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나큰 도량과 포옹력을 지니시고

리 두 익

 

민족의 힘은 단결에 있다.

하나의 사상의지로 굳게 뭉쳐진 인민의 힘이야말로 이 세상 그 무엇에도 비길수 없는 위력한 무기이다.

하기에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일찌기 혁명은 단결이고 단결은 혁명이라는 구호를 높이 드시고 항일혁명투쟁의 나날 민족단결, 일심단결의 전통을 이룩하시였다.

천만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우기 나라를 빼앗긴 처지에서 강도 일제의 악랄한 민족말살정책을 짓부시고 생활처지와 주의주장이 서로 다른 각계각층의 수천만 마음을 하나로 묶어세워 조국광복성전에 불러일으키는 일은 결코 아무나 할수 있는 그런 일이 아니였다.

그것은 오직 인민에 대한 열렬한 사랑과 믿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크나큰 도량과 포옹력을 지니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만이 이룩하실수 있는 일이였다.

나는 우리 민족의 일심단결을 위하여 바치신 위대한 수령님의 로고가운데서 1940년대 전반기에 내가 직접 목격한 한가지 사실만을 여기에 적으려고 한다.

그때는 1943년 여름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시기 급변하는 정세에 대처하여 우리의 힘으로 나라를 찾기 위한 조국해방3대로선을 제시하시고 그 관철을 위한 사업을 정력적으로 지도하고계시였다.

조국해방3대로선을 관철하는데서 중요한 문제의 하나는 국내반일력량을 하나로 굳게 결속하는것이였다.

그것은 로동자, 농민, 지식인을 비롯한 각계각층 인민들을 묶어세우지 않고서는 조선인민혁명군의 총공격에 합세하여 무장봉기와 배후련합작전을 보장할수 없기때문이였다.

바로 이러한 요구를 깊이 통찰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해 여름에 경원군 룡계지구비밀근거지에서 정치공작원들과 반일애국단체 핵심성원들의 회의를 크게 가질것을 계획하시고 몸소 소부대를 이끄시고 그리로 나가시였다.

그때 사령부직속부대 경위대원이였던 나도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가게 되였다.

두만강연안 하류일대에 꾸려진 림시비밀근거지들을 찾으시여 소부대들과 혁명조직들의 사업을 지도하시면서 련일 행군을 다그치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 룡계리 가재물골을 향하여 경흥군 록야리 곰산밀영을 떠나신것은 이해 7월 어느날이였다.

곰산을 떠나시기에 앞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오백룡동무에게 몇명의 대원들과 함께 룡계지구로 곧추 가서 래일 그곳에서 진행할 회의준비를 할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다.

그러시면서 자신께서는 경원군 종산리 만덕산을 거쳐 그곳으로 가겠다고 하시면서 회의장주변의 경계조직으로부터 회의참가자들의 예비집합장소와 그들에 대한 안내조직에 이르기까지 상세히 가르쳐주시였다.

나는 그것을 보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제 그곳에서 열리게 될 회의에 무척 큰 의의를 부여하고계신다는것을 다시금 깊이 느끼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번 회의를 준비하시며 리봉수동무에게 각계각층 인민들의 사상동향과 반일애국단체 및 개별적인사들의 실태를 깊이 료해할데 대한 임무를 주시여 지난 6월에 이미 현지에 파견하시였었다.

그러시고도 마음이 놓이시지 않아 오백룡동무를 한발 먼저 그리로 떠나보내신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을 모신 우리 소부대가 만덕산밀영을 거쳐 가재물골밀영에 도착한것은 그날저녁 8시가 지나서였다.

이미 그곳에 도착한 오백룡동무와 함께 리봉수동무가 위대한 수령님을 마중하였다.

이날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의준비와 관련한 사업들을 다시금 료해하시고 재포치하신 후 리봉수동무로부터 사업보고를 받으시였다.

리봉수동무는 로동자, 농민, 지식인 등 각이한 계급과 계층의 생활형편과 지향에 대하여 말씀드리고나서 그들속에서 반일감정이 더욱 고조되고있는데 따라 서로 뜻을 같이하고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끼리 의지하며 살려는 《계》형식의 조직이 도처에 꾸려지고있는데 대하여 말씀드렸다.

