어떤 문제를 세번네번씩 곱씹어 강조하는 《잔 일군》의 위구심으로 생각지 않았다. 그는 자기의 능력이 한계점에 이를 때까지 책임을 다하리라 마음먹었던것이다.

야밤중에 발굴조성원들이 있는 곳으로 찾아와 함께 톱밥연기를 들이키기도 하였다. 그럴 때면 그는 영낙없이 졸군 하였다.

숙소로는 그가 《수완》을 발휘하여 가져오는 후방물자들이 련속 들이닥쳤다.

《자, 지방당조직들에서도 관심이 큰데 그들의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하루빨리 다그칩시다! 한시라도 빨리···》

발굴조성원들이 좋아했다.

《역시 관직부원장이 할줄 알거던.》

하지만 박진규는 조금도 조급해하는것 같지 않았다. 언 봉분을 녹이는 작업은 며칠째 계속되고있었다. 리관직은 매일같이 박진규를 볶아댔다. 그의 마음 같아서는 아마 장작을 활활 태웠으면 했을것이다. 허지만 박진규는 마음속에 정해놓은 날자가 있었으므로 끄떡하지 않았다.

그 날자를 하루 앞둔 날.

그러나 리관직의 시간표에 따르면 그날이 발굴착공의 날이였다. 리관직은 전날에 벌써 군급책임일군들을 부르고 사회과학원에도 전화를 걸었다. 그는 발굴이 시작되는 이날을 력사적인 날로 되게 하고싶었다. 무슨 근거가 있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그는 이런 발굴에서 성과가 있으리라는것을 확고히 믿어마지 않았다. 믿었다기보다는 열렬히 갈망했다.

이른아침 군의 책임일군들이 먼저 여러대의 승용차에 분승해 도착하였다. 뒤미처 과학원에서도 수십명의 사람들이 뻐스를 타고 내려왔다. 그 수십명은 과학원의 지도일군들이였다.

지도능력을 소유한 사람들이 과학분야에서처럼 집중되여있는 부문은 없을것이다. 매 지도일군들은 과제를 주고 그 수행정형을 검토하며 착상을 귀띔해주고 론쟁에 대한 해명을 주며 또 고무하며 약속하고 떠밀어주어야 한다. 헤아릴수 없는 많은 시간이 소모된다. 더 높은 지도적지위에 오르는 사람일수록 그에게는 과학적사색에 돌려질 시간이 적게 차례진다.

이러한 보편적인 조건이 자기 전공을 우수하게 마치지 못했으며 그후에도 여전히 자질향상을 사활적인 요구로 받아들이지 못하고있는 리관직이와 같은 사람들의 존재공간으로 된다. 이 공간에서 능력을 정도이상으로 발휘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언제나 분주해보인다. 그런 사람들이 《일을 제끼는 사람》으로 인정되고 총화사업때 앞줄에 앉게 되는것이다.

리관직이로 해서(전적으로 그런것은 아니지만) 발굴장에는 군과 사회과학원만이 아닌 각급 과학지도단위의 승용차들이 모여들었다.

리관직은 발굴시작을 알리려는듯 박진규를 바라보았다.

박진규는 그에게 등을 돌려댔다. 봉분곁에는 하루 더 태울 분량의 톱밥이 덧쌓여있었다. 아연해진 리관직은 내심을 애써 감추며 박진규에게로 다가가 《여보게, 누굴 망신시킬셈인가?!》하며 잔등을 쿡 찔렀다.

박진규가 응대를 하지 않자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는 낮은 목소리로 사정하듯 말했다.

《하루 앞당긴다고 대순가, 응?》

《덤빈다구 되는게 과학이 아니네!》하고 박진규는 그의 조급성을 리해하려고 애쓰며 사람들이 들리지 않게 충고를 주었다. 리관직은 마음이 안달아났으나 한마디 더했다가는 《고집불통》으로 소문난 그의 입에서 또 무슨 험한 소리가 쏟아져나올지 몰라 주저하였다.

진중한 표정을 짓고 모여섰던 사람들이 영문을 몰라 머리를 기웃거리며 그들 두사람을 주시했다.

리관직은 응원을 청하듯 그들속에서 김석진을 찾아내여 눈길을 주었다. 그 눈길의 의미를 알아차린 김석진이 한발 나서더니 학자다운 침착성으로 봉분을 한동안 바라보며 생각을 굴리였다.

톱밥이 타는 연기가 느물느물 피여오르고있었다. 그것은 조심히 그리고 침착하게, 그리하여 유물 한쪼각이라도 상해서는 안되는 이번 발굴사업의 신중성과 심각성을 말해주는듯 하였다.

