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랑, 그 은정

리 두 익

 

우리 당과 인민의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우리 인민군군인들을 크나큰 어버이품에 안으시여 한량없는 사랑을 안겨주고계신다.

그 사랑은 군종이나 병종의 구별이 없고 병사나 장령의 차이가 없으며 때와 장소가 따로 없고 시작과 끝이 없으며 사업과 생활의 구석구석 미치지 않는데가 없는 극진한 사랑이다.

날마다 더해지는 그 뜨거운 사랑속에서 인민군군인들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에 대한 신뢰의 마음을 더욱 굳게 다지며 우리 식 사회주의, 주체의 조국을 튼튼히 지켜갈 일당백의 장수힘을 더욱 억세게 키워가고있다.

우리 인민군장병들의 그 장한 모습을 대할 때마다 나는 총잡고 왜놈들과 싸우던 때 위대한 수령님의 끝없는 사랑속에 성장해오던 여러가지 일들을 그려보군 한다.

소년중대에 입대하던 첫날부터 조국의 해방을 이룩하는 그날까지 위대한 수령님의 품속에서 혈전의 길을 헤쳐온 나는 걸음걸음 수령님의 사랑을 받으며 성장하였다.

그러한 과정에 나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대원들을 극진히 사랑하시는 여러가지 사실을 목격하기도 하였다.

그 사랑속에 우리는 만난을 극복하고 위대한 수령님의 사상과 령도를 신념과 의리로 받들어나가는 투사로, 우리 혁명의 자랑높은 1세로 성장할수 있었다.

지휘관이나 대원들에 대한 구별이 없고 옆에 있으나 멀리 있으나 차별이 없으며 전투때나 행군시, 밥먹을 때나 잠잘 때까지 이어진 수없이 많은 사랑의 이야기들가운데는 이러한 사실도 있다.

 

형제의 상봉

 

나는 혁명에 나선 초시기 나이가 어려서 소년중대에서 생활하였다.

소년중대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왜놈들에게 부모를 잃은 혁명가유자녀들과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하려고 찾아온 소년들로 조직해주시고 친히 몸가까이에 데리고다니신 중대였다.

소년중대는 열둬서너살로부터 열대여섯에 이르는 소년들로 조직되였기때문에 유격전을 기본으로 하는 조선인민혁명군에 큰 짐으로 되였다.

그래서 조직초기에 일부 지휘관들은 소년들을 데리고다닐 일이 걱정되여 그들을 안전한 곳에 보냈다가 나이가 든 다음에 입대시키자고 하였다.

하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물론 소년들을 안전한 곳에 보낼수도 있지만 그들을 불비속에서 단련시키면서 혁명의 대를 이을 훌륭한 혁명투사로 키워야 한다고 하시면서 소년중대를 조직해주시였다.

그러시고는 언제나 우리 소년중대에 깊은 관심을 돌리시고 사업과 생활의 구석구석을 일일이 보살펴주시였다. 어려운 행군시에는 우리들과 같이 걸으시며 재미나는 이야기도 들려주시면서 힘겨움을 모르게 해주시였고 몸소 배낭도 메다주시면서 주저앉지 않고 끝까지 행군을 이겨나가도록 이끌어주시였다. 그뿐아니라 잠잘 때에는 추울세라 자신의 모포도 덮어주시고 식량이 떨어져 자신께서는 때식을 건느시면서도 우리들에게만은 비상미를 털어서라도 식사를 하도록 대책을 세워주시였다.

그때 우리가 입대시켜달라고 떼질하며 조선인민혁명군을 따라나서기는 하였지만 위대한 수령님의 그 사랑이 없었더라면 아마 그 간고한 행군과 모진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여내지 못했을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들의 마음속 생각까지 다 헤아려보시고 풀어주군 하시였다.

내가 소년중대에 입대하여 얼마간 지난 어느날이였다.

중대장의 지도밑에 각종 사격동작을 익히고있던 우리들은 훈련장에서 위대한 수령님을 맞이하게 되였다.

여느때같으면 막 달려가 위대한 수령님의 품에 안겼을 우리들이였지만 소년중대생활을 통하여 어지간히 규률이 몸에 배였던터이라 그렇게 하지 못하고 휴식구령이 내리기만 기다리며 더 열성적으로 훈련을 하였다.

그러한 우리들의 모습을 대견하게 바라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휴식명령을 내리라고 하시였다.

