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산림부대속에서

김 양 춘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지펴올리신 항일무장투쟁의 불길이 온 남북만을 휩쓸고있던 시기인 1934년 이른봄이였다.

북만의 취수패라는 부락에서 14살나이에 아동단 책임자로 사업하던 나는 혁명조직으로부터 우양부대에 가서 공작하라는 임무를 받았다.

호림과 두무허사이에 있는 마안산일대에 주둔하고있던 우양부대는 100여명 되는 큰 산림부대였다.

당시 북만의 도처에서는 우양부대외에도 토비화되여가는 산림부대가 적지 않았다.

이들의 대부분은 반일의 구호를 들었던 구국군부대에서 활동하다가 일제의 가혹한 탄압과 혁명의 간고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일시적인 안일을 위하여 산속에 들어가 인민들의 재산을 략탈해 먹고있는 부대였다.

심지어 혁명적의식수준이 낮고 투쟁정신이 부족한 일부 산림대원들속에는 일제의 간계에 넘어가 그들의 편에 넘어가려는 경향까지 있었다.

이러한 사정은 혁명조직들로 하여금 하루속히 그들을 반일련합전선의 기치밑에 단합시킬것을 요구하였다.

그리하여 조직에서는 많은 공작원들을 이들속에 파견하였다.

우양부대에도 이미 많은 공작원들이 파견되여 공작하고있었다.

그런데 우양부대에 들어간 우리 공작원들에게는 하나의 큰 애로가 제기되였다.

하층병사대중속에는 많은 혁명적영향을 주었으나 우양을 비롯한 지휘부성원들에게는 발을 붙일수가 없었다.

이러한 사정으로부터 그들은 우양의 련락병으로 한명의 공작원을 들여보낼것을 결심하고 혁명조직에 이 문제를 제기해왔다.

나는 이 중요한 임무를 받고 우양부대를 찾아 떠났다.

우양은 50살 되는 건장한 사람이였는데 나를 아래우로 훑어보더니 몇살인가고 물었다.

14살이라는 나의 대답을 듣자 우양은 《14살씩 먹은 놈이 그렇게 작아?》하고는 한참동안 무엇인가 생각하더니 자기의 련락병으로 일할것을 승낙하였다.

우양은 4명의 련락병을 데리고있었는데 그중 3명은 나보다 훨씬 우인 나이많은 중국사람들이였다.

우양은 처음에는 나를 조선아이라고 의심하면서 련락임무도 주지 않았고 자기의 몸시중도 들지 못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나는 두달이상이나 그가 시키는대로 새벽에 일어나 장작을 패고 말죽을 끓이였다.

그런데 나는 시일이 갈수록 조직에서 준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는것이 안타까왔다.

(부지런히 일하여 우양에게 신망을 얻자.)

스스로 이렇게 굳은 맹세를 다지고 일해나가던 나에게는 또 하나의 난관이 앞을 막아나섰다.

3명의 중국인 련락병들이 나를 의심하면서 잘못된 일은 모두 내가 한것이라고 우양에게 일러바치군 하였다.

그때만 하여도 어린 몸이였던 나는 이 난관을 어떻게 뚫고나가야 할지 얼른 좋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오래동안 신고하던 끝에 나는 그들을 각성시켜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나는 밤을 새워가며 내가 할 일을 다 해제끼고 3명중 제일 나이 어린 련락병이 맡은 일을 도와주기 시작하였다.

하루아침에는 내가 나이 어린 련락병이 맡은 말을 솔로 쓸어주고있는데 눈을 비비며 그가 마당에 나왔다.

눈이 휘둥그래서 나를 쳐다보던 그는 왜 자기가 맡은 일을 가로맡아 하는가고 하면서 주먹을 부르쥐고 덤벼드는것이였다.

나는 조금도 당황한 기색을 내지 않고 저녁에 남겨두었던 빵을 품에서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왜 이래, 같은 친우끼리… 네가 피곤하게 자니까 도와주려고 그런건게 뭐 잘못된 일이야?》

내가 이렇게 말하자 그는 어안이 벙벙해서 한참 서있더니 어쨌든 자기 일에는 간참하지 말라는것이였다.

