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재민들은 군당청사에서, 일군들은 천막에서

수재민들은 군당청사에서, 일군들은 천막에서

은파군 대청리가 전하는 인민에 대한 열화같은 사랑의 새 전설

 

자연의 광란으로 집과 재산을 잃은 수재민들은 군당위원회청사에서 걱정없이 생활하고 군당위원회 일군들은 뙤약볕이 내려쪼이고 열풍이 휘몰아치는 야외에 설치한 천막에서 일하는 놀라운 화폭이 은파땅에 펼쳐졌다.지구상에 수많은 나라가 있고 국가마다 집권당이 존재하지만 그 력사의 갈피갈피를 헤쳐보아도 이런 사실은 정녕 찾아볼수 없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인민들을 위해서는 그 무엇도 아끼지 말아야 하며 할수 있는 모든것을 다하여 장군님을 모시듯이 우리 인민들을 받들어야 합니다.》

듣고 보느니 난생처음인 이 사실을 사람들은 선뜻 믿기 어려워한다.

하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정숙한 분위기가 흐르던 군당위원회청사에 수재민들의 웃음소리, 아이들의 또랑또랑한 목소리 울린다. 오랜 나날 정든 제 집인듯, 그립던 친정집에 온듯 누구나 편안한 모습들이다.

인민을 위해서라면 이 세상 그 무슨 일이든 다하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열화같은 사랑이 사회주의 새 전설을 꽃피웠다.

 

《당에서 다 알고있습니다!》

 

지난 8월 5일, 은파군 대청리일대에 물란리가 났다. 련일 쏟아져내린 많은 비와 폭우로 물길제방이 터진것이다. 다행히도 주민들은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켰으나 단층살림집 730여동과 논 600여정보가 침수되고 179동의 살림집이 무너지는 등 피해가 적지 않았다.

심각한 사태에 직면한 군의 일군들은 어찌할바를 몰랐다.

누구보다 얼굴이 까맣게 질린 사람은 사업을 시작한지 한해가 좀 지난 40대의 녀성군당위원장이였다. 군안의 여기저기를 오가면서 큰물피해가 확대되지 않도록 하느라고 필사의 노력을 다하였으나 자연의 광란은 모질게 덮쳐들었다.

다음날 오전, 밤을 꼬박 밝힌 그가 희붐히 개이기 시작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마냥 가슴을 조이고있을 때였다.

문득 전화종소리가 울렸다.

송수화기를 든 군당위원장은 깜짝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친히 전화를 걸어오신것이였다.

《경애하는 원수님!》

울먹이는 목소리로 겨우 올리는 그의 인사를 들으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대청리의 실태를 보고받았다고 하시면서 자신께서 인차 나가보겠다고 하시는것이였다.

너무도 뜻밖의 말씀에 녀성군당위원장은 그만 입이 얼어붙고말았다. 군이 엄혹한 시련을 겪고있는 때에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찾아오시겠다니 더없이 기쁘기도 하고 한편 나라의 크고작은 일로 바쁘시겠는데 자기 군의 무거운 짐까지 그이의 어깨에 얹어드리는것만 같아 못내 죄송스러웠다.

그의 심정을 헤아리신듯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자애로운 음성으로 군의 자세한 형편을 물으시고나서 이렇게 말씀을 이으시였다.

《대피한 주민들은 다 어떻게 하고있는지 걱정됩니다.

이제 인차 중앙당 부서들과 본부 가족세대들로 피해지역 주민들에게 필요한 가장집물을 지원하도록 하기 위한 사업을 조직하려고 합니다.》

순간 전류와도 같이 강렬하고 뜨거운것이 군당위원장의 온몸에 흘러들었다. 이 며칠동안 쌓이고쌓였던 만시름이 순간에 스르르 풀리는것을 느꼈다.

경애하는 원수님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우리 은파군인민들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으로 눈물이 왈칵 솟구치는데 다정하신 그이의 음성이 다시 귀전에 울려왔다.

《당에서 대청리주민들이 큰물피해를 받았다는것을 알고있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그들을 안착시켜야 합니다. 살림집도 새로 지어주고 피해복구와 관련한 대책을 세워주겠으니 대청리주민들이 신심을 가지고 안정된 생활을 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내가 신심을 잃지 말고 안착되여 생활하라고 하였다는것을 피해지역 인민들에게 꼭 전달해주어야 하겠습니다.

