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갱이는 위대하다.

빨갱이는 공산주의자를 비하하는 말이지만 그 빨갱이가 인류에게 가져올 가치는 유토피아적 상상을 세상에 실현하려는 사람들의 숭고한 투쟁이다. 빨갱이는 인간성을 구현하는 자들이다.

인간에 대한 헌식적 사랑없는 공산주의자란 있을 수 없다. 그 어떤 현학적 언어를 동원한다 하더라도 이 인간에 대한 무한한 사랑 없는 사회주의 공산주의란 다 가짜다. 공산주의는 돈을 모든 가치의 최상위에 두는 세상에 유일한 구원이다.

종교가 그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망상이다.
종교란 소외와 억압, 불평등한 사회에선 기성을 부리지만 사회주의에서 공산사회로의 이행 과정에 자연스레 점차 소멸되어갈 것이다. 인간의 문화적 유물로 보존될 수는 있겠다. 그러므로 공산주의가 종교를 억압한다는 말은 거짓이다.

기부·자선에 대한 상찬은 자본주의 수호자들이 하늘로 뻗은 손바닥이다.

자본주의가 이기적 인간 본성과 이윤을 쫓는 이기적 인간 행동의 동인을 인정하는 체제이기 땜에 더 자연스럽고, 그래서 자유를 보장해야한다고 한다. 그렇게 마냥 둔다면 인류는 스스로 멸종할 것이다. 인간은 이기적일 수도 이타적일 수도 있다. 이타적 인간이 소수일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어떤 사회에 살던 이타적인 인간을 만나게 되면 대부분 감동하는 것이다. 근데 인간의 이기적 성향을 지나치게 관용하면 현재의 한국처럼 자신의 이기적 행동에 ‘인간적’이다라는 자기 합리적 정당성을 주장하기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뻔뻔한 인간이 양산되는 것이다.

사회적 사상교육을 통해 이타적 인간이 다수가 되게하며, 이기적 인간이 부끄럽게 느낄 수 있는 사회적 건강한 압력(억압)이 필요한 것이다. 조선의 영화를 보면 그런 작업이 영화를 통해 인민을 계몽하여 사회주의적 인간을 형상해 나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유투브를 통해 조선예술영화를 많이 보시라…!

조선의 로동당은 공산주의자들이 맞다.
지금은 사회주의를 위해 복무하지만 궁극적으론 ‘자유로운 개인의 공동체’를 향한 낮은 단계의 사회주의의 완성을 위해 제국주의 국가들과 투쟁하고 있는 것이다. 공산주의는 주요한 뼈대를 견지한다면 매우 유연한 사상이다. 각 민족과 상황에 따라 그 적용 방식은 다를 수 있다. 그 모범 사례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마·레주의를 조선식 주체사상으로 이북 사회에 적용시키며 당과 최고령도자를 어머니, 어버이가 되는 가족이 기초 세포가 되고 전체 사회를 하나의 거대한 가족으로 극대화시킨 최고의 조직사회를 이룩했다. 이러한 것은 조선예술영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김일성 주석의 위대성은 남호두회의에서 결정된 범민족적인 통일전선체 조국광복회창립과 조국광복회10대강령에서 발휘된다. 작금의 통일의 기운이 생동하는 것도 그런 혁명1세대들의 혁명전통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그대로 계승되었기에 가능하다.

