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계씨족공동체

모계씨족공동체

 

인류가 원시시대에 처음으로 가졌던 녀성위주의 사회조직.

모계씨족공동체는 구석기시대 후기에 발생하여 신석기시대 중기까지 존재하였다.

이 사회에서는 생산력발전수준이 극히 낮았기때문에 굶어죽지 않기 위하여 다같이 로동하고 생산물을 고루 분배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이 시기 남성과 녀성간에 분업이 이루어져 남자는 유치한 도구로 사냥을 하고 녀자는 채집을 하였다. 그런데 사냥은 우연성이 많이 작용하므로 공동체성원들의 생존을 유지하는데서 확신성있고 안전한 담보로는 될수 없었다. 이에 비하여 녀성들의 채집은 보다 안전한 생존자료획득의 원천으로 되였으며 공동체살림을 유지하는데서 녀성들의 역할이 더 컸다. 따라서 공동체안에서 녀성이 주도적지위를 차지하게 되였다. 그리고 당시에는 집단혼이 지배하고있었으므로 자녀들은 어머니갈래에 의해서만 그 피줄을 따질수 있었다. 그리하여 씨족공동체 역시 어머니갈래의 자손들만으로 구성되게 되였고 그에 의하여 이어져갔다. 이리하여 모권이 사회를 지배하게 되였다. 이 모권은 그 어떤 정치적권력을 의미하지 않으며 모든 씨족성원에게는 완전한 평등이 보장되였다.

씨족의 경리와 주요행사는 모가장의 지도밑에 씨족전원이 참가하는 씨족협의회의 결의에 따라 운영되였다. 녀자가 주도적위치에 있다 하여 이 사회를 모권사회 또는 모가장적씨족공동체사회라고 하고 어머니갈래로 피줄을 따진다 하여 모계씨족공동체라고도 한다.

모계씨족공동체는 흔히 두 단계를 거쳐 발전한것으로 보고있다.

첫 단계는 그 발생으로부터 신석기시대 전기까지이다. 이 단계에서 사람들은 무리를 지어 떠돌아 다니면서 사냥과 물고기잡이, 채집을 하였으며 곳에 따라서 뚜지개농사도 하였다.

둘째 단계는 신석기시대 중기로부터 후기까지의 시기를 포괄한다. 이 시기에 사람들은 한곳에 자리잡고 살면서 갈이농사와 집짐승기르기를 주업으로 하였으며 모계씨족공동체는 가장 높은 발전단계에 도달하였다. 동시에 이때부터 그 붕괴의 징조도 나타났다. 갈이농사와 집짐승기르기는 규모가 크고 힘이 많이드는 일이므로 남자의 전문직업으로 되였다. 또한 그것은 확실성이 있고 생산성도 높았으므로 남자의 경제적역할이 녀자보다 컸고 이에 따라 남자의 사회적지위가 높아지게 되였다. 그리하여 공동체내에서는 모권이 점차 약해지고 부권이 확립되게 되였으며 신석기시대 말 청동기시대 초에 이르러 모계씨족공동체는 부계씨족공동체로 교체되였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의 모계씨족공동체는 구석기시대후기에 발생하여 신석기시대 전기에 그 발전이 절정에 이르게 되였다.

신석기시대 중기에는 부계적인 사회관계의 요소가 발생하였고 후기에는 그것이 지배적인 관계로 됨으로써 부계씨족제도가 확립되게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