김석진은 지난밤 발굴을 시작하겠다는 부원장의 보고를 받은 다음 결론을 주지 않고 박진규를 현장의 전화앞으로 불렀다. 그때 박진규는 하루 더 언땅을 녹인 다음에 해야 안전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부원장을 다시 찾았으나 누구도 그의 행처를 몰랐다. 오늘 아침에 중요한 전화가 있어서 뒤늦게 청사마당으로 나오니 과학원지도일군들은 이미 이리로 떠난 뒤였다. 그가 받은 중요전화가 수령님께서 걸어오신 전화라는것을 아직까지는김석진밖에 아는 사람이 없다. 침착하게, 덤비지 말라는것이 그이의 분부이시였다. 이러한 김석진이 누구의 편을 들것이라는것은 뻔했다. 대뜸 그의 속마음을 짐작한 리관직이 눈치빠르게 《조급한 마음에 제가 너무 서두른것 같습니다.》하고 잘못을 먼저 인정했다.

《그럴수도 있지요.》 김석진이 너그럽게 그의 체면을 세워주며 자기네 과학원사람들이 아니라 군의 일군들앞으로 다가가 죄송한 표정을 짓고 겸손하게 사연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과학이란게 갑론을박하는 사업입니다. 참, 미안하게 됐습니다. 다들 바쁘겠는데 다시 모여오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군에서 관심을 돌려준것만 해도 감사합니다!》

군에서 왔던 일군들이 돌아간 다음 김석진은 과학원일군들에게 말하였다.

《이번 발굴사업은 침착하게 덤비지 말고 하여야 합니다.》

그는 방금전에 수령님의 전화를 받은데 대하여 이야기하고나서 그자신부터 이번 일에 침착하게 대하겠다는 결심을 다지듯 신중한 어조로 계속하였다.

《수령님께서는 이런 내용으로 말씀하시였습니다.··· 발굴사업이 그저 땅을 파는 작업이 아니라 하나의 과학사업인만큼 행사장으로 만들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침착하면서도 세밀히 하여야 합니다. 추운 때에 발굴하는 조건에서 무덤의 시설물이나 유물에 자그마한 손상이 가게 해서는 안됩니다. 발굴장을 연구실화 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발굴조가 하는 일에 지나치게 간참해서는 안됩니다. 수술할 때에 집도자에게 여길 베라, 저걸 떼내라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집도자는 당황해서 수술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될것입니다. 이번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학자들은 숭엄한 감정에 휩싸였다.

《오늘 밤은 현장당번만 남기고 려관에 가서 푹 쉬시오. 래일부터 발굴을 시작하면 언제 쉴 사이가 없을거요.》하고 원장이 등을 미는바람에 읍려관으로 돌아온 박진규는 오래도록 잠들지 못했다.

그는 아침에 한 원장의 말을 마디마디 되새기면서 수령님께서 이번 발굴사업에 대하여 얼마나 주도세밀하게 관심을 돌려주시는가 하는것을 깨달았다. 학자인 자기가 생각지 못한 세세한 부분까지 가르쳐주고계시는것이다. 이것은 지금껏 오랜 세월 고독하게 견지해온 자기의 《성당》, 《신자》하나 없이 외로운 《신관》만이 있던 그 고립무원한 《성당》이 수령님의 집무실로 옮겨졌음을 의미한다. 하늘을 위해 있는 《성당》이 하늘에 올랐으니 벌써 《성당》이 아니다. 이젠 하늘이다.

하늘에는 해빛만이 찬란할것이다!

그는 종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려관밖으로 나왔다. 늦겨울밤대기가 대충 걸친 겉옷짬으로 스며들었으나 추위를 느끼지 못하고 려관뜨락을 흥분된 심정으로 거닐었다.

그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딸이 걸어온 전화를 받았다. 이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고 한다.

진규는 딸을 제일 잘 알고있다고 생각해왔다. 명랑하고 당돌하며 손끝이 여무지고 자기를 닮아 바른소리를 잘하는것으로 하여 박진규의 사랑을 독차지하고있는 딸이였다. 그 딸이 갑자기 나이를 열살은 더 먹은듯 한 진중한 목소리로 아버지에게 걱정을 끼쳐 미안하다고 용서를 빌었다.

《그래 무슨 일로 얼음구멍안에 들어갔댔니?》

《아버지, 그게 무슨 큰 일이예요. 다른데 정신 분산시키지 말고 이번 발굴에서 꼭 성과를 바래요.》

딸은 중요한 사업을 위해 떠나는 아버지에게 근심을 끼쳐 미안하다는것과 자기도 아버지를 힘껏 돕겠다는 말을 했다. 딸이지만 허리를 굽혀 절을 하고싶도록 고마왔다. 그도 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에서 연구사로 있으니 도움을 받을수 있을것이다. 묻고싶은것이 많았으나 단념하고 전화를 끊었다.

