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소 신흥지구에 나가시여

백 학 림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우리 혁명앞에 복잡한 정세가 조성되고 어려운 난국이 앞을 가로막을 때마다 그것을 극복타개하고 혁명을 계속 앙양에로 이끌어올리기 위한 전략전술적방침들을 제시하시고 그 실현을 위한 투쟁을 현명하게 이끌어오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중일전쟁의 발발로 하여 정세가 복잡해져 일시 우리 혁명에 난관이 조성되였던 바로 그때에도 그것을 극복타개하고 조선혁명을 앙양에로 이끄실 구체적인 과업과 방도들을 련이어 밝혀주신 후 국내에서 혁명투쟁을 더욱 앙양시키기 위해 몸소 위험을 무릅쓰시고 신흥지구에로 진출하시였다.

오래동안 대륙침략전쟁을 준비해오던 일제는 1937년 7월 7일 드디여 중국관내에 대한 전면적인 무력침공을 개시하였다.

우리 혁명앞에는 참으로 복잡한 정세가 조성되였다.

지금도 중일전쟁이 터졌다는 소식을 듣고 온 밀영이 술렁거리던 광경이 선하다.

일제가 만주를 강점하던 수법대로 《로구교사건》을 조작하고 선전포고도 없이 총공격에로 넘어가 하루사이에 로구교, 룡왕묘 등을 점령했다는 소식에 이어 놈들이 베이징, 천진을 타고앉았다느니, 벌써 상해를 공격했다느니 하는 소식이 연방 밀영에 날아들었다.

그리고 본래부터 일제의 침략에 투항주의적으로 나오던 장개석도당이 전쟁을 회피했다는 이야기며 도이췰란드와 이딸리아는 물론 미, 영 등 서방제국주의자들이 일제를 적극 두둔해주고있으며 이에 더욱 오만해진 놈들이 전중국을 완전히 먹어보려고 막대한 병력을 화북땅에 들이밀고있다는 소문도 돌았다.

국내에서도 더욱 험악한 소식들을 전해왔다.

일시적으로 승승장구하는 일제의 기세에 겁을 집어먹은 민족개량주의자들과 기회주의자들은 일제앞에 로골적으로 투항변절하거나 그와 결탁하는 길로 나아가는데 지어 이자들은 청년들에게 침략전쟁의 총알받이로 될것을 공공연히 설교한다는것이였다.

그 소식을 들을 때마다 우리는 격분을 금치 못해하였다.

한편 혁명대오내에서 동요분자들이 나왔으며 지어는 우리 조선인민혁명군의 일부 대원들과 지휘관들속에서도 이 전쟁이 확대될수록 우리 혁명에 불리한 영향이 미치게 될것이라고 우려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나자신도 이 복잡한 난국을 어떻게 타개해나갈것인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자기도 모르게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는 사령부를 바라보군 하였다.

바로 이러한 때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조성된 정세를 과학적으로 분석하신데 기초하여 중일전쟁으로 하여 조성된 복잡한 정세를 령활하게 리용하면 화를 복으로 전환시킬수 있다고 보시고 혁명을 계속 앙양에로 이끄실 전략전술적방침을 제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중일전쟁발발직후인 1937년 7월 중순 백두산밀영에서 열린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 지휘성원들의 회의와 그해 8월초 장백현 초수탄에서 소집된 군정간부회의, 8월 중순 압록강연안의 장백-림강 현경에서 진행된 지휘관 및 병사대회 그리고 9월에 발표하신 전체 조선동포들에게 보내는 호소문들에서 급변한 정세에 주동적으로 대처하여 혁명을 계속 앙양에로 전진시킬 과업과 방도들을 밝혀주시였다.

그러신 후 로동계급의 대부대가 집중되여있는 신흥지구로 나가실것을 결심하시였다.

그때 위대한 수령님의 결심을 알게 된 우리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더우기 위대한 수령님께서 불가피한 경우를 내놓고는 적들과의 대결을 피해야 한다고 하시며 수행원들을 불과 10여명으로 하시고 모두 사복차림을 하도록 하게 하셨을 때 부대 지휘관들은 수령님께서만은 위험한 국내깊이에 들어가시는것을 부디 삼가해달라고 거듭 간청하였다.