그러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방침대로 각이한 계층의 사람들과의 사업을 잘 짜고들기만 한다면 온 민족을 하나의 반일대오에 묶어세울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였다고 신심에 넘쳐 말씀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동무가 그런 신심을 가지게 되였다니 나도 기쁘다고 하시면서 우리는 어떻게 하나 민족적량심을 지닌 모든 사람들, 특히는 지식인들과의 사업을 잘하여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다음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침 일찌기 일어나시여 밀영지를 돌아보시였다.

가재물골밀영은 함경산줄기의 주봉의 하나인 증산봉기슭에 펼쳐진 그닥 높지 않은 산속에 자리잡고있었는데 골짜기로 흐르는 내물은 가재가 많다고 하여 가재물이라고 부르고 골짜기의 이름도 가재물골이라고 부른다고 하였다.

정말 그 내물에는 가재가 많았는데 그때 보초교대를 하고 가재잡이를 하던 기억이 지금까지 생생하게 남아있다.

밀영은 가재물을 낀 둔덕에 꾸려놓았고 밀영지에서 개울을 건너 한 5리가량 동쪽으로 가면 장군덕이라고 부르는 넓은 덕이 펼쳐져있었다.

이날 오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바로 이곳 장군덕기슭의 소나무밭에서 정치공작원 및 반일애국단체핵심성원들의 회의를 여시였다.

회의장의 경계근무를 서면서 력사적인 그날 회의의 전과정을 목격할수 있었던 나는 회의 첫시작부터 크나큰 감동을 금할수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안길, 오백룡동무를 비롯한 지휘성원들과 함께 회의장소에 나오시였을 때였다.

회의참가자들앞에 이르신 그이께서 《모두들 오시기에 수고하였습니다. 제가 김일성입니다.》라고 겸허하게 인사의 말씀을 하시자 회의장에는 감격의 파도가 일었다.

모두들 앞을 다투어 위대한 수령님께 인사를 올리며 눈굽을 적시였다.

그때 그들속에서 《장군님!》하고 목메여 부르는 한 중년사나이가 있었다.

사람들을 헤집고 황황히 달려나온 그는 위대한 수령님의 손을 부여잡고 절절하게 말씀드리였다.

《우리 백의민족을 구원해주실 장군님을 만나뵈오니 이제 내 죽은들 원이 없습니다.》

그리고는 어제 장군님을 직접 만나뵙고도 알아보지 못했으니 정말 죄송하기 그지없다고 하면서 땅바닥에 엎드려 큰절을 올리는것이였다.

사람들은 모두 어떻게 된 일인지 영문을 몰라 서로 마주보기만 하였다.

나도 호기심이 나서 한걸음 다가서며 자세히 살펴보았다.

뜻밖에도 그 사람은 바로 전날 위대한 수령님께서 여기로 오시던 길에 만나주신 지식인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가재물골로 오시던중 만덕산밀영에 들리셨을 때였다.

밀영지를 돌아보시고 그곳 밀영에 의거하여 활동하고있는 정치공작원들과 담화를 진행하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이 반드시 극복하지 않으면 안될 하나의 편향을 범하고있다는것을 아시게 되였다.

이곳의 한 정치공작원(꺽다리라는 별호로 불리웠다.)은 만덕산기슭에 있는 숯구이막에 웬 지식인이 드나든다는것을 알고 그를 주시하게 되였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성은 유씨인데 일본에 가서 고학으로 대학을 다녔고 서울과 청진, 회령 등지에서 교원생활을 하였으며 그사이 감옥살이도 여러번 하였다는것이다.

그런데 그 지식인은 정체가 모호한데가 있었다.

숯구이로동자들과 그 시기 징병, 징용을 기피하여 산속에 들어온 청년들에게 반일선전을 하는것을 보면 좋은 사람 같기도 하고 또 순사들이 그에게 함부로 범접을 못한다는것을 봐서는 나쁜 사람 같기도 하였다.

여러모로 알아보니 그의 친척들가운데 일제기관에서 큰 벼슬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것이였다.

그래서 그 정치공작원은 그와의 접촉을 피하면서 경계하고있었다.

담화과정에 그 정치공작원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잠시 생각에 잠기셨다가 심중하신 안색으로 지금 온 민족을 하나의 반일대오에 단합시키기 위하여 모든 힘을 다하고있는데 동무처럼 사람을 잘 알아보지도 않고 멀리 하면 어떻게 각이한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세울수 있겠는가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지식인을 포함한 각계각층 인민들을 반일광복성전에 묶어세워야 합니다.

