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백산마루 11


 
 

11

 

이슥한 밤 보통강가의 낚시터에 두사람이 낚시대를 드리우고 얼음구멍을 들여다보고있었다.

《여보게, 오늘까지 빈손이면 처한테 쫓겨나지 않겠나?》

빈정대는 이쪽사람의 목소리에 양털뜨개모자를 눈섭아래까지 푹 내려쓰고 맞은켠에 앉은 상대는 얼음구멍만 들여다보며 대꾸를 하지 못했다. 그러자 이쪽은 계속 부아를 돋구었다.

《아무래도 내가 몇마리쯤은 줘야 하겠는걸.··· 그렇지 않다간 요전처럼 또 시장에서 사들고 가야겠는데 그 꼴이야 어떻게 보겠나.》

상대가 참지 못하고 맞받아 약을 올렸다.

《흥, 자기 주제에 누굴 흉봐? 품값도 못한다구 이젠 녀편네가 밤참도 안 싸준다면서?》

《내가 왜 밤참을 못 싸가지구 나와?》

그가 한옆에 놓여있는 가방을 발로 툭 건드리자 《쟁그랑ㅡ》하고 유리그릇이 부딪치는 맑은 소리가 얼음판우에 울려퍼졌다.

《이래두?》

벌써 그는 붕어탕에 술 한잔 받쳐먹을 광경이 눈앞에 떠오르는지 입이 벙글서 벌어졌다.

《안주감은 그물망태에 이미 들었겠다, 어때?··· 좀 있으면 저가락이나 들구 기신기신 나한테 찾아들걸.》

밤낚시군들에게는 발바닥이 떡떡 달라붙는 날씨같은것이 애당초 무관계한듯싶었다. 하늘에는 뭇별들도 추위에 오돌오돌 떨고있는데 강반우에는 랑만이 한창이였다.

그들이 이런 수작들을 나누고있을 때 강기슭쪽 의자가 놓인 유보도에서는 아까부터 웬 처녀가 오도카니 앉아 점도록 일어날줄 몰랐다. 잡도릴 봐서는 장밤 새울 모양이였다. 그 처녀의 고민이 무엇인지는 누구도 모른다. 그만큼 누구도 그에게 주의를 돌리지 않고있었다. 밤이 너무 깊어 야등들도 꺼진 뒤였다.

어지간히 시간이 흘러 낚시군들이 마침내 주섬주섬 줄을 거두고 일어섰다. 뜨개모자가 내미는 그물망태에서 손바닥보다 작을사 한 붕어한마리를 받아든 개털모자가 얼굴을 찡그리였다. 그리고는 발치의 얼음구멍에서 자기의 그물망태를 들어올렸다. 화드득 하고 고기들이 뛰는 소리가 들렸다. 열여덟마리는 잘 되는것 같았다.

《매번 내가 손해란 말야. 오늘도 내 어휙고 전량이 이 붕어 한마리와 섞여서 둘로 동등하게 나눈다는게···》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는 조금도 아쉬워하지 않는듯 했다. 가방안에서 붕어모양의 손칼을 꺼내든 그는 익숙한 솜씨로 고기들을 손질했다. 그는 흥얼흥얼 타령까지 했다.

《보통강붕어가 남비안에 들어가니 물고기세상 싫증나서 인간세상 찾은거냐. 애석한 일이로다. 낚시에 코꿰여 남비에 들어가는 네 신세도 가련커니와 랠부터 녀편네에게 코꿰여 밤낚시출입 못할 내 신세 또한···》

뜨개모자는 못들은척 하고 수굿하니 앉아 고체연료에 불을 달았다. 깜찍하게 생긴 늄남비가 올라앉았다. 한겨울이지만 다행히 바람이 세게 불지 않아서 남비는 인차 보골보골 귀맛좋은 소리를 냈다. 개털모자가 품안에서 체온으로 덥히던 술병을 꺼내들었다.

《자, 잔을 이리 달라구.》

그들이 한창 붕어탕을 끓이며 술잔을 나눌무렵에 의자에 앉아있던 처녀가 마침내 무엇을 결심한듯 일어섰다. 그담은 구두뒤축소리를 내며 유보도끝을 위태하게 걸어갔다. 발자국소리가 가락맞지 못하고 듣기에 불안했다.

