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레주의와 주체사상

주체사상은 인간의 자주적요구와 창조적능력을 중심으로 하여 모든 것을 보고 대하여야 한다는 사상이다. 주체사상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경우 주체사상을 잘못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 또 지난날 맑스주의철학을 좀 공부했다고 하는 사람들 속에서 마치도 주체사상이 관념론인 듯이, 주관주의사상인듯이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주체사상은 결코 관념주의도 아니고 주관주의도 아니다. 이것을 잘 알자면 선행학설(마·레주의)과의 관계를 잘 알아야 한다.

마·레주의와 주체사상과의 관계문제, 이것을 혁명실천의 각도에서 원리적으로 이야기 하면…
일정한 리론들은 다 실천적 요구를 반영하여 나오게 된다.

맑스주의 리론이 당대 발전된 자본주의나라에서 인간해방, 계급해방을 어떻게 실현해야 되겠는가 하는 문제를 해명해주는 학설이 바로 맑스주의이다. 당대 맑스주의가 나온 력사적 배경을 보면 주로 관념론, 형이상학과 같은 철학사상들이 자본주의를 신비화하고 영원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었다. 때문에 마·레주의 철학자들 앞에 나선 기본과제는 이 관념론과 형이상학을 타파하는 것이였다. 이로부터 그들이 강하게 주장한 사상이 무엇인가. 그게 바로 세계는 물질로 이루어지고 그 세계는 자기의 법칙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발전 한다는 원리였다. 바로 이 원리에 기초해서 인간해방에 관한 문제까지 구체적으로 고찰했던 것이다. 그런 고찰로부터 결국 자본주의사회에서는 계급투쟁이 벌어지지 않으면 안 되는 다시 말해서 노동계급의 계급해방혁명이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되는 심각한 물질경제적 모순을 안고 있다. 이걸 밝히고 바로 자본주의사회에서 인간해방에 관한 사상을 제기했다.

이것이 일리가 있는가? 물론 자기의 력사적 공적을 남기고 있다.

맑스주의에 기초한 러시아 10월 혁명이 그것을 보여준다.

이후 맑스주의가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우리나라에도 일정하게 파급되어 들어왔다. 초기공산주의자들에 의하여 들어왔는데 우리나라의 실정은 그들이 전제로 했던 그러한 실정과 달랐다.

김일성 주석이 혁명활동을 전개해나가던 첫 시기에 마·레주의의 기치를 들고 혁명활동을 전개했다. 그런데 마·레주의를 들고 혁명을 해보자고 하니 많은 문제들에 봉착하게 된다. 인민대중의 해방의 조건이 무엇인가, 여기에 심각한 자본주의적경제관계의 모순이 있었다. 20세기 초엽 조선은 경제관계가 심히 뒤떨어지고 더구나 일제의 가혹한 식민지통치 속에 있었던 그때 이런 인민의 자유와 해방을 어떻게 실현해야 하는가 이 문제는 맑스주의도 해답을 주지 못했다. 그럼 문제는 무엇인가. 물질경제적 조건을 위주로 하여 인간해방을 밝힐 것인가 아니면 무엇에 준하여 해방을 실현할 것인가. 여기로부터 나온 것이 주체사상이다.

우리민족은 우리민족자신의 힘으로서 민족적 독립, 해방을 이룩해야 한다. 바로 이사상을 원리적으로 체계화한 것이 주체철학이다.

맑스주의와 주체사상과 공통성이 있는가. 명백히 공통성이 있다. 다같이 인간해방 계급해방을 이룩하지는 사상이고 다같이 사회주의를 실현하자는 그런 사상에서는 공통성이 있다. 만일 신이 세계를 지배한다거나, 그 어떤 알 수 없는 리념에 따라서 자기법칙에 따라 세계가 변화발전 한다는 식으로는 인간이 자기자신을 해방할 수 있다는 답이 안 나온다. 맑스주의가 바로 세계는 물질로 이루어져 있고 물질은 자기의 법칙에 따라서 변화발전 한다는 것까지 사회력사에 약간 적용했을 뿐이다.

생산력은 발전하는데 보수적인 생산관계, 즉 착취계급의 이해관계만을 대변하는 생산관계는 생산발전을 억제한다. 결국 생산물과 생산관계의 상호관계이다. 이건 노동계급과 자본가계급의 상호관계 문제이다. 그러니까 노동계급의 해방을 이룩하지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자본가 계급을 타파해야 한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세계는 물질로 이루어져있고 그것이 끊임없이 변화발전한다는 해명이다. 혁명운동에서의 물질경제적 조건에 관한 문제, 이것을 맑스주의가 밝혀준 것이다. 그럼 이런 물질경제적 조건이 마련되어있지 않은 조건에서는 어떻게 하면 인간의 해방을 실현하겠는가 하는 문제가 서게 된다.