나는 그의 손에 빵을 쥐여주면서 고향은 어데며 부모가 있는가고 물었다. 그는 흘끔 쳐다보더니 그런건 왜 묻는가고 하면서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나는 지주놈의 머슴으로 고생하던 아버지가 중병에 걸려 자리에 눕게 되자 지주놈의 집에서 엄동설한에 쫓겨나던 이야기며 약 한첩 써보지 못한 아버지의 병을 고쳐볼가 하여 품팔이로 저주로운 나날을 보내던 이야기, 아버지보다 먼저 돌아간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어머니가 돌아간 후 한달도 못되여 아버지마저 어린 누이동생을 남기고 세상을 떠나던 눈물겨운 이야기들을 그에게 들려주었다.

《지주놈들은 다 나쁜 놈들이야.》

나의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있던 그는 이렇게 부르짖으며 자기 아버지도 지주놈의 집에서 고생하다가 돌아갔다고 하였다.

《어머니가 지금도 살아계신지 모르겠어.》

그는 고향에서 세 어린 동생을 데리고 고생하고계실 어머니를 생각하며 긴 한숨을 내쉬는것이였다.

나는 우리가 어머니곁을 떠나 고생하는것도, 아버지를 잃은것도 모두 왜놈들과 악질지주, 자본가들때문이라고 그에게 차근차근 이야기해주었다.

그리고 그놈들을 쳐부시기 위해서는 천대받고 억압받는 모든 사람들이 단결해야 한다고 가르쳐주었다.

《네 말이 옳아. 넌 정말 좋은 동무였구나.》

그는 나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하면서 앞으로 더 사이좋게 지내자고 하였다.

나는 나어린 련락병을 통하여 점차 다른 련락병들에게도 영향을 주면서 그들의 일손을 도와주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다른 련락병들은 꼬마련락병과는 달리 좀처럼 곁을 주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들이 할 일까지 다 나에게 떠맡기고 자기들은 놀기만 하였다.

이리하여 나에게는 내가 맡은 일외에 두필의 말을 거두는 일과 마당쓰는 일 등 많은 일들이 더 차례지게 되였다.

나는 그들에게 조금도 싫어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고 부지런히 일하였다.

그중에서 다른 일은 밤잠을 덜 자면서라도 하면 되였으나 말을 거두는 일은 여간만 힘들지 않았다.

보통때는 가만히 있던 말들도 안장을 올려놓자고 서두르면 코투레를 불면서 돌아치기 시작하였다.

키가 겨우 말허리밑에 가닿던 나는 안장을 단꺼번에 말잔등에 올려놓을수 없었다.

나는 통나무를 잘라 고임대를 만들어놓고 그 우에 올라서서야 겨우 안장을 올려놓군 하였다.

어떤 때에는 말을 고임대밑에 끌어다 세워놓고 그 우에 안장을 올려놓다가도 말이 후닥닥 뛰여나가면 안장을 든 채 땅바닥에 떨어져 말발에 채우군 하였다.

이런것을 보면서도 련락병들은 나를 놀려대며 비웃군 하였다.

이들의 조소와 멸시를 받을 때면 당장 그들을 요정내고싶은 생각이 치밀어오르군 하였다.

그러나 나는 사소한 개인적감정때문에 경솔하게 행동하면 공작에서 실패할수 있다고 하던 조직책임자의 말을 생각하며 꾹 참고 더 열성적으로 일하였다.

나어린 련락병을 통하여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우양은 점차 다른 련락병들이 맡아하던 차물을 끓이는 일이며 밥을 나르는 일, 잠자리를 펴는 일 등을 나에게 맡겨주었다.

그리고 얼마후에는 자기의 사무실청소와 중요한 련락임무 같은것도 나에게 맡기군 하였다.

겹겹이 덮씌우는 이 어려운 일들을 나는 인내성있게 힘껏 잘해주었다.

내가 진정으로 자기 일을 도와주자 우양은 매우 만족해하였다. 그는 가끔 련락병들을 모아놓고 나를 칭찬도 해주었다.