한번 아차하면 얼음우에 떨어질 위험천만한 곳을 걷는걸 보니 그의 마음이 벼랑끝에서 헤매는듯싶었다. 처녀는 무슨 영문에선지 유보도에서 내려서 얼음판우에 들어섰다. 걸음이 비척거렸다. 설마 처녀가 술을 마셨을가. 강 한복판에 이른 그는 얼음구멍을 뚫어지게 노려보더니 손에 들었던 꾸레미를 머리우로 쳐들었다. 순간 몸이 휘친했다. 꾸레미만이 아니라 사람까지 빠져버렸다.

내미는 술잔을 향해 손을 뻗치던 개털모자의 손이 허공중에 굳어졌다.

《왜 그래?》

술잔을 내밀던 뜨개모자가 의아해서 뒤를 돌아보는 순간 녀자의 쇠된 비명소리가 그의 귀전을 때렸다.

《사람 살려요.》

개털모자가 먼저 화닥닥 뛰쳐일어났다. 그 서슬에 남비가 뒤집혔다.

그들이 달려갔을 때 처녀를 삼켜버린 얼음구멍안에는 불룩한 비닐구럭지가 물을 먹으며 가라앉고있었다.

도착은 개털모자가 먼저 하였지만 동작은 뜨개모자가 더 날랬다. 어느새 방한화를 벗어던지고난 그가 얼음구멍안에 뛰여들었다.

···처녀는 구급과 소생실에 정신을 잃은채 누워있었다.

다행히 동상은 입지 않았고 인차 건져낸 덕에 물도 얼마 먹지 않았다. 술을 마신것도 아니였다. 그렇다면 자정이 훨씬 지난 깊은 밤에 얼음구멍에 빠진 처녀를 어떻게 리해해야 하겠는가. 틀림없이 심리적타격을 받고 정신이 이상해진 까닭이리라. 캄파를 놓고난 녀의사가 이불을 두툼히 덮어주고나서 지켜앉아 의식이 회복되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처녀가 피여났다.

《여기가 어디예요?》

《병원이예요. 움직이지 말고 누워있어요.》

의사가 명령하듯 말했으나 처녀는 기어이 상반신을 일으켰다.

《내가 얼음구멍안에 빠졌댔지요?》

《예, 참 다행이예요. 어쩌다 그런 일을···》

《그런데 누가 날?···》

《다행히 사람이 그 근처에 있었더군요.》

처녀의 눈이 의식을 잃었던 사람같지 않게 반짝했다.

《그게 누구예요? 혹시?···》

《두사람이였어요. 보통강에서 낚시질을 하댔다더군요.》

《그래요?···》

그래도 처녀는 미련을 가지고 계속 물었다.

《다른 사람은 없었는가요?》

녀의사가 머리를 저었다.

반짝했던 처녀의 눈에 실망의 그늘이 덮이더니 고개를 외로 틀었다. 그 서슬에 머리맡에 놓여있는 비닐구럭지가 눈에 띄였다.

《이건?···》

《동무 물건이지요? 그 낚시군들이 가지고왔더군요.》

구럭지를 바라보는 처녀의 눈에 이름 못할 증오가 비꼈다.

《이걸 치워주세요. 제발 내곁에서···》

이윽고 처녀는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녀의사는 비닐구럭지를 침대밑에 쑤셔넣으며 머리를 기웃거렸다.

그는 병력서를 작성해야 할 자기의 임무를 잊어버린채 처녀를 측은히 굽어보았다.

(실련당한게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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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현장에 도착한 박진규는 마음이 무거웠다.

(왜서일가?)

그는 곰곰히 생각을 정리해나갔다.

박진규에게는 다른것이 끼일 짬이 없었다.

공부를 할 때에는 학습에 전념했고 교편을 잡았을 때에는 강의에 전념했으며 과학자가 된 다음에는 연구사업에만 몰두했다. 그는 사소한 감정과 생활에 대해 일체 외면했다. 이것은 한생을 살아오면서 저도 모르게 몸에 습관된 일종의 계률이였다. 습관됐다기보다 자기자신이 이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고 철저히 준수해왔다. 그의 정신과 육체전체가 사업을 위해서만 존재하고있었다.

네 자식을 키워 살림을 차려줄 때까지의 모든 집안일은 마음이 느긋하고 신경질이라고는 전혀 낼줄 모르며 가정일에 들어서서는 무슨 일에서나 막히는것이 없는 농촌출신의 안해가 맡아주었다. 과학자로서의 앞날을 예견해서 얻은 안해인듯싶었다. 부뚜막손질이며 구멍탄을 빚는 일은 물론 자식들이 어렸을 때 썰매를 만드는것까지 안해가 맡아했다. 안해는 소박했다. 아빠트생활을 하는 그는 늘 방안보다 조금만 더 넓은 크기의 터밭이 있었으면 하는것이 소원이였다. 만약 그런 터밭이 실지 차례졌더라면 안해는 그 밭에서 3모작정도가 아니라 4모작, 5모작을 했을것이다. 그런 부지런한 안해를 둔덕에 자기의 《계률》을 지켜갈수 있었다.

