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민항쟁을 위한 무장대가 결성되던 나날에

전 문 섭

 

내가 사령부 호위성원에 속하여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모시고 곰산림시비밀근거지에 나온것은 1943년 7월 중순경이였다.

그무렵 세계정세는 우리 혁명에 유리하게 전변되여가고있었다.

쏘도전쟁마당에서 파쑈도이췰란드군은 패전을 거듭하고있었고 일제는 태평양전쟁의 구렁텅이에 더욱 깊이 빠져들어 허우적거리고있었으며 이딸리아에서는 파쑈독재정권이 전복되였다.

일제를 비롯한 파쑈국가들은 그야말로 서산락일의 운명에 처하였다.

항일혁명투쟁의 전기간 언제나 자력독립사상을 확고히 견지하여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정세가 불리할 때는 물론 조국해방이 박두해온 이 시기에도 남을 바라보며 일제가 망하기를 기다릴것이 아니라 자체의 힘으로 광복위업을 이룩할데 대하여 가르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비록 멸망의 위기에 처했지만 아직 최후발악을 하고있는 일제를 꺼꾸러뜨리자면 반드시 전체 인민의 거족적인 투쟁으로써만 가능하다는것을 내다보시고 이해 1월 조국해방 3대로선을 제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그해에 라진, 경흥일대에 오신것은 바로 급변하는 정세의 추이에 맞게 일제의 중요한 군사요새지대인 이 일대를 장악하며 조국해방 3대로선에 기초하여 전민항쟁을 위한 무장대결성사업을 적극 다그치시기 위해서였다.

보로지산림시비밀근거지에서 조선인민혁명군 소부대, 정치공작소조책임자회의를 마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다음날 아침 안길동지의 길안내를 받으시며 이곳을 떠나 경흥군 철주리를 거쳐 록야리 이면수골을 지나 어은동곰산에 도착하시였다.

곰산이라는 이름은 곰이 많은 산이라는데로부터 그렇게 불리워진것이다.

이 지방 주민들은 곰산에서 이따금 곰을 잡는다고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그 한해전인 1942년 6월에 내가 처음으로 이곳에 왔을 때도 이곳 소부대동무들이 덫을 놓아 잡았다는 곰고기로 특식을 차려주었는데 그것이 지금까지도 인상깊이 남아있다.

우리가 곰산림시비밀근거지에 도착하니 그곳에는 이미 오백룡동지의 련락을 받고 이 일대에서 활동하고있는 조선인민혁명군 소부대, 소조책임자들과 지하혁명조직책임자들이 회의에 참가하기 위하여 와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행군의 피로도 푸실사이없이 그들과 밤늦도록 담화를 하시였으며 다음날 아침에는 숯을 보관하기 위하여 지었던 반토굴집에서 방금 도착한 최일, 박창범동무들을 만나시여 무장대결성준비정형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료해하시였다.

최일동무는 1941년 여름에 사령부로부터 파견되여 회령시 원산리 까치봉일대에서 활동하는 정치공작원이였고 박창범동무는 이 일대 지하혁명조직책임자였다.

이들은 1942년 6월 여기 곰산림시비밀근거지에서 위대한 수령님으로부터 무장대결성준비과업을 직접 받았었다.

1년만에 다시금 위대한 수령님의 부르심을 받고 달려온 그들은 감격에 넘쳐 그이께 인사를 올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의 인사를 반갑게 받아주신 후 《동무들이 그간 전민항쟁준비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라고 치하의 말씀을 하시였다.

그러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가 이번에 곰산에 와서 회의를 하는것도 동무들이 이 사업에서 일정한 성과와 경험을 가지고있기때문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동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으로부터 과분한 평가를 받은 그들은 그사이 자기들이 해놓은 일들을 상세히 보고드리였다.

그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대로 어은동 곰산과 회령시 원산리 까치봉을 거점으로 하여 무장대를 꾸리기 위한 준비를 적극적으로 벌려 이제 와서는 야장간에서 도창무기를 만들뿐아니라 여러 자루의 장총도 확보하여가지고 군사훈련을 진행하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이 해놓은 일들에 대하여 높이 평가해주시면서 무장대를 꾸리는 사업에서 애로되는 점에 대하여 물어보시였다.

