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 억센 투사로 키우시려고

김 철 만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항일혁명투쟁시기를 회억하시면서 회고록에 이렇게 쓰시였다.

《소년중대출신의 유격대원들가운데는 배신자나 락오자가 한명도 생기지 않았다. 이것은 그들이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앞에 얼마나 충실하였는가를 실증해준다.》

그러시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과분하게도 소년중대가 얼마나 훌륭한 사상단련의 용광로이며 쓸모있는 군사정치학교였는가 하는것은 나의 실례를 통해서도 잘 알수 있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그토록 값높게 평가해주신것처럼 우리 소년중대출신의 유격대원들은 수령님을 높이 받들어모시고 혁명의 한길을 충실히 걸어왔다.

소년중대출신의 유격대원들은 지난 항일혁명투쟁시기에는 물론이고 준엄한 조국해방전쟁시기에도, 새 조국건설시기나 사회주의건설시기에도 위대한 수령님을 높이 받들어모시고 그이의 사상과 령도를 철저히 실현하기 위하여 한생을 빛나게 살며 투쟁하였다.

우리는 오늘도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를 혁명의 수위에 높이 받들어모시고 주체혁명위업의 완성을 위하여 자신의 지혜와 정열을 깡그리 바쳐 일하고있다.

우리가 생의 말년까지 혁명의 길을 변함없이 충실히 걸을수 있은것은 혁명의 미래를 위하여 바치신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심혈과 로고가 있었기때문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행군길에 하나의 배낭을 더 지는것과 같은 덧짐으로 되였지만 철없는 우리를 한품에 안아 소년중대를 조직해주시고 일본군경들도 벌벌 떨며 맞서기를 두려워하는 쇠소리나는 혁명의 억센 투사들로 키워주시였던것이다.

이제는 반세기가 훨씬 지나갔지만 위대한 수령님의 품속에서 혁명의 계승자로, 억센 투사로 준비해가던 소년중대시절의 일들이 백지에 먹물을 뿌린듯 지워지지 않고 생생히 떠오른다.

 

입대시험

 

1937년에 들어서면서 내가 살고있는 지양개일대에서는 유격대가 장백땅에 나와 적들을 족친다는 희소식이 련이어 전해져 사람들의 심장을 격동시키였다.

그 소식을 들은 청년들속에서는 입대열풍이 세차게 일어났다.

나도 날마다 입대길을 모색하느라고 동무들속에 끼워돌아갔다.

그러던 그해 6월 어느날 밤 아래 지양개막바지에서 살고있는 우리 집에 낯선 손님 한분이 찾아왔다.

손님은 밤늦도록 우리 아버지와 마주앉아 지양개일대의 구체적형편을 알아보고 이 일대에서 조국광복회조직을 늘일 방도를 의논하였다.

한쪽구석에 누워 잠을 자다가 이런 이야기를 가만히 엿듣게 된 나는 이 손님은 분명 유격대에서 온 사람이라고 생각하였다.

후에 안 일이지만 그가 다름아닌 유격대의 《대통령감》이였다.

나는 아침일찍 일어나 아버지에게 손님을 따라 유격대에 가겠다고 말하였다.

아버지는 마을에 조직된 조국광복회 회원이였던것만큼 위대한 장군님의 전사가 되고싶다는 자식의 청을 기꺼이 받아주었을뿐아니라 가서 잘 싸우라고 고무까지 해주었다.

내가 따라가겠다고 하니 《대통령감》은 처음에는 좀 더 큰 다음에 가자고 하며 안된다고 하다가 아버지까지 데리고가라고 간청해서야 응해나섰다.

《대통령감》은 나를 곧장 사령부귀틀집으로 데리고갔다. 한발 먼저 귀틀집에 들어가서 한동안 있다가 나온 그는 나를 데리고 다시 들어가 위대한 수령님께 입대하겠다고 너무나 조르기에 데리고왔다고 말씀드렸다.

나는 속이 한줌만 해서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을 기다렸다.

이윽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웃으시며 말씀하시였다.

《장총키보다 더 작은 애숭이를 부대에 데리고오면 처리는 어떻게 하랍니까?》

내가 그래도 무슨 일이든 다 감당할수 있다고 말씀드리려는데 《대통령감》이 《애숭이라니요. 그애 나이가 자그만치 17살이나 됩니다. 키는 작아도 속은 령감이 다 된걸요.》하면서 나를 두둔해주었다.

