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백산마루 12


 
 

12

 

《사람 살려줘요ㅡ》

당장 어떻게 될것 같은 다급한 소녀애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돌우에 삐죽이 드러난 칼날같은 바위츠렁을 꽃순같이 작고 연약한 손으로 붙잡고 간신히 생명을 부지하고있는 소녀의 몸은 세찬 물결에 휘감겨 빨래처럼 이리저리 흔들거린다.

솜옷을 벗어던지고 첨벙 물에 뛰여든 총각애는 얼음처럼 찬 이른 봄철의 골물을 헤가르며 소녀애를 향해 첨벙첨벙 다가간다. 구원자를 본 소녀는 고무줄처럼 탄성이 있는 긴팔로 총각애의 목을 꽉 휘여감는다. 총각애는 숨이 막힐듯 했으나 소녀를 구원해야 한다는 일념때문에 탓하지 않고 서둘러 기슭으로 나온다.

소녀애는 예닐곱살쯤 나보인다. 입술이 새파랗게 질린 소녀애를 들여다보던 총각애의 얼굴에 놀라는 빛이 어린다.

총각애는 소녀보다 일여덟살은 더 나보였다.

그들은 바람을 피해 산비탈 양지쪽에 앉아 기이한 인연(아직은 그렇게 말할수 없지만)을 맺어준 강물을 내려다보고있었다. 소녀애는 총각애가 물에 뛰여들 때 벗어놓았던 솜저고리를 후렁하니 입고있었다. 총각애는 젖은 옷을 그대로 입고있으면서도 애써 추운 티를 내지 않았다.

그들의 가슴이 둘 다 콩콩 뛴다. 소녀애는 금방 닥쳤던 공포때문이고 총각애는 그를 구원했다는 기쁨때문이다. 봄의 훈향이 그들의 몸을 인차 덥혀주었다. 가슴도 어지간히 진정시켜준다.

《너 어쩌다 물에 빠졌댔니?》

《나비가 앉았댔어, 노랑나비. 저기···》

이제야 자기를 수습한 소녀가 배시시 웃으며 자기가 필사적으로 목숨을 지탱하고있던 물우의 뾰족바위를 가리켰다.

그 소리에 총각애는 어른처럼 히히 웃었다. 소녀가 깔깔 따라웃었다.

둘의 마음이 동시에 즐거워졌다.

《앞으로 그러지 마. 그땐 누가 꺼내주겠니?》

《고마워, 오빠.》

소녀는 총각애의 팔을 끼며 젖은 머리칼이 함치르르한 머리를 총각의 어깨에 기대였다. 그러자 총각애는 갑자기 뭔가 소녀를 위해 주고싶은 마음이 생겨났다. 그에게 줄것이 없을가 하여 고개를 빼들고 사방을 살핀다. 그러나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 총각애는 실망하여 다시 눈길을 소녀애에게 돌렸다.

《내 이름은···》하고 소녀애가 쪼꼬만 입을 오물거리자 총각애가 손바닥으로 다급히 그의 입을 가린다.

《네 이름은 내가 안다.》

《어떻게 아니?》

《안다니까!》

《그래두 대줄래.》

《정 그러면 난 성을 낼테야!》

소녀가 놀란듯 총각애를 쳐다보다가 기여들어가는 목소리로 묻는다.

《그럼 오빠이름은?》

《대줄수 없어.》

《오빤 참 별나구나.》

참 이상한 싱갱이질이다. 이때 총각애가 무릎을 모으고앉아 바로 발앞에서 옥색의 패랭이꽃을 발견하고는 신기한 보물을 얻은듯 기뻐하며 정히 꽃을 꺾어 소녀의 젖은 머리에 꽂아준다.

소녀애가 그 꽃을 뽑아서 눈앞에 들고 들여다보며 《야, 곱구나!》한다.

《야, 머리에 도로 꽂아라.》

《아니, 들고 볼래.》

《너 꽂지 못하겠니?》 총각애가 성을 낼 잡도리이다.

허나 소녀애는 방글거리기만 한다.

《나 이것 오래오래 건사할래.》

《정말?》

소녀애의 생각을 알아맞힌 총각애가 이렇게 반문하며 성을 풀고 기뻐한다.

《응, 나 정말 그렇게 할래.》

소녀는 총각애의 몸에서 자기 팔을 뽑으며 불현듯 《오빠, 나 나비, 노랑나비 잡아줘!》한다.

