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산지구에로

김 자 린

 

1937년 어느날 무송현밀영에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지도밑에 최현동지를 비롯한 지휘간부들의 회의가 있었다.

이 회의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해 봄에 진행될 조선인민혁명군의 국내 진공에 대한 전략적인 방침을 제시하시였다.

이 방침에 따라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은 3개 방면으로 진출하게 되였다.

그리하여 내가 속한 조선인민혁명군 제4사부대는 최현동지의 지휘하에 무송지방을 출발하여 무산군 붉은바위방면으로 행군을 개시하였다.

우리 부대는 이해 4월에 안도현 금창에 이르러 일제의 가장 충실한 주구이며 인간백정들의 집단인 리도선부대를 전멸시키고 행군을 계속하였다.

적들은 금창에서 당한 참패를 만회해보려고 미친듯이 날뛰고있었다.

우리들은 장기간에 걸친 행군과 거듭되는 전투로 하여 몹시 피곤하였다. 그러나 오매에도 잊을수 없던 그리운 조국땅을 밟게 된다는 한량없는 기쁨과 내 나라, 내 땅에서 불구대천의 원쑤 일제놈들을 쳐부신다는 생각으로 하여 피곤도 잊어버리고 씩씩하게 행군하였다.

당시 일제는 조선인민에 대한 전대미문의 파쑈적탄압을 강화하는 한편 우리 조선인민혁명군을 철저히 《토벌》하며 그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하여 압록강, 두만강국경연안에 《토벌대》와 경찰력량을 대대적으로 포치하였다.

무산군 농사동일대에만 하여도 적들은 500~600명의 군경을 상시적으로 배치하고 두만강대안인 안도, 화룡현 등지에서 활동하는 조선인민혁명군에 대한 《토벌》을 강화하고있었다.

당시 광평, 붉은바위, 하삼수평, 삼수평일대에는 각각 수십호의 화전민들과 수많은 산판로동자들 그리고 류벌로동자들이 살고있었다.

일제군경의 비호하에 목재채벌기업가 모리란 놈과 악질자본가 최진순이란 놈은 이 지방의 로동자들을 가혹하게 략탈하였으며 혹사하였다. 로동자들은 등뼈가 휘도록 일하여도 하루에 몇푼 안되는 임금밖에 받지 못하였다. 게다가 로동자들은 소득세를 비롯한 각종 명목의 세금을 바쳐야 하였으며 또 고리대적착취까지 당하였다. 그러니 로동자들은 입에 풀칠조차 하기 어려울 지경이였고 특히 류벌로동자들은 집도 없어 초막을 치고사는 형편이였다. 뿐만아니라 이곳 로동자들은 고된 로동에 의한 질병으로 쓰러지고 식량난으로 굶어죽는 일도 드문하였다. 거기에 경영주놈은 십장들을 사촉하여 로동강도를 극도로 높이게 하고 먹지 못해 비틀거리는 로동자들을 닥치는대로 구타하게 하였다.

화전민들의 생활형편도 매일반이였다. 농민들은 《불둥지》농사도 마음놓고 지을수 없었다. 그것은 《산림보호령》이 내려 산지도 마음놓고 개간할수 없었기때문이다. 화전에서 나는 소출마저 공출로 모조리 빼앗기고 나면 그야말로 초근목피로 연명하는수밖에 딴 도리가 없었다. 그러므로 이곳 인민들은 하루속히 《김일성장군 빨찌산》이 와서 저주로운 원쑤들을 쳐없애줄것을 고대하였으며 거기에서 래일의 행복과 희망을 찾으면서 이날까지 굴하지 않고 살아왔다. 이러한 형편에서 우리 인민혁명군부대의 무산군 붉은바위에로의 진출은 중요한 의의를 가지였다. 우선 두만강국경연안에 둥지를 틀고있는 일제군경놈들에게 심대한 타격을 줌으로써 일제의 암담한 식민지통치하에서 신음하는 인민들에게 반일기세를 높여주며 그들에게 필승의 신념을 북돋아줄수 있었다.

5월 15일 해질무렵이였다. 우리 부대는 백두산 동쪽조선과 동북국경계선에 있는 무산군 붉은바위부근에 이르렀다.

최현동지는 관하부대에서 정찰경험이 많은 대원들을 선발하여 국경연선과 붉은바위일대에 대한 정찰을 진행하도록 하였으며 또한 국경지구 주민들을 통하여 상세한 적정을 장악하였다. 붉은바위는 하늘아래의 첫동네라고 불리우는 산간마을이다.