덤비지 말고 침착하게 큰물피해복구사업을 잘 지휘하여야 하겠습니다.》

절절하게 하신 그 말씀은 군당위원장사업을 갓 시작한 녀성일군의 마음속에 천백배의 힘과 용기를 더해주는 위대한 스승, 자애로운 어버이의 다심한 손길이였으며 불행을 당한 인민일수록 더 따뜻이 품어주는 숭고한 사랑이였다.

그이의 친근한 음성이 그냥 울려나오는것만 같은 송수화기를 부여잡은채 오래도록 감격의 눈물을 쏟던 군당위원장은 이윽하여 어깨를 쭉 펴고 일어섰다.

얼마후 그의 사무실로 대청협동농장 일군들이 급히 들어섰다. 황황 타는 눈빛들과 목메인 물음,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정말 우리 대청리 큰물피해때문에 전화를 걸어오시였습니까?》

마디마디 심장을 뜨겁게 달구는 그이의 말씀을 다시 외우는 군당위원장도, 고귀한 말씀을 가슴깊이 새기는 농장일군들도 한량없는 그 사랑에 울고울었다.

하지만 그들은 알리 없었다. 우리 원수님께서 전화를 놓으신 후 평양에서 은파까지 먼길을 한달음에 달려오신줄을. 그리고 점심식사도 미루어가시며 대청리일대의 큰물피해상황을 현지에서 료해하고계신줄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큰물이 범람한 피해현장에 나오시여 피해지역복구와 관련한 구체적인 과업과 방도를 밝혀주시면서 집을 잃은 주민들을 군당위원회, 군인민위원회를 비롯한 사무공간들과 공공건물들, 개인세대들에 분숙시키고 안정시키며 위로해주기 위한 사업을 책임적으로 할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지난 8월 6일, 우리 원수님께서 은파땅에 력사의 발자취를 새기시던 그 시각 대청리에서는 한입 건너, 두입 건너 이런 뜨거운 속삭임이 퍼져갔다.

《당에서 다 알고있습니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우리 대청리일을 환히 알고계신대요!》

우리 원수님께서 다 아신다!

정녕 그것은 우리 원수님의 심장속엔 언제나 인민이 있다는 열화같은 격정의 메아리, 그이께서 계시기에 항상 마음든든한 인민의 굳건한 믿음과 다함없는 감사의 메아리였다.

 

진창길에 찍으신 자욱

 

은파군 대청협동농장 제5작업반의 논벌을 지나 곧추 뻗은 포전길이 바로 지난 8월 7일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다녀가신 사연깊은 길이다.

이날 아침 작업반에 나왔다가 리에 회의갈 준비를 서두르던 제5작업반 반장과 부문당위원장이 꿈만같이 경애하는 원수님을 만나뵈운 곳도 바로 이곳이고 그이께서 오신 소식을 전해듣고 허둥지둥 달려온 군당위원장이 또다시 감격의 눈물을 쏟은 곳도 이 포전길이다.

전날 저녁 군당위원장에게 다시 전화를 거시여 신심을 북돋아주시고 그밤으로 피해복구기간 군당위원장을 도와줄 당중앙위원회 일군들을 내려보내도록 은정어린 조치를 취해주시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으시여 날이 밝자마자 친히 운전대를 잡으시고 큰물피해현장을 또 찾으신 우리 원수님이시였다.

그이께서 제5작업반의 피해실태를 알아보시고 피해를 제일 많이 입은 곳에 가보자고 하실 때 군당위원장과 제5작업반 초급일군들은 앞을 다투어 그이께 정중히 아뢰였다.

《경애하는 원수님, 길이 험해서 가지 못합니다.》

농장적으로 피해를 제일 많이 입은 제7작업반과 제8작업반으로 향한 그 길은 큰물이 범람하였다가 물이 채 찌지 않은 흐물흐물한 흙탕길, 가뜩이나 고르롭지 못한 바닥이 미끄러운 감탕속에 감추어져있어 큰물이 난 때부터 지금까지 누구도 밟아보지 못한 험한 진창길이였던것이다.

하지만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이에 대해 아시고도 결연히 말씀하시였다.

《아무리 길이 험하여도 피해상황이 어떤지 직접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이번에 일부 지역들에서 큰물피해를 받았다는 보고를 받은 때부터 피해지역 인민들에 대한 걱정뿐입니다.》

그러시고는 다시 운전대를 잡으시였다.

그이의 승용차바퀴가 감탕판에 미끄러지며 위태롭게 기우뚱거릴 때마다 수행일군들과 농장원들은 긴장감으로 심장이 졸아들었다.