지금은 그가 일생을 통해 지켜온 그 계률을 더욱 엄격히 지켜야 할 때였다. 어떠한 과제를 맡았는가!

김석진이 김정일동지께 편지를 올렸고 그 편지에 수령님께서 친필로 회답서한을 보내오시였다는 사실이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회답의 사상을 전달받은 사회과학원의 모든 사람들이 력사와 조상을 대하시는 수령님의 고결한 애국심앞에 더욱 머리를 깊이 숙이였고 민족의 후손으로서의 자신들의 의무를 자각하였다.

그때 김석진이 그를 자기 방으로 불렀다. 박진규는 김석진의 편지 겉표지에 씌여진 수령님의 친필서한을 눈으로 직접 보는 순간 가슴이 터질듯이 높뛰였고 세찬 흥분이 온몸을 휩쌌다. 흥분이 점차 가시여지자 그는 단군릉발굴을 두고 혹시 성과가 없을 경우를 예견했던 자기의 우려가 매우 어리석고 지어는 수령님앞에서 불손했다는 자책감까지 들었다.

그러자 머리가 전에없이 맹렬히 돌기 시작했고 지금껏 그를 유혹하고있던 강동지방의 단군전설들이 정설로 느껴졌으며 돌박산의 막돌이 금덩이로 변하는 환각이 왔다.

《내 편지도 마저 읽어보시오.》

그는 환각속에서 김석진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환각에서 깨여나지 못한채 당에 올렸던 김석진의 편지원문을 읽어내려갔다. 박진규는 김석진의 빈틈없는 과학적주장을 한두번만 들어오지 않았다. 그자신이 탄복한적이 한두번이였던가. 그러나 지금 그의 눈앞에서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것으로 여겨지고 김석진이 한자두자 모를 박아 쓴 편지의 글줄들이 모래알처럼 흩어지는것이였다.

박진규는 환각속에서 숨가쁘게 말했다.

《원장선생님!》

원사가 한손을 들어 그의 말을 밀막았다.

박진규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의식하지 못한채 원장의 입만 바라보았다.

《선생은 기적이 일어나리라고 믿소?》

기적이 일어나기를 누구나 바란다. 박진규의 말을 《잡소리》로 몰아붙인 리관직이 역시 기적이 일어나기를 너무도 바라던 나머지 그것을 기정사실화하고 의심을 가지는데 반발한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수령님께서는 기적을 고대하시는게 아니라 과학적인 해명을 바라고계신다, 철저한 과학적인 해명을··· 한참만에 석진의 무게있는 목소리가 박진규의 귀청을 때렸다.

《박진규동무, 발굴준비를 다그치시오!》

박진규는 환각에서 깨여났다. 그리고 힘찬 걸음으로 원장방을 나왔다. 실로 그에게는 다른것이 끼일 짬이 없었다.

이번 발굴을 총책임진 리관직이 먼저 현지로 떠나겠다고 그를 찾아왔다. 자기의 동창으로서 어찌 보면 가장 가까운 사이여야 한다. 자기와 리관직의 인간관계력사는 적어도 40여년이 된다. 그런데 왜 자기는 그를 신뢰할수 없는것인가. 많은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고있는 일군으로서 자기의 옛동창이며 또 상급인데···

한가지 마음이 놓이는것은 수령님의 친필서한을 전달받은 리관직이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달라졌다는 사실이였다. 그는 행동을 자중하였다. 그러한 그의 행동에는 전에없이 무게가 실려있었다. 그는 사람들앞에서 박진규를 대함에 있어 정중성을 표시하느라 애썼다. 《잡소리》문제를 사죄도 하고.···

그런데 조급성만은 여전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결함일수는 없었다. 수령님의 친필서한을 받은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지 않는가. 그러니 탓할것이 못된다. 마음속에 걱정주머니 여러개를 달아놓고 우려요, 뭐요 하는것보다 단순한것이 더 성실한것일수도 있다. 응당 그래야 하는것이다.

리관직이 박진규에게 상급다운 정중한 어조로 말했다.