정찰한바에 의하면 이 마을에는 국경경비대와 경찰대놈들이 있는 주재소와 목재채벌기업가인 모리란 놈과 최진순이란 놈의 창고가 있었다. 그리고 수백명의 로동자들이 고역에 시달리고있었다.

우리 부대는 두개 부대로 나뉘여 한 부대는 삼수평 대안리로, 다른 한 부대는 붉은바위로 진공하였다. 내가 속한 부대는 최현동지의 지휘하에 밤 10시경에 두만강을 건넜다. 우리들가운데는 조국땅을 처음 밟아보는 동무들이 적지 않았으며 대부분은 수년만에 다시 조국땅에 발을 들여놓게 되였다. 은밀성을 보장하기 위해서 모두들 말은 안했으나 저마다 조국땅에 안긴 흥분으로 하여 가슴이 벅차올랐다. 최현동지는 기관총 3정을 배속시킨 일부 력량으로 적수비대와 경찰대가 둥지를 틀고있는 붉은바위주재소를 포위하게 하는 한편 홍암산 동쪽고지에로 기관총을 배치하여 삼장, 광평방면으로부터 달려들수 있는 적을 방어하게 하였다.

붉은바위주재소에는 수많은 적병이 있었는데 놈들은 높이 10m, 두께 2m 그리고 8개의 총구가 뚫려있는 견고한 포대속에 들어박혀있었다.

이윽고 최현동지의 사격신호총성이 정적을 깨뜨리고 울려퍼졌다. 그러자 우리들의 기관총과 보병총들이 주재소를 향하여 일제히 불을 뿜었다. 우리의 화력이 어찌나 세찼던지 단번에 위압을 당한 포대의 적들은 총 한방 쏘지 못하고 지하도로 빠져서 도주하였다. 삽시간에 부락은 아군에게 완전히 장악되였다. 적의 창고를 습격할 임무를 받은 대원들은 질풍같이 달려들어 창고를 부시고 식량, 천, 지하족 등을 로획하여 인민들에게 나눠주는 한편 더러는 운반하여갔다. 정치공작원들은 일제파쑈통치의 야만성을 폭로하며 우리 투쟁의 종국적승리에 대한 신심을 북돋아주는 격문들을 부락 각처에 살포하였다.

그리고 조선인민혁명군의 정의로운 사명을 해설하며 인민들의 애국열의를 불러일으키는 선동사업도 진행하였다. 억눌리고 짓밟히던 붉은바위땅에 천지를 뒤흔드는 환성이 올랐다.

인민들은 《김일성장군 만세!》, 《조선독립 만세!》를 소리높이 웨쳤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 대원들을 부둥켜안고 기쁨에 넘쳐 눈물을 흘리였다. 이날의 감격을 나는 평생 잊을수 없다. 나는 이날 조국이란 무엇이며 그것은 왜 고귀한것인가를 재삼 가슴깊이 느꼈다. 그리고 모든 지혜와 힘을 바쳐 조국을 위해 복무하겠다는 굳은 결의를 더욱 튼튼히 다지였다.

우리는 붉은바위인민들의 뜨거운 환송을 받으면서 귀로에 올랐다. 군수물자를 운반해주기 위하여 100여명의 로동자들이 동원되였다. 삼수평습격부대도 부락을 해방시키는 임무를 완수하고 귀로에 들어섰다. 붉은바위에서 철수한 우리 부대는 다시 두만강을 건넜다. 삼수평습격부대도 두만강을 건넜다. 이리하여 대오는 다시 합류되여 승리의 기세드높이 행군을 계속하였다. 짐을 지고 온 로동자들까지 합치니 행군대렬은 굉장히 길었다.

행군대오는 기도령을 넘어 샘물이 있는 곳에 이르러 휴식하게 되였다. 우리는 80여개소에 우등불을 피워놓고 전투승리를 경축하는 축하연을 가지였다. 우리는 그리운 조국땅에서 온 로동자들과 더불어 지난날의 전투성과를 이야기하였고 앞으로의 투쟁에 대해서도 말하였다. 그리고 정치공작원들은 로동자들에게 앞날의 승리에 대한 굳은 신심을 안겨주는 연설도 하였다. 이곳에서 우리들은 로동자들에게 신발과 천을 나누어주고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런데 40명의 로동자들은 기어코 짐을 지고 우리의 대오와 함께 행군을 계속하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로동자들은 우리의 승리를 진심으로 축원하여주었다.

