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반동들의 1905년초 《시마네현고시》제40호

일본반동들은 1905년초에 독도를 일본땅으로 만든다는 이른바 《내각회의》결정을 조작하고 그것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시마네현고시》제40호를 날조해냈습니다.

사마네현청은 1905년 2월 22일부로 된 《시마네현고시》제40호를 조작하면서 《북위 37° 9′30″, 동경 131° 55′, 오끼섬으로부터 서북 85mile에 있는 도서(작은 섬)를 죽도(다께시마)라고 부르며 오늘부터 본현소속 오끼도사의 소관으로 정하였다.》고 지방관보인 현보에 게재하였습니다. 그리고 지방신문인 《산잉신붕》에 자그마하게 보도하였습니다.

일본정부는 날조된 《시마네현고시》제40호를 합리화하고 이를 계기로 우리 나라의 신성한 령토인 독도를 강탈할 목적밑에 시마네현을 내세워 2005년부터 오늘까지 해마다 이른바 《다께시마의 날》이라는 년례적인 광대극을 벌리면서 독도가 《일본고유의 령토》라는 망언을 늘어놓고있습니다.

그러면 일제가 《시마네현고시》제40호를 날조한 경위에 대하여 보겠습니다.

《시마네현고시》제40호는 물개잡이를 하던 어업가 나까이 요사부로가 독도수역의 물개잡이로 인한 리득을 《안전하게》, 《영구히》 확보하려는 타산밑에 독도에 대한 임대를 일본정부에 청원한 때로부터 시작됐습니다.
1903년에 나까이의 임대청원서를 접수한 일본 내무성은 독도가 조선령토라는것을 알고있었기때문에 처음에는 나까이의 청원서를 기각시켰습니다. 그러나 나까이의 청원서를 받아쥔 외무성과 농상무성의 관리들은 나까이의 청원서를 구실로 독도를 강탈할 흉모를 꾸미는데 달라붙었습니다.

당시 조선침략의 일선에 서있던 해군성과 외무성은 나까이에게 독도는 조선이나 일본 그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않는 《무주지》라고 거짓말을 하면서 독도의 물개잡이를 독점하려면 그 섬을 일본령토에 편입시켜야 한다고, 물개잡이허가신청서를 조선정부에 제출할것이 아니라 독도의 일본령토편입 및 임대청원서를 일본정부에 요구하라고 사촉했습니다.

이렇게 되여 나까이는 독도를 일본령토에 편입하고 자기에게 대부하여달라는 청원서를 1904년 9월 29일 내무성, 농상무성, 외무성에 제출하게 됐습니다.

이렇게 제출된 나까이의 청원서를 가지고 일제는 이를 승인하는 형식을 취하여 1905년 1월 28일 내각회의에서 독도를 일본령토에 편입한다는 내각결정을 내렸고 시마네현은 1905년 2월 22일 현고시 제40호로 독도를 《다께시마》라고 명명하여 시마네현의 소관으로 한다는것을 고시했습니다.

시마네현지사가 1905년 2월 22일에 이러한 고시를 낸것은 1905년 2월 15일 내무대신이 내각의 결정에 따라 독도의 령토편입을 현내에서만 고시하고 지방신문에만 보도하도록 지시했기때문입니다.

이것은 일본정부가 될수록 저들의 행위가 비법이고 대외적으로 다른 나라들에 알려지는것이 저들에게 불리하다고 판단하였기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일본이 독도가 저들의 령토라고 우겨대는데서 위력한 증거라고 하는 《시마네현고시》제40호의 조작경위입니다.

《시마네현고시》제40호를 조작한 경위를 놓고보아도, 현시기에 와서 《다께시마의 날》행사라는것을 년례적으로 벌려놓고있는것을 보아도 일본은 독도가 일본땅이라는것을 적극 여론화하여 앞으로 독도를 무력으로 강탈할수 있는 유리한 국제적환경을 마련하자는데 그 흉심이 있는것입니다.

일본이 독도가 저들의 령토라고 아무리 피대를 돋구어대도 독도는 철두철미 반만년의 유구한 우리 민족사와 더불어 한치도 떼여놓을수 없고 그 누구도 감히 넘겨다볼수 없는 조선의 신성한 령토입니다.

백현철 | 김일성방송대학  2019-02-19 14:0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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