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도교 도정을 믿으시고

리 두 수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광범한 반일민족통일전선에 의거하여 항일혁명투쟁을 벌리는 과정에 민족적단결의 전통이 마련되였습니다.》

민족대단결의 전통에 대하여 생각할 때면 나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반일민족통일전선조직인 조국광복회를 창립하신 후 천도교 도정인 박인진을 믿으시고 그와의 사업을 통하여 산하의 천도교인들을 조국광복회의 기치아래 하나로 묶어세우시던 일을 감회깊이 돌이켜보게 된다.

1936년 10월 어느날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사령부의 정치일군들을 부르시였다. 그때 나는 소대장의 임무를 수행하다가 정치부선전과장으로 임명되였기때문에 그 회의에 참가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정치일군들이 다 모이자 조국광복회창립후 각계각층 군중을 묶어세우는데서 천도교와의 통일전선을 실현하는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하시면서 천도교의 력사와 그의 구체적실태를 잘 알고 그에 맞게 사업해야 한다고 하시였다.

천도교는 1860년 최제우에 의하여 동학이라는 이름으로 창시되여 발전하여오다가 1905년에 이르러 자기의 체모를 갖추고 천도교로 개편된 종교로서 《인내천》을 교리로 내세우고 《척양척왜》, 《보국안민》 등을 리념으로 하고있었다.

말하자면 천도교는 사람이 하늘이라는 사상을 내세우고 양놈과 왜놈을 배척하며 나라를 보호하고 인민을 안정시키며 죽어서가 아니라 살아있는 동안에 만복을 누릴 세상을 세우자는 리념을 내세움으로써 당시에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천도교는 조직체계도 정연하였다.

중앙으로부터 도, 군, 면에까지 종리원이 있고 리와 부락에는 종리사 그리고 5~6호에는 부 혹은 공작계를 두고있었다.

그뿐이 아니였다.

천도교는 자기의 전위단체로서 2만~3만명의 당원을 가진 청년당을 가지고있었으며 자기의 출판기관까지 두고있었다.

당시 천도교는 300여만명의 교인들을 망라하고있었는데 특히 조선인민혁명군이 많이 활동하고있던 백두산지구와 우리 나라 북부국경일대는 물론 장백땅에까지 널리 퍼져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천도교의 력사가 오래고 조직적으로 째여있기때문에 그와의 통일전선을 실현하는것은 쉽지 않지만 상층의 일부 교직자들을 제외한 모든 교인들이 애국애족의 정신이 강하므로 그들에게 조국광복회의 취지를 잘 알려주면 능히 묶어세울수 있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속하여 천도교와의 사업에서 류의할 점들에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천도교인들이 천도교가 내세운 교리와 리념이 가장 옳다고 생각하고있기때문에 그것을 다 버리고 우리를 따라오라는 식으로 사업해서는 안된다고 가르치시였다.

그러시면서 우리는 그들의 애국애족의 정신을 귀중히 여기고 사상과 리념을 초월하여 민족적단결의 기치밑에 조국을 해방하는데 힘을 합쳐나가도록 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또한 천도교는 오랜 력사적기간 조직적으로 체계화되면서 형성된 자기의 고유한 계률이 있는데 교인들에게 그것을 버리라고 하여도 안된다고 가르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는 어디까지나 그들의 조직과 계률을 존중해주고 그것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조국광복회강령을 실현하여나가도록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은 누구나 접수할수 있는 명철한 방안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대로 한다면 그들의 교리와 리념에도 어긋나지 않고 그들의 조직과 계률도 유지할수 있으므로 민족의 단결된 힘으로 조국을 해방하려는 조국광복회강령의 기치를 따라나설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속하여 하층교인들에 대한 교양을 강화하는 한편 상층교직자들과의 사업을 잘해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그래야 빠른 시일안에 많은 교인들을 조국광복회강령을 실현하는데로 불러일으킬수 있다고 하시면서 우리는 리나 면, 군은 물론 도와 중앙의 교직자들도 접촉하면서 천도교와의 사업을 대담하게 밀고나가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알아본데 의하면 도정 박인진과의 사업도 가능할것 같다고 하시면서 자신께서 직접 그와의 사업을 맡겠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리고 백두산과 북부국경일대의 종리원, 종리사들과 사업할 구체적분공을 주시였다.