거기서 힘을 얻은 나는 위대한 수령님께 《장군님, 키가 작다구 얕보지 마십시오. 이래뵈두 못해본 농사가 없습니다.》라고 말씀드리며 팔뚝을 걷어올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를 웃음어린 시선으로 보시며 팔을 보니 힘깨나 쓸것 같다고 하시며 옆에 있던 장총을 메보라고 하시였다.

총을 어깨에 메니 총탁이 무릎을 지나 발목에 닿았다. 그것을 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보아라. 안되겠다. 그런 총을 메고 어떻게 산에서 싸운단 말이냐.》라고 하시며 한 1~2년 있다고 총건사를 제대로 할만 할 때 유격대에 들어오라고 하시였다.

그래도 나는 위대한 수령님께 총을 어깨우에 메고 다니거나 지고다니면 되지 않는가고 떼를 쓰며 말씀드리고나서 메였던 총을 어깨우에 올려놓기도 하고 지기도 하면서 실지 동작을 하였다.

그러한 나의 모습을 한동안이나 바라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윽하여 그만하면 되였다고 하시면서 경위중대장에게 나를 동무들이 있는데 데려다주라고 하시였다.

유격대에 받아준다는 씨원한 말은 듣지 못했지만 되돌려보내지 않는것만도 다행이라고 생각한 나는 그를 따라 사령부귀틀집을 나섰다.

오솔길로 얼마쯤 가니 키높은 이깔나무옆에 천막이 하나 있었다.

천막앞에서는 내또래의 청소년들 10여명이 통나무의자에 앉아 웃고 떠들면서 이야기를 하고있었다.

나는 곧 그들과 친숙해져서 어울려 돌아갔다.

며칠이 지나서 우리의 대렬은 20명가량으로 늘어났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느날 몇몇 지휘관들과 함께 우리가 있는 곳으로 오시였다.

우리들은 환성을 올리며 마주 달려가 그이를 둘러쌌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신의 군복자락에 매달리는 우리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시며 그간 불편이 없었는가고 따뜻이 물어주시고나서 모두 앉으라고 말씀하시였다.

그리고 우리를 설복하기 시작하시였다.

《…나는 너희들이 부모형제들의 피값을 받아내기 위하여 손에 총을 잡으려고 결심한것은 아주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애국심의 표현이다, 그런데 아직 나이들이 어려서 혁명군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울것 같다. 유격대의 형님, 누나들이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는지 아마 너희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것이다. 혁명군은 한겨울에도 산속에서 눈을 깔고 잠을 자야 한다. 며칠씩 비를 맞으며 행군할 때도 있다. 식량이 떨어지면 풀뿌리나 나무껍질을 우려먹든가 맹물로 끼니를 에우는것이 혁명군생활이다. 내 보기엔 너희들이 이런 고생을 견뎌내지 못할것 같은데 집에들 가있다가 좀 더 큰 다음에 총을 메는게 어떠냐?…》

우리는 더 앉아있을수 없어 그이의 옷자락과 팔소매에 매달리며 《장군님, 우리는 어떤 고생도 감당해낼 자신이 있습니다. 어른들이 눈우에서 자면 우리도 눈우에서 잘수 있고 어른들이 굶을 때면 우리도 굶을수 있습니다.》라고 하며 유격대에 입대시켜달라고 졸랐다.

우리가 하도 떼를 쓰니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너희들이 정말로 유격대에 입대하고싶다면 오늘밤중으로 맹세문을 다 써내라. 왜 혁명군에 들어와 총을 메려고 하는가. 입대한 다음에는 어떻게 살며 싸우겠는가 하는걸 글로 써내라. 그러면 그 글을 보고 결정하겠다.…

우리는 모두 위대한 수령님을 바래워드리고나서 맹세문을 썼다.

나는 제땅 한뙈기가 없어 일년내내 힘들게 농사를 지으나 죽물조차 변변히 먹지 못하는 우리 집 살림형편과 중병에 걸린 어머니가 약 한첩 써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두 동생이 굶어죽은 다음 막내동생을 남에게 주지 않으면 안되였던 기막힌 사연을 글에 옮기면서 이렇게 마감하였다.

《장군님,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살수 있겠습니까. 먹고 살아갈 길도 없는 이놈의 세상을 어떻게 용서할수 있습니까.

나는 왜놈들이 판을 치는 세상을 뒤짚어엎고 만백성이 다같이 잘사는 세상을 일떠세우시려는 장군님의 뜻을 받들어 형님들처럼 유격대에 입대하려고 합니다.

