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고귀한 정치적생명을 위하여

박 영 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모든 일군들이 육체적생명보다 정치적생명을 더 귀중히 여기는 혁명가적기풍을 소유할데 대하여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동무들이 일하느라면 난관에 부닥칠 때도 많을것이고 여러가지 복잡한 문제에 부딪칠 때도 있을것이며 동요하는 때도 있을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당을 믿고 확고한 혁명적신조를 가져야 합니다. 다시말하여 우리에게는 당중앙이 있다, 나는 인민을 위하여 투쟁하는 사람이며 혁명을 위하여 몸바칠 결심을 한 사람이다, 언제나 당과 인민과 혁명을 위하여 충실할것이다, 나 개인이 하나 죽는것은 아까울것 없다, 비록 육체적생명은 죽는다고 하여도 정치적생명만은 더럽히지 않겠다, 이런 혁명적신조만 가지면 어떤 곤난도 이겨낼수 있습니다.》

지난 항일무장투쟁시기 수많은 혁명가들은 간고한 무장투쟁이나 지하투쟁의 엄혹한 환경속에서도 오로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가르치심을 명심하고 그를 관철하기 위하여 모든것을 바쳐 투쟁하였다.

그들은 적들의 감옥과 교수대우에서도 추호의 동요도 없이 오직 혁명을 위한 일념으로 굴함없이 끝까지 싸웠으며 비록 한목숨을 바치는 한이 있더라도 정치적생명은 더럽히지 않겠다는 굳은 신념으로 혁명적지조를 꿋꿋이 지켜내였다.

이러한 사실들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김동호동무를 회상하게 된다.

본명보다도 《두루미》라는 별명으로 더 많이 불리여온 그는 일찌기 룡정중학교에서 고학할 때부터 반일학생단체를 조직지도하면서 혁명의 길에 나선 동무로서 추수, 춘황투쟁때에는 남구농민들의 선두에 서서 용감히 싸웠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제시하신 항일무장투쟁로선을 받들고 항일무장투쟁에 참가한 그는 화룡현 평두산에서 당지부책임자인 채수항동무와 함께 국내 혁명조직과의 련계를 보장하면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반일민족통일전선로선의 관철을 위하여 몸바쳐 투쟁하였다.

그는 무산 가라지봉밀영에 파견된 정치공작원들과 련계를 맺기 위하여 자주 두만강을 넘나들었고 때로는 삼엄한 국경경비망을 뚫고 무장소부대와 함께 반일혁명후원회에 망라된 계림탄광 로동자들이 보내는 물품들을 국내에서 유격근거지까지 날라오기도 하였다.

또한 그는 대립자구(대구)에서 김일환동무와 함께 사업할 때에는 룡정에 있는 학생조직을 지도하는 한편 왕청유격근거지에 자주 다니면서 지시문과 소책자들을 날라오는 일도 맡아보았다.

특히 1933년 봄 왕청에서 열렸던 공청일군회의에 참가하여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가르치심을 받고 돌아온 후에는 그 관철을 위하여 몸바쳐 투쟁하여온 동무였다.

내가 김동호동무를 마지막으로 만나본것은 1933년 여름이였다.

이때 나는 위대한 수령님의 부르심을 받고 화룡을 떠나면서 그때까지 내가 맡아보던 적위대사업과 룡정시내에 조직되였던 학생지하조직에 대한 지도사업을 그에게 인계하였다.

그후 다시 그를 만나지는 못하였으나 나는 혁명조직과 동지들을 통하여 그가 어떻게 싸우고있는가에 대한 소식을 자주 들었다.

그리고 해방후에 혁명전적지를 답사하는 과정에 온 가족과 함께 혁명의 길에 나서 싸워온 김동호동무가 적들에게 체포된 후에도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충직한 전사로서 굴함없이 싸웠으며 자기의 정치적생명을 훌륭히 지켜낸 사실에 대하여 더 자세히 알게 되였다.

1933년 12월, 화룡현 오봉산바위굴에서 병치료를 하고있던 김동호동무는 룡정시내에 있는 학생지하조직으로부터 급한 통보를 받게 되였다.

통보에 의하면 일제군경놈들이 지하조직과 련계가 있는 몇명의 청년학생들을 체포하였는데 검거가 계속될것 같으니 긴급한 수습대책이 필요하다는것이였다.