중대장의 구령이 떨어지기 바쁘게 우리는 껑충껑충 뛰며 위대한 수령님을 에워쌌다.

좋아서 어쩔줄 몰라하며 매달리는 우리들을 둘러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훈련이 힘들지 않나?》라고 물으시였다.

《힘들지 않습니다.》, 《재미납니다.》, 《기운이 솟습니다.》

대답은 여러가지였지만 기백은 한결같았다.

우리들의 힘찬 대답을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만면에 환한 웃음을 담으시고 《이제는 전투에도 참가할 자신들이 있느냐?》라고 다시금 물으시였다.

《자신있습니다!》

이렇게 한결같이 대답한 우리들은 저저마다 한마디씩 보태였다. 어떤 동무는 기관총도 얼마든지 다룰수 있다고 하면서 기관총을 달라고 하였고 어떤 동무는 수류탄이 더 있으면 좋겠다고 하였으며 또 누구인가는 정찰을 나가보았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아직도 응석이 섞인 우리들의 이야기를 다 들어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런 기백과 결심들을 가진것은 아주 좋은 일이다. 훈련을 더 잘해서 구대원수준에 이르면 소원대로 해주지.》라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중대생활의 이모저모에 대하여 하나하나 료해하시다가 문득 나에게 이렇게 물으시였다.

《집을 떠난지 몇달이 잘되였으니 집생각이 무척 나지?》

《안납니다.》하고 얼결에 대답한 나는 《중대생활이 재미나서…》 하고는 말끝을 얼버무리였다.

혁명을 하겠다고 나선 사내라는게 집생각을 한다면 졸장부같이 생각되여 그렇게 대답을 하였지만 불쑥불쑥 떠오르는 집생각을 하고서도 그런 말을 하고나니 속이 개운치 않았다.

그러한 나의 속마음을 헤아려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웃으시며 집생각이 왜 안나겠는가고 하시며 혁명투쟁에 나섰다고 하여 집생각을 하는것이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하시였다.

계속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언제나 조국과 고향, 부모형제들을 그려보는것은 좋은 일이다, 그런데 명심해야 할것은 힘겨울 때 집생각을 하며 나약해질것이 아니라 더욱 마음을 굳게 다져야 한다, 춥고 배가 고프고 중중첩첩 고난이 앞을 막아설 때마다 무엇때문에 우리가 고생을 해야 하는가를 생각해야 하며 고향을 떠나올 때 하던 부모형제들의 당부를 생각하며 더욱 분발해야 한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나니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하려고 떠나올 때 동구밖 멀리까지 따라오며 곱씹어 이야기하던 부모님의 간곡한 부탁이 떠올랐다.

그래서 나는 위대한 수령님께 마음속생각을 그대로 말씀올렸다.

나는 사실 힘겨울 때나 기쁜 일이 있을 때 그리고 밥을 먹다가도 불쑥 집생각이 나는데 그런 때면 김일성장군님의 령을 잘 받드는 훌륭한 군사가 되라고 하던 부모님의 당부가 떠올라 마음을 다잡군 한다고 하였다.

그러자 다른 동무들도 한마디씩 하였다.

어느 한 동무는 고향생각이 날 때면 고약하고 악착하기 그지없는 왜놈상통이 눈앞에 얼른거려 이를 갈게 된다고 하였고 또 누구는 왜놈들에게 학살된 부모들을 생각하면 하루라도 빨리 전투에 참가하여 원쑤갚을 불같은 마음이 솟구친다고 하였다.

그리고 어느 동무는 눈보라속에서 혹한에 떨고 기진맥진할 때에는 따뜻한 아래목생각이 나다가도 싸우러 나가서 시라소니구실이나 하려거든 아예 떠나지나 말라던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라 정신을 번쩍 차리군 한다고 하였다.

그러자 그자리에 있던 대원들의 웃음보가 터졌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도 웃으시며 모두 좋은 말들을 했다고 하시면서 《부모형제들의 간절한 부탁을 잊지 말고 이다음 집문턱을 떳떳이 넘어설수 있게 잘 싸워나가야 한다.》라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며칠후에 부대가 백두산밀영으로 갈 때 소년중대의 일부 동무들도 같이 가기로 했으니 준비들을 잘하라고 하시였다.

순간 우리들은 너무 좋아서 일제히 환성을 올리였다.