장군님, 저를 유격대에 받아만 주십시오. 그러면 어떤 곤난과 시련도 이겨내며 일제놈들을 때려부시는 훌륭한 유격대원이 되기 위하여 모든 힘을 다하겠습니다.》

우리 소년들모두가 제식으로 쓴 맹세문을 이튿날 아침에 그이께 올리였다. 글을 모르는 소년들도 다른 동무들의 손을 빌어 맹세문을 써서 함께 올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들이 올린 맹세문을 일일이 다 보시고나서 《모두가 맹세문을 다 잘 썼다.》고 평가하여주시였다.

그리하여 우리는 최종 입대시험에 합격한셈이였다.

우리는 너무나도 기뻐 발을 동동 구르며 환성을 올렸다.

나는 솟구치는 감격을 억제할수 없어 어데라없이 막 달리다가 커다란 소나무를 붙안고 《어머니, 기뻐하여주십시오. 입대시험에서 나도 합격하였습니다.》 하고 웨쳤다.

그리고 아버지의 부탁대로 위대한 수령님을 잘 받들어모시며 용감하게 싸우는 훌륭한 유격대원이 될것을 굳게 맹세하였다.

 

소년중대를 조직해주시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소년들의 입대맹세까지 다 보아주신 후 사령부회의에서 소년중대를 따로 조직한다는것을 정식으로 선포하시고 중대장과 사무장도 임명하시였다.

소년중대 중대장으로는 사령부직속 기관총소대장으로 있던 오일남동무가 임명되고 사무장으로는 우리들과 나이가 비슷한 전희동무가 임명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소년중대를 조직해주시면서 간곡하게 하시던 말씀은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때 소년중대를 조직하는 목적과 소년중대원들의 임무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훈련을 잘하여 우리 혁명을 떠메고나갈 백절불굴의 혁명투사로 하루빨리 준비해야 한다고 간곡하게 당부하시였다.

나는 그날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을 명심하고 훈련을 잘하여 하루빨리 구대원들을 따라잡으며 한생을 수령님을 높이 받들어모시고 혁명의 길을 억세게 걸어나갈것을 굳게 결의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소년중대를 편성해주신 다음 인차 새 군복을 마련해주시고 무기도 수여해주시였다.

하루는 중대장의 인솔밑에 지양개 물곬을 따라 한참 내려가다가 개울물이 넓어진 곳에 가서 목욕을 하고 오니 매 사람들의 잠자리에 새 군복과 모자, 배낭, 신발 등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다음날 무기까지 수여받으니 기쁨이 하늘에 닿을것만 같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소년중대를 조직하기 며칠전에 벌써 7련대에 과업을 주어 군복천을 해결하도록 하시였으며 재봉대원들에게는 소년중대원들의 이름과 키를 대주시면서 옷을 꼭맞게 만들라고 신신당부하시였다.

그러시고도 마음놓이지 않으시여 친히 재봉대에 나가시여 옷색갈이며 바느질자리에 이르기까지 마음쓰시며 군복을 잘 만들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또한 구대원들을 무송과 안도 등지에 파견하시여 묻어두었던 무기를 가져오게 하시여 소년중대의 무기도 원만히 보장하도록 대책을 세워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새 군복을 갈아입고나선 우리들에게 친히 무기를 수여해주시면서 무기에 깃든 선배들의 고귀한 피와 땀을 잊지 말고 아끼고 사랑할데 대하여 그리고 하루속히 무기에 정통하고 백발백중의 명사수로 준비할데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나는 그때 38식기병총을 받았다. 키작은 소년중대원들에게는 모두 길이가 짧은 기병총이 차례졌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무기수여식을 마치신 후 하나같이 새 군복을 입고 총을 멘 우리들을 만족한 안색으로 한동안 둘러보시다가 이제는 소원이 성취되였으니 훈련을 잘해서 맹세한대로 훌륭한 대원으로 준비해야 한다고 말씀해주시였다.

우리는 목소리를 합쳐 《알았습니다.》 하고 기운차게 대답하였다.

우리 소년중대는 무기를 수여받은 다음날부터 위대한 수령님께서 몸소 작성하여주신 속성훈련강령에 따라 지양개등판에서 훈련을 시작하였다.

지양개등판은 운동장으로 쓰고도 남을만큼 컸다. 묵은 새초를 낫으로 낮게 치니 훌륭한 훈련장이 되였다.

