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에 대한 그이의 지극한 사랑

리 두 찬

 

1935년 여름부터 1936년초에 걸쳐 진행된 제2차 북만원정에 대하여 회상할 때마다 나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천재적인 전략전술과 함께 인민에 대한 수령님의 지극한 사랑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게 된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북만원정을 앞두고 우리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북만은 동만지대와는 다릅니다. 아직도 이곳 인민들은 우리 혁명군을 잘 알지 못하고있으며 일제놈들과 토비들의 략탈과 강박과 기만속에서 살고있습니다.

그런것만큼 우리는 일제놈들을 소멸하는 투쟁을 통하여 우리가 진정으로 인민을 위한 군대라는것을 보여주어야 하며 인민들을 존경하고 교양하는 실제행동을 통하여 그들을 우리 주위에 묶어세워 반일력량을 확대하여야 합니다. …인민을 사랑하고 사회를 개조하는것, 바로 이것이 우리 혁명가들의 첫째가는 임무임을 항상 잊어서는 안됩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언제 어디서나 인민을 사랑하고 존중하며 그들의 리익을 옹호하여 투쟁하시였다.

그러한 실례들중 내가 보고 체험한 몇가지 사실만을 여기에 적으려고 한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투를 하나 계획하실 때에도 인민의 리해관계부터 먼저 생각하시였다.

1935년 7월에 있은 산동툰전투때의 일이였다. 그때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가 북만에 진출한데 놀란 일본제국주의자들은 목단강, 동경성, 녕안 등에 주둔하였던 적들의 병력 800여명을 집결하여가지고 공격하여왔다.

그렇게 되자 당시 협동작전에 참가하게 된 일부 지휘관들은 산동툰의 견고한 성과 살림집들에 의지하여 적을 치자고 제기하였다. 개활지대로 되여있는 이곳 지형에서 물론 성벽에 의지해 싸우는것이 유리할수 있었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렇게 되면 인민들의 집과 가장집물이 파괴될것이며 그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리라는것을 타산하시고 지휘관들을 설복하여 적이 기여드는 길목에 앞질러나가 매복하고 칠 작전계획을 세우시였다.

이렇게 되여 산동툰의 북쪽과 서쪽고지우의 넓은 개활지대를 차지한 아군은 점심때부터 어두울 때까지 적의 집요한 공격을 물리치며 용감하게 싸워 적에게 심대한 타격을 주었다.

그리하여 부락에는 한놈의 원쑤도 들여놓지 않았으며 한발의 총알도 미치지 못하게 하였다.

지난날 구국군들과 산림대들이 싸움만 붙으면 마을로 적을 끌어들여서 생명재산에 많은 피해를 입군 하던 이곳 인민들은 이 전투를 보고 《김일성장군님부대야말로 진정한 인민의 군대이다.》라고 말하며 위대한 수령님을 더욱 흠모하고 존경하였으며 조선인민혁명군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원호하였다.

산동툰전투에서 섬멸적타격을 받은 적들은 북만의 광활한 지대에서의 우리 부대의 활동을 저지시켜보려고 미친듯이 녕안현으로 병력을 집결하기 시작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적들의 동태를 예리하게 파악하시고 놈들을 분산, 혼란시킬 령활한 전술을 세우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적들이 녕안현으로 집결될무렵에 부대를 3개 부대로 재편성하시여 한 부대는 왕청, 훈춘현방면으로 진출시키시고 다른 한개 부대는 녕안방면을 중심으로 목단강성에서 계속 활동하게 하시였다.

그리고 자신께서는 몸소 일부 부대를 친솔하시고 경박호를 건너 멀리 액목현방면에 진출하시여 광범한 인민들속에 혁명의 씨앗을 뿌리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국내와 남만, 화전방면 등 광활한 지대에 진출한 각 원정부대들을 통일적으로 령도하시는 바쁘신 속에서도 이르는 곳마다에서 장소와 때를 가리시지 않고 인민들을 교양하고 묶어세우시는 실천적모범을 몸소 보여주시였다.