한치 또 한치…

그렇게 가시다가는 차를 세우고 내리시여 물에 잠겼던 벼포기며 감탕이 묻은 콩포기도 손수 만져보시며 물이 다 빠진 후 영양관리를 잘하여 농작물들이 생육에서 지장을 받지 않게 하라고 간곡히 당부하시고 또 길을 이으시며 대청리가 큰물피해를 입은 원인도 하나하나 분석해주신 경애하는 원수님,

옷자락에 감탕이 튀여오르고 신발이 물에 젖었어도 그이께서는 현지지도길을 멈추지 않으시였다.

대청땅의 험한 진창길에 첫 자욱을 내시며 인민을 위한 헌신의 길을 이어가신 경애하는 원수님의 심중에는 과연 무엇이 간직되여있었던가.

바로 전날이였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당중앙위원회 일군에게 은파군 대청리 큰물피해복구와 관련하여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는 자리에서 이번에 큰물피해복구사업을 잘하여 화가 복이 되게 하여야 한다고, 이 사업은 우리가 중시하고 힘을 넣어야 할 사업이라고, 인민들이 당한 불행에는 크고작은것이 따로 있을수 없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절절히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걱정없이 좋아하는 사람들보다 걱정하며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옆에 있어야 합니다.》

그이의 말씀을 받아안는 일군의 눈앞에 나라의 방방곡곡에 기념비적건축물로 솟아오른 육아원과 애육원, 양로원들의 훌륭한 자태가 우렷이 비껴들었다.

우리 조국땅에는 불행과 설음에 우는 사람이 단 한명도 있어서는 안되며 설사 고통을 당한 사람이 있다고 하여도 우리 당이 한시바삐 그 괴로움을 깨끗이 가셔주어야 한다는것이 그이의 남다른 신조가 아니였던가. 하여 이 땅에는 고아라는 말이 영영 사라지고 의지가지할데 없는 로인들이 자식있는 사람 부러운줄 모르며 재난을 당한 사람이 도리여 만복의 주인공이 되는 감동깊은 화폭들이 날에날마다 펼쳐지고있는것이였다.

걱정없이 좋아하는 사람들보다 걱정하며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옆에 있어야 한다!

바로 이 투철한 신조를 안으시고 또 오늘은 뜻밖의 재난을 당한 대청땅의 인민들을 찾아 친히 운전대를 잡으시고 차를 달리신것이였다.

군당위원장에게 전날에 과업을 준대로 군당위원회청사에 수재민들을 들였는가를 알아보시고나서 사무실들을 내지 못하여 아직 들이지 못하였다는 대답을 들으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다시금 간곡하게 말씀하시였다.

《집을 잃은 주민들을 군당위원회청사에 들이고 군당일군들은 천막에서 생활하여야 합니다.》

그제서야 군당위원장은 수재민들을 군당위원회청사에 들이고 군당일군들은 천막에서 생활하라고 하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숭고한 뜻을 깊이 새겨보았다.

피해지역 인민들이 한지에서 지낼세라 수많은 세대분의 천막을 내려보내주시고도 천막생활이 불편할가봐 수재민들은 군당위원회청사에서 생활하고 군당일군들이 천막에서 생활하여야 한다고 하시는 경애하는 원수님,

제일 좋은것은 다름아닌 인민이 차지해야 하며 고생은 일군들이 해야 한다는 깊은 뜻이 그이의 간곡한 당부에 어려있었다. 결코 수재민들을 들일 시설이나 건물이 없어서가 아니였다. 재난을 당한 사람들을 위해 당청사까지 서슴없이 내여주는것이 우리 당의 당풍, 국풍으로 되여야 하였기에 그토록 절절히 깨우쳐주신것이였다.

경애하는 원수님의 현지지도의 자욱자욱을 따르며 군당위원장은 당학교과정안을 다시 나오는 심정이였다.

이날 물이 허리치는 곳의 근방까지 차를 몰아가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질쩍질쩍한 감탕판에 서시여 큰물피해를 입은 마을들에 살림집들을 규모있고 깨끗하게 다시 잘 지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원래는 어제 피해지역의 살림집 800세대가운데서 400~500세대만 새로 짓고 나머지는 보수하는 방안도 제기되였지만 지을바에는 화가 복이 되게, 다른 리들에서 부러워하게 800세대를 다 새로 지으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800세대를 다 지으라고 한것은 성성한 집들도 다 허물고 새로 지으라는것입니다.》

이렇게 강조하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자애로운 안광을 우러르는 작업반초급일군들의 눈가에도 뜨거운것이 샘솟았다.

(어쩌면 우리 마음을 그리도 잘 아실가.)