《대통령감》 리동백동무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사복차림을 하고 나서시자 《사령관동지, 안됩니다. 적들의 경계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합니다.》라고 하면서 한사코 만류하였다.

특히 김주현동무와 그와 동행하였던 소부대성원들은 모두 자책속에 어쩔바를 몰라하였다.

김주현동무는 자의대로 금광을 친 자기의 무규률적인 행동으로 하여 국내공작임무를 망쳐놓았기때문에 사령관동지께서 국내로 나가시는것이라고 하면서 심한 자책속에 잠겨있었다.

이처럼 온 부대의 간절한 만류도 마다하시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로동계급을 찾아 그처럼 위험한 길을 떠나시게 되신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신흥지구로 나오시기 위하여 림강현 신태자밀영을 출발하신것은 중일전쟁발발에 즈음하여 전체 조선인민들에게 보내는 호소문을 발표하신 직후인 1937년 9월 중순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을 모신 우리 소부대는 압록강을 건너 삼수군소재지를 에돌아 부전으로 향하였다.

대오가 청산령을 넘어서는데 신흥지구비밀근거지에서 활동하고있던 소부대책임자 한초남동무와 김홍수동무가 그곳에 나타났다.

사령관동지께서 오늘래일중으로 부전땅에 들어서게 된다는 련락을 받고 마음이 놓이지 않아 달려왔다는것이였다.

그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고맙다고 하시며 그까짓 몇놈의 적때문에 우리가 갈길을 못 가겠는가고 하시며 호탕하게 웃으시는것이였다.

얼마후 우리앞에는 넓고 푸른 호수가 나타났다.

한초남동무는 위대한 수령님께 그것이 부전호 2호언제인데 이제 왼쪽기슭으로 올라가면 기본언제인 1호언제가 있다고 하였다.

정말 10리 되나마나하게 가니 높이 쌓은 언제가 보였다.

1호언제 가까이에 경찰관주재소가 있고 언제에서 1.5㎞정도 더 가니 호수가에 일제의 신흥재벌인 노구찌놈의 별장이 있었다.

노구찌별장 주변경계가 삼엄하였으므로 대오는 그곳을 에돌아가기 위하여 산릉선에 올랐다.

부전호가 한눈에 안겨오고 노구찌놈의 별장이 빤히 내려다보이는 곳에 이르렀을 때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비화로 가득찬 부전호의 건설과정과 조선로동자들에 대한 노구찌놈의 착취상에 대하여 상세히 이야기해주시였다.

노구찌놈이 1920년대 초기부터 시작된 부전호언제공사때 《사망신고서》를 3만장이나 미리 인쇄해가지고 《이것만 있으면 부전호언제공사는 문제가 없다.》고 줴치면서 무려 3 000여명의 무고한 로동자들의 목숨을 빼앗아갔다는 사실을 알고 나는 분노의 치를 떨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것이 바로 지금 조선로동계급의 처지라고 하시면서 그런 로동자들이 각성할 때 혁명의 령도계급으로, 주력군으로 될수 있다고 가르치시였다.

행군과정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줄곧 우리 나라 로동계급의 처지와 로동운동의 실태에 대하여 말씀해주시였다.

우리 나라에서는 1931년부터 평양, 흥남, 원산, 청진, 서울, 부산, 신의주 등 도시들에서 적색로조를 조직하기 위한 투쟁이 치렬하게 전개되였다. 그러나 종파주의자들의 책동과 적들의 가혹한 탄압으로 성황기를 보지 못한채 인차 존재를 끝마칠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신흥지구로 진출하실 그 당시에는 로조지도자들이 거의 다 투옥되거나 변절했으며 아니면 피신하여 은둔생활을 하는 형편이였으므로 사실상 로조는 유명무실한 형편이였다.

파란많은 우리 나라 로동운동력사는 옳바른 지도자를 만나지 못하면 그 어떤 운동도 승리할수 없다는 심각한 교훈을 주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력사의 거울에 종래의 로동운동을 랭철하게 비쳐보시면서 로동계급을 조직적으로 결속하는데서 기성조직인 로조를 재건하고 혁명적인 대중조직으로 확대강화하는 문제가 중요하다고, 로동자대중의 힘과 지혜에 의거하여야만 혁명을 옳게 진척시킬수 있다고 하시였다.