그후 11월초 어느날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하기전 천도교청년당원이였던 리창선동무를 불러 친서를 주시면서 박인진에게 갔다오라는 과업을 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박인진은 반일감정도 높고 민족적량심도 있으며 인민들의 신망도 얻고있다고 하시면서 그는 반드시 우리와 손을 잡고 조국을 해방하는 길에 함께 나설수 있는 사람이라고 크나큰 믿음의 말씀을 하시였다.

박인진은 함남도태생으로서 일찍부터 천도교를 믿어온 사람이였다.

그는 착실한 교도이면서도 반일감정이 남달리 높아 일제의 주목을 받게 되여 27살때에 풍산으로 피하여가서 그곳 교인들속에서 반일사상을 고취하는 선전을 하였다.

그러다가 3.1운동때 교인들을 이끌고 반일시위에 참가하였다가 체포되여 서대문형무소에서 3년간 감옥생활을 하였다.

그는 감옥을 나온 후에도 뜻을 굽히지 않고 독립군과 련계를 가지고 활동하였으며 림산로동자들과 화전농들을 위하여 학교를 세우고 교육사업과 문화계몽사업도 하였다.

그러면서 천도교청년당도 조직하였으며 1932년부터는 도정이 되여 령북의 여러개 군의 종리원을 관할하면서 교인들을 지도하고있었다.

그는 천도교도로서의 오랜 경력과 풍부한 지식 그리고 강직하면서도 너그러운 성품으로 하여 관할하의 수십만 교인들이 우상화하면서 따르는 사람이였다.

그는 중앙의 상층교직자들속에서도 영향력을 가지고있는 사람이여서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져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박인진의 반일사상과 민족적량심을 귀중히 여기시고 그와 손잡고 투쟁해나가실것을 결심하시고 리창선동무를 파견하시였던것이다.

리창선동무는 박인진을 만난 후 그가 위대한 수령님께 보내는 회답편지를 가지고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믿으신대로 박인진은 수령님의 친서를 받아보고 몹시 황송해하며 회답편지를 썼다.

리창선동무의 말에 의하면 박인진은 위대한 수령님의 친서를 받아들고 몇번이나 읽었는지 모른다고 한다.

그러다가 《내 항상 마음속으로 흠모하던 명성높으신 김일성장군님의 친서를 받고보니 무어라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소. 이제 돌아가면 나는 언제나 김일성장군님의 말씀이라면 그대로 따를 생각이라는것을 전해주시오.》라고 말하고는 돌아앉아 편지를 쓰더라는것이였다.

그는 편지에 위대한 수령님의 친서를 받은 자기의 심정을 그대로 쓰면서 황송하기 그지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위대한 수령님의 의향에 다른 의견이 없다고 하면서 조선인민혁명군 대표를 보내달라는 청을 드리였다.

박인진의 편지를 받아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몹시 기뻐하시면서 인차 김평동무와 함께 리창선동무를 대표로 파견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대표로 임명해주신 김평동무일행은 장백현 17도구에 있는 종리원장 리전화의 집에서 박인진을 만났다.

김평동무는 박인진에게 위대한 수령님의 인사를 전하고나서 《조국광복회10대강령》《조국광복회창립선언》을 전하였다.

그것을 받아본 박인진은 다시금 조항조항 반복하여 읽어보고는 한동안 생각에 잠겨있다가 《조국광복회10대강령》은 민족의 뜻을 한데 모은 대강이라고 하면서 강령을 보니 김일성장군님이시야말로 조선민족이 낳은 불세출의 위인이시라는것을 더욱 절감하게 된다고 하였다.

김평동무는 박인진에게 사령관동지께서는 《조국광복회10대강령》에서도 밝히셨지만 사상과 리념, 정견과 당파에 관계없이 조국의 해방을 원하는 모든 사람들은 힘을 합쳐 왜놈들을 몰아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고 말하였다.

그러면서 그이께서는 박인진도정 같은 명망있는분들이 힘써준다면 수많은 교인들을 조국광복의 성전에 나설수 있게 할수 있다고 하시며 크게 믿으신다고 하였다.

그러자 박인진은 몹시 감동이 되여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고맙다고 하면서 미력한 힘이나마 힘껏 노력하겠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박인진은 다망하신 장군님께 아뢰기 황송하나 다문 얼마간이라도 시간을 내실수 있으면 찾아가 만나뵙고싶다는 자기의 소망을 전해달라고 하였다.