비록 조국과 민족앞에 죄를 지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자기의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반일투쟁에 나서려는 사람이라면 대담하게 믿고 포섭하여야 하며 투쟁대오에 굳게 묶어세워야 합니다. 더우기 우리 나라 지식인들은 거의나 주위환경이 복잡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의 동향이 좋고 많은 사람들이 따르는 사람조차 생활경위와 친척관계를 의심하면서 만나보지도 않고 전취하지 않는다는것은 매우 잘못된 처사이며 협애한 태도입니다.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그 정치공작원은 심한 자책감에 잠겼다.

사실 그 시기 절대다수의 지식인들은 일제의 식민지정책에 반감을 가지고있었다.

하기에 일제는 지식인들에 대한 반동적사상공세를 강화하였다.

이에 따라 친일주구로 전락한 반동지식인들은 《동조동근》과 《내선일체》를 부르짖었으며 일부 지식인들은 동요하거나 갈길을 몰라 방황하고있었다.

그런데 위대한 수령님의 뜻을 잘 받들지 못하여 일부 정치공작원들속에서는 아직도 지식인들의 경력을 따지며 대담하게 포섭하지 못하는 현상들이 극복되지 못하고있었던것이다.

이윽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정치공작원에게 룡계로 가는 길에 자신께서 그를 한번 만나보겠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자 정치공작원은 자기가 그를 만나겠으니 사령관동지께서는 그냥 떠나주셨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웃으시며 그러지 않아도 내가 국내에 있는 지식인들을 만나보려고 하던 참인데 마침 잘되였다, 비록 시간이 지체되고 좀 파악이 없다 하더라도 그를 꼭 만나겠다고 하시면서 만날 장소와 시간을 정해주시였다.

그리하여 그날 오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가재물골밀영으로 오시던 도중에 그를 만나게 되시였던것이다.

그 지식인은 나이가 한 50살이 넘어보이는데 무척 리지적인 인상을 주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어찌하여 그처럼 중요한 회의를 앞둔 분망한 길도 지체하시며 이름도 없는 평범한 지식인을 만나주시는지 그 깊은 뜻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있었다.

그런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를 더없이 반가이 맞아주시며 와주어서 정말 고맙다고 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조선인민혁명군 부대에서 왔다고 자신을 소개하시는것이였다.

그러자 그는 놀라움과 기쁨이 뒤섞인 심정을 감추지 못하며 위대한 수령님께 허리굽혀 인사를 올리면서 조선독립을 위해 혈전분투하시는분들을 이렇게 만나게 되니 참으로 영광스럽다고 진정에 넘쳐 말씀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소나무아래에 그와 나란히 자리를 잡고 앉으시였다.

아직은 자기가 만나뵙는분이 누구이신지를 모르는 그였지만 위대한 수령님의 너그러우신 인품에 긴장했던 마음이 풀어진듯 자기가 살아온 경위며 이곳 숯구이터에 오게 된 사연을 죄다 말씀드리였다.

일본에 가서 고학으로 대학을 다니다가 학생사건으로 감옥살이를 하던 일이며 교원생활을 할 때 《치안유지법》에 걸려 또다시 감옥신세를 진 일, 출옥후 김일성장군님을 칭송하는 구호를 보았다는 소문을 듣고 회령의 어느 산속에까지 가보던 일이며 유격대와 련계를 가져볼 생각으로 유격대공작원들이 드나든다는 록야, 종산일대를 안타깝게 헤매이던 일들에 대하여 그리고 징용을 피하여 산속에 들어와있는 청년들에게 반일애국의 넋을 심어주는것으로 지성인으로서의 자기의 민족적량심과 조선사람으로서의 지조를 지키며 살아온 일에 대하여서도 기탄없이 말씀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시고 일제의 가혹한 식민지통치밑에서도 민족적량심과 지성인의 본분을 지켜나가려고 모대기는 우리 나라 지식인들의 고뇌에 찬 생활을 더듬어보시는듯 한동안 말씀이 없으시였다.

