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원수께 드리는 노래》에 비낀 이야기

작사: 원종소
작곡: 박한규

 

1956년 2월의 봄날이였다.
그날도 학교에서 돌아오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즐거운 마음으로 응접실에 가져다놓은 신문들과 통신자료들부터 펼치시였다. 매일매일 신문과 통신자료들을 빠짐없이 읽고 중요내용들을 아버님께 알려드리는것을 철칙으로 여기는 그이이시였다.

그날의 통신자료에는 쏘련공산당 제20차대회소식이 집중편집되였었다.
쓰탈린 서거 후 처음 진행된 1956년 쏘련공산당 제20차대회에서 당 제1비서 흐루쑈브가 외국당대표들에게는 알리지도 않고 저희 대표들만 모스크바시당회의실에 따로 모여놓고 비밀보고라는것을 하였다. 무려 7시간에 걸치는 장문의 보고는 첫 말마디부터 《개인미신(숭배)》을 반대한다는 미명하에 쓰딸린을 악랄하게 헐뜯는 내용으로 일관되여있었다.
당시 평양제1중학생이셨던 김정일동지께서는 흐루쑈브의 보고는 명백히 혁명의 수령을 헐뜯고 혁명과 건설에서 수령의 령도를 거부하는 추악한 배신행위라는것을 꿰뚫어보시였다.

빨리 아버님께 알려드려야겠다고 생각하셨다. 자리를 차고 일어나셨지만 인차 자중하셨다. 천리혜안으로 먼 앞날까지도 내다보시는 아버님이시니 이미 더 구체적으로 알고계시리라는 생각에서였다.

아버님께서 얼마나 놀라셨을가. 아니, 얼마나 실망이 크실가.

초조한 마음은 줄곧 아버님한테로만 달리시였다.
그날밤 수령님께서는 여느날보다 퍽 늦어서야 댁으로 돌아오시였다.

《정일이냐?》

《네, 아버님.》

《왜 아직 자지 않느냐. 밤이 퍽 깊었는데.》

수령님께서는 굳이 엄중한 사태에 대해서는 말씀하지 않고 배심있게 이으셨다.

《너무 걱정할건 없다. 혁명의 길은 준엄하다고 하지 않냐. 력사발전과정에는 예측하지 못했던 일도 생길수 있고. 우리가 이런 사태를 한두번만 겪었냐. 40년대초만도 그렇지… 41년도 일이 잊혀지지 않는구나.》

김정일동지께서는 약간 떨리는 음성으로 말씀올리시였다.

《한데 아버님, 전 잘 리해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선대수령을 그렇게 헐뜯을수가 있습니까?

수령은 곧 조국이며 민족의 운명이 아닙니까. 더우기 쓰딸린은 레닌의 충직한 후계자, 계승자인것은 더 말할것없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 쌓은 공로만도 어딥니까. 흐루쑈브가 뭐길래 감히…》

그이께서는 너무 격분하여 말씀의 끝을 채 마무리지 못하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잠시 사이를 두며 아드님을 지켜보시였다.

탄복됨이 커서만이 아니시였다. 아드님이 결코 리해되지 않아서 하는 말이 아니였기때문이였다. 아드님의 말을 더 듣고싶으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얼마간 격정을 누르고나서 계속하시였다.

《명백히 이건 비렬한 배신입니다. 〈개인미신〉을 떠들지만 본질은 수령의 업적과 권위, 더 엄중하게는 수령의 령도를 거부말살하고 종당에는 자기를 내세우려고 하는 추악한 음모라고 생각합니다.》

《음, 정치적야심가들의 비렬하고 너절한 배신행위가 옳아.》

수령님께서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아버님앞으로 한걸음 다가서며 말씀올리시였다.

《아버님, 이제 흐루쑈브의 지휘봉을 따르는 유럽사회주의나라들이 우려됩니다. 선대수령의 업적을 거세말살하려는 대국의 압력이 이번 당대회에서의 망동, 망언으로 끝나지는 않을게 아닙니까.》

그이의 예측은 정확했다.

당대회가 있은 직후인 3월초 쓰딸린서거 3돐에 즈음하여 쏘련에서는 그에 대한 일체 행사가 중지되였으며 그로 하여 쓰딸린의 고향인 그루지야에서는 인민들과 민병사이에 충돌이 일어나는 비정상적인 사태가 발생했다. 련이어 4월과 5월에는 뽈스까와 체스꼬슬로벤스꼬에서 당과 정부의 적지 않은 고위급지도자들이 《쓰딸린주의자》로 락인받고 강직제거되였는가 하면 10월에는 마쟈르의 수도 부다뻬슈뜨에서 반혁명폭동까지 일어나는 사변이 발생하였다.

대국의 압력은 유럽의 사회주의나라들에만 뻗친것이 아니였다.