나는 지금도 관지부근에 이르는 마을마다에서 인민들에게 정치사업을 하시던 위대한 수령님의 정력적인 활동을 잊을수 없다.

특히 말리거우에서 인민들에게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조중인민이 지금 헐벗고 굶주리며 압박받는것은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조선과 만주를 강점하고 우리 인민을 착취하고 못살게 굴기때문입니다. 우리가 행복하게 그리고 잘살기 위해서는 일본제국주의침략자들을 조선과 만주에서 몰아내야 합니다. 그러자면 조중인민이 단결하여 싸워야 합니다.

바로 조선인민혁명군은 조중인민의 공동의 원쑤 일본제국주의를 반대하여 싸우는 인민의 군대입니다.

전체 조중인민이 항일의 기치를 높이 들고 조선인민혁명군을 도와 일제와 견결히 싸워야 조국의 독립과 인민의 자유해방을 이룩할수 있습니다.

이렇게 알기 쉽고 생동하게 말씀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연설을 듣고있던 말리거우의 인민들은 모두 감동되여 일제와 싸울 결의를 더욱 굳게 다지였으며 청년들은 그자리에서 자진하여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할것을 탄원해나섰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처럼 이르는 곳마다에서 인민들을 교양하고 깨우쳐주시였을뿐만아니라 인민들을 무한히 사랑하고 존경하시였다.

한번은 관지부근 숲속에서 《토벌대》를 족치고 놈들이 짐군으로 끌고왔던 20여명의 인민들을 구원한 일이 있었다.

놈들은 아군의 맹렬한 공격을 받게 되자 강제로 동원해온 인민들을 총알받이로 앞에다 세우고 총칼로 위협하며 소리를 치게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들이 다칠세라 걱정하시여 사격을 일단 중지시키시고 은밀히 적의 익측으로 한개 부대를 우회시켜 맹공격을 가하게 하심으로써 인민들과 적을 분리시키고 인민들을 사경에서 구원하시였다.

우리는 그날저녁 우등불을 피운 다음 인민들을 편안히 휴식시키였다.

그런데 밤이 깊어서 웬 로인 한분이 누군가를 찾으며 허둥지둥 숙영지로 달려왔다.

그 로인은 흑석향에 사는 로인인데 자기 외아들이 놈들의 짐군으로 강제동원되여 산으로 들어간 후 요란한 총소리가 나기에 아들이 죽은줄만 알고 밤중에 산발을 헤매다가 불빛을 보고 달려온것이였다.

우등불가에 앉았던 젊은 청년 한사람이 로인의 목소리를 알아차리고 달려가며 로인을 얼싸안았다.

이렇게 아버지와 아들간에 극적인 상봉이 벌어졌다.

아들이 죽은줄만 알고 정신없이 헤매던 로인은 아들이 구원된것을 보자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였다.

청년은 자기 아버지에게 혁명군이 사경에서 자기들을 구원해준 이야기를 하고 자기도 혁명군에 입대하겠다고 말하였다.

로인은 아들이 입대하는것을 쾌히 승낙하며 자기가 입었던 헌 솜저고리를 아들에게 벗어주었다.

아들은 아버지의 단벌솜옷을 받으려 하지 않았다.

옆에서 이 광경을 보고계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청년에게 그것을 받으라고 하시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이 솜저고리가 비록 낡기는 하였지만 그 갈피갈피에는 부모의 깊고깊은 정이 스며있습니다. 그 정을 잊어서는 훌륭한 혁명투사가 될수 없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그 청년을 깨우쳐주시면서 솜옷을 받으라고 하신 다음 자신이 입으셨던 털외투를 벗어서 로인에게 주시며 《로인님, 이걸 입고 가십시오.》라고 말씀하시였다.

로인은 너무나도 감격하여 어쩔줄을 몰라하며 위대한 수령님께서 입혀주시는 털외투를 도로 벗으려고 하면서 극력 사양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로인의 손을 잡고 굳이 만류하시였다.