이윽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나라 속담에 《식자우환》(아는것이 우환거리)이라는 말과 함께 《지자는 무지자의 노복》(지식있는자는 지식이 없는자의 종)이라는 말이 있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일제의 어용나팔수로 된다면 그런 식자는 우환거리로 될것이라고 하시면서 이런 우환거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지자가 무지자의 노복이 되여 우리 인민들에게 일제의 식민지동화정책의 악랄성과 기만성을 깨우쳐주고 반일애국의 넋을 심어주는 참된 길을 걸어나가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그 지식인은 몹시 감동되여 지금 지식인들속에서 김일성장군님께서 왜적을 물리치고 조국땅에 개선하실 날이 멀지 않다는 이야기들이 돌고있다고 말씀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어떤 장군이나 영웅호걸도 인민대중을 떠나서는 아무런 일도 할수 없다고 하시면서 우리는 지식인을 로동자, 농민들과 함께 우리 혁명의 주인으로 굳게 믿고있다고, 그가 비록 일제에게 복무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자기의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조국과 민족을 위해 복무할것을 표명하는 사람이라면 그들과 영원히 함께 갈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계속하여 그이께서는 조국해방이 박두하고있는 오늘 우리에게는 애국열의에 불타는 지식인들이 매우 귀중하다, 교육사업은 민족의 장래운명과 관련되는 중요한 문제라고 하시며 해방된 조국땅우에 펼쳐질 교육사업의 휘황한 전망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에 크게 감동된듯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마디마디에 깊은 진리와 심오하고 명석한 사상이 담긴 이야기를 듣고나니 세상리치가 깊이 농축되고 참된 진리가 무엇인가를 다시금 깨닫게 되였다고 하면서 오늘의 이야기를 페부에 새기고 독립전에 한몫하기 위하여 헌신분투하겠다고 말씀올리였다.

그리고는 김일성장군님을 만나뵙거든 지식인들의 인사를 올려줄것을 부탁한다고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만면에 환한 웃음을 담으시고 조국광복의 한길에서 싸우는 선생과 앞으로도 꼭 만날 기회가 있을것이라고, 조국이 해방된 다음 선생은 민주의 새 교단에서 자라나는 후대들에게 우리 인민의 자랑찬 투쟁력사를 가르쳐주게 될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후에 안 일이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지식인이 떠나간 후 공작원을 따로 만나시여 룡계에서 하는 회의에 그를 참가시키며 앞으로 그와의 사업을 잘할데 대하여 당부하시였다.

그리하여 그 지식인도 이 회의에 참가하게 되였으며 전날 자기가 만나뵈온분이 바로 오매에도 흠모하여마지않던 위대한 수령님이시라는것을 알고 그처럼 감격을 금치 못해하였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손을 잡아 일으켜주시고 몸소 자리까지 안내해주시였다.

이윽고 회의가 시작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반일애국지사 여러분과 자리를 같이하고 민족지상의 과업인 조국을 해방하기 위한 방도를 토론하고저 한다고 하시면서 그들의 의견을 먼저 들으신 다음 모든 반일애국력량이 일심단결하여 조국광복성전에 떨쳐나설데 대한 연설을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먼저 1942년 6월 무산군 독골회의후 일심단결의 기치를 높이 들고 반일애국단체들의 활동에서 이룩된 성과와 경험을 총화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1년전에 무산군 독골에서 있은 지하혁명조직 및 반일애국단체 책임자회의에서 각계각층인민이 일심단결하여야 할 필요성과 온 민족을 일심단결시키는데서 나서는 원칙적문제, 광범한 대중을 반일의 기치밑에 일심단결시키기 위한 과업과 방도들을 전면적으로 밝혀주시였다.

그후 한해사이에 반일애국단체들의 사업에서는 실로 커다란 성과들이 이룩되였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속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지금 우리 민족앞에는 독립이냐, 영원한 망국이냐 하는것을 판가리할 력사의 시각이 다가오고있습니다.

이 엄숙한 시각에 진정으로 나라를 사랑하며 일제의 영원한 식민지노예로 살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정견과 신앙, 빈부와 귀천, 남녀로소를 불문하고 모두가 힘을 합쳐 조국광복성전에 떨쳐나서야 합니다.

반일은 애국이며 친일은 매국입니다.

우리 인민이 오늘 비참한 처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반일의 기치밑에 온 민족이 굳게 단결하여야 하며 간악한 일제침략자들을 반대하여 견결히 싸워야 합니다.