로친은 알고있을것이다. 딸이 무슨 연고로 야밤삼경에 얼음구멍에 빠졌는가를···

그 어떤 부주의에 의한것이겠지. 그렇지 않다면야 아무렴 박진규의 딸이 정신이 나갔다고 얼음구멍에 들어가겠는가.

박진규는 자기에게 편리한 쪽으로 애써 생각을 돌리였고 그렇게 단정짓고말았다. 래일 있을 발굴사업만이 꽉 차있는 그의 뇌수속에 딸에 대한 생각이 오래 남아있을 자리가 없었다. 때마침 하늘을 가로지르고 사라진 별찌처럼 그 생각은 까마득히 사라지고말았다. 그리고 래일의 발굴을 생각했다. 밤중으로 언땅이 녹아야겠는데···

문득 김석진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밤 원사는 무슨 생각을 하고있을가? 누구누구해도 회답서한을 받은 당사자는 김석진이니 그의 심리가 제일 복잡할것이다.

이런저런 상념에 잠겨 밤산책을 하던 박진규는 유독 불이 켜져있는 려관의 한 창문을 발견하였다. 그는 그 방으로 들어가고싶은 생각이 났다. 그 방에 누가 들어있다는것을 알고있었던것이다.

(이름이 뭐라고 했던가. 참 이름도 묻지 않았지. 언어학연구소에 있다는 젊은 연구사···)

 

×

 

이밤 박진규의 예측대로 사회과학원의 5층청사에서 원사의 방전등만이 오래도록 꺼지지 않고있었다. 원사는 퇴근하지 않고 사무실에 앉아 생각에 골몰하고있었다.

어찌하여 수령님께서는 단군릉을 기어이 파보자고 하시는가. 단군릉이 우상이고 단군의 실체를 증명해줄수 있는 그 어떤 유적유물도 나올수 없다는데 대하여 또 그 경우에 당의 권위에 루가 갈수 있다는것을 설명해드리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부인하시는걸 보면 그 어떤 타산이 계신다. 그것이 무엇일가.

지금 원사는 거대한 용단을 내린 수령님의 그 심중을 헤아려보기 위해 골몰하고있다. 허나 좀처럼 생각이 잡히지 않는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머리의 공허, 답답한 가슴··· 내가 무슨 과학계에서 원로란 말인가. 과학자가 아닌 그이께서, 나라의 전반정사를 돌보시는 그이께서 타산하신것을 나는 어찌하여 짐작조차 못하는가.

그이의 깊은 속마음을 조금도 짐작하지 못한채 무능한 자기를 원망하며 원사는 생각을 굴리고 또 굴리였다.

그이께서 자신의 타산을 먼저 말씀하시지 않은것은 과학을 생각하여서이다. 언제 한번 과학문제에서 이것이다, 저것이다 하신적이 계시였던가. 그런데 나에게는 아무러한 타산도 없다. 아무러한 타산도 없이 래일의 발굴을 해야 한다. 대체 이게 뭐란 말인가. 력사학분야에서는 수령님을 보좌해드려야 할 자기가 그이의 가르치심을 받지 않고는 한걸음도 나갈수 없지 않는가.

원사는 가슴을 치고있었다.···

과학을 중시하고 과학사업을 떠밀어준 당과 수령의 의지는 우리 과학자들에게 혈관속의 피처럼 한시도 멈춤이 없이 흐르고있었으니 지금 원사도 그 의지로 심장의 박동을 울리며 과학적사색에 골몰하고있는것이다.

그이의 타산은 무엇일가, 무엇일가?···

밤은 삼경으로 깊어지고있었다.

이밤 두분께서도 밤을 지새고계시였다.

미국은 우리의 핵시설에 대한 선제타격을 계획하고 방대한 병력을 실전배비하였다. 정세는 전쟁접경에로 치달았다. 하여 두분께서는 마주앉아 대응책을 세우고계시였다.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서의 탈퇴와 준전시상태의 선포!···

그러나 우리 인민들은 아직 이것을 모르고있었다.

두분께서만이 알고 두분께서만이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지켜낼 방책을 모색하며 밤을 지새고계시였다. 두분께서는 나라에 그 어떤 비상사태가 조성된다고 해도 단군릉발굴, 민족의 원시조를 찾는 일만은 중단치 않고 계속할 의지를 피력하시였다.

후날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원사는 큰 충격속에 40여년전의 일을 추억하였다. 전쟁의 포화속에서도 전후복구의 어려운 나날에도 과학사업이 중단된적은 한번도 없었으니 말이다. 전화의 나날에 과학원이 창립되였고 전화의 날에 세상에서 처음으로 전반적무상치료제가 실시된 이 나라이다. 백송리로 대학생들을 소환한것도 그때 있은 일이고 전후복구건설의 계획도가 마련된것도 전화의 날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