다른 련락병들이 일을 잘하지 않을 때에는 그들을 모여놓고 나와 대비하면서 욕설을 퍼붓기도 하였다.

일이 이렇게 되자 이번에는 련락병들이 나를 더 멀리하기 시작하였다.

어느날 저녁때였다.

말먹이를 주고있는 나에게 련락병책임자가 들어왔다.

《야, 방안에 좀 들어가자.》

시키는 일은 하지 않고 하루종일 낮잠만 자다가 우양에게 들켜 욕을 먹은 그는 독기어린 눈알을 굴리며 이렇게 말하고는 먼저 방안으로 들어갔다.

(네가 대장한테 욕먹은 분풀이를 나에게 할 모양이로구나.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한다.)

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방으로 들어갔다.

내가 들어오는것을 아니꼽게 바라보던 그는 《네가 대장한테 알랑거리면서 고자질을 하기때문에 우리는 너처럼 일하지 않는다고 욕만 먹는다. 이 자식아.》 하면서 눈에서 불이 나게 뺨을 후려치는것이였다.

(눈물을 보이지 말자. 그러면 이들은 나를 업신여기고 더 때릴것이다.)

나는 울음이 확 터져나오는것을 꾹 참고 떳떳이 입을 열었다.

《너희들은 나때문에 욕을 먹는다고 하지만 좀 생각해봐라. 너희들은 제가 할 일까지 다 나에게 떠맡기고 놀기만 하지 않았는가. 너희들이 놀 때 나도 놀고싶었다. 그러나 나까지 다 놀았다면 어떻게 되였겠는가. 아마 왜놈들을 쳐부시는 싸움도 한번 못해보고 부대에서 다 쫓겨났을지도 모를게다.》

겁에 질려 순순히 수그러들줄만 알았던 내가 이렇게 말하자 그들은 더 때리지 못하고 무어라 입속으로 중얼대며 밖으로 나가버렸다.

이 일이 있은 다음부터 그들은 나를 경계는 하면서도 이전처럼 마음 내키는대로 때리고 욕하지는 못하였다.

하루는 우양이가 어데 갔다오겠다고 하면서 말을 속히 준비해오라고 하였다.

그런데 이 지시를 받은 련락병책임자는 한참 꾸물대다가 독촉을 받고야 부리나케 안장끈을 대강 조여가지고 우양에게로 갔다.

말을 타려고 한쪽발을 디딤쇠고리에 올려놓던 우양은 안장이 한쪽으로 돌아가는 바람에 궁둥방아를 찧고 땅바닥에 나가 떨어졌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오른 우양은 그를 찾더니 채찍을 추켜들고 때리려고 하였다.

련락병책임자는 사색이 되여 후들후들 떨기만 하였다.

나는 선뜻 련락병책임자앞을 막아나섰다.

《그건 제가 잘못하여 그렇게 된겁니다. 저를 처벌해주십시오.》

《뭐? 앞으로 주의해.》

우양은 이렇게 투덜대며 말하고는 제손으로 안장끈을 조여매더니 말을 타고 가버렸다.

그가 탄 말이 멀리 사라질 때까지 아무 말도 없이 그 자리에 못박힌듯 서있던 련락병책임자는 나의 손을 덥석 잡고 울먹울먹하면서 말을 못하는것이였다.

한참후에야 그는 《고맙다. 정말 고맙다.》하고 떠듬거리더니 《너는 정말 내 동생과 같다.》고 하면서 눈물까지 흘리는것이였다.

전에없이 따뜻한 그의 손을 잡은 나는 형언할수 없는 기쁨에 싸였다.

나는 그의 손을 꼭 잡으며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 앞으로 친형제보다 더 가깝게 지냅시다.》

나는 나의 손등에 떨어지는 그의 뜨거운 눈물을 통하여 그의 심정을 느낄수 있었다.

그후 나는 그들에게 혁명가요도 배워주고 아동단에서 배운 정치상식도 대주면서 점차 그들을 혁명적으로 각성시키기 시작하였다.

공작은 점차 순조롭게 되여갔다.

저녁이면 우리는 한데 모여 그날 듣고 본 이야기들을 나누며 함께 즐겼다.

