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전현 무치허전투

김 윤 길

 

화전현북방에 무치허라는 그리 크지 않은 강 하나가 있다.

이 강 상류에는 이깔, 분비, 가문비, 봇나무 등 산림이 울창한데 거기에는 일본인 재벌이 경영하는 큰 목재소가 있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이끄시는 조선인민혁명군 제4사 1련대와 경위중대가 최현동지의 지휘밑에 이곳에 온것은 1939년 정월이였다.

무치허부근에 도착한 혁명군은 목재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숙영지를 정하였다.

그리고 며칠이 안되여 숙영지에는 동북항일련군 제1로군 총지휘 양정우가 인솔한 대원들이 왔다.

그 시기 인민혁명군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1938년 11월 몽강현 남패자에서 진행된 조선인민혁명군 군정간부회의에서 제시하신 방침에 따라 대부대활동을 전개하면서 집중적력량으로 적의 약한 고리에 강력한 타격을 가하는 적극적인 유격활동을 전개하고있었다.

당시 무치허는 적들의 약한 고리였다.

우리는 이 약한 고리를 불의에 습격하여 적들을 완전히 소멸할 계획이였다.

깊은 눈속에 묻힌 산중의 부대 집결장소는 수백명의 대원들로써 흥성거렸다.

숙영지는 자동차도로에서 멀지 않았는데 주위에는 야산과 묵밭이 빙 둘러있었고 눈이 무릎을 넘었다. 그러므로 부대행동의 은밀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눈우에 나는 발자국들을 제때에 지워버려야만 했는데 이것은 적들의 왕래가 심한 신작로 가까이에서 결코 쉬운 일이 아니였다.

그러나 혁명군대원들을 물심량면으로 지지하는 이 지방 농민들은 콩깍지나 짚같은것을 발구에 싣고 다니면서 발자국을 감쪽같이 지워버리군 하였다.

때문에 적들은 우리 부대들이 온줄을 전혀 모르고있었다.

뿐만아니라 인민들은 밤을 리용하여 숙영지에 강냉이, 조, 콩, 팥같은 식량을 져다주는것이였다.

우리 혁명군은 이들과의 련계를 강화하면서 무치허목재소의 정형을 알아보았다.

무치허목재소의 일본인경영주놈은 조중로동자들을 값싼임금으로 소나 말과 같이 혹사하여 채벌한 목재를 멀리 일본에 가져갔다.

무치허에 모인 사람들의 대부분은 원래 농민들이였다. 그들이 지주의 착취로 말미암아 굶주리고있을 때 일본인경영주놈은 《경기 좋다.》고 기만하여 그들을 끌어왔던것이였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역시 그들은 생활을 안정시킬수 없었다.

그들은 그날그날 겨우 목숨을 이어갔다.

목재소에 들어올 때 소나 말을 가지고온 사람들도 있었으나 빚때문에 1년도 못되여 회사에 빼앗기고말았다. 마소까지 빼앗기고난 사람들은 도로 나가 농사를 짓기도 난처한 일이였다.

그들은 멀건 죽물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형편이였다. 놈들은 사흘에 한번씩 썩은 강냉이와 수수를 조금씩 주군 하였다.

죽지 못해 살아가는 그들중에는 가정이 없는 사람도 많았다.

로동자들이 만약 어떤 의견을 제기만 하면 일본인경영주놈은 《빌어먹을 놈들, 일이나 더 잘해라. 너희들에게는 썩은 강냉이도 아깝다.》고 지껄이였다.

그들은 살을 에이는듯 한 엄동설한에 먹을것은 물론 입을것도 입지 못하고 아침일찍부터 캄캄하여질 때까지 눈이 허리를 묻는 산발에서 온몸을 얼구며 일을 해야만 하였다. 그러다가 나무에 치워 상하는 날이면 온 가족의 목숨이 떨어지는 판이였다.

로동자들은 오도가도 못하고 놈들에게 착취를 당할대로 당하였다.

그리하여 로동자들은 《유격대가 와서 왜놈들을 없애치웠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이와 같은 사실을 알게 된 우리는 무치허에 있는 적들을 소탕할 만단의 준비를 갖추었다.