김평동무를 통하여 박인진과의 사업정형을 보고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박인진을 빨리 만나보자고 하시면서 그를 사자봉밀영으로 데려오도록 하시였다.

박인진을 데리러 리창선동무가 떠난 다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정치부동무들을 부르시였다.

그러시고는 그간 박인진과의 사업정형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그와 만날 준비를 잘하여야 한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여러가지 준비사업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지어 특색있는 음식물을 준비할데 대해서까지 구체적으로 가르치시였다.

우리가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사자봉밀영에 도착한것은 1936년 11월중순 어느날 저녁무렵이였는데 박인진도정일행은 벌써 하루전에 그곳에 와있었다.

박인진은 장백현종리원장 리전화와 그의 아들 그리고 풍산의 리윤직 등 여러명의 교인들을 데리고 와서 위대한 수령님을 기다리고있었다.

그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도착하시였다고 하자 모두 달려나와 인사들을 올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과 뜨겁게 인사를 나누신 다음 사자봉밀영 사령부귀틀집에서 밤늦게까지 많은 이야기를 나누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먼저 그들의 경력과 생활형편에 대하여 물어주시였다.

박인진도정부터 차례로 이야기를 하였는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시며 애국적인 소행에 대해서는 치하도 하여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너무도 소탈하게 대해주시니 그들은 아예 마음속을 헤쳐놓고 의문스럽던 문제까지 깡그리 털어놓았다.

박인진도정은 일행을 대표하여 이렇게 말씀드리였다.

《장군님, 제 한가지 알고싶은것이 있사온데 외람된 말씀이오나 일본놈들이 공산주의자들은 종교를 무조건 타도한다고 하는데 이에 대한 장군님의 고견을 들었으면 합니다.》

그것은 교인들에게 있어서 제일 알고싶은 문제의 하나였으며 가슴속에 늘 맺혀있는 문제였다.

그도 그럴것이 일제의 간교한 악선전으로 하여 혁명가들에 대한 좋은 말보다 나쁜 말을 더 많이 들어왔기때문이였다.

그들의 심정을 헤아리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마침 그에 대하여 이야기하려던 참이라고 하시면서 일제의 악선전의 본질과 혁명가들의 고상한 정신도덕적풍모에 대하여 그리고 종교에 대한 견해를 자상하게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는 천도교인들을 차별하지 않으며 민족의 숙원인 조국광복의 길에서뿐아니라 조국이 해방된 다음에도 신앙의 자유를 보장할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박인진도정은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을 생각에 잠겨 깊이 새겨듣다가 이미 《조국광복회10대강령》을 보고 알기는 했지만 장군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직접 알고싶어서 물었다고 하면서 몹시 송구해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의문을 가질수 있는 문제라고 너그럽게 받아주시면서 이미 알고있는 문제들이였지만 박인진도정을 통하여 다시금 천도교의 실태와 교인들의 사상동향을 구체적으로 료해하신 다음 그가 조국광복회의 취지를 찬동하고 찾아온데 대하여 높이 평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천도교는 그리스도교나 불교와 달리 조선의 《한울님》을 믿는 종교인데 일본놈들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고있지 않는가고 하시며 자신께서는 나라가 있어야 《한울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도정의 생각은 어떤가고 물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에 깊이 공감한 박인진도정은 그 말씀이 천만번 지당한 말씀이라고 하면서 자기는 조선의 《한울님》을 숭상하면서 교리에 충실하면 왜놈들을 몰아내고 나라와 백의민족을 구원할줄 알았는데 그렇게 되지 않아 암중모색하던중이라고 실토정을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장군님께서 보내주신 《조국광복회10대강령》을 보고서야 왜적을 몰아내고 《포덕천하》하여 《지상천국》을 세울 참다운 길을 찾게 되였다고 하면서 위대한 수령님께 큰절을 올리는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급히 박인진을 일으키시면서 도정님의 과찬하신 말씀에 오히려 머리가 숙어집니다. 우리 함께 손잡고 300만 교도들을 묶어세워 2천만 우리 민족이 그처럼 념원하는 광복대업을 꼭 실현합시다라고 말씀하시면서 그의 손을 굳게 잡아주시였다.

시간이 가고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교인들의 얼굴에는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신뢰와 경모의 마음이 더욱 깊게 어리였다.

저녁 9시가 되여올무렵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에게 물 한그릇을 정히 떠오라고 하시였다.

