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기시대

청동기시대

 

동, 석, 연 등의 화합물인 청동으로 로동도구와 무기, 치레거리를 만들어쓰던 고고학적시기.

청동기시대는 인류력사상 첫 금속기시대로서 철기시대에 앞선 시대이다. 수십만년동안 돌, 뼈, 나무 등으로 만든 로동도구로 자연을 정복하는 창조적로동을 줄기차게 해오던 인류가 처음으로 쓰기 시작한 금속도구는 자연동을 녹여서 만든 동도구였다. 동은 녹음점이 높으면서 (1 083℃) 무르기때문에 녹이기 힘들면서도 쓸모가 별로 없어서 생산력을 발전시키는데 그리 큰 역할을 놀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인류는 700-900℃에서 녹일수 있으면서도 동보다 훨씬 굳은 합금인 청동으로 도구들을 만들게 되였다.

조선반도와 료동반도, 연해주일대의 넓은 지역에 분포되여있는 우리 나라 청동기시대유적들에서는 청동으로 만든 도끼, 단검, 활촉, 끌 등과 치레거리, 이것들을 만들 때 쓰인 거푸집들이 드러났다.

청동기의 사용은 자연을 정복하는 투쟁을 훨씬 쉽게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동기시대 전 기간을 통하여 석기는 광범히 사용되였으며 그 이전시기보다 가지수가 늘어나고 질도 높아졌다. 그것은 청동기원료가 석기의 재료에 비하여 매우 제한되여있을 뿐아니라 청동기의 제작과정이 어렵고 복잡하여 당시의 기술발전수준으로서는 일상적으로 많이 쓰이는 도구를 다 청동으로 만들수 없었기때문이였다.

우리 나라 청동기시대유적들에서 청동기보다 석기가 더 많이 나오는 리유가 여기에 있다.

청동기시대의 석기들은 신석기시대것보다 더 세련된것이였다. 그가운데서 돌단검, 돌활촉, 반달칼, 달도끼, 별도끼 같은것은 청동으로 만든것과 비슷하거나 꼭 같은것도 있다. 청동기를 만들면서 높은 온도를 낼수 있었으므로 질그릇을 굽는 온도가 높아졌고 이것으로 하여 질그릇제작술이 발전하여 음식그릇, 저장용기, 화식기 등 용도상 구분이 더욱 뚜렷해졌다. 질그릇에 굽이 생기고 손잡이가 달렸으며 색갈과 종류도 훨씬 다양해졌다.

이리하여 청동기시대에는 그 이전의 석기시대와는 구별되는 인류사회와 문화발전에서 거대한 변혁을 가져왔다.

생산력의 발전은 농업과 목축을 갈라놓는 인류사회의 력사에서 최초의 사회적대분업을 이룩하게 하였으며 이것은 지역에 따라 각이한 경제문화적류형을 형성하게 하였다. 또한 청동기문화의 발전은 전문적인 기술과 시설을 필요로 하는 청동기제작수공업을 독자적인 생산부문으로 즉 농업과 목축업에서 떨어져나오게 하여 인류사회의 력사에서 제2의 사회적대분업을 이룩하게 하였다.

농업과 목축업의 분리와 이것들로부터 수공업의 분리는 이들 호상간의 교환을 필연적이며 정상적인것으로 되게 하였다.

이리하여 전문적인 상인이 발생하게 됨으로써 제3의 사회적대분업이 이룩되였다. 사회적대분업이 이룩되고 생산력이 가일층 장성됨에 따라 농업에서의 개간과 밭갈이는 남자의 일로 되였으며 목축에서 가축떼를 다루는것도 남자의 일로 되였다. 경제활동에서 남자의 역할이 증대됨으로써 모계적원시공동체안에 부계제가 확립되였다.

이러한 과정에 사적소유가 발생하였다. 생산력의 장성, 분업의 형성, 부계제의 확립, 사적소유의 발생은 원시공동체의 붕괴를 촉진시키고 계급사회로 넘어가게 하였다.

청동기시대의 사회발전은 지구의 모든 지역에서 꼭같이 진행되지 않았다. 일부 발전된 지역에서는 우리 나라에서와 같이 노예소유자국가가 발생하였으나 지구의 많은 지역에서는 청동기시대에도 원시씨족공동체사회가 계속된 곳도 있고 과도적인 촌락공동체단계에 들어선 곳도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청동기시대가 발전된 B.C. 3000년기 초에 벌써 고대국가인 고조선이 발생하였다. 이 시기 주민들은 부락터를 비롯하여 집자리와 고인돌무덤, 돌관무덤 등 많은 유적을 남겨놓았다. 그들이 쓰던 질그릇에는 팽이그릇을 비롯한 민그릇과 함께 도기가 새로 나타났고 청동기에는 비파형단검과 비파형창, 끌 등 여러가지 무기와 도구들이 있다.

우리 나라 청동기시대문화는 발전된 신석기시대문화를 계승하여 합법칙적으로 발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