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의 은정

리 봉 록

 

사람들은 우리 수령님을 우러러 인민의 어버이, 은혜로운 태양으로 높이 칭송하고있다.

태양과도 같이 뜨겁고 열렬한 혁명적동지애와 혁명전사들에 대한 무한한 사랑, 그것은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의 위대한 천품이시다.

내가 여기에 적으려고 하는 이야기들은 항일혁명투쟁시기에 우리 혁명전사들에게 베풀어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친어버이사랑에 대한 하많은 전설같은 이야기들가운데서 그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백두산의 사슴발쪽

 

1938년 5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백두산밀영에서 북선반일인민유격대를 결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대책을 세워주신 후 조선인민혁명군의 군사정치활동을 더욱 강화하시기 위하여 주력부대를 친솔하시고 또다시 국경일대에 진출하시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밀영을 떠나시기 전날 아침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북선반일인민유격대 대장으로 임명된 최일현동무와 당시 경위중대 소대장겸 중대당세포 비서로 사업하던 나를 부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밀영을 떠나시기에 앞서 북선반일인민유격대 결성과 관련된 가르치심을 주시려는줄 알고 우리는 급히 사령부로 갔다.

그런데 뜻밖에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동무들과 식사나 함께 나누자고 불렀다고 하시면서 우리들에게 자리를 권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최일현동무가 동만에서 반일인민유격대창건 초시기에 입대하여 분대장, 소대장, 중대정치지도원을 거쳐 오늘은 중대장으로 활동하는 주력부대에서 제일 나이많은 지휘관이라고 하시면서 그가 보천보전투를 비롯한 여러 전투에서 특출한 공로를 세운데 대하여 그리고 정치공작임무도 훌륭히 수행한데 대하여 높이 평가해주시는것이였다.

얼마전에 위대한 수령님으로부터 북선반일인민유격대 대장이라는 크나큰 신임을 받아안았는데 이처럼 함께 식사를 하자고 불러주시여 또다시 거듭되는 치하를 주시니 최일현동무는 너무도 황송하여 몸둘바를 몰라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시선을 나에게로 옮기시며 동무도 일현동무보다 나이는 10여년 아래이지만 삼도만유격구에서부터 유격대생활을 같이하였고 반《민생단》투쟁과 같은 어려운 시련도 함께 이겨냈으며 주력부대가 압록강연안에 나온 후에는 국경지대와 국내에서 정치공작과 후방공작을 같이한적도 있는 오랜 전우인데 앞으로 일현동무가 맡은 북선반일인민유격대 결성사업을 잘 도와주어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나는 사령관동지의 뜻을 받들어 북선반일인민유격대 결성사업을 힘껏 돕겠다고 말씀드리였다.

이윽고 항일의 녀성영웅이신 김정숙동지께서 손수 음식상을 차려들고 들어오시였다.

음식상에는 여러가지 식찬들과 함께 사슴고기와 사슴발쪽이 놓여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삶아서 잘 가공한 사슴발쪽 한틀을 최일현동무앞에 놓으시며 《자, 이것은 일현동무를 위하여 따로 준비한것이니 많이 드시오.》라고 다정히 말씀하시였다.

순간 최일현동무와 나는 약속이나 한듯이 서로 마주볼뿐 아무 말도 할수 없었다.

우리는 그 사슴고기와 사슴발쪽이 어떻게 마련된것인가를 잘 알고있었다.

이곳 밀영 소부대동무들이 전해에 산짐승을 잡기 위하여 주변에 옹노를 놓고 함정을 파놓았는데 뜻밖에도 초겨울에 함정에 커다란 사슴 한마리가 빠졌다.

소부대동무들은 너무 기뻐 환성을 올리며 사슴을 가져다가 제일 좋은 살고기와 발쪽을 위대한 수령님께 드리려고 정히 보관해두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백두산밀영에 돌아오셨을 때 그들은 그 사슴고기와 발쪽을 그이께 올려달라고 김정숙동지께 드렸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몹시 기뻐하시며 사슴고기를 조금 삶아 위대한 수령님의 식찬에 섞어드리시였다. 그런데 어느새 자신의 식찬에서 사슴고기를 알아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사슴고기가 어디서 났는가고 하시였다.

김정숙동지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고맙다고 하시며 요긴하게 쓸데가 있으니 사슴고기를 더는 다치지 말라고 이르시였다

그러시고는 이날 아침에 남은 사슴고기와 발쪽을 전부 삶아 료리를 만들게 하시였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의 건강을 바라는 대원들의 간절한 념원이 깃들어있는 사슴고기를 바라보느라니 우리들은 생각이 깊어져 얼른 수저를 들수가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최일현동무를 자애로운 시선으로 바라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최일현동무는 적탄에 페를 상하였기때문에 날씨가 좀 차거나 몸이 허약해질 때면 자주 기침을 합니다.