살을 에이는 북만의 설한풍속에서 단벌옷을 벗어 아들에게 입히는 아버지의 정도 이만저만이 아니였지만 가난한 로인을 생각하시여 자신의 털외투를 벗어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인민에 대한 지극한 사랑은 그 얼마나 크고 깊은가.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에 대한 이처럼 뜨거운 사랑으로 그들의 생활을 따뜻이 보살펴주시였다.

어느날 마을인민들이 혁명군을 해치려고 한다는 청년 한사람을 붙들었다고 하면서 부대로 데려왔었다.

이 사실을 보고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앞뒤사정을 구체적으로 알아보시고 그 청년을 직접 만나시였다.

그 청년의 옷차림은 말할수 없이 람루하였고 먹을것을 제대로 먹지 못한것이 그의 여윈 얼굴에 확연히 나타났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청년의 여윈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시고나서 그의 어깨에 손을 얹으시고 두리에 모여선 군중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여러분, 내가 보기에는 이 청년이 우리를 반대해나설 사람같지는 않습니다.

혹시 잘못 생각한 일이 있다면 어느 놈이 시켜서 그랬을것입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선 그 청년의 집이 어떤 처지에 있으며 부모는 무엇을 하며 장가는 갔느냐고 하나하나 친절히 물으셨다.

진정 인민을 사랑하시고 아끼시는 마음에서 그토록 살뜰히 대해주시는 그이앞에서 그 청년은 목이 메여 흐느껴울며 지나온 경위를 솔직히 말하는것이였다.

그 청년은 28살이였고 늙은 부모와 처자를 데리고있으나 생활이 곤난하여 입에 풀칠하기가 어려운 형편이였다. 더구나 이해에는 농사가 안되여 빚값으로 안해는 지주집에서 종살이를 하고 아버지는 친적집에 가서 얹혀사는 형편이 되였는데 어머니마저 누워앓는지 오래다는것이였다.

바로 이런 곤경을 리용하여 일제의 주구인 지주아들놈이 그를 위협하였다.

그놈은 청년에게 자기가 주는 혁명군에 대한 암해공작임무를 수행하면 빚을 없애주고 안해도 돌려주지만 만일 자기 말을 안들을 때에는 《통비분자》로 고발하여 청년마저 감옥살이를 하도록 하겠다고 위협하였다는것이다.

청년의 말을 유심히 듣고계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를 먼저 안심시키시고나서 압박과 착취가 없는 사회에서 부모처자와 함께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일제를 때려부셔야 한다고 차근차근 말씀해주시였다.

그리고 그 청년에게 돈과 쌀까지 주시며 집에 가서 어머니병환을 잘 간호하라고 간곡히 말씀하시였다.

이런 사실을 목격한 그곳 인민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너그럽고 아량있는 풍모에 모두 감동되여 그이를 경모하는 마음이 더욱 두터워졌고 조선인민혁명군을 성심성의로 적극 도와나섰다.

우리 혁명군대원들은 원쑤에게는 사자와 같이 용맹하고 인민들에게는 순한 양처럼 자기의 모든것을 묵묵히 바쳐야 합니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 간곡한 가르치심과 그이의 실천적모범에서 배우고 고무된 우리들은 액목현의 이르는 곳마다에서 인민을 사랑하고 그들의 풍습을 존중하며 그들을 적극 돕고 교양하여 혁명조직에 묶어세우기 위하여 있는 힘을 다하였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특히 액목현지방에서는 혁명군이 처음 활동하며 혁명군에 대한 일제의 악선전이 인민들속에 적지 않게 퍼진 조건에서 군중규률을 그 어디서보다도 잘 지켜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그러시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들을 사랑하고 존경하며 인민의 리익을 절대로 침범하지 말고 인민들의 일손을 적극 도와줄데 대하여 재삼 강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높이 받들고 그이의 고매한 덕성을 따라배우기에 모든 힘을 다하는 우리들은 언제 어디서나 이 말씀을 어기지 않았다.

액목지방에는 당시까지만 하여도 아직 집단부락이 되여있지 않아 우리는 인민들의 집에 들어가 자군 하였다.