우리는 여기에서 대렬훈련, 무기다루기훈련, 조준련습, 창격훈련을 많이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훈련장에 자주 나오시여 시범동작을 하시면서 군대물이 빨리 들자면 정보훈련을 잘해야 한다, 조준련습을 할 때에는 과녁을 원쑤놈들의 가슴팍으로 여겨야 한다시며 우리들을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였다.

며칠동안 정보훈련을 계속하니 다리가 돌덩이처럼 굳어져 그것을 우리끼리 푸느라고 소란을 피우던 일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무기다루기훈련을 할 때에도 우리는 처음에 애를 먹었다.

나이가 어린것만큼 팔힘이 약한 소년중대원들은 총을 구령에 따라 절도있게 다루지 못했다.

이런 때 위대한 수령님께서 훈련장에 나오시여 우리들의 훈련모습을 한동안 보시다가 옆에서 훈련을 하던 나에게 총을 달라고 하시였다.

그리고 모두 자신의 총동작을 보라고 하시며 총을 어깨에 메는 동작, 그것을 내리는 동작, 총을 받드는 동작, 몸옆에 총을 세우는 동작 등을 《하나, 둘》구령까지 주시면서 분동작으로 하시였다.

이어 나를 대렬앞에 내다세우고 총을 돌려주신 다음 자신께서 친히 구령을 주시면서 나에게 집총분동작훈련을 반복시키시였다.

분동작이 어느 정도 익숙되자 다음에는 완동작훈련을 하도록 지도하여주시였다.

나는 비로소 집총동작을 완성할수 있었다.

우리 소년중대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가르쳐주신대로 하여 집총동작을 훌륭히 완성할수 있었다.

우리는 지양개등판에서 이렇게 두어주일 훈련하다가 위대한 수령님의 명령에 따라 부후물밀영으로 행군하여갔다.

우리가 부후물밀영으로 행군할 때 그이께서는 구대원들이 소년중대원들을 몇사람씩 맡아 행군을 도와주도록 하시였다.

사실 그때 우리의 행군이 간단치 않았다. 고생속에서 자라난 우리들이였지만 간고한 행군을 처음으로 하는것만큼 그이께서 미리 대책을 세워주셨던것이다.

전희동무는 내 뒤를 따르면서 밤에 행군할 때에는 앞사람을 바투 따라가야 한다는것, 주위에서 나타나는 정황을 잘 살피고 조금이라도 이상한것이 있으면 제때에 지휘관에게 보고해야 한다는것, 쉬다가도 떠날 때에는 종이쪼박 하나라도 남기지 말아야 한다는것을 하나하나 일깨워주었다.

그리고 배낭물건을 정리하는 방법, 우등불을 피우는 방법, 발바닥물집을 없애는 방법 등 유격대의 일상생활에서 나서는 여러가지 문제들을 알려주었다.

우리 소년중대는 구대원들의 방조를 받으며 무사히 부후물밀영에 도착하였다.

부후물밀영은 비교적 안전한 밀영이였다.

여기에는 2~3개월분의 식량까지 장만되여있어 우리는 훈련에 전심전력할수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소년중대가 부후물밀영에서 훈련할 때에도 계속 깊은 관심을 돌리시며 지도해주시였고 특히 사상교양에 힘을 넣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처음에 글을 모르는 소년중대원들에게 글을 가르쳐주시였다. 손수 우리 나라 글자 자모표를 커다랗게 만들어 걸어놓고 그들에게 한자한자 배워주시였다.

자신께서 부대를 거느리시고 전투하러 가실 때나 회의로 하여 며칠씩 시간을 낼수 없을 때에는 녀성유격대원들에게 몇사람씩 맡기시여 그들이 글을 마저 배워주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편 우리 나라 글을 아는 소년중대원들에게는 자기의 생각을 글에 옮기는 훈련을 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느날 《조준훈련에서 중요한것이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짧은 글을 지어보라고 말씀하시였다.

나는 제목을 써놓고 생각하던 끝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늘 강조하시던 문제가 떠올라 과녁을 원쑤들의 가슴팍으로 알고 조준하며 언제 어디서나 조준훈련을 해야 한다는것을 기본내용으로 써나갔다.

우리는 이런 련습을 거듭하면서 우리 나라 글을 완전히 익히게 되였고 또 자기의 생각을 글로 옮기는 방법도 배울수 있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소년중대원들에게 명인들의 전기도 자주 이야기해주시였다. 오락회뒤에나 이야기모임끝에 우리 나라 력사에서 이름있던 사람들의 투쟁기에 대하여 재미나게 들려주시였다.