각이한 나이의 소년들이라 감정표현도 서로 달랐다. 《야!》하면서 손벽을 치는가 하면 《만세!》하고 두손을 흔드는 동무도 있었다.

우리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자리를 뜨시게 되자 수령님을 에워싸고 한동안 따라걸으며 아무 말도 없이 서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애썼다. 너무도 섭섭해서였다.

그러는 우리들의 모습을 이윽토록 둘러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걸음을 멈추시고 《자, 이제는 그만 돌아가서 훈련을 계속해라. 며칠 있으면 우리는 또 만나게 될게다.》라고 하시였다.

며칠 있으면 위대한 수령님을 다시 만나뵈올수 있다니 마음이 좀 가라앉기는 하였지만 순간도 수령님의 곁을 떨어지고싶지 않은 우리들이였다.

그러한 심정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나이 70이 넘은 오늘에도 위대한 수령님을 뵙게 되면 그냥 곁에 있고싶은 심정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신의 곁을 떨어지기 아쉬워하는 나의 어깨에 다정히 손을 얹으시고 《형님이 이렇게 의젓하게 성장한 너의 모습을 보면 기뻐하겠는걸.》하고 뜻있는 미소를 지으시며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떠나신 다음에도 그 말씀은 내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아있었다.

아닌게 아니라 형님에게 군복입은 나의 모습을 보여주고싶었다. 그러면 형님이 집에도 사실을 전해줄것이 아닌가.

그러나 다음순간 군복을 입고서는 적통치구에서 구장의 직분을 가지고 지하공작을 하는 형님에게 갈수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허전하였다.

그런데 며칠후 형님을 실제로 만나게 되였으니 나의 기쁨은 무어라고 말할수가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말씀하시던대로 며칠후 나는 몇명의 대원들과 함께 경위중대에 소속되여 수령님을 모시고 백두산지구비밀근거지를 향하여 행군길에 올랐다.

모두가 조국으로 가는 첫걸음이여서 마음이 둥둥 떴고 기세도 충천하였지만 행군길은 헐치 않았다.

장마철이여서 길은 온통 질적질적한데다가 곳곳에 물웅뎅이며 진대나무가 길을 가로막아 진땀을 빼야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힘겹게 걷는 우리 어린 대원들과 함께 걸으시며 앞에 나무가 있으니 주의하라, 웅뎅이가 있으니 기운을 내서 뛰여넘으라고 하시며 쓰러지지 않고 힘겨운 행군을 견디여내도록 이끌어주시였다. 또한 휴식시간이면 정세이야기며 옛말을 재미나게 들려주시면서 기운을 잃지 않고 힘을 내도록 해주시였다.

어느덧 곰산이 지척에 바라보이는데까지 왔다. 사자봉과 마주 솟아있는 곰산은 둥실하고 덩지가 큰 산이였다. 구대원들의 말에 의하면 이 산은 곰이 많이 나와 논다고 하여 곰이 노는 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하였다.

대오가 곰산중턱에 이르렀을 때였다.

거기에서 조국의 산발을 굽어보니 행군에 지쳤던 온몸에 기운이 뻗치며 새힘이 막 솟아나는것만 같았다.

그런데 위대한 수령님께서 금수강산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아는가고 물으시였다.

나는 얼른 대답을 올리지 못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의 대답을 더 기다리지 않으시고 조상들은 우리 나라가 마치 비단에 수를 놓은것처럼 아름답다고 하여 그렇게 불러왔는데 아름다운 조국산천이 지금은 부패무능한 사대매국노들때문에 왜놈들에게 빼앗겼다고 말씀하시였다.

순간 우리에게는 이미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야기하여주신 일신의 안일과 영달을 위해 친일을 하면서 나라를 팔아먹은 봉건통치배들에 대한 증오와 분노가 치미는것을 어찌할수 없었다.

주먹을 불끈 쥔 우리들을 미더운 눈길로 바라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사대주의의 후과에 대하여 강조하시고 제힘을 믿고 인민의 힘을 발동하여 혁명을 잘해나가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곰산중턱에서 조국의 모습을 직접 보며 새힘을 얻은 우리는 그날저녁에 백두산밀영에 도착하였다.

그때 사령부와 경위중대는 백두산밀영에 자리잡았고 7련대와 8련대는 사자봉밀영으로 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다음날 백두산밀영에서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 지휘성원회의를 소집하시고 안팎으로 뒤엉킨 정세에 대처하여 조선혁명을 계속 앙양에로 이끌어올리기 위한 방침을 제시하시였으며 그 다음날에는 사자봉밀영에서 정치공작원 및 지하혁명조직책임자회의를 여시고 앞으로 그들의 정치공작방침을 구체적으로 밝혀주시였다.