우리는 어느 마을, 어느 집에 들리나 주인집마당을 쓸어주고 물을 길어주고 나무를 패주며 인민들의 바쁜 일손을 힘껏 도와주었다. 로력이 모자라거나 앓아서 일을 못하는 집에 들었을 때는 땔나무도 해다주고 울타리도 손질해주며 주인이 미처 손을 돌리지 못한 구석구석의 일까지 찾아서 해주었다.

우리는 어느 집에 들던지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대로 주인들에게 불편을 주지 않기 위해 힘썼다.

어느날 탑랍참마을에서 있은 일이다.

우리의 한개 분대 인원이 반일회의 도움을 받아 어떤 목재소로동자의 집에 들게 되였다.

그런데 분대원들이 그 집에 들어가보니 갓 결혼한 젊은 부부가 새살림을 차려놓은것이 틀림없었다.

분대원들은 들어서던 그길로 되돌아나오려 하였다.

그러자 부부는 당황하여 어디로 가는가고 물었다.

《허청간을 좀 빌려주십시오.》

분대원들은 이렇게 말하고 마당앞에 나와 허청간에다 잠자리를 마련하려 하였다.

그것을 보자 부부는 달려나와 방으로 들어가자고 끌었다. 그러나 분대원들은 일없다고 하면서 굳이 사양하였다.

가장 추운 때인 설림박에 집을 두고 허청간에서 잔다는것은 말이 쉽지 사실 힘든 일이였다.

부부는 서로 의논하더니 한채밖에 없는 새 이불을 내여다 분대원들에게 덮어주었다. 그러나 분대원들은 인차 그것을 가지고 들어가서 되돌려주었다.

이렇게 이불은 방에서 허청간으로, 허청간에서 방으로 왔다갔다하다가 마침내는 방에 들어오게 되였다. 아무리 하여도 혁명군대원들이 이불을 덮지 않으리라는것을 깨달은 부부는 이웃집에 가서 자고 방을 비우면 혁명군대원들이 들어가서 잘것이라고 생각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유격대원들은 벌써 눈치를 채고 《집에서 쉬지 않고 어디로 가는가.》고 묻는것이였다.

부부는 자기들은 이웃집에 가서 잘터이니 방에 들어가 주무시라고 간절히 부탁하였다.

분대원들은 그러면 자기들도 다른데 가서 자겠다고 짐을 꾸리려들었다. 부부는 하는수없이 방으로 도로 들어와 자는수밖에 없었다.

우리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높이 받들고 이처럼 인민의 리익과 풍습을 존중할뿐만아니라 인민과 접촉하는 모든 장소와 기회를 리용하여 그들을 교양하기에 힘썼다.

당시 소와툰부락에서 군중정치사업을 하던 한 대원은 인민들속에 들어가서 자기의 체험을 이야기하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가르치신 방향대로 정치선전사업을 하였다.

그는 자기가 지주놈의 머슴군으로 소나 말처럼 혹사당하고 천대받던 처지에서부터 김일성장군님께서 령솔하시는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하여 싸우고있는 감격을 말해주고나서 오직 일제를 때려부셔야 착취받고 천대받는 인민들의 자유와 행복이 마련된다는것을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김일성장군님께서 마련해주신 유격구들에서의 인민들의 정치적자유와 권리에 대하여 하나하나 실례를 들어가며 설명하면서 바로 그러한 새 사회에서 누릴 자유와 행복을 위해서 모든 사람이 힘을 합쳐 반일투쟁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소박하고도 감동적인 그의 말에 격동된 많은 청년들이 혁명군에 입대할것을 자진하여 탄원해나섰다. 그가운데는 한 젊은 녀성이 끼여있었다. 그는 머슴군의 가정에서 태여나 헤아릴수 없는 고통과 수모를 받으며 자랐으며 어린 나이에 강제결혼을 당한 녀성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사실을 보고받으시자 다른 입대청원자들과 함께 그 녀성을 직접 만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녀성의 열렬한 입대청원을 들으시고 그의 애국적열정을 치하하시였다. 그리고 그이께서는 그 녀성이 인민혁명군에 입대하는것도 좋은 일이지만 그보다도 지방에 남아서 일제를 반대하여 투쟁하는것이 더욱 좋다고 설복하시여 그를 집으로 돌려보내시였다.

