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소유자국가

노예소유자국가

 

노예소유자계급의 리익을 옹호하고 노예를 비롯한 근로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유린말살하는데 복무한 국가.

원시공동체사회가 붕괴되고 노예소유자계급과 노예계급이 출현하면서 그들간의 적대적모순과 투쟁의 결과에 발생한 첫 착취자류형의 국가였다.

우리 나라의 고조선, 부여, 진국, 구려는 모두 노예소유자국가였다.

노예소유자국가의 경제토대는 생산수단과 생산자인 노예에 대한 노예소유자들의 완전소유에 기초한 노예소유자적생산관계였다.

노예소유자적생산관계와 노예적착취제도는 이 국가의 지배적경제제도로 되여있었다.

노예소유자국가는 계급적본질에 있어서 노예소유자계급의 독재실현의 무기였다.

노예소유자국가는 지배계급인 노예주들의 리익을 옹호하고 노예를 비롯한 근로대중을 무제한하게 억압착취하기 위한 도구였다.

노예소유자들은 노예소유자국가의 보호밑에 특권적인 지위와 권력을 유지하였으며 노예들을 마소처럼 부려먹고 팔고 사거나 죽이였다.

노예소유자국가는 대내적으로 노예와 생산수단에 대한 노예주들의 사적소유와 리익을 보호하고 대외적으로는 더 많은 령토와 노예를 획득하려는 노예주들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침략전쟁을 감행하였다.

노예소유자국가는 노예소유자적군주제와 공화제형태로 존재하였다.

노예소유자적군주제에서는 국가권력이 공식적으로 한 사람, 군주에게 집중되여있었다. 군주는 신격화되였으며 그의 절대적인 지위는 세습적으로 전승되였다. 노예소유자적군주제는 대체로 군주의 권한이 무제한하고 그의 명령이 곧 법으로 되는 전제적군주제였다.

고조선을 비롯한 우리 나라의 모든 노예소유자국가들과 중국, 에짚트, 인디아, 바빌로니아, 아씨리아, 페르샤 등의 고대국가들은 전제군주제국가였다.

노예소유자적공화제형태에는 민주공화제와 귀족공화제가 있었다. 민주공화제형태의 전형적인 국가는 BC 5세기~4세기의 고대그리스의 아테네국가였다. 아테네에서의 노예소유자적민주주의는 주로 민회의 조직과 활동에서 표현되였다. 민회에는 노예소유자의 성인남자들 전체가 참가하였으며 여기에서 법을 제정하고 전쟁의 선포와 강화 기타 중요한 국사를 토의, 결정하였다.

노예소유자적귀족공화제의 전형적인 형태는 고대로마국가의 공화제였다. 여기에서는 높은 관직에 있던 귀족들가운데서 임명된 사람들로 구성되는 원로원이 최고국가권력기관으로 되였다. 계급적모순이 더욱 첨예화됨에 따라 귀족공화제는 군주제로 교체되였다.

노예소유자국가의 형태는 다양하였으나 그것은 모두 노예소유자계급의 독재실현의 무기였다.

노예소유자국가는 노예주들의 착취와 억압을 반대하는 노예들의 끊임없는 투쟁에 의하여 붕괴되고 봉건국가로 교체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