그러면 맑스주의가 밝혀준 이 물질세계안에서 이건 한계가 있지만 력사적공적으로 인정하면서 이 물질세계에서의 주인은 누구인가, 또 물질세계의 변화발전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는 요인이 무엇인가. 이것을 해명한 것이 주체철학이다. 공통성의 각도에서 볼 때 유물변증법을 인정하고 또 사회에도 자기의 객관적 법칙에 따라서 변화발전 한다는 것도 인정한다. 이때 법칙에 따라 변화발전한다는 것은 인간의 의사에 의존하지 않는 것이다.

맑스주의가 결코 그 어떤 생산력에 따라서 저절로 변한다는 것이 아니다. 노동계급의 단결된 힘에 의해서만 변화는 것이고 그것이 없고는 사회주의로 이행되지 않는다. 거기까지도 공통성이 있다. 그런데 어떻게 단결하고 그 단결할 수 있는 기초가 무엇인가, 여기서 차이가 생긴다. 단결된 힘으로 해방된다. 이것은 같은 사상이다. 그런데 단결의 기초에는 무엇이 놓이는가, 여기서는 서로 다른 문제가 제기된다. 맑스주의는 물질경제생활의 공통성, 주로 물질경제 관계를 기본으로 단결을 이룩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주체철학은 단결의 기초문제를 그렇게만 본 것이 아니라 자주성을 지향하고 사상적 리념에서의 공통성을 기본으로 본다. 그렇다고 물질경제생활에서의 공통성이 단결의 기초가 아니다. 라고 보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일정한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주된 것은 아니다. 그러면 주된 것은 무엇인가. 주된 것은 사상, 리념의 공통성이다.

맑스주의는 종교적 사랑을 대체로 거부하는 데로 나아간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사랑, 평화 이것은 좋은 것이지 결코 나쁜 게 아니다. 사랑과 평화라는 리념을 악용해서 사람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것이 나쁜 것이다. 종교에서 중요한 천당설도 주체철학에서는 거부하지 않는다. 사람에 대한 착취와 억압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자기 행복을 누려보지 못하고 죽어서라도 천당에 살아보자는 그 염원이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문제는 그걸 악용해서 남에게 불행을 들씌우는 자들이 나쁜 것이다.

맑스주의의 종교에 대한 배척은 인간의 본성적 요구에 대한 해명이 없는 데로부터 출발한 것이다. 사회주의 건설에 관한 문제에서 맑스주의와 주체사상과의 근본차이가 가장 명백히 나타난다. 마·레주의는 자본주의사회를 전복하기 위한 혁명학설을 논한다. 따라서 사회주의건설내용은 결국 주체철학밖에 없다. 마·레주의를 교조적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이 물질경제관계를 위주로 하여 사회주의건설을 진행해나갔다. 그렇게 되다 보니 사람들속에서 사회주의 사상에 대한, 사회주의에 대한 신념이 없어지고 사회주의사상이 흐려지게 되니 동유럽에서 보듯이 사회주의사회가 붕괴되는 비참한 결과를 낳았다.

조선이 여러가지 리유로 서구에 비해 물질경제적으로 아직 부족하지만 동유럽 같으면 열백번도 더 거꾸러졌을 거지만 지금 핵강국으로 세계정세를 주도하고 있다. 이것이 무엇과 관련되는가? 사상에서의 기초, 핵(종자)과 관련된다. 맑스주의가 물질경제적 관계를 위주로 하여 철학적 문제를 고찰했다. 그것은 옳다. 물질경제적인 것이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그 물질경제적 관계에서 기본은 그 담당자 사회제도의 주인인 사람이 기본이라고 주체철학은 본 것이다. 그들이 어떤 요구를 제기하고 어떤 활동을 해나가는가. 이것이 주체사상이고 맑스주의와 주체사상의 근본 차이도 여기에 있다.

주체철학의 체계는 주체의 철학적세계관, 주체의 사회력사관, 주체의 혁명관, 주체의 인생관 이 네 가지 체계로 구성되어있다. 주체철학이 이 네 가지 구성체계로 되어있는 것 자체가 맑스주의 철학과의 차이점이다.

혁명관이 주체철학의 고유한 구성체계가 되어있는 것 자체가 맑스주의철학과 차이 나는 점이다. 주체철학이 왜 혁명관을 자기의 고유한 구성체계로 설정하고 내용을 밝혔는가 하는 것을 이야기하면 한마디로 철학이 자기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다. 사명이란 자기 할바이다.