이것은 당시 소와툰부락 주민들의 형편을 심중히 고려하시고 더 큰 문제를 생각하시여 취하신 조치였다.

우리 조선인민혁명군 부대가 이 지방에 오기 전까지만 하여도 이곳에는 토비들이 빈번히 드나들었다. 그놈들은 지방인민들의 집에 불을 지르고 집짐승과 쌀, 금품들을 빼앗았으며 녀성들을 붙들어갔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은 이것을 좋은 기회로 리용하여 《공산군이 불을 지르고 재산을 략탈했다. 녀자들을 강탈했다.》는 등 사실을 외곡하여 지방인민들에게 악선전을 하였다. 이때문에 아직도 이곳 인민들속에서는 조선인민혁명군을 옳게 리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이런 때에 만일 그 녀성이 입대를 청원한다 하여 그 즉시로 혁명군에 받아들인다면 우선 그의 남편과 일부 리해가 부족한 인민들이 《혁명군도 정말 녀자를 붙들어간다.》는 생각을 가지게 될수 있었으며 적들은 이것을 리용하여 더욱더 악선전을 하게 될것이였다.

그 녀성을 잘 설복하여 집으로 돌려보냄으로써 인민들은 혁명군을 더 깊이 믿게 될것이고 그 녀성도 마을에 남아서 혁명사업을 더 잘할수 있을것이였다.

사실 이 일이 있은 뒤부터 그 지방 인민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령도하시는 우리 혁명군을 그전보다도 더욱 신임하게 되였다.

이와 같이 인민들과의 련계를 강화하고 그들을 교양하며 가는 곳마다에서 혁명군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는 언제나 훌륭한 결실을 맺군 하였다.

인민을 존중하고 사랑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높은 뜻을 어느때 어느곳에서나 목격해왔고 체험하여왔지만 설을 앞두고 관지부근마을에 주둔해있을 때 우리는 그이의 높은 덕성을 더욱 가슴뜨겁게 느꼈다.

우리는 다른 마을에 주둔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 마을에 와서도 인민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풍습을 존중하면서 그들을 돕고 교양하기에 힘썼다.

설을 앞둔 때인데 우리들에게는 설을 쇨 아무런 준비도 없었다. 더구나 위대한 수령님께 드리는 식사마저 변변히 준비하지 못하여 여간만 안타깝지 않았다.

그리고 일부 신입대원들과 나어린 대원들은 고향에서 부모친척들과 함께 설을 쇠던 생각을 하며 서운해하였다.

지휘관들은 대원들의 이런 기분상태를 위대한 수령님께 보고하고 식량공작을 승인해주실것을 제기하였다.

《대원들이 일치하게 제기하는 의견입니다. 며칠 안있으면 설인데 부락에 나가서 메밀이나 감자가루를 좀 구해다가 국수를 누르려고 합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 지휘관의 이런 말을 들으시자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지금 혁명을 하고있습니다. 우리가 갖은 고생을 다하면서 혁명투쟁을 하는것은 우리의 안일과 리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조국의 해방과 인민의 리익을 위해서가 아닙니까. 지금 절대다수의 인민들이 명절을 맞아도 떡과 밥은 고사하고 죽도 제대로 먹지 못하며 이 추운 엄동설한에 아이들에게 의복 하나 제대로 해입히지 못하는 사람이 그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가 인민들을 도와주지 못할망정 한알의 쌀이라도 축내서야 되겠습니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지휘관들을 설복하시여 식량공작 나가는것을 그만두게 하시였다.

지휘관들은 인민을 깊이 사랑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높은 뜻을 미처 헤아리지 못한 자신들을 깊이 뉘우쳤다.