그리고 우리 나라 망국사도 강의해주시였다.

안중근, 윤봉길, 리봉창과 같이 권총이나 수류탄을 가지고다니면서 일본천황이나 조선총독을 제끼는 방법으로는 나라의 독립을 이룩하지 못한다는것, 무장투쟁을 축으로 하여 전민항쟁을 벌려야 조국의 광복을 달성할수 있다는것을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준훈련과정안에 정치학습시간도 따로 정해놓고 조선혁명의 로선과 방침에 대한 강의도 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로 《조국광복회창립선언》, 《조국광복회10대강령》 등에 대하여 강의해주시였다.

때로는 국제정세도 알려주고 여러가지 정치지식과 《조국》, 《혁명》과 같은 정치술어들도 해설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강의가 있은 다음에는 배운 문제를 가지고 토론하였다.

편을 갈라가지고 하는 문답식토론시간에는 론쟁이 벌어졌으며 어떤 동무들은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는 경우도 간혹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소년중대원들에게 혁명적량식을 안겨주실 때마다 우리는 그것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며 정치적으로 튼튼히 준비해나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편 부후물밀영에서 소년중대원들의 혁명적조직생활에도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

부후물밀영에서 우리 소년중대원들은 사령부의 재봉대성원들과 함께 생활하였다. 그리하여 중대장인 오일남동무를 비롯한 남자대원들만이 아니라 여러명의 녀성유격대원들이 같이 있었는데 그들의 대부분은 이미부터 청년동맹생활을 하고있었다.

이런 조건에서 소년중대는 자기의 정치조직을 따로 가지지 않고 재봉대의 청년조직에 망라되여 정치생활을 하였다.

우리의 정치생활에서 제일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것은 생활총화였다. 여기서는 군무생활과 군사정치학습에서 나타난 부족점들을 놓고 비판하였다. 사령부의 보초와 재봉대의 보초근무과정에 발로된 부족점들에 대해서는 사소한것이라 해도 심각히 비판되였다.

일상생활에서 제기된 문제들도 비판하였다.

어느날 밤 신발을 벗고 자다가 어버이수령님께 심려를 끼쳐드린 동무도 비판되였다.

조동무가 저녁에 신발을 벗고 자려고 하자 동무들이 충고를 주었다.

그런데도 그는 《일없어, 이때까지 없던 정황이 오늘밤에라구 생기겠는가.》고 하면서 동무들의 충고를 듣지 않았다.

바로 그날저녁에 어버이수령님께서 소년중대의 천막을 찾으시고 우리들의 잠자리를 돌아보시였던것이다.

조동무는 생활총화에서 자기의 결함을 성실하게 비판하였다.

사무장이였던 전희동무도 요구성을 높이지 못한 자기의 행동을 놓고 랭혹하게 반성하였다.

구대원들은 주로 전희동무에게 충고를 주었으며 소년중대원들은 조동무에게 동지적방조를 주었다.

소년중대원들은 조동무에게 《동무는 벌써 입대맹세를 잊었다.》, 《그만한 곤난도 극복 못하고 앞으로 어떻게 당당한 유격대원으로 되겠는가.》고 하면서 충고를 주었다.

우리는 구대원들과 정치생활을 함께 하면서 많은것을 배웠다.

우리자신들도 자기를 사상적으로 수양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참말로 소년중대는 사상단련의 용광로였다.

우리는 조선혁명의 량식을 받아안으며 사상단련의 그 용광로속에서 조국광복의 위업을 이룩하는데 이바지할 혁명의 믿음직한 후비로 억세게 자라났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부후물밀영에서 소년중대원들의 군사기술적준비에도 커다란 관심을 돌리시고 걸음걸음 이끌어주시였다.

부모들을 따라다니며 부대기를 일구고 농사나 짓던 우리들을 소년중대에 받아들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모두를 광복성전에서 한몫씩 담당할 혁명의 억센 투사로 키우시기 위하여 군사적으로 무장시키는데도 많은 품을 들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가 우선 전술훈련과 사격훈련, 행군훈련에 힘을 넣도록 하시였다.

유격대의 행동은 주로 전술적안목과 능란한 동작, 다양한 사격솜씨가 결합된 전투, 불리한 기후와 지대적조건을 극복하는 행군으로 이루어지는것만큼 이 세가지훈련은 우리 소년중대원들을 쇠소리나는 유격대원으로 키우는데서 가장 중요한 훈련이였다.