당시 룡정시내에는 일제의 각종 침략기구가 집중되여있는 한편 선진적인 로동자들과 지식인들, 청년학생들을 망라한 각종 혁명조직들이 지하에서 활발히 움직이고있었다.

일제는 각종 방법을 다하여 지하조직을 찾아내려고 미친듯이 날뛰고있었다.

그러므로 적들의 공세에 대처하여 정확한 수습대책을 빨리 세우는것은 혁명력량을 보존강화하고 반일투쟁을 더욱 활발히 전개할수 있게 하는데서 매우 중요하였다.

이처럼 긴박한 때에 김동호동무는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는 형편에 놓여있었다.

그것은 바로 얼마전에 채수항동무와 함께 남구지방의 혁명조직을 지도하던중 발에 심한 동상을 당하였기때문이였다.

임무수행중 그들은 갑자기 적들의 추격을 받게 되였는데 그때 채수항동무는 적탄에 중상을 당하였다. 깊은 눈속에서 한걸음도 옮겨디딜수 없게 된 채수항동무는 김동호동무만이라도 빨리 피신하라고 하였다.

그러나 김동호동무는 귀중한 혁명동지인 채수항동무를 적들속에 두고서는 한발자국도 옮길수 없었다. 그는 비록 자신은 희생되는 한이 있더라도 기어코 채수항동무만은 구원해야겠다고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채수항동무를 업은 그는 적들의 추격속에서도 70여리나 눈길을 헤쳐오다가 발에 심한 동상을 입게 되였던것이다.

이 동상때문에 그는 오봉산바위굴에 도착한 후 바깥출입도 못하고 자리에 누워있었다.

이런 형편에 있었던것만큼 급한 통보에 접한 김동호동무는 수습대책을 적어서 통신으로 룡정시내의 지하조직에 보내려고 하였다.

자리에 누운채 얇은 종이에 깨알같은 글씨로 한자한자 적어내려가던 그의 눈앞에는 일제놈들의 모진 고문속에 시달리고있을 동무들이며 수습대책에 대한 지시를 기다리고있을 동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혁명조직은 혁명가의 생명이다. 그런데 혁명조직이 위기에 처한 이 마당에서 몸이 불편하다고 이처럼 통신이나 보내고 앉아있는다면 과연 자기 할 일을 다 했다고 할수 있겠는가. 아니다. 자기 목숨보다 혁명조직을 더 중하게 여기는 혁명가라면 뼈가 가루로 되는 한이 있더라도 기어코 달려가서 혁명조직을 살려내야 한다.)

김동호동무는 이렇게 마음을 가다듬었다. 사실 그런 몸으로 룡정으로 떠나간다는것은 상상할수도 없는 매우 어렵고 또 위험한 일이였다.

이 시기에 이르러 일제군경놈들은 김동호동무가 룡정시내 지하조직과 련계가 있다는것을 알아차리고 많은 상금까지 내걸고 그를 체포하려고 미쳐날뛰고있었다.

그랬던것만큼 동무들은 그가 룡정으로 들어가는것을 한사코 말렸으며 조직에서도 다른 사람을 보내려고 하였다.

그렇지만 룡정시내의 지하조직으로 말하면 그가 1933년 봄 왕청에서 열렸던 공청일군회의에서 하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가르치심을 받들고 청년학생들의 심리와 특성, 정서에 맞게 심혈을 기울여 꾸리고 키워온 혁명조직이였다.

그러기에 룡정시내에 있는 지하조직의 실정을 가장 잘 아는것도 그리고 이 조직들을 지도할 책임을 진것도 자신인것만큼 비록 가다가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기어코 자기가 가야 한다고 김동호동무는 굳게 결심하였다.

혁명임무에 충실하려는 강한 의지만 있으면 그런 몸으로도 얼마든지 활동할수 있고 적을 맞받아싸울수 있다는 그의 굳은 결심을 그 누구도 굽힐수 없었다.

이리하여 끝내 김동호동무는 룡정시내로 떠나가게 되였다.

그는 룡정시내에 있던 한 녀성지하공작원을 오봉산 바위굴까지 들어오게 한 다음 그를 자기의 어머니로 가장시키고 자기는 전염병에 걸린 아들로 위장하고 달구지에 누워 룡정으로 향하였다.