내가 의술을 좀 안다는 사람만 만나면 일현동무의 기침을 뗄 좋은 처방이 없겠는가를 알아보군 하였는데 페나 기관지에 총상을 입은탓으로 기침을 하는데는 몸을 보신하는것외에 특별한 처방이 없을것 같다고들 하였습니다.

사슴발쪽이 허약한 몸을 보신하는데는 더없이 좋다고들 하는데 마침 이번에 여기에 와보니 밀영에 있는 동무들이 사슴고기와 함께 이 발쪽을 보관해둔것이 있었습니다.

그러시면서 이것을 보약으로 알고 어서 들라고 거듭 권하시는것이였다.

그러나 최일현동무는 좀처럼 그것을 받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손수 발쪽 하나를 최일현동무의 손에 쥐여주시며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북선반일인민유격대를 꾸릴 임무를 받은 최동무에게 있어서 당면하게 가장 중요한것은 건강을 돌보는것이요.

동무가 기침을 떼지 못하면 내가 어떻게 마음을 놓겠소.

친어머니와도 같이 다심한 그 사랑에 최일현동무는 마침내 울먹이는 소리로 《사령관동지!》하고는 위대한 수령님의 품에 와락 안기였다.

일찌기 부모를 여읜 후 육친의 정을 알지 못하고 자랐으며 모진 풍파와 시련속에서 눈물을 모르며 살아오는 강직한 그였지만 그때만은 쏟아져내리는 눈물을 어쩌지 못하는것이였다.

그 사슴발쪽이 은을 내서인지 그후 최일현동무는 륙과송전투에서 장렬한 최후를 마치던 그날까지 기침 한번 하지 않고 혈기왕성하여 잘 싸웠다.

그후 대원들속에서는 백두산의 사슴발쪽이 묵은 기침을 떼버리였다는 이야기가 옛말처럼 전해지게 되였다.

 

모르고 받아안은 은정

 

1944년 7월초 어느날이였다.

백두산밀영은 이른아침부터 명절처럼 흥성거리였다.

소부대를 이끄시고 훈련기지에 가시여 주력부대의 군정훈련을 지도하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 사령부로 돌아오신다는 련락이 왔던것이다.

이곳 소부대성원들은 물론 그때 간백산밀영강습소의 사업을 지도하고있던 김일동무도 백두산밀영에 넘어와 사령부귀틀집안팎을 돌아보며 미흡한 점이 없는가 살펴보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 오후에 밀영에 도착하시였다.

밀영에 남아있던 대원들이 앞을 다투어 그이께로 달려가 인사를 올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 한사람한사람을 따뜻이 손잡아주시며 그간 잘 있었는가, 앓는 동무들은 없는가고 다정히 물으시였다.

이윽고 김일동무의 인사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손을 뜨겁게 잡아주시더니 그의 손을 잡으신채 천천히 밀영을 돌아보시였다.

그러시고는 곧바로 그를 데리고 사령부로 들어가시였다.

김일동무는 그동안 위대한 수령님의 지시대로 간백산밀영에서 진행한 사업정형을 보고드리려고 서둘러 수첩을 꺼내들었다.

그런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웬일인지 그의 얼굴을 이윽토록 찬찬히 살펴보시더니 사업보고는 저녁식사후에 천천히 듣기로 하고 그사이에 지낸 형편부터 들어보자고 말씀하시는것이였다.

김일동무는 영문을 모르고 그사이 밀영에서 편안히 지내고있다고 말씀드렸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래도 마음이 놓이시지 않는듯 그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시더니 뜻밖에도 이렇게 물으시는것이였다.

《지난 겨울에 된감기를 앓고난 뒤에 기침을 자주 한다더니 일없소?》

김일동무는 그이께서 자기가 감기에 걸려 한동안 기침을 심하게 하면서 애를 먹던 일을 두고 하시는 말씀임을 알았다.

하지만 그무렵에는 완치되여 그자신도 까맣게 잊고있었던 일이였다.

그런데 어떻게 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 그 사실을 알고계시며 그때까지도 잊지 않고계시는지 김일동무는 좀처럼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 일때문에 공연히 수령님께 근심을 끼쳐드린것 같아 송구스러움을 금치 못해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를 정겹게 바라보시며 통신원을 통하여 동무가 기침때문에 고생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사실은 강습소일도 일이지만 동무를 얼마간이라도 휴식시키기 위해 여기 백두산으로 보냈는데 효과를 보았는지 모르겠다고 하시면서 웃으시였다.

김일동무는 그제서야 비로소 자기가 간백산밀영으로 오게 된 까닭을 알게 되였다.

