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 위기를 한몸으로 막으시여

김 경 석

 

우리 당과 우리 인민의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조선로동당 제4차대회에서 다음과 같이교시하시였다.

《우리 당은 반당종파분자들과 그들의 사상여독을 반대하는 굳센 투쟁을 통하여 력사적으로 내려오면서 오래동안 우리 나라 로동운동에 커다란 해독을 끼쳐온 종파를 때려부시고 당의 통일과 단결을 결정적으로 강화하였으며 조선공산주의운동의 통일을 실현하는 력사적위업을 이룩하였습니다.》

조선공산주의운동의 완전한 통일을 실현한 이 력사적승리에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에 의하여 항일무장투쟁시기에 이룩된 혁명대오의 통일단결을 위한 고귀한 투쟁경험이 안받침되여있다고 나는 말하고싶다.

화요파, 엠엘파 등 종파분자들은 1925년에 조직되였던 조선공산당을 파괴하였을뿐만아니라 1930년대에 들어와서도 혁명대오를 와해하기 위하여 악랄한 책동을 하였다.

종파사대분자들은 좌경배타주의자들에 추종하여 반《민생단》투쟁이라는 간판밑에서 종파적목적을 추구하기 위한 죄악적인 음모책동을 감행함으로써 진정한 공산주의자들을 대량학살하며 조선혁명을 일대 위기에 빠지게 하였던것이다.

이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몸을 돌보시지 않으시고 몸소 이 위험을 타개하심으로써 조선혁명을 위기에서 구원하시였다.

 

혁명에 끼친 막대한 손실

 

1932년이였다. 당시 연길현 삼도만 대동구당지부 책임자로 사업하던 나는 어느날 상부로부터 보내온 통보서를 받았는데 이에 근거하여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되였다.

1932년 9월 어느날 경제모연공작차로 로두구 매봉산부락에 나간 항일유격대의 한 소부대는 한 농가에 들어 밤에 활동할 목적으로 해떨어지기를 기다리고있었다.

그런데 오후 3시경이나 되여 남산에 수상한 사람 3명이 나타났다.

망원경으로 그들을 유심히 관찰한 유격대원들은 그놈들이 적이라는것을 판정하고 총 잘 쏘는 최현동무를 파견하여 그놈들을 소멸하기로 하였다.

최현동무는 토퉁 마상대를 멘 그우에 덧저고리를 쓰고 사민으로 가장한 다음 슬렁슬렁 놈들에게로 접근하여 두놈을 쏴죽이고 한놈은 산채로 붙잡아 왕우구에 압송하였다.

취조한 결과 우리는 그놈이 일본헌병대 통역놈이였고 최현동무가 쏘아죽인 두놈은 일본헌병놈들이였다는것을 알았다. 그리고 매봉산부락에 대하여 적들이 《토벌》계획을 하고있다는 사실과 유격대와 당내부에 적들이 《민생단》이란 주구단체를 조직해놓았는데 당시 송노톨이라고 불리우던자가 바로 적의 주구라는것이 판명되였다.

송노톨이란자는 1931년까지도 연길 일본헌병대 감옥에 감금되여있다가 《감옥을 파괴하고 도주》하여 나온자로서 연길일대의 당조직과 혁명동지들에게 알려져있었던것이다.

그놈은 본래 종파에 가담했던자였다.

통역원의 진술에서 송노톨이 적의 간첩이라는것을 알게 된 유격대당조직은 송노톨을 체포하여 취급하게 되였다. 이 과정에서 그놈의 죄상이 전면적으로 드러나게 되였다.

그놈의 고백에 의하면 《파옥사건》자체가 순전한 기만극이였다.

일제놈들은 헌병대감옥에 갇혔을 때 변절한 송노톨을 리용하여 조선혁명운동을 내부로부터 파괴하려고 계획하고 송노톨을 우리 혁명대렬내에 박아넣을 방법을 생각해내게 되였다. 그것이 곧 송노톨의 《파옥사건》이였다. 일제놈들은 미리 감옥벽을 파괴해놓고 그곳을 통하여 송노톨을 내놓은 다음 한참 있다가 군대를 풀고 경찰을 동원하여 송노톨을 잡는다고 야단법석을 하여 거짓소동을 일으켰던것이다.

이러한 간교한 술책으로 혁명동지들의 눈을 속이고 우리 대렬내에 잠입한 적의 간첩 송노톨은 《농민투쟁》지 인쇄소에 있으면서 적들로부터 받은 임무를 수행하고있었다. 그놈은 당시 왕우구에 자리잡고있던 현과 구의 간부들중에서 과거 종파에 가담했던 불견실한 분자들을 긁어모아 대렬내부에 《민생단》이란 주구단체를 조직하였던것이다.

그러나 아직 경험없는 당조직들에서 송노톨을 경각성없이 취급한 결과 백창현이란 놈과 일부 놈들은 자기들의 비밀이 탄로된것을 눈치채고 도망쳐버리고말았었다.

우리 대렬내부에 조직된 적의 주구단체 《민생단》이 발로되자 각 당단체들에서는 반《민생단》투쟁이 광범히 벌어졌다.

날이 갈수록 우리 대렬내에 잠입한 《민생단》들의 활동방법도 밝혀지게 되였다.

놈들이 우리 대렬내에 《민생단》을 박기 시작한 초기부터 반《민생단》투쟁이 강력히 전개되였던만큼 《민생단》이 깊이 뿌리박을수도 없었고 사실 그럴만 한 시간적인 여유도 없었다.

그러나 좌경배타주의자들과 종파사대주의자들은 반《민생단》투쟁을 극히 위험한 단계로 끌고갔다.

그자들은 반《민생단》투쟁의 간판밑에 종파적목적을 추구하는 죄악적음모책동을 감행함으로써 사태를 더욱 엄중하게 만들었다.

그자들은 있지도 않은 사실을 꾸며가지고 자기에게 거슬리는 견실한 당원들을 《민생단》으로 몰아 총살하였던것이다.