눈보라가 사납게 울부짖는 어느날 만일의 경우에는 피값이라도 하자고 이불밑에 권총과 《연길폭탄》을 감춘 김동호동무의 일행은 도중에서 여러번 단속을 당하는 위험한 고비를 넘기면서 무사히 룡정시내에 도착하였다.

김동호동무는 시내에 도착한 그 시각부터 즉시 맹렬한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는 다만 지하조직이 적들에게서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이는데만 머물지 않았다.

도리여 더 적극적으로 활동하여 이 기회에 적들로 하여금 혼란과 피동에 빠지게 하는 동시에 투쟁을 더욱 힘차게 밀고나갈것을 결심한 그는 적기관내부까지도 장악하는 대담한 투쟁을 벌리였다.

룡정경찰서에는 한때 그와 함께 룡정중학교에서 공부하던 조선인순사가 있었다.

그는 비록 순사노릇을 하고있었지만 다소나마 민족적량심을 가지고있는 사람이였다.

그가 일제놈들의 강압밑에서 먹고 살기 위해서 순사질을 하고있다는것을 안 김동호동무는 그를 장악하고 리용할것을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지하조직들에 수습대책을 세워주고나서 나무지팽이에 의지하여 대담하게 그 순사의 집으로 찾아갔다.

그는 조선인순사에게 인민의 편에 서느냐 아니면 인민의 원쑤로 되느냐 이 두길외에는 다른 길이 있을수 없다는것을 깨우쳐주면서 조선사람으로서의 민족적량심을 저버리지 말고 혁명을 도와나서야 한다고 설득력있게 해설하였다.

김동호동무의 꾸준한 설복과 교양으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게 된 그 순사는 드디여 인민의 편에 돌아서게 되였다. 그후 김동호동무는 그 순사를 통하여 적들의 동태를 손금보듯 알아낼수 있었다.

일제군경놈들은 이미 체포한 청년학생들에게 매일과 같이 야수적인 고문을 들이대면서 유격대와의 련계, 유격대입대탄원자들을 알아내려고 미쳐날뛰였다.

한편 놈들은 극비밀리에 조선인학생들과 그 부형들의 《사상동태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있었다.

이것이 대중적검거와 학살만행을 위한 놈들의 음흉한 계책이라는것을 간파한 김동호동무는 놈들의 이러한 계책을 짓부시고 인민들에게 혁명승리에 대한 신심을 안겨주기 위하여 여러가지 방법을 다하여 줄기차게 투쟁하였다.

이미 유격대에 입대시키기로 되여있던 청년들을 시내에서 빼내여 지체없이 유격근거지로 떠나보낸 그는 적들을 혼란속에 몰아넣기 위한 대담한 활동을 시작하였다.

청년들이 떠난지 며칠 안되는 어느날 밤 시내복판에 있는 남궁필이라는 악질지주놈의 집에는 학생복을 입은 10여명의 청년들이 불의에 나타났다.

어둠을 타고 담장을 뛰여넘은 그들은 잠들었던 지주놈을 깨워놓고 그의 죄행을 낱낱이 규탄한 다음 경제모연공작까지 하고나서 유유히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청년들이 사라진 얼마후 일제군경놈들은 요란한 경적소리를 울리며 온 시내를 발칵 뒤지였으나 그들의 종적을 알아낼수 없었다.

이날밤 지주놈의 집을 습격한것은 김동호동무의 지시를 받고 달려온 남구의 지하조직원들이였다. 그들은 자기 임무를 마친 후 이곳 지하조직의 방조를 받아 감쪽같이 남구로 돌아갔다.

이런 일이 있은 다음부터 룡정시내에서는 날마다 새로운 사건들이 발생하였다.

로동자들의 태업과 학생들의 투쟁, 일제의 침략정책을 규탄하며 노예로동과 노예교육을 반대하는 삐라살포, 일제기관에 날아드는 투서 등 놈들의 공세를 앞질러 진행되는 이러한 각종 투쟁앞에서 교활하고 음흉한 놈들도 당황하지 않을수 없었다.

더우기 놈들의 간담을 서늘케 한것은 이미 검거했던 수많은 청년학생들까지 놓쳐버리게 된 사실이였다.