그해 4월에 진행된 조선로동당 제3차대회에 참가한 쏘련대표단 단장 브레쥬네브는 주제넘게도 우리 당대회의 보고내용을 시비하면서 저들의 《개인미신》론을 주입시키려고 거만하게 획책하다가 수령님의 반격을 받았다. 그때 좋은 기회라도 만난듯이 대국주의자들과 합세하여 뒤에서 쏠라닥거리던 최창익, 박창옥 등 반당반혁명종파분자들을 단호히 적발, 징벌하지 않았다면 우리 나라에서도 어떤 일이 터졌을런지 모르지 않았는가!…

(중략)

김정일동지께서 그 수령송가창작을 발기하신것은 한해전(1956년) 새해정초였다고 하였다.

아직은 정체를 다 드러내놓지 않았으나 현대수정주의자들의 책동에 편승해나선 최창익, 박창옥을 비롯한 반당반혁명종파분자들의 쏠라닥거림이 점점 더 극도에 이르고있는 때였다.

그날 민족보위성 부상인 최현과 류경수군단장을 비롯한 항일혁명투사들은 수령님의 댁을 찾아갔었다.

오래간만에 한자리에 모이게 된 투사들은 먼저 수령님께 경건히 설인사를 올린 다음 즐겁게 오락회를 펼치였다. 유격대의 추억을 불러 저저마다 수령님앞에서 빨찌산의 노래를 부르고나서 어깨를 겯고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목청껏 합창하였다.

그 광경을 보시는 김정일동지께서는 무척 감동되시였다.

온 나라 인민이 다 항일혁명투사들처럼 위대한 수령님만을 한마음한뜻으로 받들어모셨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는 생각이 번뜩 떠오르시였다. 그러자 그이께서는 광망한 바다의 격랑과도 같은 흥분의 파도에 휩싸이시였다.

그렇다. 노래가 있어야 한다. 위대한 수령님을 열화와 같이 칭송하는 수령칭송의 송가가!

그이께서는 격파처럼 솟구치는 흥분으로 하여 낮과 밤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시였다.

세상을 뒤숭숭하게 한 쏘련공산당 제20차대회가 있은 직후였다.

무척 만나고싶으셨던 최현과 류경수가 마침 댁으로 다시 찾아왔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여느때보다 더욱 반갑게 맞아주시였다.

《어서 오십시오. 내가 투사동지들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압니까.》

그이께서는 어지간히 긴장해하기도 하는 그들을 응접실로 안내하고 친히 자리를 권하시였다.

그리고 침착하게 그동안의 안부를 묻고나서 저으기 진중하게 물으시였다.

《쏘련공산당 제20차대회에서 한 흐루쑈브의 보고를 보았습니까?》

《보았소. 전탕 쓰딸린비판이더구만!》

최현이 먼저 퉁명스러운 투로 대답했다.

류경수도 침이라도 뱉을 인상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고개를 약간 끄덕여보이고나서 이으시였다.

《흐루쑈브는 수령을 개인으로 보면서 쓰딸린을 비판하였는데 결국 이것은 혁명과 건설에서 차지하는 수령의 결정적역할에 대한 거부이며 나아가서는 수령이 필요없다는 궤변입니다.》

최현이 제 성미대로 대뜸 격분을 터뜨렸다.

《미친놈같으니, 수령이 필요없다는게 무슨 개나발이야. 그거야 하늘에 태양이 없어도 된다는 개똥같은 나발인데 그게 어디 제정신 바로 가지고 하는 소리야?!》

김정일동지께서는 옳다고, 흐루쑈브는 하늘의 태양과도 같은 수령의 역할을 거부하고 혁명을 망쳐먹게 하고있다고, 여기에 그가 들고나온 《개인미신》론의 반동성과 위험성이 있다고 하시면서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제정신을 가지고 수령님두리에 사상의리적으로 굳게 뭉쳐 수령님을 더 높이 내세우고 진심으로 더 잘 받들어모셔야 한다고 하시면서 계속 이으시였다.

《흐루쑈브야말로 너절한 배신자, 음모가, 정치적야심가입니다. 그는 혁명가로서의 의리는 물론 초보적인 인간적도덕의리도 모르는 무뢰한입니다. 레닌과 쓰딸린에 대한 초보적인 의리만으로도 어떻게 그럴수가 있습니까!》

두 투사는 생각이 깊어졌다.

얼마나 폭넓고 깊고 예리한 분석인가!

사실 그들은 흐루쑈브의 보고를 보면서 기분이 나쁘긴 했지만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못했던것이다.

흐루쑈브의 주장은 그 나라와 쓰딸린개인에 한한 문제라고, 다른 나라도 아닌 쏘련공산당에서 그런 불미스러운 문제가 생긴것이 놀라운 일이라고 여겼을뿐이였다.