일제는 이런 틈을 타서 혁명대렬내에 잠입시킨 주구들을 통하여 종파사대분자들을 부채질하고 한편으로 그들을 매수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일본놈들이 다 《민생단》이라고 호상 의심하도록 만들기 위하여 별별 간교한 수단을 다 썼습니다. 가령 현에서 현위가 (지금으로 말하면 군당위원장격인데) 어떤 지방에 비밀리에 순시를 나간다는것을 정탐을 통하여 알게 되면 그 사람이 왔다가는 길에다 그전에 그 지방을 지도나가던 구역 간부라든가 지도원들을 모해하기 위하여 《민생단》원이 그 구역 간부나 지도원에게 보내는 가짜편지를 써서 떨어뜨려놓았습니다. 그래서 군당위원장이나 군위원장이 그 편지를 얻어보고 《아, 이 사람이 〈민생단〉하고 련계를 가지고있고 일본놈과 통하고있구나.》하고 그 사람을 의심하고 상부에도 보고하고 그를 배척하도록 하자는것입니다.…

또 적들이 우리 진영을 혼란시키기 위하여 이 사람 저 사람 되는대로 물고들어갑니다. 적들은 될수 있는대로 많이 물어서 한사람도 남김없이 다 의심을 받게 만들자는것이 그들의 전술입니다.

좌경분자들은 자기들의 종파적목적을 추구하던 나머지 적들의 이러한 술책의 완전한 리용물로 되였거나 심한 경우에는 적의 주구로 전락되여 공산주의자들을 수많이 해쳤었다.

그자들은 위협공갈로써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한편 자기들앞에 굽혀들지 않는 진정한 공산주의자들은 생억지로 《민생단》감투를 씌워 총살하였다.

당시 화룡현당위원회 서기로 있던 김일환동무가 억울하게 학살된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있는 일이지만 종파분자들이 그를 얼마나 악독하게 학살하였는가를 더 밝힐 필요가 있다.

김일환동무는 혁명에 충실한 혁명가였다. 그렇기때문에 당시 상급에 앉아있던 좌경분자들의 부화한 작풍을 묵과할수 없었다. 그는 두려워하지 않고 이런자들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김일환동무를 미워하던 좌경분자들은 그에게 《민생단》혐의를 들씌워 죽이려고 작정하였다.

그러나 결백하고 절개가 굳은 그에게서 어떤 사소한 건덕지도 잡아낼수가 없었으므로 한번 체포했다가 다시 석방하는수밖에 없었다.

좌경분자들은 할수 없어 일단 석방은 하였으나 그를 죽여없애려는 자기들의 악랄한 목적은 버리지 않았다.

김일환동무는 아무때든지 자기가 다시 체포될것이고 그렇게 되면 살지 못하리라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어느날 그는 자기 어머니와 안해 리계순동무를 불러놓고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체포되여 죽을것이요.

나는 일본놈의 주구단체인 〈민생단〉이 될수도 없고 또 〈민생단〉이 되려고 생각하여본적도 없소. 그러나 나는 혁명가의 절개를 끝까지 지키다가 이곳에서 〈민생단〉으로 몰려죽는것이 오히려 타당할것이라고 생각하오. 만약 내가 살기를 원하여 적에게 투항하여 변절한다면 혁명에 더 큰 손실을 줄수 있기때문이요.

이렇게 되면 혁명을 배반한 나의 죄악은 천추만대에 씻을수 없게 될것이요.

마지막으로 나의 부탁은 온 가족이 우리 나라가 해방되고 독립되는 날까지 굴하지 말고 싸워달라는 그것뿐이요.》

좌경배타주의자들과 종파사대분자들은 아무런 고문으로도 그의 입에서 《민생단》이라는 거짓《자백》을 들을수 없다는것을 깨닫고 이번에는 김일환동무를 체포하자마자 군중심판회를 열고 《이자는 〈민생단〉우두머리이기때문에 불지 않는다.》고 선언하고 미리 꾸며둔 《민생단》혐의자료를 공포하였다.

김일환동무는 조금도 겁먹는 기색없이 꿋꿋이 나서서 이 거짓론고를 반박하고 대국주의자들과 종파분자들의 죄행을 폭로하는 연설을 하였다.

이렇게 되자 놈들은 당황하여 황급히 김일환동무를 《총살에 처한다.》고 공포하였다.

그러나 일은 좌경분자들의 뜻대로는 되지 않았다. 김일환동무는 자기의 사업을 통하여 지방군중은 물론 구국군부대들속에서도 높은 위신을 가지고있었다. 군중들은 그 자리를 슬슬 빠져달아남으로써 무언중에 항변을 하였으며 구국군병사들도 공개적으로 항의해나섰다.

《김일환동무는 우리 부대에 온 일도 있지만 그는 사업하는것을 보아도 아주 훌륭한 동지다. 그가 〈민생단〉원일수는 없다.》

그곳에 있던 구국군병사대중은 이렇게 술렁대더니 무장을 들고 《당장 사형선고를 취소하라!》고 강경히 요구해나섰다.

대중의 압력에 질겁한 좌경분자들은 하는수없이 군중앞에 김일환동무에 대한 《사형선고를 취소한다.》고 선언하였다.

그러나 놈들은 비렬하게도 그날밤에 김일환동무를 이송하는듯이 꾸며가지고는 암살하는 악독한 죄악을 감행하였던것이다.

연길에서 유격대조직초기부터 큰 역할을 한 윤창범동무를 학살한 사실도 그러했다.

좌경분자들은 이런 견실한 동지를 《민생단》으로 몰아 체포하였다. 생각지도 않던 체포를 당한 윤창범동무는 당황하였다. 자기의 결백을 밝힐 도리도 없이 억울하게 총살되리라는것을 생각한 그는 도주하여 급한 고비를 넘겨보자고 생각하였다. 그는 원래 연길감옥의 쇠살창을 맨손으로 잡아뽑고 탈옥한 장사였으니 그까짓 포승따위는 문제도 안되였다. 한번 힘을 써서 포승을 끊은 다음 자기를 지키고있던 경비원의 총을 빼앗아쥐였다.

그의 힘과 명사격술을 잘 알고있던 경비원은 뛰지도 못하고 벌벌 떨기만 하였다.

《안심하라, 나는 죄없는 동무를 해치지는 않겠다. 그러나 이 총을 동무에게 주면 나를 쏠터이니 가지고 가다가 일정한 곳에 두고 가겠다. 나중에 와서 찾아가라.》

윤창범동무는 이런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그는 그길로 부근에 있는 산림대로 갔었다. 후에 그가 사라진 방향으로 가보니 과연 총을 나무에 걸어두었었다.