우리가 무치허목재소를 습격하게 된것은 이곳에 있는 적들을 소멸하고 군수물자와 식량을 로획하는 동시에 로동자들의 원한을 풀어주고 그들에게 정치적영향을 주어 우리 대오에 받아들이며 목재를 일본에 실어가는것을 파탄시키기 위해서였다.

무치허에는 140명가량의 산림경찰대가 있었다.

전투에 앞서 지휘부에서는 목재소에 사복으로 변장한 정찰조를 파견하여 내부정형을 자세히 알아내였다.

전투가 진행되는 날 밤에 나는 련대의 참모장동지와 함께 주력부대보다 앞서 목재소로 향하였다.

그날밤은 눈이 내리는 밤이였다. 사위는 쥐죽은듯이 고요하였다.

우리는 은밀히 목재소에 접근하였다. 주위에는 통나무로 서너길 되게 높은 울타리를 만들어세웠는데 밑둥아리가 안에 놓이고 나무아지들이 밖으로 향하게 빼곡이 얽어놓아서 들어갈수가 없었다. 그것은 밟으면 소리가 났다.

우리는 침착하게 주위를 돌아가며 자세히 살펴보았다. 한곳에 송아지와 망아지들이 넘나들어서 쌓아놓은 나무가 푹 낮아진 곳이 있었다.

목재소에는 1,000여필이 넘는 소와 말이 있었던것이다.

우리는 재빨리 그곳을 타고 넘어가 공지를 지났다. 앞에서는 말들이 투레질하며 여물먹는 소리가 들려왔다.

밤은 자정이 넘었다.

얼마쯤 가니 철조망이 있었는데 산림경찰대의 병영은 그속에 있었다.

그안에는 혁명군의 신출귀몰한 활동에 겁을 집어먹은 일본인경영주와 《지도관》의 사택도 있었고 놈들이 음탕하게 놀아대는 료리집까지 있었다.

정문에는 보초놈이 있고 어마어마하게 높이 쌓은 포대가 있었다.

이러한 정형에 대한 보고를 받자 지휘부에서는 목재소 습격조들에 곧 행동개시명령을 하달하였다.

적들의 증원부대가 오지 못하게 목재소로 들어오는 길은 아군 방차대가 차단하였다.

기관총을 가진 습격조는 우리가 발견한 곳으로 하여 목재소구역안에 은밀히 들어갔다.

나머지의 아군력량은 로동자부락에 있었다.

습격조는 우사와 마사에서 나는 소음을 리용하여 그 사이로 빠지였다.

습격조가 정문에 거의 접근했을 때 포대의 적들이 고함을 치더니 사격을 해대기 시작하였다.

적들의 위치는 높고 우리는 낮은 곳에 있었다.

공격을 조금이라도 지체하면 우리가 더욱 불리하게 된다.

정문은 굳게 닫겨져있었다. 기관총대들은 정문 접철부분에 2정의 기관총으로 련발사격을 퍼부었다.

접철이 벌둥지처럼 뚫려졌을 때 대원들은 한꺼번에 달려들어 문을 콱 밀었다.

적들이 《하느님》처럼 믿던 두터운 문이 와지끈하고 나가 떨어졌다.

우리의 기관총은 적들에게 계속 맹렬한 사격을 하였다.

아닌밤중에 불벼락을 맞은 놈들은 어쩔줄을 몰라 쩔쩔매였다. 포대에 있는 놈들은 아무데나 대고 막 쏘아댔다.

그러나 우리가 집중사격을 가하자 놈들은 잠잠해버렸다.

조금있다가 이번에는 지하포대에서 또 불질을 하였다. 적들은 병영에서 그 지하포대까지 굴을 파놓았던것이다.

우리는 발악하는 놈들의 화구에다 수류탄묶음을 집어넣어 지하포대속에 들어박힌 18명가량의 적들을 즉사케 하였다.

적들은 얼마나 바빠맞았던지 기관총 한자루는 쓰지도 못하고 짚더미속에 내던졌다.

전투는 약 1시간동안 계속되였다.

이 전투에서 아군기관총중대 소대장인 안태범동무가 특히 잘 싸웠다.

첫 포대를 점령할 때 탄알이 그의 어깨를 관통하였다. 그러나 어떠한 곤난앞에서도 굴할줄 모르는 그는 적들에게 계속 육박하면서 더욱 맹렬히 사격하였다. 그런데 이때 또 한발의 적탄이 그를 쓰러뜨리였다.