사실 그들이 무장대를 꾸리자고보니 모를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그래서 그들은 위대한 수령님으로부터 가르치심을 받고저하는 문제들을 서로 말씀드리였다.

무장대의 규모는 어느 정도로 하고 무장대의 명칭은 어떻게 달며 무장대의 임무는 어떻게 규정할것인지, 그리고 무장대가 생산에서 떨어져 완전히 근거지에 들어와야 하는지, 까치봉과 그와 린접해있는 곰산의 무장대를 하나로 꾸려야 하는지 따로따로 꾸려야 하는지 그들이 부닥친 문제들은 많았다.

그들의 이야기를 다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민항쟁을 위한 무장대를 꾸리는 사업은 우리가 처음 하여보는 일인것만큼 제기되는 문제가 많을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제 회의에서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겠습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무장대의 규모와 명칭은 해당 지역과 단위의 실정에 맞게 정하며 무장대는 생산에서 떨어져 전적으로 무장활동을 하는 무장조직이 아니므로 생산에 종사하면서 혁명조직의 지도밑에 무장활동을 진행할데 대하여 그리고 이미 그 준비사업이 진행된 곰산무장대를 결성한데 이어 까치봉무장대와 무산광산무장대를 꾸릴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에게 동무들은 무장대결성에서 거둔 성과에 결코 자만해서는 안됩니다. 앞으로 도처에 무장대를 꾸려놓아야 하는데 동무들은 이 사업에서 큰 역할을 놀아야 합니다라고 당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듯 무장대결성준비사업에서 이룩된 성과와 경험을 료해하신데 기초하여 이날 곰산의 수림속에서 조선인민혁명군 소부대, 소조 및 지하혁명조직책임자 회의를 소집하시였다.

이 회의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민항쟁을 위한 무장조직들을 튼튼히 꾸릴데 대한 연설을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연설에서 조국해방위업에 유리하게 전변되는 혁명정세와 적아간의 력량관계를 분석하신데 기초하여 최후결전준비를 적극 다그쳐야 할 필요성을 밝히시고 자력독립의 기치밑에 전민항쟁을 위한 로동자, 농민의 무장대를 결성할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먼저 전민항쟁을 위한 무장대의 성격과 기본사명을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의도하시고 구상하신 무장대는 자주로선에 기초하여 지방당조직과 조선인민혁명군의 지도밑에 운영되는 전민항쟁을 위한 민간무장조직으로서 조선인민혁명군의 최후공격작전에 배합하여 적을 배후에서 타격하며 전민항쟁에 일떠선 인민대중의 투쟁을 무력으로 안받침하는것을 기본사명으로 하고있었다. 이로부터 무장대들은 조선인민혁명군의 총공격에 적극적인 배후련합작전으로 전인민적항쟁을 준비하고 진행하는 전과정에 선봉적, 돌격대적 역할을 담당수행하여야 하였다.

그러자면 모든 무장대들이 자기 대오를 정치사상적으로 튼튼히 꾸리고 군사적위력을 부단히 강화하며 대오의 비밀을 철저히 지킬뿐아니라 무장대의 근거지들을 잘 꾸리고 임무수행에 필요한 무장장비와 후방물자들을 자체로 미리 마련하며 적들의 탄압으로부터 혁명조직과 군중을 믿음직하게 보위하여야 하는것이였다.

무장대들앞에 나선 과업을 밝혀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속하여 전민항쟁을 위한 무장대들을 도처에 꾸리며 이미 있던 반군사조직들의 무장장비를 더욱 강화하여 무장대오를 확대발전시킬데 대한 문제, 혁명조직에서 육성된 청장년들로 새로 무장대를 조직하고 필요한 산악지대들에 근거지를 꾸려 군사정치적준비를 원만히 갖출데 대한 문제 등 무장대조직에서 나서는 일련의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였다.

