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대결사에 기록된 우리의 승리의 전통 (1)

우리 군대와 인민은 지난 조국해방전쟁에서의 승리이후 60여년간 지속되여온 조미대결사의 갈피마다에 선군의 총대로 자랑찬 승리의 력사만을 기록하여왔다.

 

《푸에블로》호사건

 

《푸에블로》호사건은 미국의 침략야망을 물거품으로 만들고 나라의 존엄과 자주권을 영예롭게 수호하였으며 우리 군대와 인민의 영웅적기상을 온 세상에 떨친 사건이다.

지금으로부터 47년전인 주체57(1968)년 1월 23일 아직 갈매기도 깃을 펴지 않은 새벽 정상적인 해상순찰임무를 수행하고있던 우리 해군함정들은 원산앞 령해(동조선만 북위 39°17.4', 동경 127°46.9')에서 한 정체불명의 함선을 발견하였다.

배에 국적표식이 없으므로 우리 해병들은 그것을 밝힐것을 요구하였으나 함선은 황급히 공해쪽으로 배머리를 돌리더니 기관총사격을 가해오기 시작하였다.

우리 해병들은 재빨리 위협사격으로 상대방을 제압하면서 함선에 뛰여올랐다. 저항하던 두놈중 한놈은 즉사하고 다른 한놈은 부상당하였으며 나머지 80여명은 전원 포로되였다.

알고보니 그 함선은 그 전해 5월에 취역한 후 일본의 요꼬스까와 사세보를 기지로 하여 우리 령해에 기여들어 정보수집을 일삼던 미제의 1 000t급 최신형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였다.

배에서는 고사기관총과 수십정의 저격무기들을 비롯한 각종 무기들과 많은 탄약과 수류탄, 무선도청기, 송신기, 암호기 등 여러가지 정탐기재들 그리고 해도, 항해일지, 란수표 등 수많은 간첩활동문건들이 나왔다.

사실 《푸에블로》호는 우리 나라만이 아니라 태평양지역의 여러 나라 령해에 기여들어 각종 군사 및 국가정보자료들을 계통적으로 수집해갔다. 그러나 어느 나라에서도 그것이 문제시되지 않았었다.

이러한 무장간첩선을 우리의 인민군 해병들이 나포한것은 결국 세계앞에서 《강대성》의 신화를 떠들던 미제의 면상을 후려갈긴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푸에블로》호가 나포되자 미제는 파렴치하게도 배가 《공해상》에서 나포되였다느니, 간첩행위를 하지 않았다느니 하는 거짓말을 꾸며대면서 륙해공군침략무력을 우리 나라 연해에 집결시키고 군사적위협으로 우리 인민을 굴복시켜보려고 어리석게 책동하였다.

희세의 령장이신 위대한 김일성대원수님과 김정일대원수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우리 공화국에서는 적들의 《보복》에는 보복으로, 전면전쟁에는 전면전쟁으로 대답할것이며 미제국주의자들이 우리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정세를 긴장시키며 끝끝내 전쟁의 길로 나간다면 더 큰 참패를 당하게 될것이라는 단호한 립장을 표명하였다.

 

 

그 어떤 대적이 달려들어도 끄떡하지 않으시는 백두산위인들의 무비의 담력과 배짱, 정의의 보복성전의지로 불타는 우리 군대와 인민의 립장과 위력앞에 미제는 드디여 굴복하고 저들의 죄행을 인정하였다.

《푸에블로》호 선원들은 공동사죄문에서 상전의 명령에 따라 우리 나라 령해에 몰래 기여들어 정탐행위를 하다가 우리의 자위적조치에 의해 붙잡힌 사실을 인정하고 다시는 그런짓을 하지 않겠다는것을 공화국정부와 인민앞에 정식으로 사죄하였다.

 

– 자기의 죄행을 인정하고있는 함장 –

 

미국정부도 저들의 범죄행위를 인정하고 우리 공화국정부에 정식 사죄문을 냄으로써 결국 우리 인민에게 무릎을 꿇고 항복하고야말았다.

 

 

당시 미국대통령 죤슨은 이를 두고 《미국이 생겨 력사에 남긴 사죄문은 오직 이것 하나뿐이다.》라고 비명을 질렀다.

우리가 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를 나포하고 미국으로 하여금 세계의 면전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하게 한것은 조미대결전에서 이룩한 커다란 승리였다.

 

조선의 오늘 | 본사기자 주체104(2015)년 2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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