《개놈들, 우리가 누군줄 아느냐.》

순간 성난 사자와도 같이 분연히 일어난 그는 《동무들, 나를 따라 앞으로!》하고 자기의 마지막힘을 모아 적들에게 복수의 탄알을 안기며 장렬한 최후를 마치였다.

안태범동무가 희생되자 격분한 전우들은 적포대에 뛰여들어가 놈들을 남김없이 소멸하였다.

그는 참으로 훌륭한 동무였다. 일찌기 팔도구광산과 로두구광산에서 로동자로 일하며 고역을 겪어온 그는 1933년경 유격대에 입대하였다.

입대후 그는 기관총수로서 단신으로 수백명의 적을 물리친 처창즈유격근거지의 가렬한 방어전투를 비롯하여 수많은 전투에서 항상 용감히 싸웠다.

전투가 끝난 후 우리의 지휘관들은 적병영사무실에 들어갔다.

이때 양정우동지의 련락병이 사무실마루바닥을 제끼고 사다리가 놓인 큰 구멍을 발견하였다.

그가 사다리에 접근하였을 때 《땅!》하는 총소리가 났다. 탄알이 그의 발을 꿰뚫었다.

적들이 숨어있은것이였다. 그속에는 왜놈들이 저희들만 살겠다고 30여명이나 숨어있었는데 종시 그속에서 나오지 않았다. 항복하지 않겠다는것이였다.

우리는 그놈들을 한놈도 남김없이 소탕해버렸다.

이 전투에서 우리는 90여명의 적을 살상포로했으며 기관총 1정을 비롯하여 많은 보병총과 탄약을 로획하였다.

소탕전이 끝나자 어느덧 동녘하늘이 훤히 밝아오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굶주린 로동자들과 그의 가족들에게 창고를 열어놓고 식량과 피복을 마음대로 가져가도록 하였다.

그들은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였다. 진정한 인민의 군대란 어떤 군대이며 혁명가들이란 어떠한 사람들인가를 똑똑히 알게 되였던것이다. 인민들은 우리들에게 음식을 해주었고 로획물자를 지고 행군대렬을 따라 나섰다.

나는 한 젊은 로동자와 함께 걸으면서 혁명군은 어떤 군대이며 누구를 위하여 싸우는가를 자세히 말하여주었으며 조선과 중국 두 나라 인민들은 단결하여 일제를 물리쳐야 한다는것을 강조하였다.

그는 원쑤에 대하여 참을수 없는 분노를 가지고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당신들이 이놈의 목재소를 치니 얼마나 씨원한지 모르겠소. 거기는 한번 들어만 가면 다시 나오지 못하니까 감옥과 같지요. 나는 뼈가 부서지게 일하고도 날마다 주린 창자를 움켜쥐고 목숨을 이어왔소.》

그리고는 흥분된 어조로 자기도 혁명군에 입대하여 용감히 싸우겠다고 결의를 다지는것이였다.

많은 로동자들이 모두 이러한 심정을 터놓았다.

무치허전투를 통하여 우리는 인민들의 고혈을 마음대로 빨아먹던 일제침략자들에게 복수의 죽음을 주었으며 그해 겨울 《동기토벌》에 날뛰던 놈들에게 우리 혁명군의 위력을 다시한번 보여주었다.

동시에 억압과 천대를 받으며 기아에 허덕이던 로동자들에게 우리 혁명군이 그들의 리익을 위해 싸우는 진정한 인민의 무장력이라는것을 더욱 똑똑히 보여주었으며 혁명승리에 대한 신념을 북돋아주었다.

이리하여 각성된 로동자들은 개별적으로 혹은 10여명씩 집단적으로 혁명군에 입대하여 우리의 대오는 더욱 확대강화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령도를 받는 조선인민혁명군은 이렇듯 항상 인민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았는바 바로 여기에 적과 싸우면 언제나 이기는 불패의 힘의 원천이 있었다.

무치허에서 거둔 승리의 기쁨을 안고 우리는 또다시 안도, 연길현방향에서 활동하기 위하여 동남방향ㅡ다푸챠허쪽으로 행군을 계속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