룡정시내 각처에서 련달아 《소요사건》이 발생하고 더구나 《유격대입대탄원자》란 청년들이 지주놈의 집을 습격한 사건이 일어난 후부터 놈들은 검거했던 청년들에 대한 감시를 소홀히 하게 되였다.

그러던 어느날 김동호동무는 청년들을 동원하여 놈들의 무기고에 불을 질렀다.

아닌밤중에 갑자기 무기고에 불이 일자 급해맞은 놈들은 간수들까지도 뛰쳐나와 불을 끄느라고 야단을 쳤다.

이러한 틈을 노리고있던 김동호동무는 재빨리 지하조직에 망라된 청년들을 동원하여 감방을 부시고 갇혀있던 동무들을 빼내였다.

거미줄처럼 수사경비망을 늘여놓았을뿐만아니라 교활하고 포악하기 짝이 없는 놈들을 반대하여 이처럼 기동적으로 대담하게 싸운다는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였다.

그러나 김동호동무는 지팽이에 몸을 의지하고 다니면서 어려운 지하공작임무를 굴함없이 수행하였다.

몸도 제대로 운신하지 못하는 김동호동무의 강한 의지앞에서, 끝까지 자기 한목숨을 바쳐 혁명의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 충실하려는 그의 뜨거운 심장앞에서 수다한 통치기구를 거느리고 매일과 같이 미쳐 날뛰던 일제의 교형리들도 피동에 빠지지 않을수 없었다.

어느덧 김동호동무가 달구지에 실려 룡정시내에 들어오던 때로부터 한달이라는 시일이 흘렀다.

적들의 삼엄한 감시망을 뚫고 지하사업을 계속 해나가는 동안에 동상을 입었던 다리도 차도가 있어 이제는 지팽이가 없이도 다닐수 있게 되였다.

그는 간고한 환경속에서도 혁명조직을 살려낸 커다란 기쁨을 안고 유격근거지로 돌아갈 준비를 다그쳤다.

그러던중 불행하게도 김동호동무는 놈들에게 체포되였다. 그것은 그가 근거지로 떠나려고 예정했던 날자보다 3일전에 있은 일이였다.

이날 시내에 나갔던 김동호동무는 길가에서 자기의 얼굴을 아는자와 마주쳤다.

그자는 바로 김동호동무가 룡정시내로 떠나온 후 변절하여 투항한 추악한 일제의 주구였다.

이런 내막을 알리 없었던 김동호동무는 그자가 무엇인가 임무를 받고 왔으려니만 생각하였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경각성을 높여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서 예정했던 날보다 앞당겨 그날로 떠나기로 결심하고 지하조직에 줄 마지막지시를 전달하기 위하여 한 지하공작원의 집에 들렸다.

그가 방금 지시를 전달하고 났을 때였다.

어느새 집주위를 빈틈없이 포위한 적들이 투항하라고 떠들어대는것이였다.

더는 빠져나갈수 없게 되였다는것을 알아차린 김동호동무는 곁에 있는 지하공작원에게 꼭 빠져나가 조직에 지시를 전할것을 당부하고나서 권총을 뽑아든채 문을 박차고 나섰다.

문앞에 섰던 가증스러운 변절자와 그뒤에 선 경관놈을 쏘아눕힌 그는 쏜살같이 골목길로 내달리였다.

그가 달려가면서 쏘는 권총탄알에 맞아 여러놈의 경관이 쓰러졌다. 그러나 그의 뒤를 따르며 쏘아대는 적들의 총알이 비발치듯 앞을 막았다.

얼마동안 달려나가던 김동호동무는 그만 다리에 부상을 입게 되였다. 그러나 그 위급한 순간에도 자신이 적을 유인해야 동지를 살릴수 있고 조직에 지시가 가닿게 할수 있다는것을 생각한 김동호동무는 한손으로는 권총사격을 계속하면서 한팔로는 땅을 짚고 배밀이로 기여나갔다.

적들의 주의가 그에게만 쏠린 그 순간에 다른 지하공작원은 적들의 경계망을 뚫고 무사히 빠져나갔다.

그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적탄에 맞은 김동호동무는 완전히 의식을 잃고 그자리에 쓰러졌다.

그가 의식을 회복한것은 적들의 감방속에서였다.