대렬훈련, 총다루기훈련, 창격훈련은 이미 지양개등판에서 초보적으로 배웠던것만큼 소년중대원들에게 적들과 싸우는 묘리와 능란한 사격솜씨, 행군법만 가르쳐주면 당장 전투를 벌리고 멀리 이동한다 하더라도 우리가 자기의 임무를 수행할수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소년중대가 먼저 전술, 사격, 행군훈련을 배합하여 집중적으로 하도록 하시였다.

행군을 하다가도 조우전, 매복전, 습격전 훈련을 하게 하시고 방어훈련을 하다가도 공격훈련으로, 공격훈련을 하다가도 방어훈련에로 이전하도록 하시였다.

그리하여 우리는 짧은 기간에 유격대원들이 초보적으로 알아야 할 군사지식을 체득할수 있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훈련강령에 따라 우리는 다음단계에서 개별과목훈련을 심화시켜나갔다.

행군훈련 하나만 놓고보더라도 눈이 많이 내릴 때, 비가 많이 올 때의 행군훈련과 산악행군훈련, 평야지대의 행군훈련, 도하훈련 그리고 야간행군훈련, 주간행군훈련, 수렁판을 지나는 훈련 등 다종다양한 훈련을 거듭 하였다.

부락과 마을들에 대한 습격훈련은 습격대상을 사판을 만들어놓고 강의를 한 다음 복잡한 정황을 조성하면서 진행하였다.

사격훈련은 소년중대원들을 여러가지 정황과 지형조건에서도 백발백중하는 명사수로 키우는 방향에서 하였다. 과녁을 원쑤들의 가슴팍으로 알고 조준련습을 할데 대한 정치사업을 앞세우면서 정황과 지형조건에 따르는 사격동작을 익히는데 많은 품을 들였다.

소년중대는 부후물밀영에서 이밖에도 지형학훈련, 통신훈련도 밤가는줄 모르고 하였다.

모두 군사훈련을 언제나 실전의 분위기속에서 정력적으로 진행하였다.

그리하여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의 손길아래 남들이 정규적인 군사학교들에서 2~3년씩 배우는 훈련과제를 자체로 조건을 갖추어놓으면서 불과 몇달사이에 떼는 성과를 이룩하였다.

소년시절에 보고들은것이 인생말년에 가서도 잊혀지지 않는것처럼 그 시절에 배운 군사지식과 군사기술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나는 소년중대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배워주신 군사지식과 군사기술을 밑천으로 하여 그후 10년가까운 세월 백두산일대에서, 국내의 적구종심에서 일제침략자들을 반대하는 유격투쟁을 벌렸다.

그 군사지식과 군사기술은 해방후 수십년동안 내가 군사부문에서 복무할 때에도 큰 도움을 주었다.

한개의 부대를 책임진 지휘관으로 일할 때나 혁명무력의 중요직책에서 복무할 때에도 나는 관하부대들의 훈련상태를 보러 나갈 때면 지양개등판과 부후물밀영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몸소 시범동작을 하시며 가르쳐주시던대로 훈련할것을 요구하였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에는 적구에 제2전선을 형성할데 대한 최고사령관동지의 명령에 따라 1950년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경상북도 안동군, 의성군, 군의군, 청송군, 포항 등 광활한 지대에서 적구투쟁을 벌리였는데 그때에도 나는 부후물밀영과 지양개등판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가르쳐주신 전법대로 전투를 지휘하여 수많은 적들을 격파하고 부대앞에 나선 전투임무를 성과적으로 수행하였다.

그때 우리 부대가 《남으로 천리》를 달리며 《강철청년부대》로 이름떨칠수 있은것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우리 소년중대원들을 혁명의 억센 투사로 튼튼히 키워주신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판정검열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8월초에 들어서면서 몸소 품들여 키워오신 우리 소년중대원들의 준비상태를 여러가지 방법으로 검열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선 일상적인 훈련상태를 통하여 우리들을 검열하시였다.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들의 행군훈련장에 나오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각이한 정황을 처리하면서 전진하는 우리들의 대오를 따라오며 보시다가 훈련시간이 끝나갈무렵이 되자 소년중대를 모이라고 하시였다.

우리는 환성을 올리며 위대한 수령님께로 달려가 그이를 둘러쌌다. 우리들의 군복은 땀에 흠뻑 젖어있었으나 그런것을 생각지도 않고 저마다 어떻게 하나 위대한 수령님께 가까이 다가서려고만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땀을 흘리는 우리들을 보시고 훈련하기 힘들지, 그러나 훈련에서 땀을 많이 흘려야 전투에서 피를 적게 흘린다고 하시면서 우리들을 격려하여주시였다.