《내가 먼저 현지로 내려갈테니 동문 좀더 준비를 하게. 빈틈이 있어서는 안되겠네.》

그의 말에 박진규는 기쁜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현지로 내려온 리관직은 지방당 및 정권기관일군들과의 긴밀한 련계밑에 발굴사업의 성과적보장을 위해 그 준비사업을 빈틈없이 해나갔다. 그는 릉주변의 개인집들을 철거시키고 발굴에 유리하도록 지대정리를 해놓았는데 이 사업에 금요로동대상인 군급일군들을 동원하였다. 발굴사업의 선행공정을 솜씨있게 해치운셈이였다. 역시 그는 조직적수완이 뛰여났다.

뒤따라내려온 박진규는 필요한 선행공정을 완료해놓은 관직의 소행에 사의를 표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래서 한마디 했더니 그는 성수가 나서 여전히 덤벼쳤다.

《너무 늦잡지 말고 어서 다그치게!》

그러나 박진규의 귀에는 그 소리가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 그는 자기 딸 례영이에 대하여 생각하고있었다.

발굴사업을 위해 떠나오기 전날 밤 집에 들어가보니 일찍 퇴근해서 출장준비를 해주겠다고 한 사랑하는 막내딸 례영이가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데 재밤중에 병원에서 전화가 왔는데 얼음구멍에 빠진것을 구급실에서 소생시켰다는것이다. 그길로 병원으로 달려갔다. 딸은 이미 정신을 수습했으나 아버지앞에서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화가 나도록 묻고싶은것이 많았으나 의사가 정신적부담을 주는것이 해롭다고 하기에 더이상 묻지 않고 온밤 머리맡을 지키고 앉았다가 다음날 아침 발굴조일행을 데리고 여기 강동땅으로 왔다.

일손이 잡히지 않았다. 딸의 꺼진 볼편과 실성한듯 허공을 쳐다보는 그 처량한 눈길때문에 긴장한 생활계률을 더는 지켜낼 힘이 없음을 의식한 박진규는 마음이 괴로왔다. 다른 자식들이 시샘을 낼 정도로 박진규는 막내딸에게 애정을 기울여왔다. 례영이는 부모들이 흔히 말하듯 《어느것하나 깨물어도 아프지 않은게 없는 다섯손가락》중의 하나가 아니였다. 그 까닭이 무엇인지는 자기자신도 몰랐다. 다만 그의 기억속에 잊혀지지 않는것이 있다면 자기가 단군릉벌초사건으로 처벌문제가 제기되였을 때, 중학교 교원직도 그만둬야 한다는 말을 힘들게 집안에서 꺼냈을 때 묵묵히 침묵을 지키며 울먹거리던 다른 자식들과는 달리 《일없어요, 당신자신의 마음만 결백하면야···》하며 선선한 표정을 짓던 안해와 함께 《아부지, 일없어.》하고 당돌한 지지를 표명하던 짜개바지를 입은 막내딸의 모습이였다. 그것을 지금껏 귀중하게 기억하고있는것은 사실 철부지시절의 자식에 대한 어리석은 믿음인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그때의 례영이의 모습을 영원히 잊을수 없었다. 그 짜개바지를 입은 막내딸이 눈물겹도록 고마왔다. 다섯 자식의 표상은 각이하게 남아있다. 그러나 막내딸에 대한 표상은 언제나 그 모습이였다. 실은 그래서 막내딸에게 그때부터 남다른 애정을 기울여오는것이였다. 딸자식이 력사학을 전공하게 된것도 사실은 자기의 뒤를 이었으면 하는 박진규의 소원에 따른것이였다. 그 딸에게 불미스러운 일이 생긴것이다.

침상에 누워 입을 꼭 다문채 말 한마디 하지 않고있던 례영이의 모습이 얼른거렸다.

(단지 례영이때문인가?)

박진규는 머리를 저었다.

딸이야 믿음직한 안해가 든든히 지켜앉았는데 별일 있을라구. 자기가 없는것으로 하여 더 심각해질리는 없다. 자기는 마음속 소원밖에 아무런 도움도 줄수 없는 처지이다. 딸의 일은 마음속에서 얼마든지 지워버릴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는 드디여 리유를 찾았다. 리관직부원장이다. 바로 자기의 마음에 무겁게 드리우고있는 추는 딸에게 생긴 불미스러운 일이 아니라 리관직이라는 존재, 이번 발굴사업을 행정적으로 책임지고있는 자기의 직속상관인 어제날의 동창생 리관직이였다. 례영이가 왜 밤중에 혼자 유보도를 걸었으며 제 죽을줄 모르고 얼음구멍에 빠져든 사연 같은것은 후날에 얼마든지 해명될것이고 그리 큰 의의를 가지는 일도 아닌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