그가 간백산밀영으로 온것은 이해 늦은봄이였다.

그때로 말하면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조국해방3대로선을 받들고 모든 소부대들이 일제와의 최후결전을 위한 준비로 더없이 바쁜 때였다.

김일동무의 앞에도 역시 할 일이 많았다.

그래서 몸이 불편하지만 언제 그런것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이 밤낮으로 소부대활동에 분투하고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사령부통신원이 나타나더니 위대한 수령님의 지시로 소부대사업을 인계하고 곧 간백산밀영에 가서 강습소사업을 지도하라고 전달하는것이였다.

김일동무는 위대한 수령님의 지시를 받고 간백산밀영으로 떠나면서 그때까지만 하여도 강습소일이 중요하게 제기되기때문에 그런것이라고만 생각하였지 이처럼 은정깊은 사연이 깃들어있는줄은 전혀 생각지 못하였던것이다.

김일동무가 솟구치는 격정을 애써 누르며 뜨거운것을 삼키고있는데 위대한 수령님께서 전령병실에 나가시여 자그마한 종이꾸레미를 들고 들어오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것을 그의 앞에 놓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오랜 기침에는 오미자환이 좋다고 하여 지방공작을 나갔던 동무들에게 부탁하여 좀 얻었소.

매끼 식전에 몇알씩 잊지 말고 먹도록 하시오.》

그러시고는 그날 저녁식사를 함께 하시며 어려운 고비마다 동무를 고생시키면서 언제 조용히 마주앉아 식사 한끼 나누지 못했는데 많이 들라고 거듭 말씀하시는것이였다.

그뿐이 아니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날저녁 오랜 시간에 걸쳐 강습소사업과 관련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고 소백수강가를 함께 거니시며 생활에서 제기되는 문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시였다.

어느덧 밤이 깊어 김일동무가 간백산밀영으로 돌아갈 때가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밤길에 혼자 가기 힘들텐데 이 동무들을 데리고 가라고 하시면서 친히 경위대원을 두명이나 붙여주시였다.

김일동무가 위대한 수령님의 호위를 맡은 많지 못한 경위대원들을 떼내는것이 마음에 걸려 굳이 사양했으나 그이께서는 기어이 그들을 보내주시며 이제 간백산을 떠나올 때에도 함께 오라고 당부하시는것이였다.

친어버이의 다심한 그 은정에 목메이며 김일동무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겨우 떼였다.

그런데 그들이 얼마간 갔을 때였다.

뒤에서 바래주시던 위대한 수령님의 다정한 목소리가 다시 울리였다.

《약을 잊지 말고 제때에 먹도록 하오.》

그 말씀을 들으며 김일동무는 쏟아지는 눈물을 더는 참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는 고맙다는 인사를 끝내 다시 드리지 못한채 길을 떠나고말았다.

먼 후날에도 김일동무는 위대한 수령님의 뜨거운 사랑이 어린 그 오미자환이 그대로 보약이 되여 자기에게 그 어떤 시련과 난관에도 쓰러지지 않는 힘과 용기를 주었다고 우리들에게 두고두고 이야기하군 하였다.

 

두만강의 산이면수

 

온 세계가 제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속에 빠져들어가고있던 1940년 5월이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우리 경위중대를 데리고 함경북도 연사군 삼하리 국사봉비밀근거지 물방아골밀영에서 활동하고계실 때에 있은 일이다.

하루는 물방아골밀영부근에 있는 조국광복회 삼하지회에서 위대한 수령님께 올려달라고 서두수강에서 잡은 물고기들을 보내여왔다.

그중에는 찬물을 담은 양철통(이 지방에서는《퉁재》라고 하였다.)에 물고기를 산채로 넣은것도 있었다.

그 물고기를 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것은 산이면수라는 물고기인데 여기 사람들은 《쇠지》라고 부른다고 하시면서 이곳 인민들의 성의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말씀하시였다.

우리들도 그 물고기를 보면서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인민들의 열렬한 흠모와 그이께 바치는 뜨거운 정성에 정말 감동을 금할수 없었다.

때마침 저녁식사준비를 하고있던 작식대에서는 그 물고기로 생선국을 푸짐히 끓이려고 서둘렀다.

이때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을 말리시더니 개울을 막고 물고기들을 그속에 넣어 살려보라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다른 물고기도 한끼만 끓여먹고 나머지는 잘 말려두자고 이르시는것이였다.

나는 그이의 지시대로 대원들과 함께 곧 개울을 막아 자그마한 못을 만들고 거기에 《쇠지》라고 부르는 그 진귀한 서두수의 물고기들을 넣었다.

그날 저녁식사는 그야말로 푸짐하였다.