바로 그날 위대한 수령님께서 사자봉밀영으로 떠나신 얼마후 사령부전령병이 와서 나를 찾는것이였다.

그는 나에게 사령관동지께서 부르시니 빨리 사자봉밀영으로 가자고 재촉하였다.

사령관동지께서 찾으신다는 말에 귀가 번쩍 뜨인 나는 너무도 기뻐서 전령병보다 앞서서 달려갔다.

그러다가 사자봉밀영에 거의 다달았을 때에야 무엇때문에 부르실가 하는 생각을 하며 걸음을 늦추었다.

아무리 생각해보아야 가늠을 할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전령병에게 슬쩍 물어보았다.

전령병은 그저 웃으면서 이제 가보면 알게 될거라고 하면서 어물어물 넘기는것이였다.

나의 속은 더 궁금해지기만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는 곳으로 간 나는 수령님께 인사를 올리고 명령대로 왔다고 보고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수고했다고 하시면서 옆에 앉아있는 사람에게로 시선을 돌리시였다.

거기에는 산삼캐러 다니는 사람들의 행장을 한 사람이 앉아있었다. 그는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다시 위대한 수령님을 바라보고있었다.

나는 어디선가 본 사람 같아 다시 그 사람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는 형님이였다.

형님은 나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잠뱅이를 걸친 나에 대한 표상밖에 없던 형님은 군복을 입고 총까지 멘 나를 알아볼수 없었다.

그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의 형님에게 《누군지 알아보지 못하겠소? 동생이요. 동생이란 말이요.》라고 하시며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그제서야 나를 알아본 형님은 《너 두익이로구나.》하며 두팔을 벌려 나에게 다가오는것이였다.

순간 나는 형님의 손을 붙들고 《예, 내가 두익입니다.》하고는 다음말을 잇지 못했다.

코허리가 찡해나더니 입이 자꾸만 이지러져 말이 되지를 않았다.

형님도 같은 심정인지 나의 어깨며 등이며를 어루만질뿐 말을 하지 못하였다.

자애로운 미소를 담으시고 우리들의 모습을 바라보고계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날씨도 더운데 서늘한 개울가에 나가서 천천히 회포를 나누시오.》라고 말씀하시였다.

그날 우리 형제는 정가롭게 흐르는 소백수가의 그늘밑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성급하게 연방 집소식을 물었다. 그런 나를 탓하지 않고 소식을 차근차근 대준 형님은 입대후의 나의 생활에 대하여 하나하나 알아보았다.

나는 입대한 다음 위대한 수령님의 극진한 보살피심속에서 지나온 몇달어간의 생활에 대하여 자상히 이야기하였다.

그리고나서 형님이 어떻게 사자봉밀영에 오게 되였는가고 물었다.

형님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사람을 시켜 회의에 꼭 참가하라고 련락을 띄워주시였기에 오게 되였다고 하였다.

그 말을 들으니 나는 며칠전에 위대한 수령님을 뵈옵던 일이 생각나고 수령님께서 하시던 말씀이 떠올라 형님에게 그 사실을 이야기하였다.

그랬더니 형님은 생각에 잠기여 《사령관동지께서 우리 형제들의 상봉을 일부러 마련해주셨구나.》하고 말하였다.

그의 말소리는 감동으로 하여 젖어있었다. 나의 가슴도 후덥게 달아올랐다.

정말 우리 형제의 상봉은 우연히 이루어진것이 아니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나의 속마음을 헤아려보시고 마련해주신 뜻깊은 상봉이였다.

혁명하러 집을 떠나온 형제가 이렇게 전장에서 서로 만나 혈육의 정을 나눈다는것은 정말 흔치 않은 일이였다.

생각할수록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에 목이 메였다.

형님은 그때 헤여지면서 나의 손을 꼭 잡고 이렇게 당부하였다.

《우리 언제 어디서나 사령관동지의 사랑을 잊지 말고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사령관동지를 잘 받들어나가자.》

《알겠습니다. 형님.》

비록 한마디로 형님앞에서 다짐했지만 나는 마음속으로 위대한 수령님의 고마운 사랑에 보답할 굳은 결의를 다지고 또 다지였다.