하건만 농장원들을 위하시는 마음이 끝이 없으신듯 살림집형식도 농장원들이 좋아하는대로 해주자고 하시며 살림집설계에 대한 심사를 일군들이 하지 말고 농장원들이 하게 하여야 한다고 하신 경애하는 원수님,

이날 감탕으로 뒤덮인 포전길에는 참으로 눈물겨운 화폭이 펼쳐졌다.

현지지도를 마치고 떠나시던 경애하는 원수님의 승용차가 그만 논판에 미끄러져내린것이다. 이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듣고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제7작업반 농장원들이 어푸러질듯 달려왔다.

꿈결에도 그립던 경애하는 원수님의 존안을 우러러뵈올 사이도 없이 차체며 차바퀴밑에 한몸을 통채로 내던진 농장원들, 그들은 뜨거운 흐느낌을 터치였다.

《경애하는 원수님, 여기가 어디라고 오신단 말입니까.》

《이렇게 험한 길을 다녀가시게 한걸 알면 온 나라 인민이 우리 대청리사람들을 용서치 않습니다.》

온몸이 흙범벅, 눈물범벅이 되여 경애하는 원수님을 바래워드린 대청리사람들,

사연깊은 그 포전길이 지금은 다 마르고 피해복구의 동음과 함께 점점 넓어져간다. 그리고 하루에도 수많은 자욱이 쉬임없이 찍힌다.

불과 10여일전의 자취를 도저히 찾아볼수 없는 그곳을 대청리사람들은 심장으로 알아보고 날마다 그앞에 정중히 선다.

중앙과 도의 일군들이 올 때마다 그들은 말한다. 바로 이 자리에 경애하는 원수님의 사랑의 사적비, 헌신의 기념비를 어서빨리 세워야 하지 않겠는가고.

우리는 생각하였다. 험한 진창길에 찍으신 우리 원수님의 발자욱, 그것이 그대로 기념비가 아닌가고.

그렇다. 그 자욱은 그이께서 하늘처럼 떠받드신 인민의 심장속에 튼튼히 뿌리박은 가장 높고 굳건한 기념비, 멸사복무의 위대한 기념비였다.

 

인민의 영원한 보금자리

 

대청리는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의 명령을 받들고 달려온 인민군군인들의 피해복구전투로 들썩이고 은파군 읍지구는 수재민들의 감격의 웃음소리, 노래소리로 흥성인다.

수재민들의 웃음과 노래!

경애하는 원수님을 온 나라 대가정의 어버이로 모신 우리 나라에서만 펼쳐질수 있는 화폭이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가르쳐주신대로 군당위원회와 군인민위원회, 군협동농장경영위원회를 비롯한 군급기관청사들에도 수재민들이 행복의 보금자리를 폈다. 군당위원회와 같은 중요기관건물에서 수재민들이 마음놓고 생활한다는것은 다른 나라같으면 생각이나 할 일인가.

대청리에 살고있는 86살 난 김천녀할머니는 말한다.

《큰물이 난 뒤 리소재지에 있는 다른 작업반 농장원의 집에서 이틀밤을 잤습니다.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데 습관된 우리 인민인지라 뭐 크게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리당일군이 나를 부르더니 〈할머니, 이제부터는 군당위원회청사에 가서 생활하십시오.〉라고 하는것이 아니겠습니까.

끔쩍 놀라서 말했습니다. 이 늙은게 군당위원회에 가다니요. 젊은이들이 피해복구하느라 수고하는데 여기 있으며 일손을 돕겠수다 하구요.

그랬더니 거기 가면 여기보다 조건이 좋고 건강이랑 잘 돌봐주니 어서 가라고 그냥 떠미는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나이많은 로인들이 함께 왔지요. 사실 그저 며칠 다녀오라는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맞이한것은 정든 집보다 더 따뜻한 보금자리였다.

새 이부자리에 텔레비죤이며 선풍기, 갖가지 살림도구를 갖추어놓은 일군들이 그들을 반겨맞았던것이다. 군당위원회청사에 웬 이런 살림방이 있는가고 놀라와하는 그들에게 일군들은 수재민들을 위해 특별히 꾸린것이라고 이야기하였다.

하루, 이틀 지내면서 로인들은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피해복구를 하는 동안 수재민들이 군당위원회를 비롯한 군급기관청사들에서 불편없이 살게 하고 일군들은 밖에서 천막을 치고 일하는것이 좋겠다고 하신 가슴뜨거운 사연을 전해들었다.

젊은이들은 포전을 멀리 떠날수 없다고 하여 리에 남고 늙은이와 아이들, 애기어머니들이 군급기관청사들에 들게 되였다는것을 알게 된 그들은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세상에 이런 일도 있는가.

