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마지막까지 위인칭송의 노래를 부른 일본의 녀가수

오가사와라 미쯔꼬는 우리 인민들에게 널리 알려진 일본의 녀가수이다.

지금도 우리 인민들은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무대에 올라 노래 《수령님 밤이 퍽 깊었습니다》를 절절하게 부르던 그의 모습을 잊지 못해하고있다.

그는 20살 나던 해부터 일본에서 성악가수로 활약하였다.

그가 마이크를 쥐고 무대에 나설 때면 일본의 수많은 관중이 숨을 죽이고 그의 노래를 들었다고 한다.

그러한 그가 어느해부터는 해마다 2월이면 도꾜의 한복판에서 조선의 봄을 노래했고 4월이면 평양의 무대에 올라 우리 수령님을 칭송하는 노래를 불렀다.

또 어느해인가는 《평양을 그리는 마음》, 《평양의 래일을 노래하자》와 같은 노래를 자기가 직접 지어불러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무대를 더욱 이채롭게 장식하였다.

그는 무대에서만 우리 수령님과 사회주의조선을 칭송하지 않았다.

기자들이 마이크를 들이대며 이제는 나이도 퍽 많은데 앞으로도 계속 평양에 가겠는가고 물을 때면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언제나 김일성주석님만을 따를것입니다.》

그가 위대한 수령님을 처음으로 만나뵈온것은 1978년 늦은가을이였다.

당시 《조선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지지하는 일본 오사까 부인의 회》대표단성원으로 조선을 처음으로 방문한 그는 놀라운 현실앞에서 감동을 금할수가 없었다.그럴수록 참다운 인민의 나라를 일떠세워주신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뵙고싶은 충동을 금할수가 없었다.

날씨는 하루하루 차지기 시작했건만 위대한 수령님을 뵈옵기 전에는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떼를 쓰기까지 했던 그였다.

1978년 11월 미쯔꼬와 대표단성원들은 그처럼 고대하던 영광의 시각을 맞이하게 되였다.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지으시고 그들을 반갑게 맞아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오랜 시간 다정하게 이야기도 나누시고 뜻깊은 기념사진도 찍어주시였다.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언제나 위대한 김일성주석님만을 따르겠다고 한 그의 결의는 바로 이날에 터친 신념의 분출이였다.

그때로부터 2년후인 1980년 10월 오사까지방의 음악계 인사들과 예술인들로 일조음악예술교류회를 조직한 그는 제1차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부터 20여차례에 걸쳐 축전에 참가하였다.

이 나날 일본의 이름있는 배우들과 연주가들, 국제콩클수상자들이 그와 함께 우리 나라에 와서 위인칭송의 무대를 펼치였다.

그는 공화국정부로부터 친선훈장 제1급과 제2급, 친선메달을 수여받았다.

전 일조음악예술교류회 회장이였던 오가사와라 미쯔꼬는 지난 7월말 99살을 일기로 심장의 고동을 멈추었다.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위대한 수령님을 열렬히 흠모하며 위인칭송의 노래를 부르고부르던 일본의 녀가수, 그를 이제는 다시 볼수 없어도 평양을 마음의 고향이라고 부르며 흠모의 노래 안고, 열정의 노래 안고 조선을 찾군 하던 그의 모습을 우리 인민은 잊지 않고있다.

본사기자 강명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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