김일성 주석의 회고를 보자

『내가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던대로 2천만 조선민족의 총동원으로 강도 일본제국주의식민지통치를 짓부시고 진정한 인민의 정부를 세우자는 내용을 앉히자고 하자 리동백은 머리를 기웃하고 생각에 잠기더니 도리질을 하였다.
《무산계급의 사회를 건설한다는 문구가 하나도 없으니 서운합니다. 강령 첫 조항에 공산주의냄새가 전혀 없으면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숱한 주의자들이 좋아하겠습니까. 진정한 인민의 정권이라는 말은 계급적성격도 모호하고 어쩐지 민족주의냄새가 납니다.》
후날 백두산밀영에서 박달과 처음으로 자리를 같이하고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그도 역시 조국광복회강령 첫 조항에 대하여 리동백과 꼭같은 론조의 말을 하였다.
확실히 그 시기는 우리 나라에서 사이비 맑스주의적인 견해가 널리 오염되여있던 시기였다.
자신을 공산주의자라고 자처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마치도 공산주의는 민족적리념과 상치되는 사상인것처럼 여기면서 공산주의자들은 협소한 민족적리념에서 벗어나 철저히 계급적원칙과 국제주의적립장을 고수해야만 로동계급과 전인류를 착취와 압박에서 해방할수 있다고 력설하였다.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러한 주장을 하게 된 주되는 원인의 하나는 맑스가 공산당선언에서 《프로레타리아트에게는 조국이 없다.》고 한 명제를 매우 단순하게 그대로 받아들인데 기인된다.
맑스와 엥겔스는 일국사회주의혁명의 가능성이 채 성숙되지 못하였던 력사적시기에 살았다. 그들은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된 여러 나라에서 사회주의혁명이 동시에 진행되리라고 예언하였다. 로동계급의 전복대상인 각국 부르죠아지가 민족적리익의 옹호자로 자처하고있는 조건에서 전세계의 프로레타리아트가 자국부르죠아계급이 표방하고있는 《민족주의》나 《애국주의》의 감언리설에 속아넘어간다면 프로레타리아트의 전세계적인 혁명위업은 망쳐질수 있었다. 각국의 프로레타리아트에게는 부르죠아적지배하에 있는 모국이 결코 조국으로 될수 없으며 따라서 프로레타리아트는 국수주의와 국제주의,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의 량자가운데서 반드시 국제주의, 사회주의 편에 서야 하였다. 바로 이러한 견지로부터 맑스주의고전가들은 로동계급이 이른바 애국주의적인 환상에 사로잡히는것을 경계하였고 애국주의와 사회주의의 량자속에서 언제나 민족주의적편견을 버리고 사회주의를 옹호할것을 가르쳤다. 맑스는 빠리꼼뮨실패의 원인을 분석하면서 꼼뮨참가자들이 반동의 소굴인 베르사이유를 공격하지 않은것은 외적인 프로씨야군이 빠리를 포위하고있는 때 국내전쟁을 일으키는것은 애국주의에 배치된다고 그릇되게 생각한데서 온것이였다고 단언하였으며 레닌은 제2국제당 수정주의자들이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함께 로동계급의 혁명적원칙을 버리고 《조국방위》의 구호밑에 제가끔 자기 나라의 부르죠아편에 붙은것을 사회주의위업에 대한 변절로 락인하였다.
자기 민족 전체를 희생시켜서라도 개인적치부를 증대시키려는 환장한 부르죠아지들의 식민지쟁탈전쟁에 《조국방위》의 간판을 들고 도와나서는것은 자기 민족에 대한 배신인 동시에 사회주의에 대한 배신으로 된다. 그러므로 제국주의국가의 프로레타리아트가 사회주의위업에 충실하려면 《조국방위》의 간판을 들것이 아니라《전쟁반대》의 기치를 들고 전쟁보이꼬트운동을 벌려야 한다.
그러나 식민지예속국가들에서는 사정이 완전히 달라진다. 식민지예속국가들에서 공산주의자들이 조국해방과 애국주의의 기치를 드는것은 곧 종주국의 부르죠아지를 반대하는것으로 되며 바로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민족혁명과 계급혁명 그리고 국제혁명위업에 다같이 기여하게 된다.
이 명백한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프로레타리아트에게는 조국이 없다.》는 명제를 무조건 절대화하면서 애국주의, 민족주의를 공산주의의 원쑤처럼 여기고 배척하였다는데 바로 사이비공산주의자들, 행세식맑스주의자들의 리론실천적착오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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