그러다가 제일 가까이에 선 한 대원의 신발을 보시고 《이것 보지, 산발을 달리다나니 신발끈이 다 풀렸구만.》라고 말씀하시고 허리를 굽혀 손수 신발끈을 매주시였다.

그 대원은 한손으로는 위대한 수령님의 어깨를 짚고 발을 내민채 웃고만 있었다.

오일남중대장은 우리들의 외람된 행동을 막지 못하여 안절부절 못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신발끈을 매주고 일어서시며 우리들에게 오늘은 내가 시험을 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이때라고 생각한 중대장동무는 《중대모엿.》구령을 주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을 마주하고 분대별로 정렬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를 포함한 몇몇 동무들을 대렬앞에 내다세우시였다.

그리고 몇동무들에게 행군시에 조성될수 있는 각이한 임무를 주시고 나에게는 이런 정황을 주시였다.

유격대의 한개 소대가 여름에 수림속을 행군하고있는데 후방척후로부터 아침부터 추격해오던 일제침략군 1개 중대가 더 바투 따라온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잠시후 전방척후로부터 약 300m앞에서 한개 대대쯤 되는 위만군이 마주오고있다는 련락이 왔다. 동무가 소대장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나는 소년중대에서 배운 지식을 깡그리 동원하여 생각을 굴리다가 위대한 수령님께서 내놓으신 망원전술을 적용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나는 뒤에서 쫓아오는 일제침략군과 앞에서 마주오는 위만군놈들을 보임거리가 제한된 산림속에서 서로 싸우게 만들 결심이라고 말씀올리였다.

나는 결심을 실현하기 위하여 앞뒤에서 달려드는 적들의 중간에 소대가 위치하도록 행군속도를 조절하면서 소대를 두개 조로 편성한 다음 적들을 될수록 바투 접근시켜놓겠다, 그리고 사격신호에 따라 한개 조는 앞에 있는 적을, 다른 한개 조는 뒤에서 쫓아오는 적들에게 집중사격을 퍼붓도록 하겠다, 아군소대는 앞뒤에 사격을 하다가 좌우익측으로 은밀히 빠져 집결장소에 모이도록 하겠다고 보고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만족한 표정을 지으시고 《괜찮아, 제법이거든!》라고 하시고는 대렬앞에 내다세운 모든 동무들에게서 대답을 받으며 우리들의 준비상태를 검열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 우리들의 행군훈련총화까지 보시고 자리를 뜨시였다.

우리 소년중대는 렬을 짓고 병실을 향하여 걸어갔다. 병실로 향한 우리들의 생각은 서로 달랐다. 위대한 수령님께 만족한 대답을 올린 대원들의 가슴은 기쁨으로 설레였고 부족한 대답을 올린 동무들은 심한 자책속에서 모대기고있었다.

검열을 받을 기회를 가지지 못하였던 동무들은 다른 동무들의 대답에 자기들의 생각을 비추어보면서 걸어갔다.

오후에는 모두가 새로운 결의를 안고 훈련에 더 열중하였다.

그때로부터 며칠이 지난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 우리들의 사격훈련장에 오시였다.

우리는 한쪽에서 기재에 의한 조준훈련을 하고 다른쪽에서는 사격동작훈련을 하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들의 사격훈련상태를 구체적으로 살피고나서 훈련시간이 끝나자 모두들 모이라고 하시였다.

우리들은 언제나와 같이 환성을 올리며 위대한 수령님께로 달려가려고 하였다.

이때 중대장동무가 《중대모엿.》구령을 주었다. 그는 전번 행군훈련총화때와 같이 우리들이 위대한 수령님앞에서 외람되게 행동할가봐 대렬을 짓고 보고를 올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오일남중대장의 속생각을 헤아리신듯 가볍게 웃으시며 우리들에게 가까이 오시여 꼬마들이 정말 훈련을 열정적으로 한다고 치하하신 다음 총을 쏘아보고싶은 생각은 없는가고 물으시였다.

우리는 마치 약속이나 한것처럼 총을 쏘고싶다고 일치하게 대답을 올렸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신이 있소?》 하고 다시 물으시였다.

이번에도 우리는 《자신있습니다.》하고 힘차게 대답하였다.