윤창범동무는 이렇게 일시 급한 고비를 면했으나 산림대에 가있으면서 생각할수록 자기 행동이 뉘우쳐졌다.

(차라리 죽더라도 우리 혁명대오에서 죽어야지 산림대를 따라다녀서야 되겠는가? 죽더라도 대오에 돌아가서 동무들과 모든것을 밝히고 죽자.)

그는 이런 생각이 들자 그길로 돌아서서 다시 자기있던 부대로 돌아왔다. 악랄한 좌경분자들은 그가 나타나자마자 체포학살하였다.

좌경분자들의 악독한 책동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혁명가들이 희생됨으로써 우리 혁명은 참으로 비참한 손실을 보게 되였다.

반《민생단》투쟁이 이렇게 좌경적으로 진행된 결과 동지호상간에는 불신임이 조성되고 사람들은 의견이 있어도 말을 못하고 공포속에서 떨고있었다.

사람들은 번연히 애매하게 걸린 동무인줄 알면서도 그 사람은 《민생단》이 아니라고 보증해나설수도 없었다. 만일 그렇게 나서면 좌경분자들은 《〈민생단〉을 옹호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고 하면서 무조건 의심하기때문이였다.

군중들은 자기들이 믿던 당원들이 《민생단》으로 몰리는것을 보고 누구를 믿어야 할지 몰라하면서 점차 유격대와 멀어지기 시작하였다.

조선혁명은 이런 위험한 국면에 빠졌던것이다.

반《민생단》투쟁을 바른 궤도에 올려세워 진짜 《민생단》과 동지들을 엄격히 갈라냄으로써 혁명을 난국으로부터 건져내는 문제는 조선혁명도상에 놓인 심각하고도 긴급한 문제였다.

그러나 누가 감히 위험을 무릅쓰고 문제의 철저한 해결을 위하여 용감히 앞에 나설수 있으랴. 어느 누가 위기에 처한 조선혁명의 운명을 자기 한몸에 걷어안고 용감히 나서랴.

오직 이 난국을 몸소 막아나서신분은 다름아닌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반《민생단》투쟁이 벌어지는 초기부터 그를 정확히 진행할 필요성을 강조하시였다. 그러나 당시 동만당특위내에 있던 편협한 좌경배타주의자들은 《조선사람은 믿을수 없다.》고 함부로 비난하면서 《민생단》이라고 잡아온 사람이면 조사도 없이 무조건 총살하라고 무책임한 지시를 주군 하였다.

연길에서 수많은 견실한 당원들이 억울하게 《민생단》에 몰려 동만당특위로 호송되던중이였다.

도중에서 호송원들은 불의에 적의 대《토벌대》와 조우하게 되자 《민생단》혐의자들을 미처 수습할 사이도 없이 도망쳤다. 《민생단》혐의자들은 각기 분리되여 적의 《토벌》을 피하게 되였다.

그러나 《토벌대》놈들이 간 후 즉시 《민생단》혐의자들은 한사람도 빠짐없이 호송원들을 다시 찾아 모여왔다.

그래도 혁명대오를 저버리지 않고 찾아온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민생단》원이라고 할수 있겠는가. 그들의 행동만 보아도 가슴이 뜨거워지는데 우둔하고 편협한 좌경배타주의자들은 이런 사실도 고려하지 않고 모조리 총살하게 하였던것이다.

이렇게까지 일이 잘못되여나가고있었으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적들이 파견한 반혁명분자들과 같이 춤을 추고 돌아가며 자기들의 종파적목적을 추구하기 위하여 닥치는대로 사람을 죽이는 종파사대분자들의 악랄한 책동, 거기에다가 기름을 치고 부채질을 하는 편협한 좌경배타주의자들의 우둔한 처사-이것이 한데 어울려 한개의 미친듯 사나운 분류를 이루어 조선혁명을 더욱더 난국에 몰아넣고있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조선혁명앞에 닥친 이 비통한 사실을 누구보다도 심각히 느끼셨고 가슴아파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비상한 결심으로 한몸을 바쳐 조선혁명을 난국에서 건지시는 용감하고 대담한 투쟁의 선두에 나서시였다.

1934년 설맞이때였다. 당시 다홍왜에 주둔해있던 1중대에 대대참모장이란자가 설날에 와서 전체 대원들을 보고 《너희들은 다 〈민생단〉원이기때문에 같이 설을 쇨수 없다.》고 하였다. 중대원들은 격분을 참을수 없었다. 그들은 중대에서 설을 안쇠고 구당에 가있는 참모장을 중대에 데려다놓고 모두 울면서 자기들의 가정출신, 입대후의 투쟁을 이야기하고 《이런 우리들이 어떻게 〈민생단〉이란 말인가?》고 하였다.

이 사실을 아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구체적으로 료해하신데 기초하여 참모장을 철직시키고 자신이 중대에 내려가시여 정월 대보름까지 그곳에서 대원들과 같이 생활하시며 대원들의 사기를 고무해주시였다.

이곳에서 그이께서는 《민생단》에 대하여 해석하여주시면서 《누가 〈민생단〉이고 누가 〈민생단〉이 아닌가는 실천을 통하여 증명될것이다.》라고 하시며 대원들에게 학습과 전투에서 항상 모범이 되라고 가르치시였다.

그이께서는 문맹자들을 위해서는 손수 국문을 베껴주시고 전체 대원들에게 구구표를 만들어주시였으며 대원들을 위하여 손수 공책까지 매여주시였다.

그이께서는 이렇게 하시면서 한편 전투를 조직하시여 자위단도 습격하고 목재소도 쳐서 대원들의 사기를 돋구며 전투를 통해서 그들을 더욱 단련시키시였다.

왜놈들과 잘 싸우고 언제나 전투에서 승리하는 사람을 보고는 누구도 《민생단》이라고는 하지 못할것입니다. 이렇게 실천을 통하여 자기를 증명해야 합니다.

그이께서는 이렇게 좌경분자들이 전원 《민생단》이라고 하던 이 1중대를 아주 강력한 전투력을 가진 중대로 육성하시였으며 여기서 갈라내여 새로운 력량-7중대를 조직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편으로는 당시 동만당특위안에 있던 좌경배타주의자들과 종파사대주의자들이 범한 반《민생단》투쟁에서의 그릇된 편향과 죄행을 비판하시면서 다른편으로는 실천투쟁을 통하여 조선혁명가들의 견결성, 확고성을 보여주도록 하시였다.