한 련락병이 우양이와 포터우(참모장격의 군사지휘관)가 작전계획을 세우다가 언쟁한 이야기를 하자 다른 련락병이 그들이 앞으로의 부대행동방향을 토론하다가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서로 옥신각신하였다는것을 말하는것이였다.

나는 이들에게서 얻은 자료와 그동안 내가 보고들은 자료들을 수시로 우리 공작원들에게 알려주었다.

하루는 공작원 한 동무가 남몰래 나를 찾아와서 하는 말이 종합된 자료를 분석해본 결과 우양이는 우리를 따르려고 하나 포터우가 자기들의 졸개들을 규합해가지고 우리의 공작을 방해하고있다고 하면서 이 문제를 속히 상급조직에 전달해야겠다는것이였다.

그는 실정이 아주 긴급하나 놈들의 감시때문에 마음대로 움직일수 없다고 하면서 나더러 중간련락장소인 재봉대까지만 그것을 전해달라고 당부하는것이였다.

나는 그에게서 통신쪽지를 받아들고 매일 떠날 기회만 엿보고있었다.

그러나 우양은 자기곁에서 나를 조금도 마음대로 못떠나게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차를 끓여가지고 우양의 방에 들어갔다가 그가 손수건으로 입을 닦고 그것을 펼쳐보며 히죽이 웃음을 짓는것을 보았다.

나이가 지긋한데 비하여 그는 사치한것을 아주 좋아하였다.

그가 들고 보면서 좋아하는 손수건인즉 어느 전투에서 한 병사가 로획한것이였는데 자기 대장인 우양에게 선물로 준것이였다.

나는 그날 밤 방에 돌아와서 재봉대에 있는 한 녀동무가 《산림대에 가서 공작하자면 이런것도 필요한 때가 있어요. 어서 가지고 가라요.》하면서 주던 손수건을 펼쳐보며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이 손수건을 우양에게 주자.)

이런 생각이 든 나는 그 이튿날 아침에 차물을 가지고 들어갔다가 소중히 보관해두었던 손수건을 그에게 내보였다.

그는 갖가지 색실로 곱게 수놓은 손수건을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대단히 기뻐하였다.

《누가 만든거야?》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얼른 들이댔다.

《재봉대에서 만들었는데 천만 있으면 더 멋있게 수를 놓을수 있답니다.》

우양은 조선녀성들이 아주 손재간이 있다고 하면서 군복도 할수 있는가고 묻는것이였다.

그렇다는 나의 대답을 듣고난 그는 《자, 그럼 이걸 가지고 가서 한벌 잘해와.》라고 하면서 좋은 천을 내놓는것이였다.

천을 받아쥐자 나는 말을 타고 재봉대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재봉대동무들은 그동안 소식이 너무 없어 몹시 기다렸다고 하면서 반갑게 맞아주었다.

나는 통신쪽지와 함께 우양의 군복천을 맡기고 그냥 돌아서려다가 사치한 목달개와 담배쌈지 몇개를 가지고 떠났다.

군복을 찾아올 때에는 이미 준비한 선물과 축기를 가져다 우양에게 주었다.

이리하여 나는 누구의 의심도 받지 않고 수시로 통신을 전달할수 있었으며 다른 공작원들도 조직의 지도밑에 맡은 임무를 더욱 활발하게 진행하게 되였다.

나는 이런 기회를 리용하여 《항일구국》, 《타도 일제》라고 새긴 갖가지 선물을 병사들에게도 가져다주었다.

이처럼 인내성있는 우리의 교양과 설복 그리고 그 어떤 난관앞에서도 굴할줄 모르는 투쟁정신은 그처럼 완고하던 우양부대를 끝끝내 항일투쟁대오에 돌려세웠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이끄시는 항일유격대를 찾아 떠나는 대렬속에서 나는 련략병으로 일하던 3명의 중국동무들의 환희에 찬 모습을 보았다.

나는 그들과 함께 철천지원쑤 일제를 쳐부시는 성스러운 투쟁의 길로 힘차게 노래를 부르며 전진하여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