유격대에서 파견되여 중요한 지하공작임무를 수행하던 정치공작원을 잡았다고 기뻐 날뛰면서 일제군경놈들은 그에게서 조직의 비밀을 알아내고 그를 투쟁에서 물러서게 하려고 갖은 술책을 다하였다.

음흉한 놈들은 명예와 부귀, 높은 자리와 안락한 생활보장을 약속하면서 그를 회유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살아도 혁명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혁명을 위하여 죽을것을 각오한 김동호동무는 이러한 회유뿐만아니라 그 어떤 위협과 공갈앞에서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짐승처럼 백년을 사느니보다 혁명을 위하여 하루라도 떳떳하게 살겠다.》

놈들에게 이렇게 한마디 하고난 그는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한목숨을 바치는 한이 있더라도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 끝없이 충직한 혁명전사로서 혁명을 위해 싸우는것을 가장 큰 영예로, 행복으로 여기는 김동호동무의 신념은 더욱 굳어졌다.

날이 갈수록 놈들은 그의 의지와 신념을 굽힐수도 허물수도 없다는것을 깨닫지 않을수 없었다.

이렇게 되자 놈들은 가장 혹독한 고문으로 그의 의지를 꺾어보려고 시도하였다.

날마다 고문장에 걸어갔다가 돌아올 때에는 피투성이 되여 들것에 들려오는 그러한 나날들이 계속되였다.

그러던 어느날 김동호동무는 지하조직으로부터 비밀통신을 받게 되였다.

통신쪽지에는 김동호동무를 구출하기 위하여 탈출계획을 꾸미고있다는것과 속히 탈출준비를 갖추라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그는 매우 기뻤다.

그는 혁명동지들의 따뜻한 손길을 느꼈고 생사운명을 같이하려는 그들의 뜨거운 숨결을 느꼈다.

더구나 자기가 갇힌 후에도 조직은 여전히 살아서 움직이고있다는 사실에서 그는 무한한 고무를 받았다.

그의 눈앞에는 또다시 힘차게 혁명투쟁을 전개할 무대가 활짝 펼쳐지는듯 하였으며 고문에 시달린 몸이였지만 새힘이 솟구쳐올랐다.

잠시후 그는 흥분된 마음을 진정시키고 랭정하게 정황을 살펴보았다.

이무렵에 이르러 놈들의 감시는 여간 심하지 않았다.

철창속에 가두어두었던 청년학생들을 하루밤사이에 놓쳐버리고난 뒤로부터 놈들은 감방에 대한 감시의 눈초리를 조금도 늦추지 않았다. 이런 형편에서 고문과 부상으로 하여 제대로 가누기조차 힘든 몸으로 탈출한다는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였다.

(그렇지만 동지들은 그 어떤 희생이 있더라도 기어코 나를 빼내려고 할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 도중에 다른 동지들이 잡히게 되거나 상하게 된다면 어떻게 하는가. 그리고 그 과정에 조직이 드러나기라도 한다면…

자기 한몸을 어떻게 동지들의 안전과 바꿀수 있으며 기약할수 없는 탈출을 어떻게 조직의 안전을 걸고 단행할수 있단 말인가.)

김동호동무는 탈출준비를 중지해줄것을 요청하는 통신을 써서 지하조직에 보내였다.

그는 바로 자신의 육체적생명보다 정치적생명을 더 귀중히 여기고있는것처럼 자기의 한몸보다 혁명조직과 동지들이 더 귀중하다고 여기였던것이다.

이러한 련락에 접한 조직에서는 그와 직접 련계를 맺고 정황을 알아보는 동시에 가능하면 그의 탈출준비를 도와주도록 사람을 파견하기로 하였다.

한편 놈들의 고문이 더욱 가혹해짐에 따라 김동호동무의 마음한구석에서는 불안한 생각이 잠시도 떠나지 않았다. 그것은 벌써 놈들에게서 심한 고문을 당할 때부터 품게 되였던 생각으로서 혹시 의식을 잃은 순간이라도 조직의 비밀을 루설하면 어떻게 하겠는가 하는 걱정에서였다.

그는 자기의 의식이 똑똑할 때에는 그 어떤 고문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견디여낼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의식을 잃은 다음에 어떻게 그것을 담보할수 있겠는가가 문제였다. 그렇다고 의식을 잃은 후의 일에 대하여 책임을 지지 않는것은 결코 혁명가의 립장을 지켰다고 말할수 없다고 그는 생각하였다.