애국적인 한 목재상이 보내온 흰쌀로 밥을 짓고 류벌공들이 잡아보낸 물고기생선국에다 혁명조직들에서 보내온 통졸임과 대원들이 뜯어온 햇나물무침까지 차려놓으니 전에없는 진수성찬이였다.

간고한 항일무장투쟁의 나날 눈비를 맞으며 싸워온 우리들에게 있어서 이처럼 푸짐한 식사는 그리 흔치 않았다.

나는 오래간만에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푸짐한 식사를 하게 된것이 기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저녁상을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싱글벙글 좋아하는 우리들을 둘러보시며 얼른 수저를 들지 못하시였다.

그러시더니 조용히 처창즈수림속에서 한사발의 통강냉이를 삶아서 몇알씩 나누어먹던 일이며 개구리를 잡아서 소금도 없이 끓여놓고 5.1절을 쇠던 일을 회고하시는것이였다.

나는 기본전투부대들은 싸우러 나가고 환자들과 우리 경위중대의 어린 대원들이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있던 그때 그이께 드릴 식량마저 마련할 길이 없었던것을 생각하며 송구스러운 마음을 누를길 없었다.

그런데 그때로부터 얼마만에 이렇듯 보기 드문 음식상을 마주하시였으니 위대한 수령님께서 어찌 감회가 깊으시지 않겠는가.

내가 자기나름으로 이런 생각에 잠겨있는데 문득 그이께서는 김홍수동무네들이 지금 어떻게 지내고있는지 모르겠다고 걱정어린 목소리로 말씀하시는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그 말씀을 듣는 순간 나는 그만 가슴이 뭉클하였다.

우리가 이곳으로 나올 때 우리 경위중대의 어린 대원이였던 김홍수동무를 비롯한 몇명의 대원들을 미처 몸이 추서지 못하여 남겨두었는데 정황이 허락치 않아 식량도 충분히 마련해주지 못하였었다.

그때 자기들도 함께 가겠다고 졸라대는 동무들을 보시며 위대한 수령님께서 얼마나 생각이 많으시였던가.

나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어찌하여 상을 받으시고서도 얼른 수저를 들지 못하시는지 그제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였다.

이윽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저 조국의 물고기를 잘 살려서 앓는 동무들에게 가져다주자고 말씀하시였다.

어쩌다 차례지신 생선국을 보시고도 먼곳에 떨어져있는 전사들을 먼저 생각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다심한 어버이의 그 은정에 우리들은 모두 뜨거운것을 삼키였다.

이튿날부터 우리들은 그 물고기를 정성껏 길렀다.

하루에도 몇번씩 찬물을 갈아주고 실개천의 돌에 붙은 벌레를 잡아 먹이로 주었다.

그랬더니 물고기들은 한마리도 죽지 않고 잘 살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바쁘신 가운데서도 물고기에 깊은 관심을 두시고 자주 나와보시군 하였다.

어느날 그이께서는 물속에서 꼬리치며 다니는 그 물고기들을 보시면서 이런 강물고기는 입맛을 잃은 환자들을 빨리 추세우는데도 좋고 어린이들의 건강에도 매우 좋다고, 조국이 해방되면 강과 호수를 리용하여 맛있는 물고기를 많이 길러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도 물고기반찬을 많이 먹을수 있게 해야 한다고 뜻깊은 말씀을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뜨거운 어버이사랑이 어린 물고기는 마침내 양철통에 담겨 적들의 삼엄한 경계망이 펼쳐진 국경선을 넘어 고스란히 대원들에게 전달되였다.

그때 조국땅의 진귀한 물고기생선국을 한그릇씩 받아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던 김홍수동무를 비롯한 여러 동무들의 모습이 지금도 나의 눈앞에 선하다.

한그릇의 물고기생선국을 놓고서도 먼저 대원들을 생각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그 친어버이사랑이 조국땅의 물고기가 산채로 국경을 넘어가는 또 하나의 사랑의 전설을 낳게 한것이다.

하기에 나는 지금도 가끔 이런 생각을 하군 한다.

과연 우리가 무슨 힘이 있었기에 일제의 백만대군과 맞서 15성상 엄혹한 추위와 눈보라, 굶주림과 피어린 전투들속에서 싸워이길수 있었겠는가.

솔직히 말해서 항일무장투쟁참가자들이 그 무슨 장수적인 기질이나 천명을 타고난 사람들은 결코 아니다.

우리 혁명의 1세들이 발휘한 불사신의 그 힘은 바로 위대한 수령님의 전사들에 대한 친어버이사랑속에 키워진것이였다.

우리 혁명의 1세들이 안겨 살던 자애로운 어버이품에 오늘은 전체 인민이 대를 이어 살고있으니 정녕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어버이로 모셨기에 우리 인민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고 힘있는 인민으로 될수 있었던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