내가 법랑식기에 물을 떠가지고 들어서니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책상우에 놓였던 물건들을 치우고 그가운데 물그릇을 놓으신 다음 박인진도정에게 청수모실 시간이 되였다고 하시였다.

그러자 교인들은 깜짝 놀라는것이였다.

이윽고 박인진도정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장군님! 어떻게 우리의 내속까지도 그리 잘 아십니까.》라고 말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라고 어찌 대구 장대에서 참을 당한 최수운대신사의 신혈을 모르겠는가고 하시며 어서 청수를 봉정하라고 하시였다.

나는 그때까지도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의 뜻을 잘 모르고있었다.

후에야 안 일이지만 청수란 천도교에서 모든 의식을 할 때 떠다놓는 맑고 깨끗한 물을 말하는데 청수를 모신다는것은 천도교의 창시자인 최수운대신사(최제우)가 수도생활을 할 때 물을 떠놓고 생각에 잠기군 하였고 또 참형을 당할 때도 청수를 떠놓고 죽었기때문에 그 령혈을 상징한다는데로부터 전통적으로 계승하여오면서 물을 떠놓고 주문을 외우는것을 말한다.

그런데 청수모시기는 천도교의 의식들에서만 한것이 아니라 모든 교인들이 저녁 9시가 되면 가족단위로 또는 개별적으로 있어도 어김없이 해야 하는 계률로 되여있었던것이다.

그 일에서 또다시 큰 감동을 받은 박인진은 청수모시기를 끝낸 뒤 너무도 황송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장군님, 저는 어려서부터 해오던 청수모시기를 오늘만은 못할줄로 생각하고있었습니다.

그런데 장군님께서는 우리 교의 내속까지 죄다 깨치시여 청수를 봉정하게 해주시니 장군님은 정말 나라와 백성을 구원하실 대영걸이시고 천도교인들이 숭상해야 할 대신사이십니다.》

그러면서 그는 장군님은 민족의 대경륜인 《조국광복회10대강령》을 내놓으시고 천도교의 교리와 5관까지 환히 꿰들고계시니 자기들이 받들어모셔야 할 민족의 대영걸이시고 천도교의 대신사이시라고 하면서 장군님은 진정 조선의 《한울님》이시라고 높이 칭송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말을 들으시고 저를 그렇게까지 생각해주시니 여러분들앞에 지닌 책임이 더욱 무거워집니다. 저는 오직 조선의 아들로서 나라와 민족앞에 지닌 의무를 다하자는 생각뿐입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그날 저녁 교인들은 진정으로 위대한 수령님을 조선의《한울님》으로 높이 모시고 수령님의 뜻을 받들어 조국광복성업에 모든것을 다 바칠 결의들을 굳게 다졌다.

그들이 그렇게 모든 의문을 가시고 빨리 결심을 내리게 된것은 전설적영웅으로 인민들속에 널리 칭송되는 위대한 수령님의 절대적권위와 과거를 불문에 붙이고 조국광복성업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를 막론하고 힘을 합쳐야 한다는 수령님의 민족대단결의 그 사상에 크게 공감했기때문이였다. 또한 위대한 수령님의 한없이 겸허하고 소탈하신 품성이며 너그러우신 도량은 그들이 자기의 몸과 마음을 다 의탁할수 있게 하였던것이다.

교인들과의 담화는 다음날에도 계속되였는데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이 앞으로 교인들속에 들어가 해야 할 일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가르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먼저 조국광복회창건의 취지와 《조국광복회10대강령》의 내용을 다시금 상세히 해설해주시고 천도교인들을 조국광복회에 튼튼히 묶어세울 방도들을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교인들의 준비상태를 고려하여 우선 우리가 내세우는 사람위주의 주장과 천도교에서 내세우는 사람위주의 《인내천》주의의 공통점을 알려주고 점차로 《조국광복회10대강령》을 해설해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런 후에 그들속에 조국광복회조직을 내오며 천도교의 조직체계를 잘 리용하여 점차 조직자체를 조국광복회조직으로 전환시키면 될것이라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대로 조국광복회의 기치밑에 교인들을 묶어세울 결심은 하였으나 그들을 어떻게 이끌어갈것인가 하는 생각으로 밤새껏 모대기던 박인진도정은 수령님의 말씀에 크게 공감하며 그 가르치심이 참말로 명안이라고 무릎을 쳤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천도교중앙과의 사업을 잘하여 300만 교인모두를 조국광복회조직에 묶어세울데 대해서도 말씀하시였다.