 

일신의 위험을 무릅쓰시고

 

1935년초.

제1차북만원정에서 돌아오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촉한으로 몹시 쇠약해지신 몸이였으나 위기에 빠진 조선혁명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반《민생단》투쟁에서 범한 좌경적오유를 시정할데 대한 방침을 강구하고계시였다.

당시 나는 동만당특위 비서처에 있었다.

이때 공청 만주성위의 순시원이란자가 와서 왕청에 있는 유격대중에는 《민생단》이 80~90%라고 그릇된 주장을 하였다. 이 주장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부당하다고 지적하시였다.

그때 위대한 수령님께서 하시던 말씀을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있다.

《다 알다싶이 어떤 물질이든지 본래의 구성요소와 다른 요소가 80~90%이상을 차지하게 되면 그 물질은 다른 물질로 변하게 된다. 이것은 과학이다.

동만에 사는 조선사람의 70%가 〈민생단〉이라는것은 로인들과 아녀자들을 제외한 조선족청장년들전부가 〈민생단〉이라는 말과 같은데 그렇다면 동만에서는 〈민생단〉이 혁명을 하고있으며 〈민생단〉이 자기 상전을 반대하는 혈전을 벌리고있단 말인가?》

위대한 수령님의 이 정연한 론리앞에서 순시원의 말은 힘이 없게 되였다. 그는 말문이 막혔다.

그러나 그는 동만당특위내의 좌경배타주의자들과 함께 종전에 종파사대분자들에게서 들은 말만 믿고 자기의 그릇된 주장을 제때에 고치려 하지 않았다.

당기관의 위임을 받은 사람이 이런 그릇된 태도를 취하였기때문에 문제는 일층 복잡화되고 혼란에 빠지게 되였다.

1935년초에 있은 왕청현 다홍왜회의에서는 반《민생단》투쟁에 대한 문제를 중심으로 아주 날카롭게 의견이 대립되였었다.

이 회의에서는 동만특위의 당 및 공청 중요간부들의 참가밑에 반《민생단》투쟁과 관련된 일련의 문제들이 토의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직도 촉한이 채 낫지 못한 쇠약하신 몸이였음에도 불구하고 토의되는 문제의 중요성으로 보아 회의에 참석하시였다.

회의에서 공청 만주성위 순시원은 동만당특위내의 좌경배타주의자들과 함께 여전히 과거 좌경분자들이 하던 말을 하등의 검토도 없이 그대로 접수하고 아주 그릇된 론단을 내렸다.

그들은 동만에서의 《민생단》발생의 근원이 조선민족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의 파쟁에 있다고 단순하고도 유치한 론단을 내렸다. 그리고 과거 조선의 민족주의운동이나 1930년이전에 혁명운동에 참가한 사람들은 모두 《민생단》 혹은 《민생단》과 관련된자들이며 동만 각 현내의 조선공산주의자들의 80~90%는 《민생단》에 참가하였거나 그 련루자들이라고 무책임하게도 엄중한 규정을 내리였다.

그들은 《민생단》문제와 관련하여 간부구성도 고칠데 대하여 경솔하게 제기하였다.

그들은 대다수가 조선인공산주의자들로 이루어진 당시의 간부진영을 《민생단》과 관련이 없는 중국인간부로 교체해야 된다는것이였다.

좌경기회주의자들과 종파사대분자들에 의하여 반《민생단》투쟁이 극좌적으로 진행되였기때문에 조선공산주의자들의 대오는 이미 막대한 손실을 당하였다. 이런 어려운 환경에서 특위의 많은 간부들과 성위의 위임을 받은 사람까지 이런 론단을 하게 되자 회의분위기는 몹시 긴장되지 않을수 없었다.

회의에 참가한 간부들은 감히 자기 견해를 말할수 없었다. 만일 이 론단을 반대하여 나섰다가는 자신이 《민생단》의 감투를 쓰고 처단될것은 뻔한 일이였기때문이였다.

회의참가자들은 통분한 생각을 마음속에 가지면서도 발언하지 못하였다.

참으로 죽음도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고 진리를 굽히지 않으며 한목숨을 걸고 조선혁명을 건지자는 비장하고도 용감한 기개 없이는 감히 반대의견을 말할수 없는 심각한 분위기였다.

이처럼 엄중한 사태가 벌어졌을 때 오직 위대한 수령님께서만이 혁명의 운명을 좌우하는 이 어렵고도 책임적인 역할을 담당해나서실수 있었고 바로 그렇게 하시였던것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반《민생단》투쟁에 대한 좌경배타주의자들의 그릇된 주장을 비판하시고 그것을 명철하게 분석하신 다음 정확한 시정대책을 천명하시였다.