그후 나는 그 결의를 한시도 잊지 않고 항일의 혈전길을 헤쳐왔고 오늘도 그 결의대로 살며 일해가고있다.

 

신발과 보약

 

나는 소년중대생활을 마친 후 영광스럽게도 사령부직속 경위중대에 배치받게 되였다.

그때 여러 동무들이 경위중대에 배치되였는데 우리들은 거기에서도 소년중대에 있을 때처럼 위대한 수령님의 각별한 보살피심속에서 생활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들이 처음으로 전투에 참가할 때에는 겁을 먹거나 덤비지 않도록 주의를 주시였고 정치학습이나 군사훈련때에도 인차 구대원들을 따라서도록 깊은 관심을 돌려주시였다.

그리고 식생활이며 옷차림에 이르기까지 눈여겨 살피시며 부족점들을 하나하나 바로잡아주시였다.

날이 감에 따라 더해지는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을 받아안게 된 우리들은 수령님께서 더는 우리들때문에 마음쓰지 않도록 하기 위해 무진애를 썼다.

위대한 수령님의 그 사랑은 우리들뿐아니라 전체 대원들에게 다같이 베풀어졌으며 그때만이 아니라 언제 어데서나 끊임없이 이어졌다.

1938년 여름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친솔밑에 평남도의 양덕지구에 진출하였던 부대가 자강도일대에로 행군을 시작하였을 때 나에게는 한가지 걱정거리가 생겨났다.

유격전을 하는 우리에게서 신발은 날개와도 같은것이였는데 내가 근심하게 된것은 바로 그 신발때문이였다.

신발바닥이 구멍이 날 정도로 닳아빠져서 발을 디디기가 어려웠다. 밟으면 울퉁불퉁한 모든것이 발바닥을 송곳으로 찌르는것 같아 한걸음한걸음 디디기가 어려웠다.

신발바닥에 넙적한 나무잎도 깔아보고 봇나무껍질도 넣어보았지만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갈수록 발바닥이 더 쑤시여서 도무지 걸음을 옮기기가 힘겨웠다.

그래서 다른 동무들의 기색을 살펴보니 예상외로 모두 아무렇지도 않은듯 태연하였다.

(같은날에 새 신발을 갈아신었는데 내 신발만 왜 더 빨리 판이 났을가.)

이상하게 생각한 나는 어느 쉴참에 소대장의 신발을 슬그머니 만져보았다.

그의 신발도 역시 내 신발과 다름이 없었다.

그런데도 참고 견디며 내색을 하지 않는다는것을 알게 된 나는 그쯤한것도 참지 못하고 안절부절하지 못한 자신이 부끄럽게 돌이켜져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 다음부터는 나도 아픔을 내색하지 않고 걸으려고 애를 썼다.

대오가 자강도땅에 들어섰을 때였다.

앞뒤로 오가시며 행군을 지휘하시며 대원들을 보살펴주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내곁에 이르시여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발바닥이 몹시 아프지.》

《예?》

그러지 않아도 위대한 수령님께서 아시면 걱정하실것 같아서 어떻게 하든 내 혼자 참고 견디여내려고 했는데 수령님께서 벌써 아시고 말씀하시니 달리 변명할수가 없었다.

나의 마음을 속속들이 가늠해보신듯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제는 신발을 갈아신은지 오랬으니 바닥이 닳아서 발이 몹시 아플거요.》라고 하시였다.

나는 위대한 수령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것이 죄스러워 아직은 천리라도 더 견딜수 있다고 서둘러 대답하였다.

그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힘들더라도 기운을 내서 회골밀영까지 견디여내자고 고무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은 그대로 힘이 되고 용기가 되였다.

나는 회골밀영에 도착할 때까지 발아픔을 모르고 행군하였다.

그때 신창을 새로 덧댄것도 없고 또 갑자기 길이 좋게 달라진것도 아니였지만 마음을 굳게 먹으니 발아픔이 덜한것만 같았다.

회골밀영에 도착한 우리는 모두 일제히 새 신발을 갈아신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가 회골밀영에까지 가면 신발이 다 해질수 있다고 타산하시고 이미전에 그곳 소부대 동무들에게 신발을 해결해놓도록 과업을 주시였던것이다.

나는 신발을 갈아신으며 위대한 수령님의 선견지명과 다심한 어버이사랑에 대한 감탄과 솟구쳐오르는 감사의 정을 금할수 없었다.