우리 대오는 5월 17일 저녁에 화룡현 《곰의자리》라는 곳에 이르렀다. 《곰의자리》란 곳은 삼면이 고지로 둘러싸이고 그 복판은 새초밭인데 새초밭과 고지어간으로는 대마록구하가 흘렀다. 그리고 대마록구하 서쪽의 새초밭구릉지대를 벗어나자 수림지대가 나타났다. 우리는 이 지대에서 휴식하였다.

숙영지를 정함에 있어서 최현동지는 지형지물을 상세히 조사하고 만일의 경우를 생각하여 새초밭과 수림지대사이에 자리를 잡게 하였다. 이 지점은 깊은 골짜기로 빠져서 고지로 오를수 있는 유리한 지대였다.

밤에 우등불을 피우고 모두들 곤하게 잠자고있었다. 그런데 새벽 3시쯤 되였을 때였다.

자리에 누워있던 최현동지가 갑자기 일어났다. 오랜 혁명투쟁에서 단련된 그는 날이 밝기 전에 적들이 추격해오리라는것을 직감했던것이다. 이때 밖에서 무슨 동정이 있다는 보고를 받자 최현동지는 인차 전체 대원들을 깨워 은밀히 골짜기를 빠져서 수림이 무성한 고지에 오르게 하였다.

최현동지의 타산은 들어맞았다. 우리가 숙영지에서 피하자마자 예견했던바와 같이 왜놈추격부대 200여명이 아군이 피워놓은 우등불을 목표로 중기관총, 경기관총, 적탄통 할것없이 일체화력으로 포위환을 좁히며 달려들었다. 놈들은 아군이 이미 이동한줄은 모르고 저희들끼리 맞붙어서 개싸움질을 하고있었다.

적들은 날이 밝을 때까지 서로 싸워서 80여명의 사상자를 내였다. 이것은 우리가 총 한방 쏘지 않고 적군 80여명을 살상한셈이다.

이 위급한 정황속에서도 용감한 녀성대원 김철호동무는 포연탄우속에서 자기가 맡은 취사도구이며 량식 그리고 《치도》를 모조리 가지고 나왔다.

그러나 강가에 보초를 섰던 동무는 놈들이 불의에 나타나자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였다. 몹시 어두운 밤이여서 적아를 가릴수 없다는것을 타산한 그는 일본말을 하면서 슬쩍 적들의 무리속에 끼여들었다. 그는 놈들의 뒤를 슬금슬금 따라가면서 여러놈을 쏘아죽였다. 날이 밝기 시작하자 그는 뒤로 빠져서 우리 부대가 있는 수림속으로 찾아왔다.

그리고 이날 밤 그 위급한 속에서도 짐을 지고왔던 로동자들 40명은 우리 대오에서 떨어지지 않고 끝끝내 고지우에까지 따라 올라왔다. 최현동지는 로동자들과 담화하면서 《당신들은 이전에 전쟁을 해보지 못했을것인데 그 위험한 속에서도 짐을 지고 우리를 따라와주니 대단히 감사합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랬더니 로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대답하기를 《여기는 인가 하나 없는 무인지경입니다. 보다싶이 백두산밀림속이 아닙니까. 몇십리 가도 낟알 하나 구할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들이 식량을 가지고 집으로 간다면 당신들은 굶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우리들자신이 총을 쥐고 직접 싸우지는 못한다해도 독립을 위하여 피흘리며 싸우는 당신들을 위해 짐이야 어찌 져다드리지 못하겠습니까. 비록 우리들은 왜놈의 압제하에서 살고는 있으나 조선사람이라는 민족적량심은 잊어본적이 없습니다.》라고들 말하였다.

이 소박하고 애국적인 이야기에 우리는 모두 감동되였다. 로동자들이 자기 집으로 돌아갈 때 최현동지는 매 사람에게 돈을 100원씩 나누어주어 그들의 수고에 대하여 사의를 표시하였다. 로동자들은 그 돈을 굳이 사양하였으나 우리들의 권고에 못이겨 할수 없이 받는것이였다.

그후 우리 부대는 장백쪽에 진출하여 보천보전투에서 승리하고 돌아오신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뵙고 그이의 지휘밑에서 활동하게 되였다.

붉은바위에로의 진출을 통하여 우리들은 이 고장 인민들과의 혈연적인 련계를 더욱 강화하게 되였으며 그들에게 필승의 신념을 안겨주었다. 이 위대한 불씨는 국내의 여러곳들에 전파되여 인민들의 반일기세는 날과 더불어 드높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