우리 대오는 며칠간의 행군끝에 신흥지구비밀근거지의 동오골밀영에 도착하였다.

우리가 도착하니 그곳에는 부전령산줄기를 끼고있는 동해안지구에서 30명정도의 정치공작원, 혁명조직책임자, 로조, 농조의 핵심들이 와있었다.

조국광복회 흥남지구위원회 책임자가 김혁철동무의 안내를 받으며 밀영에 왔다. 그들은 적들의 눈을 속이기 위해 물고기장사로 가장하느라고 고등어를 한중태기 메고왔다.

나는 그들을 통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 일대 로동계급을 조직적으로 결속하기 위하여 이미 수많은 정치공작원들을 파견하시였다는것과 항일의 녀성영웅이신 김정숙동지의 지도밑에 위인찬동무가 임무를 받고 1937년 6월경에 흥남지구에 침투되여 그해 8월에는 조국광복회 흥남지구위원회를 조직하고 수많은 로동자들을 묶어세웠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곳을 거점으로 하여 여러날동안 활동하시였다.

우선 각지에 파견되여 활동하던 정치공작원들을 만나 구체적인 실태를 료해하시고 각지에서 온 로조, 농조의 핵심들과도 담화하시였다.

신흥탄광에 파견된 리효준동무와 탄광주변의 반일회책임자를 만나시여 밤이 깊도록 담화를 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탄광마을에 나가보자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신변안전을 책임진 우리는 그것만은 안된다고 극력 만류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탄광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탄광로동자들의 목소리 한번 들어보지 못할바에야 우리가 무엇때문에 여기까지 수백리길을 걸어오겠는가, 탄광지구에 와서 로동자들도 만나보지 못하고는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사상을 내놓을수 없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동오골밀영에 도착하신 다음날 저녁녘에 이곳 로동자들이 흔히 입는 대마직로동복차림을 하시고 탄광마을에 나가시여 로동자들과 허물없이 이야기를 나누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과정에 로동자들이 여러 지방에서 모여온 뜨내기들이여서 서로 속을 주지 않고 끼리끼리 밀려다닌다는것을 아시고 서로 마음을 맞추어 살아야 의지할데도 생기고 힘도 생긴다고 일깨워주시였다. 날이 어두워지자 이 지방 조직원들이 위대한 수령님을 삼밭산밑에 있는 외딴집으로 모시고갔다.

탄광마을에서 5리가량 떨어져있는 이 집은 한때 비밀독서회도 운영했다는 안전한 집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튿날에도 동오골에 가시여 사업을 하시고 저녁에는 다시 이 집에 오시여 로동자들과 담화하시였다.

이러한 준비밑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마침내 신흥탄광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삼밭산에서 조선인민혁명군 정치공작원 및 지하혁명조직책임자들의 회의를 여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회의에서 국내에서 혁명투쟁을 더욱 앙양시키기 위한 력사적인 연설을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먼저 중일전쟁발발후의 국내외정세를 과학적으로 분석하신 후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조성된 정세의 요구에 맞게 국내에서 혁명투쟁을 더욱 앙양시켜야 하겠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국내에서 혁명투쟁을 앙양시키기 위해서는 도처에 혁명조직을 꾸리고 확대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우선 군수공장들이 집결되여있는 동해안지구에 주력을 돌릴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속하여 혁명조직을 꾸리고 확대하는데서 중요한것은 당조직을 내오는것이라고 하시면서 해당 지역의 구체적실정에 맞게 당조직을 내오고 지역적지도기관을 내오며 모든 당조직들이 조선인민혁명군당위원회의 령도밑에 활동하는 당조직지도체계를 확고히 세워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정치공작원들과 지하혁명조직책임자들은 로동자, 농민들과 청년학생, 지식인, 애국적인 기업가, 상인, 종교인들속에 깊이 들어가 그들을 교양전취하여 혁명조직에 굳게 결속해야 한다고 하실 때 그들의 얼굴에 빛나던 눈빛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사람으로서 민족적량심이 있고 반일강점을 지닌 사람은 누구나 대담하게 포섭하며 혁명적영향을 주어 반일대중단체에 받아들이라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의에서 로동조합과 농민조합을 혁명적인 대중조직으로 전환시킬데 대해서도 중요하게 강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로동조합과 농민조합의 지도성원을 튼튼히 꾸리며 혁명적인 로동조합과 농민조합을 부단히 확대할데 대해서 그리고 그에 대한 지도체계를 정확히 세울데 대해서와 실천투쟁속에서 조직을 부단히 확대강화할데 대해서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다음으로 국내에서 반일항전을 과감히 조직전개할데 대한 과업과 방도들에 대해서도 세세히 가르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정치공작원들과 지하혁명조직책임자들은 각계각층 군중을 불러일으켜 반일항전에 떨쳐나서게 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각종 형태의 반일투쟁, 특히 군수생산의 파탄, 군량미조달을 반대하는 투쟁들을 과감히 전개해야 한다고 하시였다.