여러가지로 궁리하던 끝에 그에게는 마침내 스스로 혀를 끊는다면 혁명의 비밀을 고수할수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감방속에 홀로 앉아 깊은 생각에 잠긴 그의 눈앞에는 1933년 봄 왕청에서 열렸던 공청일군회의에서 뵈옵던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모습이 환히 안겨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펼쳐주시던 조선혁명의 보람찬 앞날을 신심에 차서 내다보며 반드시 그이의 가르치심대로 뼈가 가루로 되는 한이 있더라도 굴함없이 싸워나가리라고 다짐했던 그때의 굳은 신념이 다시금 가슴속에 뜨겁게 타올랐다.

(그이의 충직한 전사로서 인민의 자유와 해방을 위하여 한몸을 바친다는것은 얼마나 영예로운 일이며 참된 혁명가로서 떳떳한 일인가.)

김동호동무의 가슴속에는 아무리 어려운 고비라도 넘어설수 있고 이겨낼수 있다는 신심이 차고넘쳤다.

그러던 어느날, 그날도 김동호동무를 고문하기 위해 감방에서 끌어냈던 일제놈들은 입안이 피덩이로 엉키고 퉁퉁 부어오른 그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너무나 뜻밖의 일에 넋을 잃었던 놈들은 급기야 의사를 부르며 야단법석을 쳤다. 그러나 의사도 어찌할수가 없었다.

유격대에서 중요한 임무를 맡고 나온 정치공작원을 잡았다고 춤출듯이 기뻐하던 놈들은 김동호동무에게서 아무러한 실머리도 얻어내지 못한채로 더는 말 한마디 들을수도 없게 되였다는 이 엄연한 사실앞에서 극도로 당황망조하였고 절망에 사로잡혀 날뛰였다.

적들의 이러한 몰골을 바라보는 김동호동무의 얼굴에는 놈들에 대한 증오와 조소가 어리여있었으며 승리자의 웃음까지도 떠돌고있었다.

이날부터 놈들의 고문은 절정에 달하였다. 그것은 혀를 끊은 김동호동무에게서 무엇인가 알아내고 다짐을 받아내려는 목적에서가 아니라 다만 자기들의 그 어마어마한 폭압기구와 권력으로써도 어쩔수 없었던 김동호동무를 육체적으로 괴롭히고 가장 큰 고통과 함께 죽음에로 몰아넣으려는 살인귀들의 악귀와 같은 만행이였다.

적들은 김동호동무가 의식을 잃고 쓰러진 뒤에도 제놈들이 지칠 때까지 몽둥이와 채찍을 놓지 않았다.

그날밤 감방에 새로 들어온 한 사람이 피투성이 되여 쓰러진 김동호동무를 깨우지 못해 안타까와하고있었다.

조심스럽게 그러면서도 꾸준히 김동호동무의 등을 흔들며 정신차리기를 고대하고있던 그 사람은 바로 조직에서 파견한 로인이였다.

조직으로부터 김동호동무와 련계를 맺을데 대한 과업을 받은 이 로인은 우정 술을 마시고 경관에게 생트집을 걸어 경찰서에 잡혀온 후 이전부터 김동호동무가 장악하고있던 순사의 힘을 빌어 그가 갇혀있는 감방에까지 들어올수가 있었던것이다.

오래동안 애타게 흔든 보람이 있어 굳어진듯 누워있던 김동호동무가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조용히 눈을 든 그는 희미한 불빛속에서 로인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이윽고 그가 누구인가를 알아차린 김동호동무는 얼른 로인의 손을 끌어당기며 힘껏 부여잡았다.

너무나도 가혹한 고문과 부상으로 하여 몹시 상한 김동호동무의 얼굴은 알아볼수 없을 정도로 험상하였다.

그의 모습을 굽어보는 로인의 두눈에는 눈물이 맺히였다.

그러자 김동호동무는 오히려 로인의 마음을 위로하려는듯이 얼굴에 미소를 짓더니 이윽고 손끝으로 로인의 손바닥에 한자한자 적어내려가기 시작하였다.

《나…는…혀…를…끊…었…소. 비…밀…은…지…켰…소.》

흠칫 놀란 로인은 김동호동무의 얼굴을 더 자세히 굽어보았다. 비록 입언저리가 피에 엉키고 부어있었지만 그의 얼굴에는 더없이 만족스러워하는 기색이 떠돌고있었다.

