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

공동체(조직) 생활로부터 유리된 삶을 오랜 시간 살아온 예술가, 글쟁이, 학자, 이론가들은 자신도 모르게 자유주의에 빠지기 쉽다.

인간에게 완전한 자유란 애초에 가능하지 않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케케묵은 명제를 들먹이지 않아도 사람은 소집단이든 큰 집단이든 그 속에 매여 살 수밖에 없다. 홀로 깊은 산중에서 모든 걸 자급자족 하며 원시적 삶을 산다 해도 그 역시 한 사회 또는 국가의 통제와 규율을 벗어난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자유가 다른 어떤 것보다 높은 가치인 것처럼 착각하는 것은 그것이 누군가에겐 맘대로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어차피 무산자들이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세상에서 자유의 가치가 높이 매겨질수록 유산자나 권력을 과점한(즉 생산수단을 독점한) 지배자가 누릴 수 있는 것이 극대화되고, 무산자인 소위 기층민에겐 허울 좋은 껍데기만 남게 될 뿐이다. 즉 많은 재부를 과점한 자들이 싹쓸이 자유를 위해 강조하고 강조하는 것이다. 자유가 광적으로 퍼질수록 실질적으로 획득되는 것은 그들에겐 차고 넘쳐 썩어나고, 우리에겐 부스러기만 남는다.

이런 ‘자유’란 말 뒤에 숨겨진 사회적 작용을 늘 인식하지 않으면 자칫 의도하지 않게 지배 논리에 부역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개인의 자유라는 것도 사실 ‘자주’라는 말로 대체하는 것이 더 선명할 수 있다. 모든 사고, 판단, 의지, 행동을 사회적 권위, 경향, 주의, 타인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가 생각하고 판단하고 뜻을 정리하고 세워 행동하는 것이 자유처럼 보이지만 ‘자주’이다.

자유는 누군가 이용하기 쉽고 타락하기 쉬우며 그리고 그 완벽한 경지는 있지도 않다.

내 맘대로 한다는 것은 자유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주적으로 하는 것이다. 즉 자주적인 인간들이 합의한 공동체의 선을 배양하고 지키며 자신의 기질대로 가진 능력만큼을 발휘하며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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