이 길만이 나라의 독립을 이룩할수 있는 길이며 우리 인민이 자유와 행복을 누릴수 있는 길입니다.

그러시고는 조국해방을 위한 우리 인민의 투쟁에 더욱더 유리하게 전변되여가고있는 안팎의 정세를 전면적으로 분석하신 다음 조성된 정세의 요구에 맞게 모든 반일애국력량을 일심단결시켜 조국광복성전에 떨쳐나서게 하기 위한 과업과 방도를 밝혀주시였다.

먼저 국내각지에 조직되여있는 《로인회》, 《유지회》, 《농민회》, 《동창회》, 《부조회》, 《계》 등 여러가지 명칭을 가진 애국단체들에서는 성원들의 준비정도에 따라 반일단결, 민족단결, 애국단결의 명목으로 단체내의 화목과 단결을 도모해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또한 모든 반일애국단체들과 개별적인사들이 자기 가족, 자기 친척으로부터 시작하여 자기 마을과 이웃에 사는 사람들을 잘 가르쳐주고 이끌어주어 반일투쟁에 적극 나서게 하여야 하며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두고 앉아서 걱정만 하는 우국지사가 될것이 아니라 반일애국단체를 뭇고 그 두리에 광범한 사람들을 묶어세워 일제의 책동을 짓부시는 여러가지 형태의 싸움도 벌리고 혁명군을 도와 손에 무장을 잡고 결사전에 나설 준비도 하여야 한다고 하시였다.

여러가지 명칭을 가진 《계》조직들과 합법적단체들이 대세를 관망하거나 호상부조하여 살아가는데만 그칠것이 아니라 반일애국적인 단체로 자기 활동을 승화시키며 나아가서는 조국광복회조직에 합류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조국광복회10대강령》내용도 해설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또한 국내에서 싸우는 혁명가들과 조선인민혁명군 소부대, 소조, 정치공작원들의 활동을 적극 지원하고 반일애국심이 높은 청장년들을 무장대에 망라시키는 사업을 도와나서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러한 과업들을 잘해나가자면 정치공작원들과 반일애국단체핵심성원들의 역할을 더욱 높여야 한다는데 대해서도 강조하시였다.

연설을 마치시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당한 독립국가의 주인으로 사느냐 아니면 영원한 식민지노예로 사느냐 하는것을 판가리할 력사적시각은 왔다고 하시면서 이 엄숙한 력사의 시각에 모두다 내 나라, 내 민족을 위하여 항일전에 적극 떨쳐나설것을 호소하시였다.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조국을 해방할데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열화같은 연설은 회의참가자들을 끝없이 격동시켰다.

그들은 저마다 자리에서 일어나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을 민족의 령수로, 단결의 구심으로 받들어 그이의 가르치심대로 일제와의 최후결전에 떨쳐나설 불같은 결의를 다지였다.

회의가 끝난 후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뵈왔던 그 지식인이 오늘회의는 우리 민족의 단결사에서 또 하나의 특기할 회합이라고 하면서 조국이 해방되면 여기에 금도끼와 옥도끼로 다듬어 장군님의 업적을 칭송하는 기념비를 세우자고 격정에 넘쳐 말하니 회의참가자들모두가 한결같이 호응하였다.

그리하여 회의참가자들의 그 심정을 담은 글을 한 정치공작원이 큰 바위벽에 쓰던 일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2천만 동포여 조국이 광복되면 여기에 금도끼와 옥도끼로 다듬어 기념비 세워 김대장 위훈을 천세만세 길이길이 전하자》

이 이야기는 물론 경애하는 수령님께서 일심단결의 위대한 전통을 이룩하시고 발전풍부화시켜나가시는 과정에 있었던 하나의 사실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하나의 사실을 통하여 나는 민족의 마음을 하나로 합치게 하는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의 일심단결의 위대한 사상과 함께 그이께서 지니고계시는 크나큰 도량과 포옹력이 얼마나 거대한 견인력을 가지는가 하는것을 깊이 느끼게 되였다.

바로 그 견인력으로 하여 지난 조국광복성전에서 온 겨레가 하나로 뭉칠수 있었으며 오늘날 조국통일성업에 북과 남, 해외의 모든 동포들이 하나로 튼튼히 결속되여가고있는것이라고 나는 확신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