《그 나비때문에 혼나구두?》

《아니, 아니야! 나 노랑나비!》

《너 고집쟁이로구나!》

총각애가 손을 들고 일어서며 어디에 노랑나비가 있을가 사방을 살피는데 《저기 있다.》하고 소리치며 소녀애가 먼저 달려간다. 그는 홀릴듯 나풀거리는 노랑나비를 쫓아 관목숲속으로 사라진다. 그가 사라진 관목속에 무지무지 연분홍진달래가 곱게 피여있다.

하늘에 종다리가 지종지종 우짖는다.

총각애가 고개를 젖히고 한참 종다리를 쫓고있는데 소녀애가 노랑나비를 잡아가지고 나타난다.

《자, 이건 오빠가 가져!》

《내가?》

《오빤 나한테 꽃을 주었으니까.》

응당 나비를 받을 자격이 있으며 또 나름대로 보답을 해보겠다는 사랑스러운 소녀를 한참이나 바라보고있던 총각애가 갑자기 머리를 외로 돌려버렸다.

《오빠 우누나.》

소녀애는 올롱해진 눈으로 총각애의 상기된 눈시울을 들여다보았다.

《쳇, 아니야, 울긴···》

《그런데 왜 그래?》

《난 나비를 안가져도 돼.》

《나를 살려준 값이야.》

《이게 값이 되니?》

《적어? 그럼 내 두구두구 갚을게. 지금은 이것밖에 없어!》

총각애는 소녀를 담쑥 안아들고 앵두빛같은 빨간 볼에 쪽 하고 입을 맞춰주었다. 소녀는 싫지 않은듯 캐드득거리며 그의 품에 오래도록 안겨있다.

이윽고 총각애의 품에서 빠져나오며 소녀애가 말했다.

《우린 래일 평양으로 이사간댔다.》

《나도 알아.》

《어떻게? 오빤 뭐나 다 안대.》

소녀는 이상한 눈으로 총각애를 바라보았다.

《다 아는 수가 있지.》

《오빠도 평양으로 와.》

《넌 아버지를 따라 평양으로 가지만 난 가지 못해. 우리 아버진···》

거기까지 말한 총각애는 왜서인지 말을 끊고 입술을 감빨았다.

《농장원이거던. 땅을 떠메고갈수는 없단 말야.》

그 말을 들은 소녀애는 금시 생사기로에 처했던 자기 처지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총각애를 련민이 가득찬 눈으로 바라보았다.

《우리 아버진 과학원으로 간대.》

《것두 알아.》

《오빠 과학원이 뭘 하는덴지 아니?》

《몰라.》

태양이 총각애의 얼굴을 직선으로 내리쪼이지만 그는 돌아서지 않았다. 그것은 패랭이꽃이 곱고 종다리가 우짖으며 방금전에 소녀의 생명을 위태롭게 할번 했지만 아름답기 그지없는 골물이 흐르는 이 강동땅에서 이처럼 좋은 봄날에 사랑스런 소녀를 다시 볼수 없다는 생각이 갑자기 스며들었기때문이다. 검은 속눈섭에 파묻힌 역시 검은 두눈과 연약하고 의지할곳 없는듯 한 매혹적인 긴 목을 처음 보는듯싶었다.

이 소녀의 곁에서는 자신도 어린애로 느껴졌으며 자기 어깨에 실린 온갖 시름을 모두 잊게 되는것이다.

헤여지게 되였을 때 소녀가 갑자기 물었다.

《정말 내 이름을 알아?》

《안다는데!》

《거짓말 아니지? 한번 불러봐!》

···

책상우에 엎드린채 쪽잠에 들었던 그는 소녀의 이름을 막 부르려다가 꿈에서 깨여났다.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꿈은 완강한 의지로 자기의 기억속에서 지워버리려고 했던 추억의 한쪼박을 펼쳐놓았다. 바늘로 찌르는듯 한 아픈 추억을! 가슴에 박힌 무수한 파편쪼각들은 그 녀자의 이름에 응결되여 예리한 큰 칼로 찔러대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그 이름이 제일 두려웠다.

그는 머리를 흔들며 다시 펜을 찾아들었다.

그러나 추억은 꿈에서만 아니라 생시에도 살아나는 법이다.