그런데 우리가 주둔하고있는 마을인민들이 우리를 위하여 설음식을 성의껏 차리려고 한다는 말이 들려왔다.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과 보살피심에 감동된 이 마을 인민들은 우리 조선인민혁명군을 친혈육같이 사랑하고 성의껏 원호하고있었다.

그들은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설을 쇠게 되는것을 더없는 영광으로 생각하며 돼지, 떡, 술들을 마련하여 부대와 함께 설을 푸짐하고 즐겁게 쇠려고 계획했던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우리들은 자기 고향에서 설을 맞기라도 하는듯 성수가 나서 마을사람들을 돕고 그들에게 정치사업을 더욱 활발히 하며 맡은 일을 서둘렀다.

바로 이런 때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마을로 나오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들의 살림형편을 하나하나 돌아보시며 마을로인들과 친절하게 이야기를 나누시였다.

한 로인은 그이께 다음과 같이 말씀드렸다.

《일제와 토비놈들의 로략질때문에 다 털리고 참으로 죽지 못해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김일성장군님께서 오셨으니 발을 펴고 잠을 자며 먹지 않아도 살이 질것 같습니다.》

로인의 두눈에는 감격의 눈물이 어리였다. 로인은 목갈린 소리로 말을 계속하였다.

《기쁜 날은 귀한 손님이 오신 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만 김일성장군님께서 오신 날은 내 평생에 아니 우리 마을 모든 사람에게 처음 차례진 큰 명절입니다.

며칠 있으면 새해를 맞게 되니 장군님을 모시고 쇠는 이 명절을 푸짐히 쇠자고 집집마다 설음식을 성의껏 차리자고들 하고있습니다. 조금도 허물치 마시고 우리와 함께 설명절을 쇠여주십시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마을인민들의 성의를 못내 치하하시며 설명절을 기쁘게 쇠는것은 좋으나 우리를 위해서 랑비하여서는 안된다고 간곡히 말씀하시였다.

그러나 마을로인들은 김일성장군님부대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아까울것이 없다고 하면서 꼭 함께 설을 쇠여주실것을 그이께 거듭 말씀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마을인민들과의 이야기를 끝마치신 다음 각 중대를 돌아보시며 대원들과 담화하시고 우리들의 기분상태를 알아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높고 깊은 뜻을 다 헤아릴수 없었던 우리들은 우리를 성의껏 원호해주는 마을인민들과 함께 설명절을 쇠게 되는 기쁨을 그이께 말씀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무엇인가 깊이 생각하시더니 자리에서 일어나시여 사령부로 가시는것이였다.

그런데 갑자기 전령병이 달려와서 급히 행군준비를 하라는 명령을 전달하는것이였다.

《웬 일일가?》

《적들이 나타났는가?》

모두들 이런 생각을 하면서 행군준비를 갖추고 나섰다.

동무들사이에는 《별게 없어. 우리는 일제놈들을 때려잡아야 명절도 즐거운 법이야.》하고 말하는 동무가 있는가 하면 일부 어린 대원들중에는 명절을 쇠지 못하게 된것을 서운해하는 동무들도 있었다.

우리들은 마을사람들과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인민들은 부대와 함께 설을 쇠지 못하게 된것을 무척 서운해하였다.

어떤 로인은 우리의 손을 잡고 놓지 않으며 말하는것이였다.

《정말 떠나시는군요. 아마 우리에게 소홀한 점이라도 있었나보외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떠나실수야 있겠나요.》

우리들은 섭섭해하는 이런 로인들에게 거듭 치하와 작별인사를 하면서 부득이 떠나지 않으면 안될 일이 생겼다고 루루이 설명을 했다. 그러나 그들은 계속 우리의 손을 잡고 따라오면서 말했다.

《군대어른들이 하시는 일이니 막을수는 없으나 참으로 섭섭하외다. 만약 우리의 성의를 생각한다면 어떻게 설날을 앞두고 길을 떠나시겠습니까.》

우리 역시 그들과 헤여지기가 서운했다. 그중에서도 신입대원들은 더하였다.