그러자면 천도교중앙에 영향을 주되 중앙종리원장과 같이 일제와 야합하는 길로 나가는자들의 본심을 꿰뚫어보고 그런자들은 고립시켜야 한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을 듣고 곰곰히 생각하던 박인진은 그해말에 열리는 천도교중앙대회때 최린이도 자기가 한번 만나서 장군님의 뜻을 이야기해보겠다고 말씀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정 그렇다면 한번 만나보라고 하시면서 천도교중앙대회에 참가하여 사업할 구체적방향까지 일일이 말씀해주시였다.

밤에 낮을 이어 진행된 담화를 통하여 모든것을 환하게 알게 된 박인진도정은 위대한 수령님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장군님! 장군님을 만나뵙고 귀중한 가르치심을 받고보니 모든것이 석연합니다. 장군님의 반일민족통일전선로선에 대해서도 그렇고 조국광복회10대강령도 우리 령북지방 교인들은 절대지지찬성합니다. 백의민족의 위대한 영걸이신 장군님의 휘하에 우리 교도들을 묶어세워 광복성전에 떨쳐나설것을 맹약합니다.》

박인진도정은 그후 위대한 수령님께 맹약한대로 하였다.

그는 사자봉밀영을 떠나 교인들속으로 들어간 첫날부터 위대한 수령님의 주의주장은 천도교가 내세우는 《인내천》주의와 같다는것을 해설하였고 《조국광복회10대강령》을 한조항한조항 알려주면서 수령님의 뜻을 따라야 조국을 해방할수 있고 교인들의 자유도 보장될수 있다고 선전하였다.

박인진은 또한 자신이 먼저 조국광복회 회원으로 되고 제일 믿는 제자들을 비롯하여 많은 교인들을 조국광복회에 묶어세워나갔다.

그리하여 다음해 3월에는 풍산군안의 천도교핵심들을 망라하여 조국광복회 풍산지회를 조직하였고 갑산, 삼수, 혜산지방들에서도 조국광복회지회를 내왔으며 점차 천도교조직망들을 조국광복회하부조직으로 전환하기 위한 사업을 밀고나갔다.

그리고 천도교중앙대회에 가서도 위대한 수령님께서 내놓으신 반일민족통일전선로선과 《조국광복회10대강령》을 해설선전하였으며 중앙종리원장의 매국배족적인 본심을 알아보고는 그를 폭로하는 연설을 하였다.

그것을 계기로 왜놈의 개와는 다시 상종을 안하겠다고 하면서 천도교상층과 결별한 박인진도정은 자기 관할하에 있는 함남도일대의 거의 모든 교도들을 조국광복회에 조직적으로 망라시켰으며 수많은 산하조직들을 조국광복회하부조직으로 전환시키면서 더욱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그러다가 1937년 10월 《혜산사건》으로 일제경찰에 체포된 박인진도정은 옥중에서도 위대한 수령님의 뜻을 받들어 훌륭히 싸웠다.

그는 악독한 고문을 들이대는 경찰놈에게 《내가 김일성장군님을 만난것도 천도교인으로서 앞으로 천도교를 어떻게 발전시키겠는가를 의논하였을뿐이다. 나는 누구의 강요에 의해서 하는것이 아니라 나의 신념에 의하여 그리고 천도교의 교리에 의해서 조선을 독립하며 좋은 사회를 건설할것을 목적하고 투쟁할뿐이다.》라고 떳떳하게 대답하였다.

그리고 감방에 돌아와서는 《일제를 타도하고 조선을 독립시킬분은 장군님뿐이시다. 우리 천도교인들은 장군님을 따라 조국의 독립을 달성할 때까지 끝까지 싸워야 한다.》고 말하면서 감방안의 사람들을 고무하군 하였다.

박인진도정은 일제의 고문으로 하여 숨이 지는 마지막순간까지도 위대한 수령님의 믿음을 가슴에 안고 수령님께 맹약한대로 용감하게 싸웠다.

박인진도정은 1939년 3월 16일 일제의 야수같은 고문으로 조국의 해방을 보지 못한채 애석하게도 희생되였다.

그러나 그는 오늘도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믿음속에 대성산혁명렬사릉에 영생의 모습으로 살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