우리는 다음날 실탄사격을 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소년중대의 실탄사격을 보장하기 위하여 밀영주변 멀리에까지 구대원들을 파견해서 경계를 서도록 하였다.

실탄사격장안에서 하는 보장사업은 7련대 4중대가 담당하도록 하시였다.

아침부터 시작된 실탄사격은 우리들의 가슴을 조이게도 하고 때로는 기쁨으로 설레이게도 하였다.

우수한 성적을 쟁취하는 동무들이 나타날 때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누구보다먼저 박수를 보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실탄사격이 끝나자 소년중대를 모이게 하시고 우수한 평가를 받은 동무들을 대렬앞에 내다세우시였다. 그리고 손수 우리들의 앞가슴에 커다란 꽃송이를 달아주시고나서 대렬감사를 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밖에도 전술훈련, 대렬훈련, 지형학훈련 등 여러 과목에 걸쳐 우리들의 준비상태를 검열하시였다.

훈련총화에서 우수한 성적을 쟁취한 우리들의 심정은 하루빨리 적들과 싸우고싶은 충동으로 설레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들의 이런 심정을 헤아리신듯 이번에는 실전을 통하여 준비정도를 검열할 결심을 하시였다.

일부 지휘관들은 걱정어린 표정을 지었으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하루빨리 우리를 어엿한 유격대원으로 되게 하시려고 대담하게 이 검열방법을 택하시였던것이다.

우리가 구대원들과 함께 처음으로 참가한 전투가 8월상순에 있은 신방자전투였다.

우리 소년중대는 경위중대와 함께 신방자의 북쪽에 위치한 산릉선에 나있는 갈림길에서 북쪽으로 조금 떨어져있는 둔덕에 매복해있다가 사격신호에 따라 적의 장교와 기관총수놈들을 소멸하고 적의 기본집단에 집중사격을 퍼부을 임무를 담당하였다.

유격대는 이 전투에서 한명의 손실도 없이 200여명의 적들을 몽땅 살상포로하고 수많은 무기를 로획하였다.

이런 전과속에는 소년중대원들의 투쟁업적도 포함되여있었다.

우리 소년중대는 그해말까지 훈련을 거듭하면서 구대원들과 함께 수많은 전투들에 참가하여 자신의 준비상태를 검열받으며 적지 않은 전투경험을 쌓았다.

소년중대가 모든 면에서 준비를 갖추었다고 판정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들을 기본전투부대들에 배치할 결심을 하시였다.

찬바람이 불어오던 그해 12월 어느날 우리 소년중대는 위대한 수령님의 새로운 명령을 접수하기 위하여 정렬하였다.

모두가 초연에 그슬린 얼굴색을 하고 위대한 수령님께서 오시기를 기다리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드디여 소년중대의 천막으로 오시였다.

오일남중대장이 접근하여 《사령관동지, 소년중대는 새로운 임무를 접수하기 위하여 정렬하였습니다.》라고 보고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렬앞에 서시여 지난 몇달동안 소년중대가 이룩한 훈련성과와 전투업적들을 총화하시고 이제부터 동무들은 기본전투부대들에 배치되여 구대원들에게서 더 배우면서 원쑤들을 용감하게 무찌르는 혁명군이 되여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어 우리 소년중대원들의 이름을 한명한명 불러주시며 부대에 배치해주시였다.

그때 나는 7련대에 배치되여 오중흡동지의 전령병으로 임명되였다.

짧지 않은 내 한생을 돌이켜보면 인생행로에서 출발점, 혁명의 첫걸음을 어떻게 떼는가 하는것이 참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오늘까지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신임을 받으며 혁명에 충실할수 있은것은 전적으로 수령님의 은덕이다.

인생초엽에 위대한 수령님의 품에 안기는 행운을 지녔던 나는 인생말년에도 위대한 장군님의 품에 안겨 로투사로 존대를 받으며 한생을 빛나게 살아갈수 있는 행운을 지니였다.

위대한 수령님과 꼭 같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지난날 수령님께서 그러하신것처럼 친어버이심정으로 우리를 내세워주시고 돌보아주시며 주체혁명위업의 완성을 위한 성스러운 길을 드팀없이 걸어가도록 이끌어주고계신다.

행운에 행운을 겹쳐서 받아안은 나는 지난날 위대한 수령님덕분에 혁명의 길을 힘차게 걸어온것처럼 앞으로도 경애하는 장군님의 크나큰 은덕에 보답하기 위해 모든 힘을 다해나갈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