우선 그이께서는 《민생단》의 발생근원에 대한 그릇된 평가를 론박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민생단》이 발생한것은 조선의 민족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의 《파쟁》에 있는것이 아니라 우리의 혁명조직을 내부로부터 와해하며 혁명운동을 진압하기 위하여 발광하고있는 일본제국주의자들과 그 주구들의 조작에 기인한다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물론 과거 민족주의운동자들이나 공산주의운동자들가운데 파쟁분자들이 있었지만 그들중에는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조국광복위업에 몸바쳐 투쟁하다가 희생된 사람들도 있다는데 대하여서는 이 회의에 참가한 사람들이 잘 아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민생단〉이 나오게 된것을 과거에 민족주의운동이나 공산주의운동에 참가한 사람들과 관련시켜볼 필요가 없습니다. 〈민생단〉이 생겨난것은 우리의 혁명조직을 내부로부터 와해하기 위하여 발광하고있는 일본제국주의자들과 그 주구들의 모략적인 책동과 관련되여있습니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러한 정연한 론리, 혁명리론에 대한 깊은 연구 그리고 우리 력사와 현실에 대한 명철한 분석에 근거한 체계정연한 발언에는 누구도 경탄하지 않을수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속하여 동만에 있는 조선공산주의자들의 80~90%가 《민생단》에 참가했거나 그 련루자들이라는 무책임한 론단을 반박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그들이 만일 〈민생단〉이라고 하면 무엇때문에 3~4년동안 유격근거지에서 엄동설한에 집도 없이 입을것도 입지 못하고 먹을것도 제대로 먹지 못하면서 적들과 피흘리며 싸워왔겠습니까? 그들이 〈민생단〉이 아니라는것은 삼척동자도 능히 알수 있는 일입니다. 만일 동만에서 활동하고있는 조선혁명가들의 80~90%가 〈민생단〉이라면 우리가 어떻게 여기서 마음놓고 회의를 할수 있겠습니까? 여기 다홍왜를 방위하고있는 부대의 80~90%는 고사하고 그 10분의 1인 8~9%만 〈민생단〉이라고 하여도 우리는 마음놓고 이자리에서 회의를 할수 없을것입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민생단》으로 몰리였으나 그 누구도 《민생단》이라고 인정한 사람이 없으며 죽으면서도 《조선독립 만세!》, 《조중인민의 혁명승리 만세!》를 웨쳤다고 분격에 넘치신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이들을 과연 《민생단》으로 보아야겠는가고 질문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 신랄한 반문에 감히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진정한 조선공산주의자들을 자신의 손으로 수많이 죽이게 한 죄악의 장본인들인 동만당특위내의 편협한 좌경배타주의자들과 종파사대주의자들은 이 말씀에 질겁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론리정연하게 말씀하시면서 지금까지 반《민생단》투쟁에서 극좌적인 오유를 범함으로써 결국은 일본제국주의자들을 돕게 되였다는것을 똑똑히 인식하고 반《민생단》투쟁에서의 이 엄중한 착오를 조속히 시정해야 된다고 강력히 주장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간부문제에 대한 그들의 옳지 않은 주장도 여지없이 론박하시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회의에서 일부 사람들은 동만에 사는 조선사람은 중요간부로 될수 없으며 중국사람만이 간부로 되는것이 응당한것처럼 주장해나서고있습니다. 그들은 그 론거로서 조선사람은 소수민족이기때문에 다수민족을 지도할수 없다는것과 조선혁명가들은 종파적습성과 동요성이 있고 반동화되기 쉽다는것을 들고있습니다.

프로레타리아국제주의자인 우리가 간부문제를 이처럼 대하여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우리 조중 두 나라 공산주의자들은 공동의 원쑤 일제를 반대하는 피어린 투쟁에서 승리하는 날까지 함께 싸워야 할 숭고한 의무를 지니고있습니다. 이로부터 우리는 간부문제를 조중인민의 전투적단결과 반일공동투쟁을 강화하는데 부합되게 해결하여야 하며 간부들을 맑스-레닌주의적립장에서 혁명에 대한 충실성과 능력을 위주로 하여 선발하는 원칙을 지켜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조중 두 나라 인민의 공동의 리익으로부터 출발한 원칙이라는데 대하여서는 더 론의할 여지조차 없는것입니다.

다 아는바와 같이 동만에서의 공산주의운동력사를 보아도 조선사람들이 먼저 혁명을 시작하였고 당원들과 혁명조직성원의 압도적다수도 조선사람이며 그러다보니 간부구성에서 조선사람들이 다수를 차지하게 되였습니다. 이것은 동만지방 공산주의운동력사의 부인할수 없는 엄연한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실을 무시하고 간부구성에서 조선민족출신이 왜 다수인가 하는 시비를 거는것도 문제이지만 민족별 간부구성상태를 놓고 소수민족에 의한 다수민족의 지도이니 무엇이니 하는것은 도저히 리해할수 없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와 같이 편협한 좌경배타주의자들의 견해에 대하여 론박하시였다.

회의에서 다수를 차지한 편협한 좌경배타주의자들과 종파사대주의자들은 론리정연한 그이의 말씀에 감히 리론으로는 맞서지 못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10일동안 진행된 회의에서 끝까지 정연한 론리로 상대방을 론박하시면서 수십번 말씀하시여 강한 사상투쟁을 전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명철한 론리와 정당성은 상대방의 심장을 찔렀던것이다.

얼마나 그이의 론리의 힘이 예리하였던지 동만당특위에 있던 좌경분자이며 《민생단》련루자였던 《성쉬군》은 회의도중에 질겁을 하여 도주하여버렸다.

당시 왕청현당위원회에 있던 좌경분자도 역시 위대한 수령님의 주장에 간담이 서늘하여졌다.

그들은 위대한 수령님을 모해해보려고 온갖 술책을 다하였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길림육문중학교시절부터 혁명활동을 통하여 허물수 없는 높은 위신을 쟁취하시였고 또 어떤 파벌에도 가담한 일이 없으신만큼 누구도 감히 그이를 건드릴수는 없었다.

동만당특위내에 있던 일부 편협한 좌경배타주의자들도 육문중학교에 다닐 때부터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활동을 잘 아는 사람들이였던만큼 함부로 덤빌 생각을 내지 못하였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의 원칙적투쟁이 심화될수록 좌경배타주의자들과 종파사대주의자들은 궁지에 몰려들어가게 되였고 그럴수록 그들은 악에 받치게 되였다.

놈들을 더욱 겁나게 한것은 더욱 많은 사람들이 위대한 수령님의 정당한 주장을 지지해나서는것과 함께 다홍왜회의후 당시 만주성위에서 파견된 다른 순시원이 수령님의 주장을 적극 지지하게 된 사실이였다.

그는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뵈옵고 수령님의 비범한 혁명리론과 문제분석의 명철성에 탄복하게 되였고 반《민생단》투쟁에서 범한 극좌적오유를 시정할데 대한 그이의 현명한 방침에 대하여 마침내 지지하게 되였다.

그는 실정을 자신이 직접 료해하기 위하여 왕청현당위원회 서기이며 숙반공작위원회 위원장에게 《민생단》혐의자들을 직접 만나게 하여달라고 요구하였다.

이미 본바와 같이 《민생단》과의 련계밑에 견실한 공산주의자들을 함부로 모해하는데 참여하였던 그는 순시원이 감옥에 가서《민생단》혐의자들을 만나게 되면 자기의 정체가 드러나리라는것을 짐작하게 되였다.

여기서 겁을 먹은 그는 순시원을 암살할 계획까지 꾸미였다. 그리하여 도중에 자기 졸개들을 매복시킨 다음 그를 데리고 갔다.