철학을 왜 하는가. 철학이라는 말 자체가 사람이 살아가는 길을 밝게 비쳐주는 학문이다. 이것이 바로 철학이라는 뜻이 아닌가. 사람이 자기 살아가는 길 즉 철학에서 흔히 말하듯이 인간의 운명개척의 길을 밝혀주기 위하여 철학은 반드시 사람들에게 혁명에 대한 리해를 주어야 하고 그래서 주체철학은 혁명에 대한 리해를 주는 부분인 혁명관을 자기의 구성체계로 설정하였다.

주체사상이 말하는 혁명은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옹호하고 실현하기 위한 인민대중자신들의 조직적인 투쟁이다. 주체철학이 사랑의 철학이라고 할 때 사랑이란 인민대중의 본성을 존중하고 본성에 대한 사랑이 아니겠는가. 그 본성인 자주성에 대한 사랑을 실현하자면 무엇이 펼요한가. 혁명을 해야한다. 혁명을 통해서만 인민대중이 자기의 본성을 지킬 수 있고 자기의 본성을 앞으로 더 꽃피울 수 있다. 쉽게 말하면 사람들의 운명개척의 가장 이상적인 방식이 운명개척을 하기 위한 가장 정열적이고 이상적인 생활방식이 바로 혁명이다.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다.

사람들이 자기 운명개척을 성과적으로 멋있게 하자면 혁명을 해야한다. 혁명을 때리고 부수고 하는 걸로 생각하는데 절대 그런 게 아니다. 사랑을 실현하기 위해서 꼭 가야될 전형적인 방식이 바로 혁명이란 것이다. 김일성 회고록에도 우리가 무엇때문에 혁명을 하는가? 우리 겨레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없다면 우리는 혁명을 안한다. 겨레에 대한 사랑의 감정, 착취받고 압박받던 일제통치시기 일제의 발굽밑에서 신음하는 우리 겨레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산에서 고생하면서 혁명을한다.

혁명은 두드려 부수고 깨고 하는 것이 아니고 인민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출발하여 인민을 최대로 사랑하기 위하여 사랑을 꽃피우기 위하여 하는 것이 혁명이다. 혁명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혁명은 깨고 부수고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이 사람답게 살이나가자면 혁명을 해야 한다는 결론이 있지 않는가.

그런데 혁명이 아무 때나 혁명이 일어나거나 아무 때나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위대한 수령을 모실때 위대한 수령의 올바른 령도를 받을 때 혁명에서 승리할 수 있다. 항일혁명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현명한 령도, 수령님을 모시지 못했더라면 강대한 일제와 싸운 항일혁명에서 승리하기 힘들었을 것이고, 현재도 진행 중인 사회주의 혁명 즉 사상, 기술, 문화의 3대혁명을 하고 있다. 아직도 사회주의사회에서도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구속하는 부정적인 요인이 남아있으니까 그것을 마저 없애기 위한 사회주의 건설 이것을 하는 과정에 3대혁명을 하고 있는데 이것도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현명한 령도를 받으면서 우리 인민이 하고 있는 것으로 하여 계속 승리적으로 잘되고 있는 혁명이다.

이상 김일성종합대학학자들과 주체철학에 대한 좌담회(민족통신 2016. 8) 중에서 발췌


※ 수령(): 인민의 요구와 의사를 한몸에 체현하고 인민이 나아갈 길을 밝혀주고 인민을 이끌수 있는 가장 위대한 령도자를 뜻한다. 일반적으로 령도자, 지도자하면 많은 경우에 하나의 개인적인 정치인으로 보지 않는가. 그런데 북에서 말하는 수령은 개인적인 정치인이 아니라 인민의 최고 뇌수, 단순한 개인이 아니고 인민의 최고뇌수이다. 대통령하면 지지하는 사람도 있고 또 반대하는 사람도 있고 반대파도 많지 않은가. 그런데 북이 말하는 수령하면 조국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 따르는 또 모든 사람들의 이익의 최고대표자이며 그런 것으로 하여 개인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래서 최고뇌수라고 한다.

수령은 인민대중의 자주적인 요구와 리해관계를 분석종합하여 하나로 통일시키는 중심인 동시에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인민대중의 창조적활동을 통일적으로 지휘하는 중심입니다. – 조선말대사전
(《김정일선집》 8권, 448페지)

인민대중의 자주적인 요구와 리해관계를 분석종합하여 하나로 통일시키는 중심인 동시에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인민대중의 창조적활동을 통일적으로 지휘하는 중심으로 되는분으로서 전당과 전체 인민의 끝없는 존경과 흠모를 받고있는 가장 위대한 령도자. 수령은 력사발전의 합법칙성과 시대의 절박한 요구, 로동계급의 력사적임무, 계급적세력의 호상관계와 혁명투쟁이 진행되는 환경 그리고 혁명수행의 방도를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있으며 인민대중의 리익을 가장 철저히 대표한다.
동의어: 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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