회골밀영에서 우리는 한시에 모두가 새 신발을 갈아신었을뿐아나라 산꿀도 한종지씩 먹었다.

꿀을 받아든 우리는 거듭되는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에 목이 메여 인차 술을 들지 못하였다.

꿀이 여러가지 고려약을 만드는데 없어서는 안될 특효있는 약재이며 몸보신에 좋다는것은 알고있었지만 몸보신을 위해서 꿀을 먹어본 대원은 거의 없었다.

나도 꿀이 좋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그때까지 꿀을 먹어보지를 못하였다.

그런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대원들이 꿀을 먹고 한참 푹 자고나면 몸들이 거뜬해질것이라고 하시면서 그곳 소부대동무들이 마련하였던 귀한 꿀을 모두 우리들에게 돌려주시였다.

꿀종지를 받아들고도 인차 먹지 못하는 우리들을 둘러보던 정치지도원은 《이 꿀은 사령관동지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사랑의 보약이요. 어서 먹고 기운을 내여 사령관동지의 뜻을 더 잘 받들어나갑시다.》라고 말하며 먼저 종지의 꿀을 숟가락에 떴으나 입에 가져가지는 못했다.

아마도 아버지의 일이 생각이 나서 그런것 같았다.

나도 꿀을 한숟가락 떠서 입에 넣었지만 정치지도원에게서 들은 그의 아버지이야기가 생각나면서 목이 꽉 메여 넘길수가 없었다.

정치지도원은 입대전에 위가 아파서 몹시 고생하였다고 한다.

정치지도원의 아버지는 별의별 약을 다 구해서 그의 병을 고쳐주려고 애썼다. 그러나 병세는 차도가 없었다. 그래서 여러 의원들을 찾아다니면서 알아본 끝에 꿀을 많이 구해서 써보라는 약방문을 얻게 되였다. 그런데 꿀을 많이는커녕 한병 구하기도 힘들었다.

정치지도원의 아버지는 끝내 아들이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할 때까지 꿀 한병 아들에게 먹여보지 못하고 떠나보내였다.

그러니 정치지도원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는가.

그후 그의 아버지도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하여 후방일을 보았는데 그러다가 벌둥지를 만나 얼마간의 꿀을 얻게 되였다. 그가 꿀을 부대의 환자들에게 모두 쓰도록 내놓자 그의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아는 지휘관이 얼마간의 꿀을 그에게 돌려주었다. 아버지는 굳이 사양하다가 한병만을 아들을 위해 배낭에 넣고 다니였다.

언제든지 아들을 만나면 그것을 먹여 마음속의 얼을 풀려고 하였던것이다.

그런데 그는 그만 적과의 싸움에서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결국 그 꿀은 아들에게 전해지지 못하고 놈들의 총에 맞아 아버지의 배낭만 혼곤히 적시였다.

꿀병의 사연을 잘 알고있는 전우들은 고인을 영결하면서 아버지의 마음을 아들에게 전하겠다고 피눈물속에 약속하였다.

후날 그러한 사연을 전해듣게 된 정치지도원은 꿀을 보거나 꿀에 대한 이야기만 나와도 아버지를 생각하였고 아버지를 그리면 배낭을 적신 꿀생각을 하며 원쑤를 천백배로 갚을 맹세를 다지군 하였다고 한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바로 그의 아버지가 주지 못했던 꿀을 정치지도원만이 아니라 우리모두에게 피곤을 풀고 기운을 돋구라고 주셨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하고 눈굽이 젖어와서 그대로 넘길수가 없었다.

이렇게 지난날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의 한량없는 사랑을 받으며 싸워왔다.

위대한 수령님의 뜨거운 그 사랑, 그 보살피심이 있었기에 우리는 모진 고난을 이겨내면서 오직 수령님께서 이끄시는 한길로 꿋꿋이 걸어올수 있었으며 일편단심 수령님의 사상과 령도를 받들어 오늘에 이를수 있었다.

 

바뀌여진 자리

 

위대한 수령님께서 친솔하신 우리 부대가 백두산서남부에서의 군사정치활동을 마치고 백두산지구비밀근거지로 행군해가던 1939년 5월이였다.

행군길은 처음부터 간고하였다.

5월이라지만 고산지대인 백두산의 수림속에는 아직도 봄과 겨울이 뒤섞여있어 서로 숨박곡질하며 엇갈려 문득문득 우리앞에 나타나 우리의 행군길을 더디게 하였다.