얼마 안가면 있다던 감옥은 나타나지 않고 밀림속 외딴길로만 점점 더 들어가는것을 깨달은 순시원은 수상한 생각이 들었으나 모르는체하고 그의 거동을 감시하면서 걸었다.

돌연히 그자가 소리를 지르자 길섶에 매복했던자들이 나타나면서 그를 향하여 사격하였다.

그는 재빨리 몸을 피하며 권총으로 그놈을 냅다 쐈다. 그놈은 다리를 맞고 쓰러졌다. 그러자 매복했던자들도 도망쳤다.

좌경분자들의 이런 발악은 그것이 처음이 아니였다. 한해전에 국제당에서 파견되였던 반동무(조선인)도 놈들의 손에 의하여 무참히 암살되였었다.

반동무는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뵈옵고 조선혁명에 관한 수령님의 주체적혁명로선과 그릇되게 벌어지고있는 반《민생단》투쟁을 바로잡을데 대한 그이의 현명한 방침에 몹시 감동되여 적극 지지하여나섰다.

그는 왕청, 연길로 하여 훈춘으로 순시를 하면서 반《민생단》투쟁이 좌경적으로 전개되고있는것을 목격하게 되였고 따라서 범죄자들을 처단하고 잘못된것을 바로잡기에 노력하였다.

훈춘에 가서도 그곳 현당위원회내에 둥지를 틀고있던 종파사대주의자들과 기회주의자들이 반《민생단》투쟁의 간판밑에 견실한 공산주의자들을 해친 엄중한 죄행의 단서를 잡자 그것을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겁을 먹은 좌경분자, 기회주의자들은 반동무가 구역으로 시찰나갈 때 혁명의 배신자를 시켜 암살하게 하였다.

좌경분자들의 발악은 이렇게까지 악랄하였다. 놈들은 자기 파벌의 리익을 위하여서는 어떠한 죄악도 서슴지 않고 감행하였다.

그러나 원쑤들은 이렇게 발악함으로써 자기의 정체를 더 빨리, 더는 피할수 없게 폭로하고말았던것이다.

순시원을 암살하려던 사건을 계기로 왕청현당위원회내에서 반《민생단》투쟁의 간판밑에 좌경분자들이 감행한 죄악의 추악한 전모가 낱낱이 드러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주장이 정확하다는것을 모든 사실이 여지없이 증명하여주었다.

원쑤들의 발악이 아무리 심해져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추호의 동요도 없이 반《민생단》투쟁에서의 좌경적인 오유를 극복하기 위한 투쟁을 계속 강력히 추진시키시였다.

1935년 3월 요영구회의에서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문제를 강경히 제기하고 투쟁하시였다.

요영구회의에서 일부 편협한 좌경배타주의자들과 종파사대주의자들은 각 현별로 《숙반공작》의 성적비률을 자랑까지 하면서 계속 고문의 방법과 소위 《자수》운동으로 《민생단》아닌 《민생단》을 만들어내는 용서할수 없는 반혁명적죄행을 범할수 있는 위험한 주장을 계속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런자들을 상대로 다시금 강한 사상투쟁과 원칙적인 론전을 전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반《민생단》투쟁에서 좌경적오유를 결정적으로 시정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적들이 지금 우리 대렬내에서 분렬을 획책하려고 주구들을 리용하여 우리 대렬내에 《민생단》을 많이 잠입시킨듯이 가장하며 또 우리로 하여금 대오내에서 동지호상간에 서로 《민생단》으로 의심하도록 온갖 책동을 다한다는것을 지적하시였다.

회의에서는 날카로운 사상투쟁끝에 그이의 제기와 주장을 누구도 반대할수 없게 되였고 편협한 좌경배타주의자들과 종파사대주의자들은 결정적타격을 받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수년간 이 어려운 투쟁을 완강히 전개하신 결과로 조선혁명의 앞길에 가로놓였던 무서운 장애가 부서지고 밝은 전도가 내다보이게 되였다.

 

불패의 통일단결

 

다홍왜, 요영구회의이후 위대한 수령님의 명성은 전체 조선공산주의자들속에 더 널리 알려지게 되였고 누구나 다 그이를 조선혁명의 구원자로, 령도자로 더욱더 높이 우러러보게 되였다.

다홍왜회의에서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은 삽시간에 광범히 전파되여 모든 조선공산주의자들과 인민들에게 알려지게 되였다.

오직 한몸의 위험을 무릅쓰시고 조선혁명의 위기를 헤쳐나서시였고 자기들에게 들씌워지는 무서운 위험을 대신 막아나서신분이 바로 위대한 수령님이시였음을 다시한번 그들은 깨닫게 되였다.

왕청뿐만아니라 연길에서, 화룡과 훈춘에서 조선공산주의자들이 사업하고있던 모든 곳에서 그이에 대한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혁명의 장래와 자기 사업에 대한 확고부동한 신심을 주었다.

다홍왜회의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누구나가 다 가슴에 쌓였던 천근무게의 시름이 한꺼번에 풀리는것을 느끼였다.

《이제야 살았다!》

《어쩌면 우리 마음을 이렇게도 살뜰히 아시는가!》

사람들은 이렇게 부르짖으며 서로 붙들고 감격을 털어놓았었다.

사람들은 《이제는 모든 일이 바로 되리라》는것을 확신하게 되였고 힘을 얻게 되였다.

모든 조선공산주의자들과 전체 조선인민은 조선혁명의 진정한 령도자는 오직 위대한 수령김일성동지이시라는것을 더욱 굳게 확신하였고 그이께서 계시는 한 조선혁명의 앞길에는 광명이 비치리라는것을 심장으로 느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체 조선공산주의자들에게 이렇게 희망과 힘을 주시고 조선혁명의 앞길에 광명이 비치게 하시였을뿐만아니라 실지행동을 통하여 조선공산주의자들의 위신과 권위를 반석처럼 다지기 위한 꾸준한 투쟁을 전개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요영구회의직후에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를 친솔하시고 다시금 북만원정의 길에 오르시였다.

그것은 요영구회의결정에 근거하여 유격투쟁을 광활한 지역에로 확대함과 함께 우선 좌경배타주의자들이 80~90%가 《민생단》이라고 허튼 소리를 하던 조선사람들이 얼마나 일제놈들과 잘 싸우는가를 보여주며 다른편으로는 한사람이라도 애매하게 희생되지 않도록 보호하자는데도 있었다.

