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루춘풍》의 고민

랭전의 유물로서 이미전에 해체되였어야 할 북대서양지역의 군사동맹 나토를 꼭 닮은 《쌍둥이》가 이제는 아시아지역에 출현하려 하고있다. 미국이라는 강압적인 산파에 의해 구축되고있는 《인디아태평양판 나토》의 등장은 여러 나라와 지역들의 위구심을 불러일으키고있다.그중에서도 가장 번뇌에 싸여있는것은 《한국》이라 해야 할것이다. 미국의 강압을 따르자니 다른 대국의 미움이 두렵고 그러지 말자니 미국의 눈총이 매섭다. 그러다 결국엔 북중로 대 《한》미일의 대결구도가 형성되지나 않을가 하는 위기의식이 날로 팽배해지며 실로 안절부절하고있다.

다른 누구보다 《한국》이 제일 큰 고민의 짐을 지고 천사만려해야 하는 까닭은 무얼가.

대국들사이에 쌘드위치마냥 끼워있으며 특히 새 《나토》가 과녁으로 삼고있는 대국과 직접 마주해있다는 지정학적리스크때문만이 아니다.

보다는 자기의 똑똑한 견해와 주장, 철학이 없기때문이 아니겠는가 생각된다.

평범한 개인도 세상을 살아가자면 자기 식의 주장과 타인의 강압을 물리칠만 한 배포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없다면 험한 세상에서 남의 리용물이 되고 꼭두각시가 되기 십상일것이다. 하물며 나라와 민족의 경우에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렇다면 아프리카도 남미주도 아닌 동북아에서 강국들의 틈바구니에 끼인 《한국》으로서는 생존을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것이 배짱과 주대라 해야 할것이다.

그런데 보다싶이 현실은 그렇지 않다.

대국들을 상대함에 있어서 《한국》의 외교전략은 《두루춘풍》이라 할수 있다. 누구에게도 대들지 말고 누구에게나 좋게 대하려는것, 즉 주변의 대국들 모두에게 예쁘게 보이고싶은것이다.

허나 외교에서, 특히 격렬한 리해충돌이 다반사로 되여있는 대국들사이에서 이러한 영합주의가 절대 통할수 없음은 민족수난사의 과거가 잘 보여주었고 주변대국들의 패권경쟁으로 《신랭전》이 도래하고있는 현실이 또한 극명하게 웅변해주고있다.

이러한 교훈과 현실을 뻔히 알면서도 주대 한번 세우는것을 겨드랑이에 불덩어리를 끼는것만큼이나 어렵게 여기고있으니 늘 대국들의 핍박과 단근질에 시달리며 고민과 근심속에 살아야 하는것이다. 그러한 서울의 모습을 보느라면 혐오와 경멸의 감정들이 저도 모르게 교차됨을 어쩔수 없다.

누군가 말하기를 자기 주장이 없는자는 겁쟁이고 그것을 가지려 하지 않는자는 건달군이며 가질수 없는자는 바보라고 했다.

그럼 《한국》은 이중 어디에 속하는것일가.

 

메아리 | 2020년 9월 17일

황학 – 도꾜


두루춘풍 @[-春風]

품사: [명]
아무데나 다 봄바람이 분다는 뜻으로 《사람들을 원칙적으로 대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다 좋도록 호인격으로 대하는것 또는 그렇게 대하는 사람》을 비겨 이르는 말.
례: 생긴것처럼 두루춘풍인것 같다. 남이 좋다는 일이라면 바지가 벗겨지는줄 모르고 덤벼들 호남아였다.(장편소설 《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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