이와 함께 국내에서 활동하는 조선인민혁명군 소부대들과 혁명조직들은 일제의 군수창고와 군용도로, 교량, 항만을 파괴하거나 군용렬차, 군수물자수송대를 기습하여 파괴소각하거나 폭파함으로써 적들에게 결정적타격을 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끝으로 정치공작원들과 지하혁명조직책임자들이 조성된 정세의 요구에 맞게 국내에서 혁명조직을 꾸리고 확대하며 반일항전을 조직전개하는 사업에서 보다 큰 성과를 달성하리라는것을 확신한다고 신심에 넘쳐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연설을 마치시자 회의참가자들은 흥분을 누르지 못해 서로 옆사람의 손들을 꽉 잡고 흔들며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과업을 철저히 수행할 결의들을 다지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연설은 국내에서 혁명을 더욱 앙양시키기 위한 강령적지침이였다.

회의후 정치공작원들과 혁명조직책임자들은 흥남과 함흥, 원산을 비롯한 군수공장들이 집결된 동해안지구에 깊이 침투하여 혁명조직을 튼튼히 꾸리고 확대하는 사업을 더욱 줄기차게 벌려나갔다. 그리하여 이 지역에 당조직이 튼튼히 꾸려지고 혁명적인 로동조합과 농민조합이 늘어났으며 광범한 군중이 각종 형태의 혁명조직에 굳게 결속되게 되였다.

한편 국내에서 조선인민혁명군 소부대들과 혁명조직들의 무장활동이 적극화되였고 로동자, 농민을 비롯한 각계각층 인민들의 반일항전이 줄기차게 일어났다.

1937년 9월에는 함남도 갑산군(당시) 일대 인민들의 반일투쟁이 세차게 일어났고 10월에는 신흥화학공장과 허천강발전소공사장에서 파업이 일어났다. 그리고 해주세멘트공장 로동자들의 파업과 청진항을 비롯한 각지 항만로동자들의 파업에 이어 평양, 신의주, 청진, 라진, 원산, 서울, 인천 등 전국의 모든 주요도시들에서 여러가지 형태의 반일투쟁이 련이어 일어났다.

농민들도 소작권의 확보와 소작료의 감하를 요구하며 일제의 량곡수탈을 반대하여 전국도처에서 들고일어났다.

이와 같이 중일전쟁으로 하여 우리 혁명앞에 복잡성이 조성되였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 몸소 사선을 헤치고 신흥지구에까지 진출하시여 강령적지침을 마련해주심으로써 국내에서의 혁명운동은 더욱더 힘차게 전진하였다.

돌이켜보면 준엄하고 간고했으며 순탄치 않았던 우리 혁명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혁명의 매 전략적단계마다 새로운 전략전술적방침들을 제시하시고 현명하게 이끌어주셨기때문에 승리의 한길을 걸어왔다.

우리 혁명의 앞길은 지난날과 마찬가지로 순탄치 않은것이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 그대로이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계시기에 우리 혁명은 앞으로도 계속 승리적으로 전진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