비록 요영구회의에서 리론적으로 여지없이 격파되기는 하였으나 아직도 동만당특위내의 편협한 좌경배타주의자들은 여전히 반《민생단》투쟁의 간판밑에 좌경적인 그릇된 로선을 계속 고집하고있었다. 이런 조건에서 그곳에 대원들을 가만히 둔다면 《민생단》감투를 뒤집어쓸 우려가 많았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와 같은 통찰은 정확하였었다. 그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친솔하신 부대가 북만원정에 앞서 로흑산에서 《정안군》을 격파하고 대승리를 쟁취하여 세상에 조선공산주의자들의 위신을 전례없이 높인 그 마당에서도 《민생단》을 내놓으라고 요구해왔던것이다.

그것은 로흑산전투승리후, 전체 대원들이 경축야회를 열고있을 때였다.

좌경배타주의자들이 보낸 통신원이 위대한 수령님께 와서 전하기를 한 대원이 《민생단》이라는 자료가 나타났으니 그를 체포해야겠다는것이였다.

그 말을 들으시자 그이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고 한다.

로흑산전투에서 그 동무는 생명을 아끼지 않고 적을 용감히 때렸습니다. 이런 동무가 도저히 《민생단》일수는 없습니다. 내가 데리고있는 대원은 내가 더 잘 알지 후방에서 더 잘 알수는 없습니다. 나는 그가 《민생단》이 아니라는것을 확신하기때문에 보낼수 없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후 전체 대원들을 친솔하시고 북만으로 들어가시면서 가는 곳, 이르는 곳마다에서 원쑤들을 쳐부시였다. 그리하여 광활한 북만땅에 혁명의 씨앗을 뿌리시였다.

그러나 요영구에 남은 우리들은 그이께서 떠나신 후 여간만 쓰라린 고통을 겪은것이 아니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정당한 주장앞에 여지없이 격파된 좌경배타주의자들과 종파사대주의자들은 감히 우리들에게 더는 손을 대지 못하였다.

그대신 그들은 우리들에게 돈을 15전씩 주면서 적들에게 투항하라고 내모는것이였다.

편협한 좌경배타주의자들과 종파사대주의자들은 우리 조선인공산주의자들을 모조리 쫓아냄으로써 적들로 하여금 우리들을 학살케 하려는것이였다.

사실 원통하고 기막혔다. 수년간 혁명을 위해 싸워온 간고한 나날이 눈앞에 선히 떠올랐다.

차라리 산에서 죽을지언정 적들앞에 무릎을 꿇을수는 없었다.

《당신들이 우리를 쫓는 이상 어디로 가라는것까지 지시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죽어도 적에게 무릎을 꿇지는 않을것이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몇동무들과 함께 가족을 데리고 유격근거지를 떠났다.

마음은 처량하고 비통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신다고 생각할 때 마음이 든든하였다.

눈이 강산같이 쌓인 밀림속이였지만 우리는 먼 북만길로 위대한 수령님을 따라가기로 결심하였다.

원쑤들의 경계가 삼엄한 생눈길을 헤치며 북으로북으로 들어가는 우리 15명의 마음은 한시도 위대한 수령님의 곁을 떠나본 일이 없었다.

이것은 우리뿐이 아니였다.

연길에서도 훈춘에서도 조선공산주의자들이 사업하는 모든 곳에서 사람들의 마음은 위대한 수령님께로 쏠리고있었던것이다.

그이께서 계시기에 조선혁명은 승승장구하고 그이의 권위와 위신이 있었기에 조선공산주의자들은 무서운 파멸의 구렁에서 구원되였다는것을 누구나가 생각하고있었다.

그리고 그이께서 조선공산주의자들의 선두에 서계시기에 조선혁명의 앞길에 광휘로운 서광이 비치고있는것을 모든 조선공산주의자들이 보고있었다.

천신만고 남호두 방상구 깊은 밀림속에 왔을 때 우리는 그곳에 와서 피난하고있는 연길소개민들과 만났는데 그중 강성백동무는 이런 말을 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 북만원정에서 돌아오시면 우리들의 이 억울한 처지도 풀릴것이요. 우리는 그이께서 하루빨리 돌아오시기만 고대하고있는 길이요.》

그들은 밀림속에 숨어서 양철로 만든 보습으로 감자밭을 뚜지며 그이께서 돌아오시기를 손꼽아기다리고있었던것이다. 우리는 그들과 함께 있기로 하였다.

바로 이 시기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남호두 소자지하에서 회의를 가지시였으나 지척에 있으면서도 우리는 모르고있었다. 나중에 들으니 조선인민혁명군 군정간부회의에서는 반파쑈인민전선로선에 대한 국제당 제7차대회결정을 전달받았고 동시에 위대한 수령님에 의하여 제시된 조선혁명발전에 관한 구체적방침들이 정당하며 반《민생단》투쟁에서 범한 좌경적오유에 대한 그이의 명철한 분석과 그를 시정할데 대한 그이의 방침이 전적으로 정당하다는것이 강조되였다고 한다.

그후 반《민생단》투쟁에서 범한 좌경적오유를 극복할데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방침은 더욱 철저히 관철되게 되였다.

반《민생단》투쟁에서 범한 좌경적오유를 시정할데 대한 근본적인 문제가 바로서고 일부 편협한 좌경배타주의자들과 종파사대주의자들은 응당한 타격을 받게 되였다. 그러나 그들이 뿌려놓은 여독을 완전히 청산하는 문제는 아직도 뒤에 남았었다. 이는 역시 간단한 문제가 아니였다.

확고한 주체적립장을 가지지 못하였던 일부 중간간부들중에는 부지불식간에 종파사대분자들이 뿌린 여독이 배여 사람을 의심하는 버릇과 사소한 일에도 《민생단》의 작용이라고 생각하는것이 거의 습성화되여있었다. 동지간에는 단결이 약화되고 원칙적인 비판이 결여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러한 여독을 청산하고 항일무장투쟁대렬내의 통일단결을 회복하기 위한 꾸준한 투쟁을 전개하시였다.

남호두회의결정에 근거하여 새로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를 편성하는 과정은 바로 좌경배타주의자들과 종파사대주의자들의 여독을 청산하고 대렬내의 통일단결을 일층 강화하는 과정이기도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남호두를 떠나 미혼진을 거쳐 무송현으로 가시였다.