김정일동지와의 그 격동적인 담화는 이후 당중앙위원회 8월전원회의 때 어리석게도 우리 당에 정면으로 도전해나서는 반당반혁명종파분자들을 향해 최현이 가차없이 어느 놈이 감히 우리 수령님을 헐뜯느냐고, 당장 용서치 않겠다고 추상같이 웨치게 하였다.

그 소식을 들으신 김정일동지께서는 항일혁명투사들이야말로 수령옹위의 제1선에 선 충신들이라는것을 다시금 절감하면서 하루빨리 《김일성장군의 노래》와 같은 수령칭송의 노래를 완성해야겠다는 결심을 다지시였다.

며칠후 류경수군단장을 다시 만나게 된 김정일동지께서는 인민군대가 수령의 권위를 허물어버리려고 책동하고있는 현대수정주의자들과 반당종파분자들에 대한 대답으로 《김일성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당중앙위원회를 목숨으로 사수하자!》라는 구호를 내들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면서 위대한 수령님을 칭송하는 노래창작을 그가 직접 책임지고 항일혁명투사들과 함께 인민군대에서 완성할데 대해 부탁하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후에도 여러차례 류경수를 만나 송가창작정형을 알아보시면서 노래가 훌륭히 완성되도록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

한데 노래가 완성되여 시연회를 열었을 때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노래는 조선인민군협주단의 남성중창으로 형상되였는데 노래가 끝나기 바쁘게 시연회에 참가했던 한 《간부》가 대뜸 시비를 걸었다.

《백두밀림에서 밝아온 아침이라는건 무슨 소리요? 아니, 조선의 아침이 동해에서 밝아오지 어떻게 백두산에서 밝아오는가? 가사를 도대체 누가 썼소?》

노래작사를 맡은 작가는 기가 눌려 엉거주춤 일어섰다.

그러자 그자는 더욱 로골적으로 비꼬아댔다.

《여보, 자연의 법칙을 무시해도 분수가 있지. 동서남북도 모르는 무식쟁이들이 노래는 무슨 노랜가가, 에?》

눈총은 작가에게 쏘았지만 평시부터 마깝잖게 보아오던 항일혁명투사들을 두고 하는 잡소리였다.

때를 만난듯이 그자의 옆에 딱 붙어앉았던 땅딸보《간부》가 생김새에 어울리지 않게 냉큼 일어나 제법 점잔을 뺐다.

《그건 그렇구, 무슨 노래가 이렇게 빨래줄처럼 길어? 이것도 노래라고 하오? 노래라는 〈노〉자나 아는가?》

시연회를 한다는 소식에 류경수와 함께 기쁨을 앞세우며 참가했던 최현이 종시 참지 못하고 와당탕 일어났다.

《뭐야? 이 돼먹지 않은것들. 너희들이 알면 뭘 얼마나 안다고 이 개수작들이야?》

류경수도 뒤따라 일어섰다.

《당신들은 이 노래를 심사할 자격이 없소. 심사할분이 따로 계신단 말이요!》

그들은 너무 격분하여 가사와 곡을 걷어안고 시연회장을 나와 그길로 김정일동지를 찾아갔다.

시연회과정에 있었던 일을 구체적으로 다 들으신 김정일동지께서는 분노를 참느라 한동안이나 말씀을 못하시였다. 이윽해서야 가사와 곡, 특히 《시비거리》로 된 표현들을 조용히 음미해보고나서 격정을 누르며 말씀하시였다.

《내 보기에는 노래가 아주 좋습니다. 나는 의견이 없습니다.

내가 생각하고있던 내용들이 그대로 잘 반영되였습니다. 이런 노래가 나온것은 경사입니다. 우리는 이미 이런 노래를 만들어 전체 인민들과 군대가 부르게 했어야 했는데 〈김일성장군의 노래〉가 나온지 10년이 지난 오늘에야 완성하게 됐습니다.

인민들은 좋아할것입니다. 우리 인민을 얼마나 사랑하시는 수령님이시고 수령님을 어떻게 흠모하며 진정으로 따르는 인민입니까!》

그이께서는 노래가 늦게 나온것은 생각할수록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거듭 말씀하시고나서 저으기 근엄한 음성으로 이으시였다.

《노래가 늦게 나온것만 해도 가슴아픈 일인데 이 좋은 노래를 시비하는자들이 있다니 정말 격분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그자들이 한 말을 따져보면 결코 세상물정을 몰라서 하는 소리가 아닙니다. 명백히 음흉한 딴 목적이 있는 수작질입니다.

다시말해서 우리 수령님의 권위를 헐뜯고 우리의 귀중한 혁명전통을 말살하자는 짓거리들입니다. 그자들의 본심은 명백히 거기에 있습니다.… 수령과 인민사이의 불같은 정, 그 생명선을 끊어놓자는데 있습니다. 참으로 어리석기 그지없는 어불성설!… 력사는 천추만대를 두고 용서치 않을것입니다.》

불멸의 향도 《남산의 새 아침》에서 발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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