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족

씨족

 

같은 조상에서 나온 친족들로 이루어진 원시시대의 사회적집단.

씨족은 구석기시대 후기에 이르러 원시무리에서 발생하였으며 원시사회생활의 기본단위로 되였다. 씨족은 공통된 언어와 관습, 신앙 등을 가지고있는 원시인들의 사회적, 생산적집단이다.

원시사회에서 사람들은 씨족, 대씨족(부족), 종족 등의 사회조직을 이루고 공동체생활을 하였다. 여기에서 기본생활단위는 씨족이였다.

원시사회에서 사람들이 생존을 유지하며 자연의 구속에서 벗어나기 위하여서는 씨족단위로 사회조직을 이루고 공동생활을 운영하며 공동활동을 벌려야만 하였다. 그것은 자연을 정복하는 힘이 약하고 그들의 사상문화수준도 매우 낮은 상태에 있었기때문이였다.

씨족사회에서 모든 생산수단은 씨족의 공동소유였으며 로동도 공동으로 조직되였고 생산물도 균등분배되였다. 씨족사회에서는 씨족원 전체 성인남녀들로 구성된 《씨족평의회》를 가졌으며 여기에서 추장, 군사령관(군장)을 선거하였다. 씨족장으로는 씨족성원들가운데서 가장 신망이 있고 경험이 많은 사람이 선출되였다. 씨족장의 지위는 종신적이거나 세습적인것이 아니였으며 파면되면 그는 보통씨족원으로 되였다. 씨족장은 밖으로는 씨족을 대표하였고 안으로는 씨족을 지휘하였다. 군장은 평상시에는 없고 씨족간의 충돌이 일어나는 경우에 선출되였다. 씨족장이 군장으로 되는 경우도 있었고 싸움에 능하고 용감한 자가 군장으로 선출되기도 하였다.

씨족성원들사이에는 서로 협조하여야 할 의무가 있었으며 자기 성원이 다른 성원에 의하여 피해를 받았을 때에는 전체 씨족원들은 의무적으로 복수하게 되여있었다. 씨족에는 자기의 고유한 명칭이 있었으며 공동묘지, 족외혼풍습, 호상방조의 관습과 풍습이 있었다. 씨족사회에서는 사유재산과 그 어떤 특수한 계급도, 빈부의 차이와 사회적불평등도 없었으며 따라서 사람이 사람을 착취하는 행위도 몰랐다.

씨족제도는 당시 사람들의 창조적인 힘과 사상문화수준, 생산력의 발전정도에 알맞는 사회제도였다. 인류가 처음으로 가졌던 씨족은 어머니계통의 혈족들로 구성된 모계씨족이였으며 그것은 남성들이 사회적생산에서 주도적자리를 차지하게 되면서 점차 부계씨족으로 발전하게 되였다.

씨족은 자연의 구속에서 벗어나기 위한 투쟁과정에 경험과 지식을 얻고 문화를 축적, 보존하게 하며 언어와 사유능력이 발달할수 있게 하는 등 사람들의 창조적힘과 자주의식의 일정한 장성에 유리한 조건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씨족의 혈연적결합은 그 페쇄성으로 하여 인구증가에 지장을 주었으며 사람들의 이동이나 경제와 문화의 교류 등 여러가지 사회적관계의 발전을 억제하였다.

씨족, 종족의 우두머리들은 자기의 권세를 악용하여 좋은 땅을 독차지하고 공동체재산을 가로채여 부자로 되였으며 씨족, 종족을 지휘관리하는 정치적특권을 신분적으로 고착시켜 제도화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점차 씨족 또는 종족우에 올라선 특권층으로 되였다. 또한 사람들의 창조적능력과 생산조건의 차이로 하여 생활수단생산량에서는 차이가 생겨났으며 이는 빈부의 차이를 낳게 하였다.

로동도구의 개선과 분업의 발생으로 생산력이 발전하여 얼마간의 잉여생산물이 생기게 되였다. 즉 먹고 입고 살아나가기 위하여 씨족공동체라는 집단을 이루고 공동로동을 하며 생산물을 공동으로 분배하고 소비할 필요성은 적어졌으며 공동체적인 경영으로부터 점차 가족을 단위로 하는 개별적인 생산활동으로 넘어갔다. 공동로동이 개별적인 로동으로 이행하는데서 산림이나 초원은 공동으로 리용하였으나 경작지는 가족에게 분할되였다. 생산수단에 대한 씨족적공동소유가 무너지고 소가족이 생산과 소비의 단위로 됨에따라 씨족을 이루는 기본뉴대였던 혈연관계도 그 의의를 상실하게 되였으며 한 씨족공동체안에 다른 씨족의 가족이 들어와 살아가는 일이 생기게 되였다.

그리하여 혈연적으로 다른 각이한 씨족에서 모여온 가족들로 무어진 마을-촌락공동체가 형성되였다.

씨족적관계, 씨족공동체는 붕괴되였으나 씨족적관계의 잔재는 오늘에도 부분적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