로인은 조직의 위임대로 탈출문제를 알리였다. 그러나 조용히 도리질을 하고난 김동호동무는 감방구석에 감추어두었던 종이쪽지를 로인에게 전하면서 다시금 적어내려갔다.

《나…의…마…지…막…보…고…를…전…해…주…오. …조…선…혁…명…만…세》

이렇게 적고난 김동호동무는 로인의 손을 더욱더 굳게 잡는것이였다.

로인은 다만 김동호동무의 얼굴을 굽어볼뿐 아무 말도 더는 하지 못하였다.

김동호동무에 대한 놈들의 학대는 그후 날이 갈수록 더하였다.

그가 혀를 끊는바람에 그를 굴복시키려던 계책이 수포로 돌아가자 보복행위로 날마다 혹독한 고문을 들이대던 놈들은 나중에는 그의 눈까지 멀게 하는 천인공노할 만행까지 감행하였다.

놈들은 처단된 악질지주의 아들로서 자기들의 특무로 복무하고있는 주구놈을 감방에 끌어들이여 김동호동무의 두눈을 멀게까지 하였던것이다.

그것은 간악하기 그지없는 일제놈들과 계급적원쑤들의 본성으로부터 흘러나온 짐승같은 만행이였다.

이런 일이 있은지 얼마후에 로인은 석방되였다.

조직에서는 그를 통하여 김동호동무가 어떤 결심으로 어떻게 싸우고있는가에 대하여 자세히 알게 되였다.

그리고 로인이 가지고 온 통신쪽지에는 김동호동무가 모진 고문을 받으면서 류치장속에서 수집한 적들의 《토벌》계획이며 적의 밀정망포치, 주구놈들의 명단 등이 적혀있었다.

의식이 있고 심장이 고동치는 한 그 어떤 역경속에서도 오직 혁명의 리익만을 생각하며 스스로 자기의 마지막 한방울한방울의 피를 기울여 적어보낸 그 통신쪽지를 받아든 혁명동지들의 마음은 원쑤에 대한 끝없는 증오와 김동호동무가 다하지 못한 뜻을 이어 더 줄기차게 싸우려는 굳은 결의로 불탔다.

김동호동무가 보낸 귀중한 통신에 근거하여 혁명조직에서는 적들의 《토벌》책동을 파탄시키고 밀정과 주구들을 청산하기 위한 투쟁을 줄기차게 벌리였다. 이 결과 놈들은 또다시 심대한 타격을 받게 되였다.

한편 김동호동무는 눈이 멀고 말 한마디 하지도 못하는 형편에 있었으나 모든것을 혁명위업에 바쳐온 자기의 일생을 돌이켜보면서 생명의 마지막순간까지 혁명적지조를 굳게 지킬 각오를 다지고 또 다지였다.

1934년 5월 어느날, 적들은 그를 대립자로 이송하였다.

이날 일제군경놈들은 수많은 군중들을 대립자소학교마당에 강제로 끌어내였다.

교활하고 음흉한 일제는 그를 사형함에 앞서 항일유격대와 인민들간의 리간을 조성하고 인민들로 하여금 공포심을 느끼고 혁명투쟁에서 물러서도록 하는데 김동호동무를 리용하려고 하였던것이다.

그래서 놈들은 불온분자가 가장 많다고 생각되는 대립자를 선택하고 이곳으로 김동호동무를 끌어왔던것이다.

영문을 알지 못하고 모여든 군중들이 운동장 한복판에 갑자기 만들어놓은 높직한 단앞에서 웅성거리고있을 때 놈들은 앞을 보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는 김동호동무를 단우에 앉혀놓고 악질적인 허위선전을 시작하였다.

놈들은 김동호동무의 《고백》이라고 하면서 되는대로 유격대에 대한 비방과 중상을 늘어놓았으며 혁명의 길을 따라가다가는 이 사람처럼 《불행》하게 된다고 뇌까리며 군중들을 기만하여보려고 하였다.

김동호동무는 놈들의 비방과 허위선전에 참을수 없어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온몸의 힘을 다하여 두팔을 군중들앞으로 쭉 내밀고는 좌우로 여러번 흔드는것이였다.