당시 그곳에는 새 사단에 편입되게 된 한개 련대성원들과 함께 그들을 림시 맡아보던 한 정치일군이 있었다.

그는 위대한 수령님께 《우수한 사람은 다 골라가고 남아있는 100여명은 모두 〈민생단〉혐의를 받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는 탄알도 세알씩만 주고 전투대렬에서 제외하고있는데 말하자면 골치거리로 되는 사람들입니다.》라고 말하였다는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저없이 그들 100여명을 부대에 받아들이라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자 그는 펄쩍 놀라면서 그들에게 붙어있는 《민생단》혐의자 《문서》보따리를 내놓으며 《이들은 상당한 기간에 걸쳐 철저히 검토하지 않고는 절대로 전투대렬에 내세울수는 없을것입니다.》라고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걱정은 사실 공연한것이였다. 이 100여명의 대원들은 억울하게 《민생단》의 혐의를 받고 전투대렬에서 떨어져서 갖은 천대와 설음을 받고 다니던 동무들이였다.

그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다홍왜회의에서 하신 말씀을 듣고 자기들의 억울한 사정도 이제는 곧 풀릴것이라고만 믿었다. 그러나 여전히 그들은 《민생단》혐의를 벗지 못한채 우울과 불안속에서 지내면서 위대한 수령님을 한번 만나뵈였으면 하는 간절한 희망을 품고있었다. 그러던중에 그이께서 무송에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앞을 다투어 그이께서 계시는 곳으로 달려왔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을 반갑게 만나신 다음 한자리에 모이게 하고 회의를 여시였다.

대원들은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하소연할길 없던 억울한 사정을 눈물을 머금고 털어놓았다.

마치도 막혔던 물목이 터진듯 그들의 가슴마다에 맺혔던 아픈 심정이 일시에 터져나왔다. 그들은 저마다 원쑤들에게 부모처자를 잃은 자기들의 처지와 수년간 혁명을 위해 목숨바쳐 싸워온 일을 말하면서 어찌 자기들이 《민생단》이겠는가고 하였다. 사람마다가 자기는 《민생단》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앞으로도 혁명을 위하여 모든것을 바쳐싸울것이라고 하였다.

회의는 3일동안 계속되였는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모든 동무들의 이야기를 다 들으시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동무들을 오늘 누가 〈민생단〉이고 누가 〈민생단〉이 아니라고 결론짓기는 어렵다. 누구도 그것을 증명할수 없기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동무들에게 명백히 선언할것은 지금 이 자리에는 〈민생단〉이 한명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동무들자신이 다 〈민생단〉이 아니라고 부인하였기때문이다. 동무들은 이 시각부터 백지상태로 돌아가서 다 새로 출발한다는것을 알아야 한다. 깨끗치 못했던 과거란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동무들의 혁명가로서의 진가는 과거에 의해서가 아니라 실천행동에 의하여 규정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동무들은 지금 다같이 인생의 백지를 나눠가지게 되였다. 그 백지에 얼마나 고귀한 삶과 투쟁의 기록을 남기는가 하는것은 전적으로 동무들자신에게 달렸다.

모두가 새 출발하여 조국과 인민과 력사앞에 떳떳이 내놓을수 있는 투쟁행적을 그 백지장들에 적어놓게 되리라고 믿는다. 나는 이 시각부터 동무들을 그토록 괴롭혀왔던 〈민생단〉혐의가 완전히 무효하다는것을 언명하는 동시에 동무들모두가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의 대오에 들어섰다는것을 선포한다.》

장내는 고요하였다. 대원들은 감격에 빛나는 눈으로 이렇듯 자기들의 마음을 속속들이 알아주시는 그이를 바라보았다. 이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이 보는 앞에서 《민생단》문서보따리에 불을 지르게 하시였다고 한다. 자기들에게 들씌워졌던 《죄행》이 적혀있는 문서들이 붉은 화염에 휩싸이는것을 바라보던 대원들은 처음에는 자기 눈을 의심하였다.

그러나 그 다음순간 그이의 두터운 신임에 감격하여 장내에서는 걷잡을수 없는 울음들이 터져나왔다고 한다.

좌경배타주의자들과 종파사대주의자들이 뿌려놓은 동지호상간의 불신임, 호상리간, 알륵 등 일체 여독을 청산하고 유격대와 당내부에 건전하고 원칙적인 동지호상간의 관계를 회복하는 투쟁행정에는 이런 이야기가 한두가지가 아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동지들을 믿고 사업을 통하여 동지를 검열하는 원칙을 내세우고 조선공산주의자들을 육성단련하시였다.

억울하게 《민생단》의 루명을 썼던 이 100여명의 대원들을 비롯하여 그이에 의하여 구원된 많은 동지들이 그후의 장구한 항일무장투쟁에서 백절불굴의 혁명정신을 유감없이 발휘한것은 오늘 누구에게나 다 알려져있다.

이렇게 위대한 수령님의 헌신적인 투쟁에 의하여 항일무장투쟁대렬내에서의 좌경배타주의자들과 종파사대주의자들의 책동이 격파되고 그 여독이 청산되였으며 조선혁명은 준엄한 시련의 고비를 뚫고 다시금 대렬의 통일단결을 회복하게 되였던것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1930년대 전반기에 좌경배타주의자들과 종파사대주의자들이 반《민생단》투쟁에서 저지른 좌경적오유를 극복하는 투쟁을 통하여 조선혁명을 위기에서 구원하시였다.

이것이 없었더라면 장구한 항일무장투쟁에서의 그 빛나는 승리와 영광도 없었을것이고 우리 당이 해방초기에 그 복잡한 환경에서 종파분자, 지방할거주의자들의 책동을 물리칠수도 없었을것이다. 또한 간고한 전쟁당시와 전후시기에 반당종파분자들의 공격으로부터 당과 수령을 튼튼히 보위할수도 없었을것이다.

바로 1930년대의 반《민생단》투쟁의 경험이 있었기에 오늘과 같은 우리 혁명대렬의 통일을 이룩하는 위대한 승리도 있는것이다.

오늘 나는 지난 시기의 간고한 투쟁을 회상할 때마다 다시금 그때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조선혁명에 기여하신 불멸의 업적의 참다운 의의를 깊이깊이 깨닫군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