···그는 대학입학시험관으로서 교실안을 왔다갔다하고있었다.

응시자들은 자기가 아는것을 한자라도 더 많이 써야 한다는 하나의 열망으로 문제가 제시되자부터 시험지우에 부지런히 펜을 놀리고있었다.

중학교를 금방 졸업하고온듯 한 한 어린 처녀만이 인차 쓰지 않고 머리속에 답안을 굴리고있었다. 긴 속눈섭속에 까만 진주처럼 묻혀있는 눈동자, 눈을 쪼프리고 사색에 골몰하는 그 눈동자는 가랑잎들이 쌓인 숲속에 숨어있는 보석과도 같았다. 10여년동안 그 보석을 언제한번 잊은적 있었던가.

그는 그 처녀를 대뜸 알아보았다.

《아!···》

그는 그 이름을 피해 추억을 계속 더듬어나갔다.

언젠가 전국중학생들의 영어경연에서 1등을 하여 텔레비죤에 소개될 때 그 이름을 듣고 깜짝 놀랐던 그였다. 어렸을 때의 그 모습을 찾아보느라고 했다. 모색은 많이 변했지만 그 눈빛만은 기억속에 뚜렷했다. 그 이듬해 다과목경연에서 또다시 1등을 한 그를 보고 얼마나 기뻤던가.

한동안이 지나서 처녀는 머리를 숙이고 원주필을 달리기 시작했다. 처녀의 등뒤에 가선 그는 시험지를 들여다보고 마음속으로 경탄을 금할수 없었다. 수재로 자라났구나!

그는 처녀가 시험지를 바치고 나갈 때 처녀의 잔등을 가볍게 건드리며 《시험이 끝난 다음 기숙사 407호실로 오시오.》라고 속삭였다.

시험을 치느라고 긴장했던지 처녀는 《네!》하고 맑은 목소리로 대답하며 고개를 까딱했다. 시험관이 부르니 긴장해져서 덤비며 사라지는 처녀···

처녀가 방에 들어와도 문을 등지고앉아 책에서 얼굴을 떼지 않고있는 한 괴짜만 아니였다면 정말 빈방이였을것이다. 처녀는 발볌발볌 그한테 다가가 등뒤에 서서 이리저리 그의 모습을 훔쳐보았다. 그리고는 그의 어깨너머로 패랭이꽃 한송이를 살그머니 떨어뜨렸다.

와닥닥 뛰쳐일어난 그는 목이 긴 늘씬한 처녀를 쳐다보았다.

《그간 안녕하세요, 오빠!》처녀가 말했다.

《난 며칠 기다리다가 단념했었지. 왜 인차 오지 않았소?》

《누군지 몰라서 며칠 생각하느라고 늦었어요. 여기 사람들을 통해 오빠의 고향이 우리 고향과 같다는걸 알고서도 생각하고 생각하다가 오늘 아침에야··· 용서해요.》

처녀가 미안한듯 머리를 숙였다.

《그렇단 말이지?》

그는 처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

《부모님은 아직 강동에 있어요?》

《응. 아버님이 홀로··· 그래서 난 기숙사생활을 하고있지.》

《불편하겠군요.》처녀는 쓸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 아버진 사회과학원에 있어요. 거기서 우리 나라 력사를 연구하셔요.》

《우리가 무슨 그런 말만 하고있담, 이 기쁜 장소에서!》

그는 처녀의 두손을 이끌어 창문쪽으로 돌아서며 흥분해서 저도 모르게 처녀의 이름을 불렀다.

《례영이를 이렇게 다시 만날줄이야. 참, 대학엔 붙었겠지?》

그는 입학자명단이 발표되는 첫날에 벌써 그의 이름을 새겨보았었다. 하지만 다시 꼬집어 물었다. 기쁨은 나누면 두배로 커지는 법이다. 례영이가 웃음을 함뿍 머금고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떨어졌어요.》

《거짓말!》

둘이가 손을 맞잡으며 웃음을 터뜨렸다.

《붙었어요!》

《나도 벌써 봤어.》

《그런줄 알았어요.》

처녀는 패랭이꽃을 창턱에 놓인 꽃병에 정히 꽂아놓았다. 그러던 처녀가 갑자기 처량한 모습을 지었다.

《오빠, 나 배고파요. 찹쌀기름튀기가 먹고싶어요.》

그는 당황해났다.

