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계씨족공동체사회

부계씨족공동체사회

 

사회생활과 생산활동에서 남자가 주도적역할을 하던 원시공동체 마지막단계의 사회조직.

부가장적씨족공동체라고도 한다.

씨족공동체는 그 발전단계로 보아 크게 모계씨족공동체와 부계씨족공동체로 나눈다.

인류는 발생후 자주성을 위한 목적의식적인 로동과정에 재부를 창조하고 로동도구를 끊임없이 개조하였으며 그에 따라 생산력이 발전하고 사회도 발전하게 되였다.

원시공동체사회의 생산활동에서 사냥과 채집을 하던 남성들이 신석기시대 후기에 생산물획득에서 안전성이 더 높은 농업과 목축업을 담당하게 됨으로써 사회적생산에서 주도적지위를 차지하게 되였다. 이때로부터 사회적생산에서 남성들이 씨족사회를 이끌어나가는 주인으로 되였으며 모계씨족제도는 남성을 중심으로 하는 부계씨족제도로 교체되였다.

청동기시대에 생산력의 발전에 따라 공동체안에서 남성의 지위가 더욱 결정적인것으로 되면서 남성에 의한 녀성의 지배라는 사회관계가 보다 확고히 되였다. 모계씨족제도가 부계씨족제도로 교체된 결과 피줄도 어머니갈래가 아니라 아버지갈래로 따지게 되였다. 결혼도 종전과는 달리 남성들이 처를 자기의 씨족으로 데려가는 형식을 취하였다. 녀성들에게는 한명의 남자에게만 종속될것이 요구되였다. 혼인관계에서 대우혼대신 일부일처제가 지배적인것으로 되면서 남성들은 점차 자기의 처와 자식에 대한 소유욕이 강해졌으며 생산도구, 생산물, 장식품 등 개인소유물을 대를 이어 물려줄수 있는 새로운 가족형태를 요구하게 되였다. 부계제의 확립은 가족의 구성을 더욱 공고한것으로 만들었으며 생산력의 발전에 따라 가족단위의 경리를 보다 유리한것으로 만들게 하였다. 또한 가족은 씨족보다 모든 생활에서 점차 중요성을 띠게 되였고 부가장의 지위도 더욱 중요시되였다. 그러나 부계씨족공동체시기에도 씨족은 여전히 씨족회의와 거기에서 선출된 추장에 의하여 운영되였다. 생산수단과 생산물은 씨족의 공동소유였으며 부계가족은 하나의 공동로동단위로 씨족에서 분배하여준 생산물의 소비단위로 되여있었다. 부계씨족공동체말기에 사회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씨족공동체전체의 공동소유, 공동로동, 공동분배의 필요성은 점차 없어지게 되고 씨족대신 가족을 단위로 모든 생산활동이 진행되게 되였다.

씨족공동체안에서 생산수단과 생산물에 대한 사적소유가 발생하면서 공동체내부에서는 계급분화가 일어나게 되였으며 계급은 사람들을 지배하는 권력을 발생시켰다. 원시공동체사회말기 공동체안에서 발생한 착취계급과 피착취계급으로의 분렬은 계급사회를 산생시켰고 그로 하여 부계씨족공동체는 붕괴되였다.

부계씨족공동체시기의 유적은 우리 나라에서 많이 발견되였다. 이 시기 유적들은 대체로 농업과 집짐승기르기에 유리한 바다가나 강가, 구릉지대에 있다.

당시의 우리 선조들은 유리한 자연조건을 리용하여 기장, 조, 수수, 피와 같은 곡식을 심는 농사를 하였으며 집주변에서는 돼지, 소, 말, 개 등의 짐승들을 길렀다. 생산물이 늘어남에 따라 그것을 저장하는데 필요한 독, 항아리, 단지, 보시기 등 질그릇들도 만들어 사용하였다.

당시 주민들은 살림집도 종전의 움집에서가 아니라 지상건물에 가까운 집을 짓고 살았으며 몸을 장식하는데 필요한 치레거리들도 많이 리용하였다. 그것은 무산군 범의구석유적, 봉산군 신흥동유적 등 여러 유적들에서 가락지, 팔찌, 구슬, 옥고리, 단추 등이 흔히 발견되고있는것을 통하여 알수 있다.

부계씨족공동체시기 우리 선조들은 오늘의 우리 나라 령역과 중국 동북지방의 넓은 지역에서 살면서 주변의 다른 종족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풍부하고도 독자적인 문화를 창조하면서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