몸부림치듯 하는 그의 이런 몸짓에서 군중들은 놈들의 말이 모두 거짓이라는것을 간파하고 격분을 금할수 없었다.

일제군경놈들은 앞뒤에서 달려들며 김동호동무의 행동을 저지시키려고 날뛰였다.

그러나 김동호동무는 놈들에게 잡혔던 두팔을 힘껏 뽑더니 이번에는 팔을 하늘높이 3번이나 추켜올렸다 놓는것이였다.

안타까이 몸부림치며 벌린 그의 입에서 비록 한마디의 만세소리도 새여나오지는 못하였지만 조선혁명의 위대한 수령이신 김일성동지를 그려보며 최후의 만세를 부르는 그의 뜨거운 마음은 천만마디의 말이나 만세소리보다도 더 힘있게 군중들의 가슴속으로 흘러들었다.

그날 놈들은 그를 총살하였다.

그날밤 그의 시체를 몰래 운반하여 안장한 동무들의 말에 의하면 금시에 만세소리가 울려나올듯 크게 입을 벌리고 두손을 높이 추켜든채 그의 몸은 굳어져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그가 그토록 부르고싶어서 몸부림치던 그 만세소리가 금시에 우리의 귀전에서 쟁쟁히 울리는것만 같다.

모든것을 항상 혁명을 위해 바쳐왔고 최후의 순간까지도 수령의 충직한 전사로서 혁명적지조를 깨끗이 지킨 김동호동무의 고귀한 생애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진정한 혁명가가 되자면 혁명적절개를 지킬줄 알아야 한다고 하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가르치심을 가슴깊이 되새기게 된다.

참으로 김동호동무는 혁명적지조를 깨끗이 지킨 불굴의 혁명투사였다.

그가 이처럼 엄혹한 시련속에서 혁명적절개를 굽히지 않고 꿋꿋이 싸울수 있은 힘의 원천은 어디에 있었는가.

이에 대하여 생각할 때마다 그가 왕청유격근거지로 통신련락임무를 위해 다닐 때 그리고 특히 1933년 봄에 왕청에서 열렸던 공청일군회의에 참가하고 돌아와서 하던 말을 회상하게 된다.

그때 그는 김일성동지를 조선혁명의 탁월한 령도자로 모신 우리들의 영광과 행복에 대하여 거듭 강조하면서 그이께서 우리 혁명을 이끄시는 한 조선혁명은 반드시 승리한다는것을 신심에 넘쳐 말하군 하였다.

비단 김동호동무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혁명가들이 적들의 감옥이나 교수대우에서도 끝까지 혁명적지조를 지키고 죽음도 웃음으로 맞받아나아갔다.

그것은 그들이 오직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혁명사상만이 도탄속에 빠진 조국과 인민을 구원할수 있고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가져다 줄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졌기때문이였으며 수령님의 혁명사상을 따라 조선혁명의 위업을 위해서 한목숨바쳐 싸우는것이 둘도 없는 영광이며 행복이라는 높은 자각을 간직하고있었기때문이였다.

항일혁명투사들의 뒤를 이어 오늘 수많은 남조선의 혁명가들과 애국적인민들은 도처에서 미제와 그 주구들을 족치고있으며 감옥과 총칼앞에서도 가장 고귀한 정치적생명을 위하여 굴함없이 싸우고있다.

이들은 《우리도 김일성장군님의 령도를 받들고 싸우자!》, 《새 정치, 새 제도, 새 생활을 위한 성스러운 싸움에서 나의 생명의 마지막순간까지 다하여 투쟁할것을 서약한다.》고 불타는 심장으로 투쟁결의를 다지며 위대한 수령님의 자애로운 품에 안겨 마음껏 행복을 누리게 될 그날을 앞당기기 위하여 영웅적으로 싸우고있다.

위대한 수령님의 주위에 더욱 굳게 뭉쳐 온갖 난관과 시련을 박차고 영웅적으로 전진하는 길, 오직 그 길만이 조선혁명의 종국적승리를 달성할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교시를 명심하고 자신을 더욱더 혁명화하며 그 어떤 역경에 처하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자기의 정치적생명을 지켜내며 빛내일줄 아는 그러한 수령의 참된 혁명전사로 자신을 더욱 철저히 준비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