우리가 황니하자치기의 깊은 수림지대에 이른것은 날이 저문 뒤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여기서 휴식명령을 내리시였다. 그리고 이전에 목재소로동자들이 쓰던 산판막을 손질하여 숙영준비를 하라고 하시였다.

우리는 이때에야 마을을 급히 떠나게 하신 그이의 깊은 심중을 비로소 짐작할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까닭을 아직은 다 헤아리지 못하는 일부 신입대원들은 집생각이 간절해지는 모양이였다.

《지금쯤 고향집에서는 만두를 먹으며 우리를 생각할거요.》

우등불가에 앉아서 이런 말을 하는 동무들도 있었다.

바로 이때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밖으로 나오시더니 우등불가에 오시여 우리와 마주앉으시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명절이란 누구에게나 다 즐거운 날입니다. 의례히 이런 날에는 사람마다 좋은 옷을 입고 맛좋은 음식을 먹으며 서로 다정한 이야기를 나눌수 있게 되여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조선이나 동북땅에 일제침략자들과 착취자들이 있는 조건하에서 과연 이렇게 명절을 즐길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우선 우리가 오늘 주둔해있던 관지부근 부락인민들의 형편을 봅시다.

부락주민의 대다수는 옷 한벌도 제대로 입지 못하고 당장 먹을것도 변변치 못한 사람들이 아닙니까.

이제 며칠 지나면 설명절인데 새옷 한벌 준비 못한 어린이들이 얼마이며 설날아침에 술 한잔도 마실수 없는 로인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또 어떤 사람들은 벌써부터 량식이 떨어져서 죽조차도 먹지 못하는 형편이고 지주에게 가서 수수쌀이나 피쌀 몇되라도 꾸어달라고 하다가 오히려 모욕만 당하고 빈자루를 끼고 돌아온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이 부락 사람들은 우리를 위해 돼지도 잡고 만두도 만들며 술도 사오려고 했습니다.

바로 이것을 우리는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들이 우리를 적극적으로 지지원호해주며 우리와 함께 명절을 쇠고싶어하며 우리에게 맛좋은 음식을 대접하려는것도 그들의 진정에서 우러나오는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겠습니까.

그리고 그들가운데는 당장 먹을것이 없는 사람도 있다는것을 알면서 그들이 해주는 음식을 마음편히 먹고 명절을 즐길수 있겠습니까. 한사람도 아닌 우리들이 하루만 묵는다고 해도 그 부락 사람들이 얼마나 큰 부담을 지게 되겠습니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다가 방금전에 고향집에서 쇠는 설을 그리워하던 동무에게 물으셨다.

《동무생각은 어떻습니까?》

그 동무는 부끄러워 고개를 푹 숙인채 말을 못하였다.

《다른 동무들은 어떻습니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모두를 돌아보시며 다시 물으시였다.

그이의 그처럼 높고 깊은 뜻을 생각할수록 마을인민들과 함께 설을 쇠는것을 기쁨으로만 여기였던 자신들을 뉘우치며 우리모두는 말없이 고개를 숙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잠시 대답을 기다리시다가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유격대가 조직되던 초기에는 대원들도 얼마 안되였고 무기도 몇자루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우리가 얼마나 큰 힘으로 장성하였습니까.

지금은 광활한 지역인 전 동북땅에 우리 혁명군의 발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게 되였습니다.

우리는 고추가루와 도끼, 낫, 창, 몽둥이 등으로 적들을 치고 한두자루의 무기를 탈취하던 투쟁방법으로부터 불과 4~5년후인 오늘에 와서는 적들의 대부대를 상대로 하는 큰 전투들을 승리적으로 진행하면서 수천리원정의 길을 걷게 되였습니다.

일제는 처음에 우리를 비적이라고 악선전을 해보았지만 이제는 인민들이 우선 이것을 믿지 않으며 쏘련과 중국인민이 우리의 정당한 투쟁과 그 전망을 기뻐하고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여 오늘과 같이 강대한 력량으로 장성할수 있었습니까.