군급기관청사라면 군안의 정사가 론의되며 군적으로 당정책이 제일먼저 알려지고 토의되는 중요한 곳이라는것을 한뉘 평범한 농장원으로 일한 그들도 잘 알고있었다.

더우기 군당위원회청사는 존엄높은 조선로동당마크가 빛나고 붉은 당기가 휘날리는 곳이 아닌가. 성스러운 조선로동당원의 영예도 바로 여기서 지니고 경애하는 원수님의 사상과 령도를 앞장에서 받드는 일군들이 일하는 곳도 바로 이곳이였다. 그런 중요기관에서 우리같은 수재민들이 웃고 떠들고 잠을 잔다는것이 어디 될 말인가.

이런 생각으로 첫밤을 뜬눈으로 지새운 다음날 아침, 전날에 보았던 군당위원회의 녀성일군이 밝은 미소를 짓고 방에 들어섰다.

《할머니들, 모두 편히 쉬셨습니까?》

깍듯이 인사를 하는 그의 손에는 정성껏 깎은 여러개의 지팽이가 들려져있었다. 년로한 몸에 식당에 가거나 바깥출입을 할 때 짚고 다니라고 하며 매 사람에게 하나씩 안겨주는것이였다.

이렇게 시작된 군당위원회청사에서의 생활은 꿈속에서처럼 흘렀다.

매끼 식탁에는 구미에 맞는 식찬이 올랐다. 그런가 하면 로인들과 아이들이 궁금해할세라 당과류도 정상적으로 보장해주었다.

조금만 아파하는 기색이 보여도 일군들이 달려오고 의사들이 찾아왔다.

《불편한 점이 있으면 서슴지 말고 이야기하십시오.》라는 말은 그들이 매일같이 하는 인사였다.

아이들과 학생들도 군당위원회청사를 제 집처럼 여기였다.

텔레비죤으로 만화영화도 보고 일군들이 갖추어준 교과서와 학습장, 필기도구를 가지고 공부도 열심히 하였다.

살림방으로 전환된 군당위원회의 사무실들에서는 수재민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들이 울려나왔다.

《집보다 더 좋습니다.》

이곳에서 일군들이 차려준 뜻깊은 생일음식을 마주한 사람들도 있다. 경애하는 원수님의 숭고한 인민사랑의 뜻이 담기고 친혈육의 정이 고인 그 음식상앞에서 누구인들 눈굽을 적시지 않았으랴.

군당위원회청사에서 지내는 하루하루는 한생 잊지 못할 귀중한 체험을 안겨주었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수재민들을 위해 많은 량의 흰쌀과 희귀한 물고기, 의약품들을 보내주도록 하시고 침구류와 생활용품을 비롯한 필수물자들을 당중앙위원회 부서들과 본부 가족세대들이 전적으로 맡아 준비해주도록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군당위원회청사에서 련일 안겨지는 당의 은정어린 물자들을 받으며 행복의 나날을 보내는 수재민들 누구나 진정을 터친다.

《수재민들이 이처럼 만복을 누리는 일은 세상에 있을수도, 그 누가 상상할수도 없습니다. 지금 우린 마치 휴양생이 된것만 같습니다.》

큰물피해를 입고나서 《휴양생》이 된 수재민들, 이렇게 복받은 사람들은 우리 나라에밖에 없다.

군당위원회청사를 제 집처럼, 태를 묻은 고향집처럼 여기는 수재민들이 정든 이곳을 나서는 때이면 경애하는 원수님의 은혜로운 손길아래 마련된 새 집, 사회주의농촌문화주택이 그들을 기다릴것이다.

그 따뜻한 보금자리에서 그들은 우리 당의 뜻깊은 명절 10월 10일을 즐겁게 쇠고 오래오래 행복한 삶을 누려갈것이다.

 

* *

 

군당위원회청사에 넘쳐나는 행복의 웃음과 감격의 눈물, 수재민들이 터놓는 하많은 격정의 이야기를 모두 합치면 아마도 그것은 조선로동당 만세, 사회주의 만세, 경애하는 원수님 만세의 열화같은 함성이 되리라.

수재민들은 군당청사에서, 일군들은 천막에서!

자애로운 어버이를 모신 인민의 끝없는 영광과 행복을 노래하는 이런 꿈같은 전설은 오직 인민의 리익과 편의를 위하여 멸사복무하는 위대한 조선로동당의 품속에서만 태여날수 있다.

 

주체109(2020)년 8월 23일 일요일 로동신문 본사기자 허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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