《우리 방에 한사람 또 있어. 그 동무가 오면 내 돈을 얻어보겠어.···》

《돈은 저한테 있어요. 적어도 한개값은.》

당황해하는 그와는 달리 처녀에게는 자기들의 상봉과 나누는 이야기들이 례사롭고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그는 처녀와는 달리 도무지 정신을 수습할수 없었고 점점 더 어리둥절해지는것이였다.

이 몇해어간 그는 자기 일에만 골몰하느라 여념이 없었으며 머리에 어학지식을 다져넣는외에는 아무것에도 눈을 팔지 않았다. 텔레비죤에 소개되는 처녀의 중학시절모습을 보면서 자기의 후렁한 솜옷을 걸치고 바들바들 떨던 소녀의 모습을 몇번 상기한것이 고작이였다. 그에게 있어서 처녀는 물에 빠졌던것을 구원해준 조그마한 소녀에 지나지 않았다. 옛모습그대로 기억속에 보존되여있던 사람이나 물건의 모양이 세월이 흐른 뒤에 어떻게 변모되였는가를 보게 되면 어차피 놀라든가 혹은 두려워하거나 기뻐하게 된다.

그런데 그는 10여년전은 물론 몇년전에 텔레비죤에서 보았던 소녀와 까만 눈을 내놓고는 전혀 비슷하지도 않은 처녀를 보았을 때 자기자신이 무엇을 느꼈던지조차 알수 없었다.

《그래 집은 다 무사하오? 어머니랑?》

역시 공연한 물음이였다. 처녀는 대답대신 가볍게 고개를 까딱까딱 해보였다.

자기가 펼쳐놓았던 책에 눈길을 주는 처녀의 머리칼에는 독특했던 향촌의 봄향취와 지글지글하던 해빛과 야생적인 물비린내가 보존되여있는듯 했다.

기숙사를 나선 그들은 구내 매점에서 찹쌀기름튀기 한개를 사들고 이리저리 공원의자를 골라 나란히 앉았다. 큰 음식꾸레미를 펼칠것처럼···

이 시절 처녀들의 기분이란 순간에도 열두번 변하는것이였다. 처녀는 기분좋게 찹쌀기름튀기를 한입 먼저 베먹고(먹는척 했을뿐이다.) 《자, 오빠차례!》하고 그에게 내밀며 까르르 웃었다. 그는 사양하지 않고 한입 덥석 베여먹었다. 다시 까르르 웃는 처녀의 웃음소리가 공원구내에 메아리쳤다.

미구에 처녀가 웃음을 걷고 정색해서 물었다.

《오빤 아직도 자기 이름을 안 대주었지요?》

처녀의 질문이 너무도 응당한것이였으나 그는 당황하여 어쩔바를 몰랐다.

처녀가 계속했다. 《난 어머니한테서 두고두고 욕을 먹어왔어요. 은인의 이름 석자도 모르는 맹꽁이같은 계집애라구.》

《그 욕은 앞으로도 계속 먹어야 할거요.》 그는 나직이 한숨을 쉬였다.

《그건 왜요?》

《나하구 약속해. 다신 이름을 묻지 않겠다구.》

《오빤 참 이상한데가 있어. 그게 무슨 큰 비밀이라구? 오빠가 안 대줬다고 해서 내가 모를가봐? 내가 불러볼가요?》

처녀가 그 고운 입술을 막 열려는 순간 그는 다급히 그의 입가에 손가락을 가져다댔다.

처녀가 까르르 웃음을 터쳤다.

《정 그럼···》

처녀는 그의 손을 끌어당겨 손바닥에 글을 새겼다.

《신ㅡ진ㅡ웅.》

진웅의 실망한 표정을 보면서 처녀가 물었다. 《왜 기분이 갑자기 그래요? 내가 알지 못할걸 알았나요?》

《난 례영이가 내 이름을 몰랐으면 했어.》

《건 왜요?》

《그저, 적어도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는···》

《그럼 좋아요. 그때까지는 이름을 안부르기로 약속해요. 그저 오빠라고만 부를래요.》

얼마나 정이 가는 례영인가.

그다음 추억은 토막이 졌다.

추억은 끈질기게 그의 눈앞에서 배회하며 그를 괴롭히고있다.

발굴조성원들과 함께 강동군 려관의 한 방을 차지한 그는 머리를 싸쥐고 몸부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