우리는 자기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목숨도 서슴없이 바쳐싸우는 인민의 아들딸들로 조직된 혁명의 군대입니다.

우리의 힘의 무궁무진한 원천은 인민들과 일심동체가 되여 생사고락을 같이하는 거기에 있는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싸움도 항상 령활성있게 잘해야 하지만 어디서나 인민을 존중하고 인민의 리익을 자기의 가장 귀중한 생명처럼 여기며 그 어떤 간난신고도 참고 견딜줄 알아야 하며 인민과 함께 즐기고 인민과 함께 나아가는 정신으로 살아야 합니다.

여기에 바로 우리의 진실한 행복과 긍지와 희망이 있는것입니다.

위대한 수령님의 간곡한 가르치심에 우리들은 자신들의 지난 일들을 돌이켜보며 뉘우쳤다.

설명절 전날이였다.

밤은 이미 깊었고 식사준비도 다되였다. 말하자면 설맞이준비가 다된것이였으나 차린것은 소박한 좁쌀밥이였다.

《간고한 혁명을 하고있는 우리에게 있어서 설이란 별것이 아니지. 죽이라도 굶지 않으면 다행이고 밥을 먹으면 명절날이거든.》

한 대원이 껄껄 웃으며 신입대원들에게 따뜻한 밥그릇을 먼저 권하였다.

그러자 신입대원들은 구대원들에게 사양하였다. 이렇게 서로 먼저 들것을 권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들의 이런 모습을 보시고 매우 만족해하시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가 이렇게 의의깊은 승리의 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면서 먹게 되는 이 음식이 비록 몇술의 좁쌀밥이지만 이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산해진미와 같은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가는 곳마다 인민들의 지극한 사랑을 받으며 조국의 해방과 새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투쟁하는데 어찌 먹는 음식이나 가지고 우리의 심정을 헤아릴수 있겠습니까. 우리에게는 앞으로 해방된 조국땅에서 인민들과 함께 맞이할 수많은 명절들과 즐거운 설들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그 신심을 잃지 않고 싸우면 됩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수저를 드시였다.

우리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을 듣고 새로운 투쟁결의로 온 가슴이 넘치는것을 느끼였다. 우리는 모두 새해에는 더 많은 적을 치고 조국해방의 그날을 앞당기자고 새로운 결의를 다지며 그해의 설을 의의깊게 쇠였다.

나는 언제나 이해의 설을 잊을수 없다.

위대한 수령님의 인민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우리를 진정한 인민의 군대, 인민의 충복이 되라고 가르치시던 수령님의 간곡한 말씀은 오늘도 기억에 생생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2차 북만원정과정을 통하여 광활한 지역에서 적극적인 군사활동을 전개하심으로써 적들에게 심대한 정치군사적타격을 주신것과 함께 광범한 인민들속에 혁명의 불씨를 지펴주시고 그들을 더욱 조직결속하신것은 우리 혁명의 발전에서 획기적인 의의가 있었다.

실로 제2차 북만원정의 빛나는 성과는 위대한 수령님의 천재적인 전략전술, 탁월한 령군술과 함께 인민에 대한 그이의 지극한 사랑과 혁명적인 군중관점의 빛나는 결실이였다.

여기에 생각이 미칠 때마다 나는 다음과 같은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되새기게 된다.

《군중을 쟁취하는것은 혁명의 승패를 좌우하는 관건적문제입니다. 따라서 공화국북반부에서의 계급투쟁에 대하여 옳은 인식을 가지고 그것을 정확히 진행하는것은 우리 혁명의 종국적승리를 보장하는데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집니다.》

우리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이 가르치심을 명심하고 수령님께서 보여주신 숭고한 모범을 따라 인민을 사랑하고 존중하며 그들의 충복으로서 모든것을 다 바치는 혁명적인 립장을 항상 견지하고 군중로선과 계급로선을 능숙하게 결합시키여 우리의 혁명대렬을 부단히 확대강화함으로써 조선혁명의 종국적승리와 조국통일위업을 더욱 앞당기기 위하여 모든 힘을 다하여야 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