연설을 마치시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제와의 최후결전의 시각이 바야흐로 눈앞에 다가온 이때 최후결전준비에 박차를 가하여 우리가 걸어온 항일의 혈전 수십만리길을 조국의 해방으로 빛내여가자고 뜨겁게 호소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의가 끝난 후에 박창범동무를 비롯한 이곳 곰산무장대의 핵심성원으로 될 동무들을 친히 만나시여 그들에게 또다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그리하여 이곳 곰산림시비밀근거지에서는 전민항쟁을 위한 로동자, 농민의 무장대가 결성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강령적가르치심을 받아안은데다가 정식 무장대결성모임까지 진행한 무장대성원들은 감격에 넘쳐 어쩔바를 몰라하였다.

당장 조국해방을 위한 최후결전장에 달려갈 기세로 들끓던 그들의 모습이 지금도 잊을수 없다. 그때 그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자력독립사상을 높이 받들고 전민항쟁을 위한 무장대에서 목숨바쳐 싸워갈 결의를 담아 회의장소주변 나무들에 구호들을 써놓았는데 그 글발들이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지워지지 않고 생생히 남아있는것을 다시 보느라니 정말 감개무량함을 금할수가 없다.

지금도 회의장소의 푸른 소나무에 남아있는 《자력독립전군민회합소 하→전민항쟁 로동자 농민무장대결성 2천만단결 승리 만세》라는 글발도 그때 박창범동무가 무장대결성을 기념하여 쓴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곰산회의에서 밝혀주신 방침에 따라 전민항쟁을 위한 무장대조직사업은 더욱 급속히 진행되였다.

곰산무장대의 결성에 이어서 회령에서는 까치봉무장대가, 무산에서는 무산광산무장대가 조직되였으며 라진, 선봉, 경원 등 두만강연안 북부조선일대는 물론 평양과 평안남도, 황해도를 비롯한 전국각지에서 무장대가 무어졌다.

평양에서는 《조국해방단》이 조직되여 넓은 지역에서 활동하였으며 평안남도 신양, 순안, 황해도 곡산 등 여러곳에서도 무장대가 조직되였다.

이미 널리 소개된 사실이지만 1944년 여름 평양지구에 파견된 정치공작원 최봉철동무에 의해 《반일학도병무장대》가 조직된것도 그 실례의 하나이다.

전민항쟁을 위한 무장대들은 조국해방 3대로선을 관철하는데서 자기의 사명을 훌륭히 수행하였다.

만단의 준비를 갖추고 조국해방을 위한 최후결전을 준비하던 무장대들은 1945년 8월 9일 위대한 수령님께서 내리신 총공격명령에 따라 8월 10일에는 벌써 호상협동하여 공개적인 군사행동에로 넘어갔다.

곰산무장대와 까치봉무장대는 8월 11일과 12일에 회령시 원산리와 경흥군 록야리일대에서 도합 100여명의 일제패잔병들을 살상포로하였으며 특히 까치봉무장대는 14일에 진격하는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과 함께 회령시가를 습격점거하고 그 일대에 대한 수색전투를 자체로 진행하여 수백명의 적군을 살상포로하고 비행기 5대, 고사포 수십문과 각종 포탄 수백발을 비롯한 수많은 무기와 탄약을 로획하는 전과를 이룩하였다.

이것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자력독립사상과 조국해방 3대로선의 승리였고 전민항쟁로선의 위대한 생활력을 보여주는것이였다.

활화산처럼 터져오르는 우리 인민의 반일기세에 겁을 먹은 일제가 황급히 항복을 하였기에 그랬지 만약 좀더 시일을 끌었다면 조선인민혁명군의 총공격에 배합한 전민항쟁의 불길이 온 나라에 더욱 세차게 타번졌을것이며 그 불길속에 일제는 더 큰 참패를 당했을것이라는것을 나는 믿어의심치 않는다.

오늘 우리 나라에는 미제와 그 앞잡이놈들의 악랄한 반사회주의, 반공화국책동, 우리에 대한 압살책동으로 하여 전쟁접경의 긴장한 정세가 조성되고있다.

우리는 일단 유사시 지난날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조선인민혁명군과 무장대가 싸운것처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김정일장군님의 이끄심따라 우리 자체의 힘으로 간악한 원쑤놈들을 격멸소탕하고 우리 식 사회주의를 사수하며 조국통일을 앞당기기 위해 모든것을 다 바쳐 싸워나가야 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