간혹 양지바른쪽에는 철쭉꽃이 활짝 피여 봄의 향취를 한껏 느끼게도 하였지만 그것은 순간에 불과하고 련이어서는 미끄러운 얼음판과 질적한 눈석이가 가로막아 진땀을 빼야 하는 구간이 대부분이였다. 나무가 빼곡한 수림속은 무릎을 치는 눈이 그냥 남아있어 봄이 언제 왔느냐고 묻는듯싶었다.

눈석이구간을 지날 때면 너무도 질적질적하여 길은 축나지 않고 짜증만 났다.

그런가 하면 얼음판을 잘못 디디여 몇바퀴 딩굴고나면 정신이 아찔해져 누가 붙잡아 일으켜세워주어야 하였다.

그런 곳을 행군해가자니 신발은 물론 온몸이 그대로 물과 흙검불, 땀으로 하여 범벅이가 되고말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때에도 대오의 앞뒤를 오가시며 나무잎에 가리운 물웅뎅이에 빠지지 않도록 길을 골라주시였고 얼음판에 넘어지지 않도록 발홈까지 파주시며 대오를 이끄시였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 험한 길에서도 주저앉지 않고 압록강을 건너 1차목적지까지 무사히 도착할수 있었다.

그곳에 도착하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오에 휴식명령을 내리시였다.

휴식이 선포되자 우리 경위중대 대원들은 위대한 수령님께 좋은 자리를 마련해드리기 위해 서둘렀다.

몇동무는 나무를 모아다가 불을 피웠고 다른 동무들은 젖지 않은 새초와 나무잎을 모아서 무둑히 쌓은 다음 그우에 모포를 깔아 위대한 수령님께서 편히 앉으실 자리를 만들었다.

그런 다음 대원들의 휴식정형을 돌아보고계시는 위대한 수령님을 모셔왔다.

우리들이 준비한 휴식장소를 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동무들의 일솜씨가 참 날쌔구만.》 하고 치하해주시며 빨리 둘러앉아 옷도 말리고 밥도 덥혀서 먹자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치하에 나는 행군의 피로가 순간에 다 풀리는듯 하였다.

다른 동무들도 역시 기뻐하며 저마끔 위대한 수령님께 특별히 만든 자리에 앉으실것을 권하였다.

그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손더듬으로 모포를 눌러보시더니 이렇게 폭신하니 피곤이 저절로 풀릴것 같다고 하시며 《이자리에는 오늘 행군에서 제일 수고를 많이 한 동무들을 앉히는것이 좋겠소.》라고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이자리는 응당 위대한 수령님께서 앉으셔야 한다고 거듭 간청하였다.

그런데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를 둘러보시다가 오늘 행군에서는 전달장동무와 백동무가 제일 수고가 많았다고 하시며 그들을 앉히자고 하시였다.

우리들가운데서 그 동무들이 제일 수고를 많이 한것은 사실이였다.

우리들은 그저 자기 한몸만 건사하면 되였지만 그들은 앞뒤를 오가며 위대한 수령님의 명령을 전달해야 하였고 길도 개척해야 하였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이 좋은 자리에 앉아 쉬여야 자신께서도 피곤이 풀릴수 있다고 하시며 펄쩍 뛰며 놀라는 그들을 끝내 우리들이 마련해놓은 푹신한 자리에 앉혀주시였다.

그러시고는 그들의 신발을 몸소 벗겨서 불무지곁에 놓으신 다음 우리들의 몸에 묻은 흙검불까지 말끔히 털어주시고야 자리에 앉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내 잔등에 묻은 흙검불을 털어주실 때 나는 그만 가슴속에 불뭉치같은것이 뭉클 올리밀며 눈굽이 뜨거워나는것을 참을수 없었다.

전달장과 백동무는 슬그머니 손등으로 눈굽을 문대는것이였다.

항일무장투쟁의 나날 우리는 이렇게 위대한 수령님의 끝없는 사랑속에서 자랐다.

그 사랑은 위대한 수령님을 더 잘 받들어모실 굳은 신념과 의지를 간직하게 하고 모든 고난과 시련을 극복할수 있게 한 불굴의 힘의 원천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그 사랑이 있었기에 우리는 수령님의 령도를 따라 일심단결된 무적의 힘으로 강도 일제를 타승하고 조국광복의 력사적위업을 성취할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